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만 기다리는 삶, 이제 그만할 때 아닐까

일본에는 '하나킨'이라는 말이 있다. '꽃 같은 금요일', 우리말로 치면 '불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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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킨', 우리가 정말 기다리는 건 뭘까

일본에는 '하나킨'이라는 말이 있다. '꽃 같은 금요일', 우리말로 치면 '불금'이다.

금요일 밤. 일이 끝났다. 내일은 쉰다. 술 한잔하러 간다. 늦게까지 깨어 있는다. 친구를 만난다. 게임을 한다. 영화를 본다. 조금 늦게 자도 다음 날 아침 출근 걱정은 없다.

그 자체는 꽤 즐겁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금요일만 이렇게 특별 대우를 하는 걸까?

평일에도 금요일처럼 놀면 되는 거 아닌가?

물론 금요일 밤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은 있다.

1박 여행. 밤샘 노래방. 막차 시간 신경 안 쓰는 술자리. 멀리 떠나는 나들이. 다음 날 걱정 없이 새벽까지 깨어 있기.

그런 점에서 불금에는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

하지만 불금의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 '금요일이라서 즐거운' 게 아니라 '회사에서 잠깐 풀려난 느낌'이 즐거운 것뿐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불금은 금요일이라는 요일을 말하는 게 아니다.

회사에 빼앗기지 않은 밤을 말하는 것이다.

불금의 정체는 '해방 의식'일지도 모른다

불금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마 뭘 하고 있을까.

가장 흔한 건 술자리라고 생각한다.

이자카야(일본식 술집)에 간다. 맥주를 마신다. 닭꼬치를 먹는다. 동료나 친구와 회사 욕을 한다. "이번 주도 끝났다"고 말한다.

이건 단순한 먹고 마시기가 아니라, 한 주 동안 켜 둔 업무 모드를 끄기 위한 의식에 가깝다.

술이 좋아서라기보다, 술이 '업무 모드 종료 버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집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도 있다.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다. 집에서 혼술하는 사람도, 외식하는 사람도, 연인이나 친구를 만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공통점은 '내일 일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해방감이다.

주말에는 평일보다 기분과 활력이 올라가기 쉬운데, 그 배경에는 자율성과 사람들과의 연결감이 채워지는 일이 관련되어 있다는 연구가 있다. 즉 주말이 기분 좋은 건 단순히 요일 때문이 아니라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사람들과 이어질 수 있고',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기 쉽기 때문이다.
출처: Ryan, Bernstein & Brown, Weekends, Work, and Well-Being
https://selfdeterminationtheory.org/SDT/documents/2010_RyanBernsteinBrown_Weekends_JSCP.pdf

그러니 불금 자체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불금이 '주 5일은 죽어 있다가 금요일 밤에만 되살아나는 생활'이 되어 버린 경우다.

금요일 밤에만 '자오리쿠'… 아니, 사실은 '자오라루'인 삶

처음에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주 5일은 죽어 있다가 금요일 밤에만 자오리쿠를 쓰는 생활, 이제 그만할 때 아닐까?"

(자오리쿠는 일본 국민 RPG 〈드래곤 퀘스트〉에 나오는 부활 마법이다. 쓰러진 동료를 HP 만땅으로 되살려 준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오리쿠도 아닐지 모른다.

과음한다. 밤을 샌다. 자는 시간이 무너진다. 토요일 오전이 사라진다. 오후까지 잔다. 일어나도 몸이 무겁다. 일요일 밤이면 벌써 월요일이 코앞에 보인다.

이건 자오리쿠가 아니라 자오라루 아닐까.

(자오라루는 같은 게임의 하위 호환 부활 마법이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으며, 성공해도 HP가 가득 차지는 않는다.)

부활에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성공해도 HP는 만땅이 아니다.

금요일 밤에 텐션을 끌어올린 줄 알았는데, 토요일을 관 속에 넣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게 바로 '금요일 자오라루 생활'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HP가 깎인다. 금요일 밤에 술과 밤샘으로 부활을 시도한다. 하지만 성공률이 들쭉날쭉하다. 잘못하면 주말 이틀이 통째로 죽는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꽤 위험한 생활 설계다.

과음과 밤샘은 휴일을 회복이 아닌 소모로 바꾼다

술은 처음에는 졸음을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마시면 잠이 잘 온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수면 연구에서는, 알코올이 잠드는 시간은 앞당기지만 수면 후반부를 흐트러뜨리기 쉽다고 지적한다. 한 리뷰 연구는 알코올이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전반부 수면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반면, 후반부 수면은 어지럽힌다고 정리했다.
출처: Ebrahim et al., Alcohol and sleep I: effects on normal sleep
https://pubmed.ncbi.nlm.nih.gov/23347102/

또 미국 수면재단(Sleep Foundation)도, 알코올이 처음엔 졸음을 유발할 수 있지만 평소의 수면 패턴을 깨뜨려 얕은 잠, 한밤중에 깨기, 렘수면(꿈을 꾸는 단계의 잠)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출처: Sleep Foundation, Alcohol and Sleep
https://www.sleepfoundation.org/nutrition/alcohol-and-sleep

그러니까 금요일 밤에 마시고 분명 '잤는데' 토요일에 몸이 무거울 때가 있다.

그건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회복의 질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밤샘도 마찬가지다.

금요일 밤에 잠드는 시간을 크게 미루고, 토요일에 늦게 일어나고, 일요일에도 리듬이 무너진 채로 있으면 평일과 휴일의 수면 리듬이 어긋난다. 이를 '사회적 시차(social jetlag)'라는 이름으로 연구하고 있다.

사회적 시차란 사회가 정한 시간(출근, 약속 등)과 몸속 생체 시계가 어긋나는 것을 말한다. 한 리뷰에서는 사회적 시차가 건강 위험과 관련될 수 있지만, 주말에 잠을 더 자면 부족한 잠을 메우는 면도 있으므로 단순히 "쉬는 날엔 늦잠 자지 마라"고 할 수는 없다고 정리했다.
출처: Roenneberg et al., How can social jetlag affect health?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0204006/

여기가 중요하다.

쉬는 날 오래 자는 것 자체가 다 나쁜 건 아니다.

잠이 부족하면 자는 게 낫다.

하지만 금요일 밤에 스스로 리듬을 박살 내서 토요일을 회복이 아니라 렉 걸린 컴퓨터처럼 만들고 있다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봐도 좋다.

불금이 나쁜 게 아니라, 평일이 너무 메말랐다

불금이 나쁜 건 아니다.

금요일 밤에 노는 건 즐겁다. 술도, 노래방도, 밤샘도, 친구 만나는 것도 그냥 재미있다.

하지만 불금만을 인생의 낙의 중심에 놓으면 평일이 죽는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버티기만 한다. 금요일 밤에만 해방. 토요일은 회복. 일요일은 월요일의 기운에 살짝 가라앉는다.

이런 생활이면 사실상 자유 시간이 꽤 적다.

정말 원하는 건 금요일이 아니라, 평일에도 조금은 남아 있는 HP가 아닐까.

평일 밤에 게임을 한다. 만화를 읽는다. 애니메이션을 본다. 영화를 본다. 헬스장에 간다. 노래방에 간다. 산책한다. 디저트를 사 온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다.

이런 작은 꽃은 금요일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피울 수 있다.

일에서 회복하려면 일에서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 긴장을 푸는 것, 내 시간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느낌, 무언가에 조금 몰두하는 느낌 등이 중요하다고 한다. 회복 경험과 웰빙에 관한 연구에서도 퇴근 후 시간의 심리적 거리두기, 이완, 통제감, 숙달, 의미, 연결이 높은 웰빙과 관련되어 있었다.
출처: Virtanen et al., Relationships between recovery experiences and well-being among younger and older teachers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7007884/

즉 평일 밤에 필요한 건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다.

머릿속의 회사 검색창을 닫는 것.
내가 고른 놀이에 빠져드는 것.
"오늘은 내 시간이었다"고 조금이라도 느끼는 것.

이것만으로도 평일의 의미는 달라진다.

불금을 늘리고 싶다면, 금요일을 기다리지 말고 칼퇴하자

불금의 본질이 '내 시간을 되찾는 것'이라면, 결론은 꽤 단순하다.

불금을 늘리고 싶다면 금요일을 기다리기보다 정시에 퇴근하는 게 낫다.

칼퇴한 월요일은 미니 불금이 된다.

칼퇴한 화요일도 미니 불금이 된다.

수요일에 헬스장에 갔다면 그것도 꽃이다. 목요일에 노래방에 갔다면 그것도 꽃이다. 평일 밤에 만화를 읽으며 웃었다면 그것도 꽃이다.

매일 여행을 가거나 밤샘 노래방을 할 필요는 없다.

월요일: 만화
화요일: 헬스장
수요일: 애니메이션
목요일: 노래방
금요일: 외식 아니면 밤샘

이 정도면 충분하다.

오히려 금요일 밤에 올인하기보다 평일에 작은 꽃을 나눠 심는 편이 생활 만족도가 안정되기 쉽다.

'불금'은 금요일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 시간을 내 쪽으로 되찾은 밤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요일 밤에만 자오라루를 쓰는 생활은 조금 위험하다.

실패하면 주말이 죽는다.

우리가 정말 목표로 해야 할 건 금요일 밤의 한 방 부활이 아니라, 평일에도 HP를 남겨 두는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금요일만 꽃으로 만들지 말자.

평일도 조금은 꽃으로 만들자.

회사에 빼앗기지 않은 밤은 전부 불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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