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퇴사는 왜 생길까? 선의가 질책당하는 직장에서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

조용한 퇴사는 단순히 "의욕 없는 사람이 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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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조용한 퇴사는 단순히 "의욕 없는 사람이 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경험이 반복된 끝에 생기는 경우가 있다.

  • 잘해 보겠다고 먼저 움직였다
  • 그런데 나중에 책임 추궁을 당했다
  • 의도가 나쁘게 해석됐다
  • 판단하는 사람은 불분명한데 책임만 돌아왔다
  •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배웠다
  • 그러니 다음부터는 최소한만 한다

이건 게으름이라기보다 꽤 자연스러운 방어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열심히 하려면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서 나서도 괜찮다"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 이 감각이 무너지면 사람은 도전도, 개선 제안도 그만둔다. 겉으로는 출근하고 있어도 마음속에서는 이미 덤으로 내놓는 선의를 거두어 버린다.

즉 조용한 퇴사는 개인의 근성 부족이 아니라, 직장이 가르쳐 준 학습의 결과이기도 하다.

조용한 퇴사는 "농땡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조용한 퇴사라고 하면 맡은 최소한의 일만 하고 그 이상의 열정이나 추가 기여는 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정말로 일에 관심이 없을 뿐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퇴사의 일부는 훨씬 방어적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업무 개선을 제안했다고 하자. 처음에는 "더 좋게 만들고 싶다", "다음 사람이 곤란하지 않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나중에 "왜 마음대로 했어?", "거기에 시간을 쓸 가치가 있었어?", "그렇게 진행하면 안 되지"라는 말을 듣는다.

이런 일이 한 번이라면 아직 바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몇 번이고 계속되면 사람은 학습한다.

여기서는 움직일수록 위험하다.
괜한 일은 안 하는 게 안전하다.
시킨 것만 하자.

이 순간 주도성은 죽는다.

밖에서 보면 "요즘 의욕이 없네", "수동적으로 변했네"라고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본인 안에서는 의욕이 사라졌다기보다, 의욕을 내면 손해라는 걸 배운 것이다.

"네"는 동의가 아니라 대화 종료 버튼이 된다

심리적 안전감(말을 꺼내고 위험을 감수해도 안전하다는, 팀이 함께 가진 믿음)이 낮은 직장에서는 회의나 지도 자리에서 "네"가 늘어난다.

하지만 그 "네"는 납득이 아니다.

  • 반론해도 통하지 않는다
  • 설명하면 이야기만 길어진다
  • 의견을 말하면 인격이나 태도 문제로 화제가 바뀐다
  • 나중에 책임으로 돌아온다
  • 그러니 일단 흘려 넘긴다

이렇게 되면 "네"는 동의가 아니라, 맞는 횟수를 줄이기 위한 대화 종료 버튼이 된다.

이건 조직에 꽤 위험하다.

겉으로는 순종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반론하지 않는다. 아무도 강하게 항의하지 않는다. 회의는 평화롭게 진행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다. 사람들이 발언을 포기했을 뿐이다.

이런 상태는 조직행동론에서 말하는 "직원 침묵"에 가깝다. 직원 침묵이란 조직에 중요한 의견, 정보, 우려가 있어도 일부러 말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Van Dyne, Ang, Botero(2003)는 침묵과 발언을 단순한 반대 개념이 아니라, 동기가 서로 다른 다면적 행동으로 정리했다.

심리적 안전감이 낮으면 개선 행동이 멈춘다

Amy Edmondson의 심리적 안전감 연구에서는 심리적 안전감을 "대인 관계에서 위험을 감수해도 안전하다는 공유된 믿음"으로 설명한다. 질문하기, 실수 인정하기, 다른 의견 내기, 도움 요청하기 같은 행동이 처벌이나 창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느끼는 상태다.

반대로 심리적 안전감이 낮은 직장에서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행동을 피한다.

  • 모르겠다고 말하기
  • 일찍 상담하기
  • 문제를 보고하기
  • 개선을 제안하기
  •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기
  • 후배에게 작은 판단 경험을 맡기기

원래 이런 행동은 조직이 배워 나가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런데 나중에 책임을 묻는 직장에서는 이것들이 전부 위험이 된다.

"잘해 보려고 한 일"이 질책받는다.
"상담한 것"이 능력 부족 취급을 받는다.
"맡긴 것"이 떠넘기기 취급을 받는다.
"개선한 것"이 독단 취급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늘면 윗사람은 "주도성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주도성을 짓밟아 온 게 바로 뒤늦게 책임을 묻는 문화인 경우도 있다.

위에서 당한 일은 아래로 흘러가기 쉽다

직장의 무서운 점은 압박이 연쇄된다는 것이다.

어떤 상급자가 중간 관리자에게 강하게 지적한다. 중간 관리자는 그 부당함을 알아차린다. "저런 식으로 말하면 사람이 움직이지 않게 된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 중간 관리자가 이번에는 부하나 후배에게 비슷한 압박을 가해 버릴 때가 있다.

자신이 위에서 당할 때는 "부당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자신이 아래를 향해 같은 구조를 되풀이하고 있을 때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 연쇄는 꽤 골치 아프다.

예를 들어 상급자의 뒤늦은 지적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다른 자리에서는 부하의 말을 중간에 끊거나 인격이나 적성 이야기로 번지게 한다. 본인은 "지도"하는 셈이지만, 상대는 "말하면 위험하다"고 학습해 버린다.

이렇게 위의 압박은 아래로, 옆으로, 다른 모습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두가 조금씩 입을 닫는다.

"방어로서의 조용한 퇴사"는 해가 되기도 한다

조용한 퇴사는 방어로서는 합리적이다.

신뢰할 수 없는 상대에게 선의와 추가 노력을 계속 쏟으면 내가 깎여 나간다. 너무 깎이면 이번에는 나도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는 쪽으로 기울어 버린다.

그래서 에너지를 줄이는 건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 된다.

  • 지시받은 일은 한다
  • 기한과 진행 상황은 공유한다
  • 판단이 필요한 일은 상사에게 돌려보낸다
  • 남의 일까지 떠안지 않는다
  • 감정 케어는 하지 않는다
  •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선의를 쓴다

이건 꽤 현실적인 방어책이다.

다만 조직에는 해가 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나왔을 개선 제안이 나오지 않는다. 후배에 대한 정성스러운 육성이 줄어든다.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 미리 챙기던 일이 사라진다. 누가 곤란해지기 전에 처리하던 일이 처리되지 않는다.

즉 조용한 퇴사는 개인에게는 방어지만 조직에는 손실이다.

문제는 그 손실을 본 윗사람이 "요즘 직원들은 주도성이 없다"라고만 말해 버린다는 점이다.

정말로 봐야 할 것은 왜 주도성이 사라졌느냐다.

유능한 사람일수록 먼저 포기하기도 한다

유능한 사람은 처음부터 조용한 퇴사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꽤 열심히 움직인다.

  • 업무를 정리한다
  • 체계를 만든다
  • 후배를 가르친다
  • 낭비를 줄인다
  • 관계자를 끌어들인다
  • 알기 어려운 것을 눈에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그 행동이 보상받기는커녕 나중에 질책당하거나 다음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어느 시점에서 판단이 바뀐다.

여기에 더 쏟아 봤자 적자네.
이제 됐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은 거기서 실제로 퇴사한다. 여유가 적은 사람은 직장에 남은 채 에너지를 줄인다.

어느 쪽이든 뿌리는 같다.

선의가 손해가 되는 환경에서는 선의가 줄어든다.

구체적인 사례를 흐려서 말하면, 이런 직장에서 잘 일어난다

예를 들어 어느 부서에서 자료 정리나 인수인계 작업이 있었다고 하자.

담당자는 후배에게 작은 작업 판단을 맡기려 한다. 어려운 부분은 자기가 맡고, 비교적 쉬운 부분을 후배에게 맡긴다. 끝나면 체크리스트로 진행 상황을 확인한다.

교육 관점에서 보면 작은 판단, 실행, 완료 보고의 순환을 만드는 평범한 방식이다.

하지만 주변에 불신이 있으면 이것이 다른 말로 바뀐다.

후배에게 계획을 세우게 했다더라.
떠넘기는 거 아니야?
책임 범위는 괜찮은 건가?

이런 변환이 본인에게 확인되지 않은 채 윗사람에게 전달되면, 담당자는 학습한다.

그렇구나.
키우려는 마음을 드러내면 위험하구나.
다음부터는 최소한의 작업 지시만 하자.

이렇게 육성의 여지가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업무 개선도 사라진다. 채용 활동의 아이디어도 사라진다. 문서화도, 노하우 공유도, 미리 챙기는 일도 사라진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직장의 미래에 필요한 작은 선의가 조금씩 멈춰 간다.

개인이 할 수 있는 방어책

이런 직장에서 개인이 갑자기 조직 문화를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니 우선은 내가 깎이지 않는 것을 먼저 생각해도 된다.

1. 전문 용어를 현장 말로 바꾸기

머릿속에서는 "심리적 안전감이 낮다", "학습된 무기력이 생겼다", "직원 침묵이다"라고 분석해도 좋다.

하지만 나를 지켜야 하는 자리에서 전문 용어를 꺼내면 상대에 따라 "말만 번지르르하다", "변명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현장에서는 이렇게 바꿔 말하는 편이 안전하다.

  • 나중에 책임을 묻는 식이 되면 다음부터 움직이기 어려워집니다
  • 판단하는 분이 불분명해서 미리 확인하고 싶습니다
  • 남은 분량과 기한을 눈에 보이게 해서 분담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 제가 판단할 수 없어서 상사께 확인하겠습니다

이론은 나만의 지도로 쓴다. 상대에게는 실무의 말로 건넨다.

2. 말로 하지 말고 기록으로 남기기

신뢰가 낮은 직장에서는 말로 전한 의도가 왜곡되기 쉽다.

그러니 사실만 짧게 남긴다.

  • 무엇을 했는지
  • 무엇이 남았는지
  • 언제 자리를 비우는지
  •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지
  • 누구의 판단이 필요한지

긴 글로 옳음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CCTV를 달아 두듯이 사실을 놓아 두면 된다.

3. 육성에 쏟는 열정을 줄 상대를 고르기

육성에는 신뢰가 필요하다.

작은 판단을 맡기고, 실패해도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성공 경험을 쌓게 해 주는 것. 이런 일은 받는 쪽이나 주변에 신뢰가 없으면 떠넘기기나 방치로 바뀔 수 있다.

그러니 신뢰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육성에 대한 열정을 잠시 접어 두어도 된다.

최소한의 지시, 체크리스트, 상사 확인이면 충분하다.

4. 연차를 쓰고 거리 두기

직장에 있는 시간 자체가 공격받을 기회라면, 쉬는 것이 방어가 된다.

쉬는 건 배신이 아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한 조정이다.

특히 이미 부서 이동, 퇴사, 이직 같은 출구가 보인다면 남은 기간에는 관계 개선보다 체력 보존을 우선해도 된다.

조직이 정말로 봐야 할 것

조용한 퇴사를 줄이고 싶다면 개인에게 "좀 더 주도적으로"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봐야 할 것은 주도성을 보인 사람이 어떻게 대우받았느냐다.

  • 선의로 움직인 사람을 나중에 질책하고 있지 않은가
  • 판단하는 사람은 불분명한 채 책임만 떠넘기고 있지 않은가
  • 후배 육성 의도를 나쁘게 해석하고 있지 않은가
  • 발언한 사람의 말을 중간에 끊고 있지 않은가
  • 문제 제기를 인격이나 적성 이야기로 바꿔치기하고 있지 않은가
  • "네"가 동의가 아니라 침묵이 되어 있지 않은가

이걸 보지 않은 채 "요즘 사람들은 주도성이 없다"고 말해 봐야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주도성은 명령해서 끌어내는 것이 아니다.
내놓아도 괜찮다고 학습한 곳에서 조금씩 나오는 것이다.

정리

조용한 퇴사는 개인의 나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선의가 질책당한다.
개선이 뒤늦게 부정당한다.
발언이 가로막힌다.
후배 육성이 나쁘게 해석된다.
말해 봐야 소용없다고 학습한다.

그런 직장에서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에너지를 줄인다.

그건 조직에는 손실이다.
하지만 개인에게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요한 건 조용한 퇴사를 일방적으로 탓하는 것이 아니다.

왜 그 사람은 움직이지 않게 되었는가.
왜 의견을 말하지 않게 되었는가.
왜 선의를 내놓지 않게 되었는가.

이걸 보지 않는 직장에서는 오늘도 누군가가 조용히 에너지를 낮추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정말로 그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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