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퇴사는 "남는 게 없어서"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뉴스의 얕은 이해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기

조용한 퇴사는 뉴스에서 보통 이렇게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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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조용한 퇴사는 뉴스에서 보통 이렇게 설명된다.

월급 이상으로 일하면 손해다.
그래서 시킨 일만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꽤 얕다.

정말 봐야 할 것은 "왜 남는 게 없다고 느끼게 됐는가"다.

사람은 처음부터 최소한만 하는 게 아니다.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움직일 때가 많다. 업무를 개선하고, 신입을 가르치고, 자료를 만들고,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미리 나서서 돕는다.

그런데 그 선의가 나중에 비난으로 돌아온다. 의도는 나쁘게 해석되고, 말했네 안 했네 하는 싸움이 되고, 평가나 적성 이야기로 번진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사람은 배운다.

여기서는 더 할수록 손해다.
그럼 최소한만 하자.

이런 상태를 "남는 게 없다"고 부른다면, 그건 단순한 가성비 계산이 아니다.
직장이 선의와 자발성에 대한 기대값을 마이너스로 만든 결과다.

뉴스가 말하는 "남는 게 없다"는 결과에 붙인 라벨일 뿐이다

뉴스에서 조용한 퇴사를 다룰 때 이야기는 대개 여기서 멈춘다.

  • 젊은 층이 월급 이상으로 애쓰지 않게 됐다
  • 일보다 사생활을 중시하게 됐다
  • 꼭 필요한 업무만 한다
  • 예전만큼 회사에 헌신하지 않는다
  • 일을 가성비로 따진다

물론 그런 면도 있다.

갤럽(Gallup)은 조용한 퇴사를 "not engaged(업무에 몰입하지 않는 상태)"와 매우 가까운 개념으로 보고, 일이나 회사와 심리적으로 이어져 있지 않아 시간은 쓰지만 에너지나 열정은 쓰지 않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또 2023년 갤럽 기사에서는 전 세계 직장인의 과반이 조용한 퇴사에 해당한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남는 게 없다"는 말만으로는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이지 않는다.

남는 게 없다는 건 단순히 월급이 적다는 뜻만이 아니다.

  • 열심히 해도 인정받지 못한다
  • 좋은 뜻으로 움직였다가 나중에 비난받는다
  • 개선해도 다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 의견을 내면 이야기만 길어진다
  • 후배를 가르치면 일을 떠넘겼다는 말을 듣는다
  • 상의하면 능력이 부족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 실수와 인격이 분리되지 않는다
  • 결정하는 사람은 애매한데 책임만 돌아온다
  • 연차를 쓰는 쪽이 더 행복하다
  • 이직이나 부업, 자산 형성이 기대값이 더 높다

이 모든 걸 포함해서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뉴스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다만 원인까지는 파고들지 못했을 뿐이다.

조용한 퇴사는 "추가 노력의 기대값이 마이너스가 된" 상태다

일에서 추가로 들이는 노력에는 기대값이 있다.

예를 들어 더 열심히 했을 때,

  • 인정받고
  • 고맙다는 말을 듣고
  • 실력이 되고
  • 다음 기회로 이어지고
  • 누군가가 편해지고
  • 내 재량이 늘고
  • 신뢰가 쌓인다

면 사람은 움직이기 쉽다.

반대로 더 열심히 했을 때,

  • 나중에 비난받고
  • 멋대로 했다는 소리를 듣고
  • 의도가 나쁘게 해석되고
  • 책임만 늘고
  • 만만한 해결사 취급을 받고
  • 인격이나 적성 이야기로 번지고
  • 다음에도 당연하다는 듯 요구받는다

면 사람은 움직이지 않게 된다.

이건 평범한 기대값 계산이다.

조용한 퇴사는 의욕이 0이 된 상태라기보다 추가 노력의 기대값이 마이너스가 된 상태에 가깝다.

본인 안에서는 이미 이런 계산이 끝나 있다.

여기서 선의를 내봤자 적자다.
여기서 후배를 키워봤자 적자다.
여기서 개선해봤자 적자다.
그럼 지시받은 범위만 하자.

이걸 "주도성이 없다"고 부르기는 쉽다.
하지만 정말 봐야 할 것은 누가 그 주도성의 기대값을 깨뜨렸는가다.

선의를 악의로 번역하는 분위기가 사람을 입 다물게 한다

신뢰가 낮은 직장에서는 선의가 나쁘게 번역되기 쉽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신입에게 작은 작업 판단을 맡겼다고 하자.

본인의 의도는 이렇다.

어려운 부분은 내가 맡는다.
신입도 할 수 있을 만한 부분을 맡긴다.
조금 선택하게 해서 작은 성공 경험을 쌓게 한다.
끝나면 체크리스트로 확인한다.

그런데 주변의 불신이 강하면 이렇게 바뀌어 전달된다.

신입한테 판단을 시키고 있다.
신입한테 계획을 세우게 하고 있다.
일을 떠넘기고 있다.
억지로 시키고 있다.

이렇게 변환되는 일이 생기면 가르치는 쪽은 배운다.

여기서 키워주려는 마음을 드러내면 위험하다.
다음부터는 최소한의 문서 지시만 하자.

개선 제안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본인의 의도는 이렇다.

다음 사람이 곤란하지 않게 절차를 정리하자.
관리표를 만들자.
작업을 눈에 보이게 하자.

그런데 나중에 이런 말을 듣는다.

거기까지 안 해도 된다.
멋대로 진행했다.
그런 뜻으로 부탁한 게 아니다.
그런 데 시간을 쓸 필요가 있었나.

이런 경험이 쌓이면 사람은 개선하지 않게 된다.

선의를 낼수록 위험한 직장에서 선의는 오래가지 않는다.

뒷북 문화가 "네"밖에 못 하는 직장을 만든다

뒷북 문화란 사전에는 애매한 채로 진행하게 해 놓고, 나중에 다른 기준으로 책임을 묻는 문화다.

처음에 명확한 규칙이 없다.
판단하는 사람도 애매하다.
완료 조건도 애매하다.
그런데 무슨 일이 생긴 뒤에,

왜 그렇게 했나.
보통은 이렇게 한다.
그런 뜻이 아니다.
못 들었다.
당신의 진행 방식이 잘못됐다.

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은 말하지 않게 된다.

말해봤자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명하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반박하면 태도 문제가 된다. 개선안을 내면 내 책임이 된다. 그러면 가장 안전한 반응은 "네"가 된다.

여기서의 "네"는 동의가 아니다.

대화 종료 버튼이다.

심리적 안전감 연구로 알려진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은 심리적 안전감을, 팀 안에서 대인 관계의 위험을 감수해도 안전하다고 모두가 공유하는 믿음으로 다룬다. 질문하고, 이견을 말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행동은 심리적 안전감이 없으면 나오기 어렵다.

다시 말해 나중에 비난받는 직장에서는 학습 행동이 멈춘다.

그리고 학습 행동이 멈춘 직장에서는 겉치레 "네"만 늘어난다.

"못 들었다", "그런 뜻이 아니다"가 잦은 직장

어느 직장에서든 의사소통 오류는 생긴다.

"못 들었다"
"그런 뜻이 아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가끔 생기는 정도라면 평범한 일이다.

문제는 빈도와 대처 방식이다.

자주 생긴다면 그건 개인의 기억력이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이 무너진 것이다.

원래라면 다음처럼 글로 정해 두면 된다.

  • 누가 하는가
  • 무엇을 하는가
  • 언제까지 하는가
  • 완료 조건은 무엇인가
  • 판단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모르는 점은 누구에게 확인하는가
  • 생각이 다르면 언제까지 말해야 하는가

이걸 하지 않은 채 나중에 "못 들었다", "그런 뜻이 아니다"를 되풀이하면 직장은 기억 싸움이 된다.

기억 싸움에서는 힘이 약한 사람일수록 불리하다.

그래서 신뢰가 낮은 직장에서는 기억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 기록 싸움으로 만들어야 한다.

오해를 막으려고 공유드립니다.
X는 Y라고 이해하고 진행하겠습니다.
다른 점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이런 문장은 공격이 아니다.
방어다.

직원의 침묵은 "의욕이 없어서"가 아니다

조직행동론에는 employee silence, 즉 직원의 침묵이라는 개념이 있다.

반 다인(Van Dyne), 앙(Ang), 보테로(Botero)는 침묵과 발언을 단순한 반대말이 아니라 동기가 서로 다른 다면적인 행동으로 정리했다. 사람은 두려움, 체념, 배려, 방어 등 여러 이유로 의견이나 정보를 내놓지 않게 된다.

이건 현장의 감각과도 맞는다.

사람은 아무 생각이 없어서 입을 다무는 게 아니다.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배웠기 때문에 다문다.
말하면 번거로워지니까 다문다.
말한 내용이 나쁘게 번역되니까 다문다.
나중에 비난받으니까 다문다.

그러니 침묵은 흔히 "이해를 못 해서"나 "의욕이 없어서"가 아니라 "배운 결과"다.

조용한 퇴사도 마찬가지다.

그저 일하기 싫은 게 아니다.
그 직장에 추가로 선의를 낼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번아웃은 "약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조용한 퇴사의 배경에는 번아웃도 있다.

번아웃은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 때문에 정서적 소진, 일에 대한 거리 두기, 효능감 저하 등이 나타나는 상태로 다뤄진다. 마슬라크(Maslach)와 라이터(Leiter)의 리뷰에서도 번아웃은 개인의 나약함이라기보다 직장 환경이나 만성적인 스트레스 요인과의 관계로 설명된다.

지친 사람은 남의 선의를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다.

나만 야근한다.
나만 뒤처리를 한다.
상대는 연차를 쓴다.
나만 손해 본다.

이런 상태에서는 상대의 행동이 나쁘게 보이기 쉽다.

저 사람은 도망치고 있다.
저 사람은 신입한테 떠넘기고 있다.
저 사람은 자기만 챙긴다.

물론 지친 사람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피로를 이유로 남의 선의를 나쁘게 번역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개인끼리 선의로 싸우는 게 아니라 업무량, 분담, 기한, 우선순위를 다시 살펴보는 일이다.

신문과 뉴스만으로는 구조까지 닿기 어렵다

"신문을 읽어라", "뉴스를 봐라"라는 조언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신문과 뉴스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아는 데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뉴스는 대개 현상을 짧게 잘라 보여 준다.

조용한 퇴사가 늘고 있다.
젊은 층이 월급 이상으로 일하지 않는다.
워라밸을 중시한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떨어졌다.

이것만으로는 라벨은 얻는다.
하지만 구조는 잘 보이지 않는다.

현상의 이름만 아는 걸로는 부족하다.

  • 사람은 왜 입을 다무는가
  • 선의는 왜 멈추는가
  • 지도가 왜 역효과를 내는가
  • 신입 교육이 왜 위험한 행동이 되는가
  • "네"가 왜 동의가 아니라 방어가 되는가
  • 왜 유능한 사람일수록 먼저 포기하는가

여기까지 보려면 책, 논문, 이론, 현장 관찰, 자기 경험을 구조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뉴스는 입구다.
구조를 이해한 것은 아니다.

"가르치지 말고 코칭하라"는 대충 쓰면 위험하다

교육 현장에서는 "티치(teach)가 아니라 코치(coach)"라는 말이 쓰이곤 한다.

생각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다만 꽤 거칠게 쓰이기 쉽다.

신입 교육에서는 먼저 가르쳐야 하는 장면이 있다.

  • 절차
  • 규칙
  • 주의할 점
  • 완료 조건
  • 저장 위치
  • 판단 기준
  • 예외 상황의 확인처

이걸 가르쳐 주지 않고 대뜸 "스스로 생각해 봐"라고 하면 그건 코칭이 아니라 떠넘기기다.

원래는 단계가 있다.

  1. 가르치기(티치)
    먼저 알려 준다.

  2. 지원받으며 해 보기
    할 수 있는 범위를 나눠, 지켜보며 시킨다.

  3. 작은 판단
    안전한 범위에서 조금 생각해 보게 한다.

  4. 코칭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된 뒤에 본인의 생각을 끌어낸다.

  5. 위임
    판단 기준이 몸에 밴 뒤에 맡긴다.

이 단계를 나누지 않고

너무 가르치지 마라.
스스로 생각하게 해라.
코칭해라.
선배답게 가르쳐라.

라고 하면 현장은 혼란스럽다.

"가르쳐라", "생각하게 해라", "맡겨라", "책임져라"는 전부 다른 말이다.

이걸 구분하지 못하는 직장에서는 신입 교육이 선의 세탁이 되기 쉽다. 좋은 말로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일을 떠넘기는 것이다.

조용한 퇴사를 탓하기 전에 봐야 할 것

조용한 퇴사를 보고 곧바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주도성이 없다.
시킨 일만 한다.
좀 더 주인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전에 봐야 할 것이 있다.

그 사람이 전에 주도적으로 나섰을 때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

  • 좋은 뜻으로 움직인 일을 나중에 비난하지 않았는가
  • 개선 제안을 인격이나 적성 이야기로 만들지 않았는가
  • 신입 교육의 의도를 떠넘기기 취급하지 않았는가
  • 지시와 권한은 애매하게 둔 채 책임만 요구하지 않았는가
  • "네"가 동의가 아니라 방어가 되고 있지 않은가
  • 말했네 안 했네를 글로 정리해 막고 있는가
  • 연차 사용이나 거리 두기를 땡땡이 취급하지 않는가

이걸 보지 않고 "주도성이 없다"고 말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주도성은 명령해서 끌어내는 게 아니다.

주도성은 내놓아도 안전하다고 배운 곳에서 나온다.

개인으로서의 결론: 선의를 낼 곳은 골라도 된다

신뢰가 낮은 직장에서 모든 선의를 계속 낼 필요는 없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친절할 필요가 없다.
어느 직장에든 똑같이 능력을 쏟을 필요도 없다.

믿을 수 있는 곳에 선의와 가르치는 힘, 개선하는 힘을 쓰면 된다.

믿을 수 없는 곳에서는 최소한이면 충분하다.

  • 지시받은 일을 한다
  • 진행 상황을 공유한다
  • 판단은 상사에게 돌려 보낸다
  • 문서로 범위를 남긴다
  • 연차를 쓴다
  • 불필요한 선의는 내지 않는다
  • 이직이나 부서 이동 등 출구를 확보해 둔다

이건 차가운 게 아니다.
내 행복과 에너지를 지키는 일이다.

조용한 퇴사는 조직에는 손실이다.
하지만 개인에게는 가해자가 되거나 번아웃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어이기도 하다.

정리

"조용한 퇴사는 월급 이상으로 일하면 남는 게 없어서 생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해에서 멈추면 얕다.

정말 봐야 할 것은 "왜 남는 게 없어졌는가"다.

선의가 나쁘게 번역된다.
뒤늦게 비난받는다.
말했네 안 했네가 된다.
지도가 인격이나 적성 이야기가 된다.
신입 교육이 선의 세탁이 된다.
말하면 위험하다.
그러면 입을 다문다.
그러면 최소한만 한다.

이것이 조용한 퇴사의 깊은 구조다.

뉴스는 "남는 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훨씬 세밀한 기대값 계산이 이뤄지고 있다.

직장이 추가 노력의 기대값을 마이너스로 만들면 사람은 조용히 출력을 낮춘다.

그래도 달라지지 않으면 결국 정말로 그만둔다.


참고 문헌·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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