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느낌으로 매달 보내줘"가 제일 위험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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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는 은근히 위험한 부탁 방식이 있다.

이런 느낌의 정보로 매달 보내줘

바로 이거다.

얼핏 보면 평범한 부탁이다.
지난달 샘플이 있고, 과거 데이터도 있고, 대충 형식도 짐작이 간다.
그래서 담당자는 그 분위기에 맞춰 매달 처리한다.

그런데 이 "이런 느낌으로"가 나중에 문제가 되기 쉽다.

이 항목, 안 넣었어요?
지금 내도 정말 괜찮은 거예요?
○○ 씨는 다르다고 하던데요?
전에는 있었잖아요?

이쯤 되면 담당자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처음부터 항목이랑 기준일이랑 제출일을 정해 줬어야지.

이건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반복되는 정형 업무에서 아주 자주, 거의 똑같은 모양으로 벌어지는 구조적인 문제다.

"이런 느낌"은 명세가 아니다

"이런 느낌으로 매달 보내줘"는 명세(요구사항 정의)가 아니다.

그건 샘플이다.
분위기다.
예전부터 하던 흐름이다.
임시 운영이다.

정말 명세로 다루고 싶다면 최소한 다음은 정해야 한다.

  • 반드시 넣을 항목
  • 선택으로 넣을 항목
  • 참조할 원본 데이터
  • 며칠 시점의 데이터를 쓸지
  • 며칠에 제출할지
  • 변경이 생기면 누가 판단할지
  • 다른 부서에서 추가 요청이 오면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한 규칙

이런 게 정해져 있지 않으면 담당자는 과거 샘플을 보고 "아마 이렇겠지" 하고 처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태에서 나중에

이거 안 넣었어요?

라는 말을 들어도, 그게 꼭 담당자의 실수는 아니다.
그냥 명세가 없었을 뿐이다.

3개월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면, 최소한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진 방식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실제로 그 방식으로 몇 달 동안 업무가 돌아갔을 때다.

예를 들어 업무를 맡은 뒤 3개월 동안 매달 초에 직원 명부를 제출했다고 하자.
그 사이 누구도 "내는 시기가 달라요", "이 항목이 빠졌어요", "이 기준일로는 곤란해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나중에

16일 발행분으로 쓸 건데, 1일인 지금 내도 정말 괜찮아요?

라는 말이 나온다면, 그걸 과거의 작업 실수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3개월 동안 그 방식으로 받아 갔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에 다른 부서의 쓰임새가 바뀌기도 하고, 직위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 발행 시기를 다시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다.

다만 그건 "새로운 요건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전임자가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3개월 동안 아무 말 없이 받았다면, 적어도 그 방식은 현장에서 묵인된 것이다.
그 뒤에 필요한 항목이나 제출 시기를 바꾸고 싶다면 해야 할 일은 탓하는 게 아니라 명세를 고치는 것이다.

문제는 "직위를 안 넣은 것"이 아니다

매달 발행하는 직원 명부 같은 업무가 있다고 하자.

다른 부서에서

직위가 없으면 알아보기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상사나 담당자가 작업자에게

이거, 직위 안 넣었어요?

라고 묻는다.

이 시점에서 이야기가 이미 조금 어긋났다.

문제는 직위를 넣지 않은 게 아니다.
직위를 필수 항목으로 정의해 두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그러니 원래 대화는 이 정도면 된다.

아, 앞으로는 직위도 필요하군요.
그럼 다음부터 항목에 추가하겠습니다.

이걸로 끝이다.

정의되지 않은 항목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 앞으로의 명세에 추가한다.

그게 전부다.

추가 요청을 "실수 찾기 게임"으로 바꾸지 마라

일을 하다 보면 나중에 필요한 항목이 드러날 때가 있다.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다른 부서가 써 보고

직위도 있으면 알아보기 쉽겠다
기준일을 모르면 확인하기 어렵다
이 항목도 있으면 도움이 되겠다

하고 깨닫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그러니 대응도 단순하면 된다.

그럼 다음부터 추가하겠습니다
이번 분도 필요하시면 추가한 버전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는 이 항목을 기본으로 넣겠습니다

이거면 된다.

그런데 문제 해결이 서툰 직장에서는 이게 어째서인지 "실수 찾기 게임"이 되어 버린다.

왜 안 들어간 거예요?
지금까지는 있었는데
누가 다르다고 했어요?
전에 한 얘기랑 다르다고 말해도 되는 거예요?
지적한 사람이 틀렸다는 건가요?

아니다.
논점이 다르다.

새 요청이 나왔으면 명세에 더하면 된다.
부족한 게 발견됐으면 다음부터 표준으로 만들면 된다.
기준일이 모호하면 정하면 된다.

그게 다다.

"지적한 사람이 틀렸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작업자가 실수했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전임자가 잘못했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필요한 건 앞으로의 운영을 정하는 것뿐이다.

정해져 있지 않다면, 그냥 정하면 된다

이런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거다.

정해져 있지 않다면, 그냥 정하면 된다.

직위를 넣을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럼 넣을지 정한다.

1일 시점 데이터로 낼지, 16일 발행 직전 데이터로 낼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럼 기준일을 정한다.

매달 며칠에 제출할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럼 제출일을 정한다.

다른 부서에서 추가 요청이 왔을 때의 처리 방식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럼 반영 규칙을 정한다.

이게 전부다.

그런데 이걸

누가 그렇게 말했는지
전에 한 말과 다른 건 아닌지
이게 실수인지
왜 안 넣었는지
누구 인식이 틀렸는지

하는 이야기로 만들면 순식간에 쓸데없는 회의가 된다.

이건 문제 해결이 아니다.
정의되지 않은 부분은 그대로 둔 채, 책임을 떠넘길 곳만 찾는 작업이다.

과거 자료를 파헤치려면 목적부터 정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자료를 파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예전 명부는 어땠어요?
전에는 직위가 들어 있었나요?
언제부터 빠졌죠?
누가 맡았을 때부터 바뀐 거예요?

물론 과거 자료를 보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과거 자료를 보는 목적이

앞으로의 표준 항목을 정하기 위해서
과거와 뭐가 다른지 파악하기 위해서
다른 부서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라면 의미가 있다.

하지만 목적이

누가 빠뜨렸는지
누가 틀렸는지
지적한 사람이 맞는지
작업자가 실수한 건지

가 되어 버렸다면 거의 의미가 없다.

그건 업무 개선이 아니라 책임 캐기(책임 채굴)다.

과거를 파헤친다고 이번 달 명부에 직위가 필요한지가 정해지지는 않는다.
과거를 파헤친다고 기준일이 1일인지 16일인지가 정해지지는 않는다.
과거를 파헤친다고 앞으로의 제출일 규칙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과거 확인은 명세를 정하는 재료로 쓴다면 유효하다.
범인 찾기에 쓴다면 헛수고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정형 업무는 영원히 메마른 채로 남는다.

"누가 잘못했나 재판"을 열면 일이 멈춘다

이런 직장에서는 문제가 생기자마자 재판이 시작된다.

누가 그렇게 말했어요?
전임자는 어떻게 했는데요?
지적한 사람이 틀렸다는 건가요?
작업자가 확인을 소홀히 한 건가요?
어느 쪽 인식이 맞는 거죠?

물론 중대한 사고나 법령 위반이라면 원인 규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매달 쓰는 명부 항목 같은 정형 업무에서 추가 항목이 나왔을 뿐이라면, 그 정도 재판은 필요 없다.

필요한 건 다음 한마디다.

그럼 앞으로는 직위도 표준 항목에 넣겠습니다.

이거면 된다.

필요하면 이어서

기준일은 매달 1일 시점으로 하면 될까요?
16일 발행분이라면 제출일은 매달 며칠까지로 할까요?

하고 확인하면 된다.

이게 일이다.

"누가 잘못했나"를 찾는 것보다 "다음부터 어떻게 할까"를 정하는 쪽이 100배 빠르다.

분위기로 정한 요건은 사후 채점을 낳는다

"이런 느낌으로"라는 부탁이 무서운 건, 나중에 채점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처음에 명확한 항목표가 없다.
기준일도 없다.
제출일도 모호하다.
원본 데이터도 바뀐다.
그런데 결과물만은 매달 나온다.

그러면 나중에 보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항목이 없네요
전이랑 다르네요
지금 내도 괜찮은 거예요?
다른 사람은 다르다고 했는데요

하지만 그건 결과물만 보고 채점하는 것일 뿐, 부탁받던 시점의 모호함은 보지 않는 것이다.

만약 처음에

직원 명부는 이름, 소속, 직위, 입사일을 필수 항목으로 한다
데이터 기준일은 매달 1일 시점으로 한다
제출일은 매달 10일까지로 한다
16일 발행분에 반영한다

라고 정해져 있었다면 이야기는 간단하다.

그 명세에서 벗어났다면 작업 실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에 "이런 느낌으로"라는 말밖에 못 들었다면, 나중에 필수 항목 취급을 하는 건 위험하다.

그건 명세 위반이 아니라 명세 미정이다.

원본 데이터가 바뀐다면 기준일을 정하지 않으면 결과가 흔들린다

명부 같은 업무는 원본 데이터가 바뀐다.

직위가 바뀐다.
소속이 바뀐다.
입사와 퇴사가 있다.
이름이나 표기가 바뀐다.
발행 시점에 따라 정보가 달라진다.

그래서 "며칠 시점의 정보로 낼 것인가"가 중요하다.

1일 시점의 데이터로 낼까.
16일 발행 직전의 데이터로 낼까.
요청이 온 시점의 데이터로 낼까.
인사 발령이 반영된 시점에 낼까.

이걸 정하지 않은 채

1일인 지금 내도 정말 괜찮아요?

라고 물으면 담당자는 곤란하다.

그건 담당자의 판단력 문제가 아니다.
기준일이 정해져 있지 않을 뿐이다.

기준일이 없는 업무는 매번 흔들린다.
흔들린 뒤에 화를 낼 게 아니라, 먼저 기준일을 정하면 된다.

개선하려면 항목, 기준일, 제출일을 고정하라

이런 업무를 안정시키는 데 어려운 개혁은 필요 없다.

다음 세 가지만 정해도 훨씬 편해진다.

1. 항목

예:

  • 이름
  • 소속
  • 직위
  • 사원번호
  • 입사일
  • 필요에 따른 비고

무엇을 필수로 할 것인가.
무엇을 선택으로 할 것인가.
다른 부서가 보려면 어떤 항목이 필요한가.

이걸 정한다.

2. 기준일

예:

  • 매달 1일 시점
  • 매달 15일 시점
  • 발행일 전 영업일 시점
  • 인사 발령 반영 후 시점

원본 데이터가 바뀐다면 기준일이 없을 때 반드시 어긋난다.

3. 제출일

예:

  • 매달 10일까지 제출
  • 16일 발행분에 쓰므로 매달 X일 마감
  • 휴일이면 직전 영업일

제출일이 모호하면 "지금 내도 되나" 문제가 매번 나온다.

즉 필요한 건 패기가 아니다.
명세다.

실무에서 쓸 수 있는 대답

항목 추가 요청이 나왔을 때

아, 앞으로는 직위도 필요하군요.
그럼 다음부터 항목에 추가하겠습니다.
이번 분도 필요하시면 직위를 넣어서 다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3개월 동안 같은 방식이었는데 아무 말도 없었을 때

지난 3개월 동안 월초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운영했고, 특별한 지적은 없었습니다.
앞으로 16일 발행분 기준으로 기준일이나 제출 시기를 바꾸신다면, 다음부터의 표준으로 정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필수 항목이 모호했을 때

지금까지는 구체적인 필수 항목 지정이 없어서 샘플을 기준으로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직위를 포함해서 운영하겠습니다.

발행 시기를 확인받았을 때

16일 발행분이라면 며칠 시점의 데이터를 쓸지 정해 두면 인식 차이가 줄어들 것 같습니다.
매달 1일 시점으로 괜찮은지, 발행일 직전 시점으로 할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누가 틀렸냐는 이야기로 흐를 것 같을 때

누가 틀렸다기보다, 지금까지 항목과 기준일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표준으로 직위를 포함할지 정하면 좋겠습니다.

이런 대답의 핵심은 책임 추궁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다.

"누가 잘못했나"가 아니라 "다음부터 어떻게 할까"로 돌아간다.

정리: 분위기로 부탁했다면, 나중에 채점하지 마라

"이런 느낌으로 매달 보내줘"는 편리한 말이다.

하지만 그대로 운영하면 나중에 다투기 쉽다.

항목이 정해져 있지 않다.
기준일이 정해져 있지 않다.
제출일이 정해져 있지 않다.
원본 데이터는 바뀐다.
다른 부서의 요청도 바뀐다.
그런데도 3개월 동안 아무 말 없이 받아들여지는 일이 있다.

이런 상태에서 나중에 "이거 안 넣었어요?" 하고 탓하는 건 위험하다.

필요한 항목이 나왔다면 추가하면 된다.
기준일이 모호하면 정하면 된다.
제출일이 모호하면 고정하면 된다.

그게 전부다.

정의되지 않은 걸 발견했다면 책임자를 찾지 말고 명세를 정하자.

그게 일이다.

추가 요청이 나왔다
그럼 넣겠습니다

로 끝날 이야기를

누구 잘못이야?
실수야?
전에 한 말이랑 다른 거 아냐?
지적한 사람이 틀렸다는 거야?

로 바꾸지 말자.

그건 일이 아니라 원숭이 재판(막무가내 난장판 재판)이다.

정형 업무에 필요한 건 기세로 누르기도, 책임 캐기도 아니다.
항목, 기준일, 제출일을 글로 분명히 적어 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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