슈퍼맨 부장이 떠나는 직장, 믿음직한 사람부터 빠지는 이유

직장에는 가끔 "이 사람이 있어서 돌아간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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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그 사람도 못 버텼다면, 평범한 사람은 더 못 버틴다

직장에는 가끔 "이 사람이 있어서 돌아간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다.

현장을 잘 안다.
남의 얘기를 잘 들어 준다.
판단이 빠르다.
후배 교육도 한다.
위에도 아래에도 말이 통한다.
곤란할 때 상담하면 어떻게든 일이 한 걸음 나아간다.

주변에서 보면 그 사람은 믿음직한 사람이다.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다.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왜 그만두는 거야?
다들 그 사람만 믿고 있었는데.
좋은 사람이었는데.
계속 있어 줄 줄 알았는데.

하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니, 다 같이 기대고 있었기 때문 아닌가?

믿음직한 사람이 떠나는 건 그 사람이 약해서가 아니다.
조직이 그 사람을 사람 인프라(시스템이 아니라 특정 개인이 일터를 떠받치는 상태)로 계속 써 먹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믿음직한 관리자, 실무자, 베테랑이 떠나는 직장의 구조를 슈퍼맨 부장의 퇴사라는 관점에서 정리해 본다.

참고로 이 글은 특정 회사나 부서, 인물을 가리키지 않는다. 여러 직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구조를 추상화한 것이다.


1. 슈퍼맨 부장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슈퍼맨 부장"은 정말로 초인적인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조직 안에서 다음과 같은 역할을 공식 업무도 아닌데 떠안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 현장의 상담 창구
  • 신입이나 팀장급의 교육 담당
  • 문제가 터졌을 때의 판단자
  • 부서 간 조율 담당
  • 윗선에 말을 전해 주는 사람
  • 애매한 안건을 정리해 주는 사람
  • 품질 검사나 개선 활동에 조언해 주는 사람
  • 예외 상황의 받침대
  • 누구한테 물어야 할지 모를 때 마지막으로 찾는 창구

원래 이런 일은 여러 역할과 부서, 규칙으로 나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체계가 약한 직장에서는 특정한 "일 잘하는 사람"에게 몰린다.

그리고 그 사람이 열심히 할수록 회사는 착각한다.

뭐야, 잘 돌아가네.

아니다.

잘 돌아가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이 혼자 돌리고 있을 뿐 이다.


2. 슈퍼맨 소모형 조직

슈퍼맨 소모형 조직이란, 일 잘하는 사람에게 업무와 판단, 상담, 책임을 몰아주고 그 사람의 능력과 선의로 조직의 구멍을 계속 메우는 직장이다.

흐름은 이렇다.

직장에 구멍이 있다
↓
일 잘하는 사람이 알아챈다
↓
일 잘하는 사람이 메운다
↓
주변이 기댄다
↓
안건이 더 모인다
↓
회사는 체계를 만들지 않는다
↓
일 잘하는 사람이 번아웃된다
↓
그만둔다
↓
주변이 "왜 그만두는 거야?"라고 말한다

이 구조가 무서운 건 밖에서 보면 미담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저 사람은 의지가 되는 사람이야.
저 사람은 신망이 두터워.
저 사람은 책임감이 있어.
저 사람이 현장을 받치고 있어.

물론 그 말 자체는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기대는 양에 비해

  • 권한
  • 인원
  • 시간
  • 평가
  • 휴식
  • 후계자
  • 업무 설계

가 모자라면, 그 사람은 계속 버틸 수 없다.


3. "의지가 되는 건 이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

의지가 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인간관계가 건조한 직장보다 서로 기대고 기대받는 직장이 따뜻할 때도 있다.

다만 "의지가 되는 건 이득"이라고 하려면 조건이 있다.

역할이 있다
권한이 있다
시간이 있다
평가를 받는다
책임 범위가 분명하다
거절해도 관계가 깨지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이 조건이 갖춰져 있다면 기댐을 받는 일은 성장의 기회가 된다.

하지만 조건이 없으면 위험하다.

상담만 온다
판단만 요청받는다
전화만 넘어온다
교육만 맡는다
예외 대응만 떨어진다
책임만 진다
그런데 권한도 시간도 평가도 없다

이건 이득이 아니다.
비공식적인 부담 집중 이다.


4. 사람 인프라가 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사람 인프라란 제도가 아니라 특정 개인이 직장을 떠받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 사람이 있는 동안은 문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전화가 많다
하지만 누군가가 다 받아 준다

서류 관리가 허술하다
하지만 누군가가 찾아 준다

교육이 특정인에게 쏠려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가르쳐 준다

윗사람의 결정이 느리다
하지만 누군가가 조율해 준다

현장이 곤란해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상담해 준다

그러면 회사는 체계를 만들지 않는다.

겉으로는 돌아가고 있으니까.

그러다 그 사람이 빠지면 단번에 드러난다.

전화는 누가 받지?
판단은 누가 하지?
교육은 누가 하지?
현장과 조율은 누가 하지?
윗선 보고는 누가 하지?
예외 대응은 누가 하지?

그제야 회사는 깨닫는다.

어라, 이거 제도가 아니었네.


5. 슈퍼맨 부장의 위험 신호

믿음직한 사람이 한계에 가까워지면 이런 신호가 나타나기도 한다.

  • 퇴근이 늦다
  • 쉬는 시간이 늘었다
  • 담배를 피우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 얼굴에 피로가 확연하다
  • 예전보다 말수가 줄었다
  • 주변의 상담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 갑자기 퇴사가 결정된다
  • 오래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일찍 그만둔다
  • "그 사람이면 어떻게든 해 주겠지"라는 말이 늘고 있다
  • 주변이 그 사람에게 너무 기대고 있다

물론 퇴사 이유는 본인만 안다.

하지만 구조로 보면 이렇게 보인다.

너무 기대 버린 기둥이 더는 버티지 못하게 된 것이다.


6. "왜 그만두는 거야?"가 아니라 "왜 그렇게까지 기댔을까"

슈퍼맨 부장이 그만두면 주변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왜 그만두는 거야?

하지만 정말 물어야 할 건 그게 아니다.

물어야 할 건 이쪽이다.

왜 그 사람에게 상담이 몰렸을까
왜 그 사람만 판단할 수 있었을까
왜 그 사람이 교육도 조율도 현장 대응도 하고 있었을까
왜 후임이 자라지 못했을까
왜 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왜 그 사람이 늦게까지 남아 있었을까
왜 주변은 그걸 당연하게 여겼을까

다시 말해

왜 그만두는 거야?

가 아니라

왜 그만두고 싶어지는 구조였을까?

를 봐야 한다.


7. 일 잘하는 사람일수록 번아웃되는 이유

WHO(세계보건기구)는 번아웃을,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에서 생기는 직업상의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특징으로는 에너지 고갈, 일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나 부정적인 감정, 직업적 효능감의 저하를 꼽는다.

또 JD-R 모델(일의 요구와 자원의 균형으로 직무 스트레스를 보는 이론)에서는, 일의 요구가 높은데 자원이 부족하면 번아웃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정리한다.

슈퍼맨 부장의 상황이 바로 이것이다.

일의 요구
- 판단
- 상담
- 교육
- 조율
- 예외 대응
- 부서 간 다리 놓기
- 위아래 사이에 낀 처지

부족한 자원
- 인원
- 권한
- 시간
- 후계자
- 체계
- 정당한 평가
- 휴식

요구는 높은데 자원은 모자란다.

이 상태가 이어지면 아무리 유능해도 닳는다.


8. "그 사람도 못 버텼다면 나는 더 못 버텨"라는 위험 판단

믿음직하고, 관리도 잘하고, 현장도 아는 사람이 그만둔다.

그걸 보면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럽다.

그 사람도 못 버텼는데, 나는 더 못 버텨.

이건 도망이 아니다.
꽤 냉정한 위험 판단이다.

특히 다음 조건이 겹친다면 더욱 그렇다.

  • 그 사람이 매우 우수했다
  • 주변에서 강하게 의지했다
  • 오래 있을 줄 알았는데 일찍 그만뒀다
  •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 그 사람의 일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다
  • 나도 비슷하게 허드렛일 처리반 취급을 받고 있다

이런 경우 "나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위험하다.

슈퍼맨이 소모되는 직장에서는 평범한 사람도 소모된다.


9. 기둥 역할을 맡게 되는 사람의 특징

기둥 역할을 떠맡기 쉬운 사람에게는 특징이 있다.

  • 말을 걸기 편하다
  • 화를 내지 않는다
  • 정리가 빠르다
  • 다른 부서와도 대화가 된다
  • 현장도 안다
  • 교육도 할 수 있다
  • 남의 불안을 잘 알아챈다
  •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생각한다
  • 책임감이 있다
  • 조율을 잘한다

원래는 이게 다 장점이다.

그런데 구멍투성이인 직장에서는 이 장점들이 달라붙는 면이 된다.

말을 걸기 편하다
→ 일단 무슨 일이든 상담이 들어온다

화를 내지 않는다
→ 대충 막 대한다

정리가 빠르다
→ 애매한 안건을 던진다

교육할 수 있다
→ 육성 책임을 짊어진다

다른 부서와 대화가 된다
→ 조율 창구가 된다

어떻게든 해낸다
→ 담당 밖의 일까지 내 담당이 된다

결국 장점이 그대로 위험이 된다.


10. 회사가 진짜로 해야 할 일

슈퍼맨 부장을 잃고 싶지 않다면 회사는 "고맙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해야 할 일은 체계화다.

10-1. 상담 창구를 나눈다

모든 상담이 한 사람에게 가지 않도록 한다.

현장 판단
품질
인원
교육
서류
전화
안전
설비

각각 1차 창구를 따로 둔다.

10-2. 판단자를 분명히 한다

"누구한테 물어야 하는지"를 문서로 정해 둔다.

담당자
판단자
승인자
보고처
기한

을 한 세트로 정한다.

10-3. 교육을 특정인에게 맡기지 않는다

표준 매뉴얼, 영상, 스크립트, 체크리스트를 남긴다.

사람이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제도가 가르치는 상태에 가깝게 만든다.

10-4. 전화·문의 연결 기준을 만든다

전화나 담당이 불분명한 안건을 특정인이 다 빨아들이지 않게 한다.

공공기관
기존 거래처
영업 전화
담당자 부재
담당 불명

을 구분한다.

10-5. 기둥 역할의 업무량을 눈에 보이게 한다

"그 사람이 무엇을 떠안고 있는지"를 가시화한다.

보이지 않으면 줄일 수 없다.


11. 기둥 역할을 맡게 될 것 같은 사람의 방어법

내가 기둥 역할이 되어 가고 있다면 다음과 같이 울타리를 친다.

11-1. 상담에는 응하되, 담당은 되지 않는다

정리하는 상담은 해 드릴 수 있지만, 계속되는 대응이나 판단은 담당자나 상사 쪽에서 부탁드립니다.

11-2. 판단은 상사에게 돌려보낸다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서, 상사분의 판단으로 부탁드립니다.

11-3. 정보 공유와 책임을 분리한다

정보 공유는 해 드릴 수 있지만, 이후 대응은 담당 쪽에서 부탁드립니다.

11-4. 교육은 자료로 만드는 데까지만

표준 매뉴얼, 영상, 스크립트는 공유해 두었습니다.
정식 담당 지정, 책임 범위, 시작 시기는 상사분의 판단으로 부탁드립니다.

11-5. 전화는 봇처럼 받는다

회사명, 성함, 용건, 연락 가능한 번호를 알려 주세요.
필요하면 담당자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11-6. 추가 대응에는 조건을 건다

이쪽에서 추가 대응이 필요하다면, 대응자, 대응 범위, 판단자, 기한을 분명히 해 주세요.

12. "믿음직한 사람"이 그만두기 전에 봐야 할 체크리스트

직장에 다음과 같은 징후가 있다면 기둥 역할을 하는 사람이 번아웃될 가능성이 높다.

곤란하면 늘 같은 사람에게 묻는다
그 사람이 없으면 판단이 멈춘다
그 사람의 퇴근이 늦다
그 사람이 쉬기 어렵다
그 사람이 교육도 조율도 예외 대응도 하고 있다
그 사람의 업무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
그 사람에게 감사는 하지만 업무는 줄여 주지 않는다
그 사람이 없을 때의 대체 경로가 없다
그 사람이 그만두면 누가 할지 모른다

이런 상태에서 "신망이 두터우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신망은 연료가 아니다.
오히려 신망이 두터운 사람일수록 잘 탄다.


13. 정리: 믿음직한 사람이 그만두는 건 그 사람이 약해서가 아니다

슈퍼맨 부장이 그만두는 직장에는 대체로 이런 구조가 있다.

구멍이 많다
일 잘하는 사람이 메운다
주변이 기댄다
회사는 체계를 만들지 않는다
믿음직한 사람의 부담이 늘어난다
번아웃된다
그만둔다
주변이 "왜 그만두는 거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답은 꽤 분명하다.

너무 기댔기 때문이다.

믿음직한 사람이 있는 건 행운이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계속 기대는 건 위험하다.

회사가 해야 할 일은 슈퍼맨을 칭송하는 게 아니다.
슈퍼맨이 없어도 돌아가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결론을 정리한다.

의지가 되는 건 장점이다.
하지만 기대받는 양에 비해 권한, 인원, 시간, 평가, 체계가 모자라면 번아웃된다.

일 잘하는 사람이 그만두는 건 약해서가 아니다.
사람 인프라로 소모됐기 때문이다.

기둥 역할이 될 것 같다면 상담과 담당을 나눈다.
정보 공유와 책임을 나눈다.
교육과 담당 지정을 나눈다.
전화는 받아도 떠안지 않는다.
상사가 판단할 일은 상사에게 돌려보낸다.

슈퍼맨이 2년 만에 떠나는 직장에서, 내가 기둥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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