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직원이 움직이지 못하는 건, 윗선의 사정이 '요구사항'으로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젊은 사람들은 논리만 따진다." "부장급은 훨씬 진흙탕 같은 합의 과정을 거친다." "경영진의 불합리한 압박도 있고, 부서 간 이해관계 조율도 있다." "그래서 젊은 사람 눈에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결정에도 사실은 사정이 있다."
이 말 자체는 아마 맞을 것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단순한 정답은 줄어든다. 논리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는 문제가 늘어난다. 경영진, 다른 부서, 고객, 현장의 감정, 예산, 납기, 인간관계. 이 모든 걸 보면서 어딘가에서 타협점을 만들어야 한다.
다만 여기서 멈추면 이야기가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된다.
문제는 "위에 사정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사정을 현장이 움직일 수 있는 요구사항으로 번역했느냐가 문제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어디나 불이 붙었다는 뜻이다
이런 주제가 SNS에서 퍼진다는 건, 꽤 많은 직장에서 비슷한 소통 불량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직원 쪽은 이렇게 느낀다.
"왜 그런 결정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뭘 어디까지 하면 되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기준이 바뀐다." "논리가 안 맞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관리자 쪽은 이렇게 느낀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위에는 위의 사정이 있다." "이해관계 조율이 필요하다." "논리만으로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니 어느 한쪽만 잘못했다기보다, 윗선의 사정과 현장 실행 사이의 번역 과정에 불이 붙어 있는 것이다.
상사는 위의 사정을 떠안고 있다. 젊은 직원은 현장에서 움직이기 위한 조건을 원한다. 그 사이에 있어야 할 '요구사항 정의'가 빠지면 조직은 금방 불타오른다.
"사정이 있다"와 "말로 설명할 수 있다"는 별개다
상사에게 사정이 있다는 건 안다.
경영진의 압박이 있다. 다른 부서와의 관계가 있다. 거래처와 한 약속이 있다. 예산 제약이 있다. 납기 제약이 있다. 현장의 감정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사정이 있다는 것과, 그걸 부하 직원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정말 상황이 보이고 있다면 원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A안이 논리적으로는 맞다." "다만 이번에는 납기가 최우선이다." "다른 부서와 합의한 거라 이 조건은 못 바꾼다." "품질은 최소한 여기까지만 되면 된다." "결정하는 사람은 부장이다." "현장에서는 여기까지 해 줬으면 한다." "이 이후는 위에서 조율하겠다."
여기까지 들으면 현장은 움직일 수 있다.
젊은 직원도 단순한 논리만으로 반박하는 게 아니다. 제약 조건이 보이면 그 제약을 전제로 안을 낼 수 있다.
반대로,
"위에는 위의 사정이 있다." "논리만이 전부가 아니다." "진흙탕 같은 합의 과정이 있다." "젊은 사람은 몰라." "경험이 부족하다."
여기서 끝난다면, 그건 설명이 아니다. 연막이다.
"나 바빠"는 작업 조건이 아니다
상사가 바쁜 건 안다.
하루 종일 회의를 한다. 위에서 닦달을 당한다. 부서 간 조율을 한다. 주말에도 일 생각을 한다. 가정이나 사생활이 깎여 나가는 사람도 있다.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장 입장에서 "나 바빠"는 작업 조건이 아니다.
"나는 아수라장을 겪어 봤다." "위는 더 힘들다." "젊은 사람은 몰라." "논리만으로는 사람이 안 움직여."
이런 말을 들어도 현장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뭘 어디까지 하면 되는데요?" "뭐가 우선인데요?" "어디서부터가 안 되는 건데요?" "누가 결정하는데요?" "어디서부터는 위에서 맡는 건데요?"
바쁘다는 설명은 현장의 실행 조건이 되지 못한다.
정말 필요한 건 "나는 힘들다"가 아니라, "그러니까 이번에는 이 조건으로 움직여 달라"는 데까지 풀어 주는 것이다.
거기까지 풀어 줘야 비로소 관리가 된다.
젊은 직원이 안 움직이는 건, 판단 재료가 내려오지 않아서다
젊은 직원이나 현장이 움직이기 어려운 이유는 반항심 때문만이 아니다.
그냥 판단 재료가 부족한 것이다.
목적을 모른다. 제약을 모른다. 우선순위를 모른다. 목표를 모른다. 하면 안 되는 조건을 모른다. 누가 판단하는지 모른다. 어디서부터 위에서 맡는지 모른다.
이런 상태에서 "생각해서 움직여"라는 말을 들으면 현장은 곤란하다.
움직인 뒤에 뒤통수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보통은 이렇게 하잖아." "그 정도는 눈치껏 해야지." "좀 더 꼼꼼하게 해 줬으면 했어." "대충 한 것처럼 보여."
이렇게 되면 현장은 최적안을 낼 수 없다. 평론가가 된다기보다, 평론밖에 할 수 없게 된다.
윗선의 사정이 내려오지 않으면 현장은 실행 조건을 만들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안을 낼 수 없다.
논리 대 진흙탕의 문제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젊은 사람의 논리'와 '부장의 진흙탕 경험'이 맞서는 구도가 아니다.
이분법으로 만들면 이야기가 꽤 거칠어진다.
젊은 사람은 논리만 내세우고 얕다. 부장은 진흙탕 같은 현실을 안다. 그러니 젊은 사람은 입 다물고 배우라.
이렇게 되면 윗선이 정의하지 않은 부분과 설명 부족이 보이지 않게 된다.
정말 필요한 건 논리와 진흙탕 현실을 잇는 일이다.
논리는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에는 제약이 있다.
납기. 예산. 인원. 다른 부서. 고객. 경영 방침. 정치적 사정. 현장의 감정.
이런 제약을 무시한 논리는 분명 현실에서 약하다.
하지만 제약을 말로 풀어내지 않고 "논리만이 전부가 아니다"라고만 하는 것도 약하다.
강한 건 이런 형태다.
"논리상으로는 A안이 좋다." "다만 이번에는 제약 조건 X와 Y가 있다." "그래서 실행 가능성을 고려해 B안으로 간다." "B안의 위험은 여기다." "현장에서는 여기까지 해 줬으면 한다." "나머지는 위에서 맡겠다."
이것이 윗선의 사정을 요구사항으로 번역한다는 뜻이다.
정말 강한 부장은 아수라장을 아래로 흘려보내지 않는다
정말 강한 부장은 아수라장을 그대로 아래로 흘려보내지 않는다.
위에서 받은 압박을 아래로 그대로 던지지 않는다. 위에서 생긴 모호함을 아래로 그대로 넘기지 않는다. 위에서 정리하지 못한 모순을 현장의 노력이나 눈치로 떠넘기지 않는다.
대신 번역한다.
"경영진이 신경 쓰는 건 여기다." "다른 부서와의 관계 때문에 여기는 고정이다." "납기가 우선이라 품질은 이 선이면 된다." "예산상 이 안은 이번에는 어렵다." "이번에는 임시 대응으로 충분하다." "근본 대책은 다음 단계에서 생각하자." "헷갈리면 멈추고 확인해도 된다."
이렇게 현장이 움직일 수 있는 조건으로 만든다.
이게 되는 상사는 강하다. 단순히 아수라장을 겪어 본 사람이 아니라, 아수라장을 요구사항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다.
반대로 아수라장 이야기만 하고 요구사항으로 풀지 못하는 상사는 현장에서 보면 연기처럼 느껴진다.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힘든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래에서 보면 조작 불가능한 블랙박스다.
"밝힐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판단 기준만이라도 내놓아라
물론 위의 사정을 전부 공개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인사 정보. 경영 판단. 계약상의 제약. 아직 확정되지 않은 방침. 다른 부서와 협상 중인 내용.
전부를 현장에 보여 줄 수 없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전부 공개할 수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내놓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최소한 판단 기준은 내놓을 수 있다.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지만, 이번에는 납기 우선이다." "품질은 최소한 여기까지면 된다." "이 범위는 건드리지 말아 달라." "판단이 애매한 건 보류로 돌려 달라." "이 건은 부장이 판단한다." "현장에서 정하지 말고 일단 위로 돌려 달라."
이것만으로도 현장은 훨씬 움직이기 쉬워진다.
밝힐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판단 기준과 목표를 내놓아라. 그마저도 내놓지 못하면 현장은 움직일 수 없다.
"재량 줄게"가 눈치 게임으로 변하는 순간
상사가 "재량을 줄게"라고 할 때가 있다.
얼핏 보면 좋은 말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된다. 방법은 맡긴다. 효율화해도 된다. 개선해도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런 경우가 있다.
"말은 안 했지만, 내 머릿속 정답을 눈치껏 맞혀 줘." "자유롭게 해도 되는데, 내 기대에서 벗어나면 안 돼." "처음에는 조건을 안 주고, 나중에 가서 틀렸다고 해." "맡긴다고 했지만, 대충 한 걸로 보이긴 싫어."
이건 재량이 아니다. 암묵적 정답 맞히기 게임이다.
합리적인 사람은 주어진 요구사항을 바탕으로 생각한다.
목적이 뭔가. 어디까지 하면 되는가. 뭘 우선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빨리 끝나는가. 어떻게 하면 운영이 편해지는가. 어떻게 하면 재현성이 높아지는가.
그 결과 시간을 줄이고 운영을 개선하는 방법을 넣는다.
그런데 나중에 암묵적인 기대를 꺼내 들면 '대충 했다'는 낙인이 찍힌다.
이건 일하는 사람의 태도 문제가 아니다. 처음에 합격 기준이 정의되지 않은 것이 문제다.
요구사항 정의는 젊은 직원의 투정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다
"어디까지 하면 되나요?" "목표가 뭔가요?" "우선순위는 어떻게 되나요?" "판단이 안 설 때는 어떻게 하나요?"
이렇게 물으면 옛날식 직장에서는 "알아서 생각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게으름이 아니다.
요구사항 정의다. 리스크 관리다. 나중에 말 바꾸기를 막기 위한 확인이다. 가장 짧게, 사고 없이 끝내기 위한 출발점이다.
목표를 모르면 최단 경로로 갈 수 없다. 합격선을 모르면 한없이 무거워진다. 우선순위를 모르면 쓸데없이 공들일 곳과 대충 하면 안 되는 곳을 헷갈린다. 판단하는 사람을 모르면 마지막에 뒤집힌다.
그래서 처음에 묻는다.
이건 일을 가볍게 만들기 위한 올바른 행동이다.
젊은 직원은 사정을 알면 움직인다
젊은 직원이 안 움직이는 건 근성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상사를 얕봐서도 아니다.
대부분은 그냥 정보가 부족하다.
뭘 위해 하는지. 어디까지 하면 되는지. 뭘 우선해야 하는지. 뭘 안 해도 되는지. 어디서부터는 위에서 맡는지.
이걸 알면 젊은 직원은 움직인다.
특히 합리적인 사람일수록 움직인다. 요구사항이 나오면 가장 빠른 길로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정은 내놓지 않은 채,
"위에는 위의 사정이 있다." "논리만이 전부가 아니다." "경험이 부족하다." "젊은 사람은 평론가다."
이런 말만 들으면 현장은 움직일 수 없다.
그건 젊은 직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설계의 문제다.
윗선의 일은 사정을 제약 조건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윗선의 일은 힘든 회의에 들어가는 것만이 아니다.
경영진, 다른 부서, 고객에게서 오는 모호한 압박을 현장이 움직일 수 있는 제약 조건으로 바꾸는 것이다.
경영진의 압박을 우선순위로 만든다. 다른 부서의 사정을 고정 조건으로 만든다. 고객의 요구를 필수 조건으로 만든다. 예산 문제를 선택지의 범위로 만든다. 납기 문제를 품질 기준에 반영한다. 정치적 사정은 현장이 밟지 않아도 되는 지뢰로 정리해 준다.
이게 되면 현장은 움직일 수 있다.
안 되면 현장은 영문도 모른 채 달리게 된다.
윗선의 진짜 가치는 "나는 위의 사정을 안다"고 말하는 데 있지 않다. 그 사정을 아래가 움직일 수 있는 요구사항으로 풀어 주는 데 있다.
현장의 일은 제약 조건 안에서 최적안을 내는 것이다
현장에도 맡은 역할이 있다.
위에서 제약 조건이 내려오면 그 안에서 최적안을 내는 것이다.
납기 우선이라면 품질 기준은 지키면서 가장 빨리 낸다. 품질 우선이라면 확인 단계를 두텁게 한다. 예산이 고정이라면 수작업과 자동화의 균형을 생각한다. 다른 부서 사정으로 조건이 고정이라면 그 안에서 운영하기 좋은 형태를 찾는다. 임시 대응이라면 나중에 근본 대책으로 옮기기 쉬운 형태로 만든다.
제약 조건이 있으면 현장은 머리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제약 조건이 보이지 않으면 머리를 쓸 수가 없다. 무엇을 버려도 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와 아래의 연결이 중요하다.
윗선은 사정을 제약 조건으로 만든다. 현장은 제약 조건 안에서 최적화한다.
이 연결이 끊기면 조직은 연막과 말 바꾸기로 굴러가게 된다.
"젊은 사람은 못 이긴다"가 아니라, 연결이 끊긴 것뿐이다
"젊은 사람은 상사를 못 이긴다." "부장급은 비즈니스 전투력이 높다." "아수라장을 겪은 횟수가 다르다."
이런 이야기는 절반쯤은 맞을지도 모른다.
분명 경험의 차이는 있다. 보이는 풍경도 다르다. 짊어진 이해관계도 다르다.
하지만 그걸 이유로 설명을 포기하면 그냥 우위 과시일 뿐이다.
중요한 건 승패가 아니다. 연결이다.
윗선이 보고 있는 것을 현장에 내려 준다. 현장이 보고 있는 비효율과 실행상의 문제를 위로 올린다. 그 사이를 요구사항 정의로 잇는다.
이게 되면 젊은 직원의 논리도, 부장의 진흙탕 경험도 둘 다 쓸 수 있다.
안 되면 젊은 직원은 "비합리적이다"라고 하고, 상사는 "젊은 사람은 몰라"라고 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다.
정리: 사정이 있다면 요구사항으로 번역하라
위에는 위의 사정이 있다. 그건 안다.
경영진의 압박도 있다. 다른 부서와의 이해관계 조율도 있다. 고객 사정도 있다. 예산도 납기도 인간관계도 있다.
하지만 그걸 현장에 내려 줄 때,
"논리만이 전부가 아니다." "젊은 사람은 몰라." "우리는 아수라장을 겪어 봤다." "위에는 위의 사정이 있다."
이 말로 끝내서는 안 된다.
그건 설명이 아니라 연막이다.
정말 강한 상사는 사정을 요구사항으로 번역한다.
목적은 이것. 제약은 이것. 우선순위는 이것. 하면 안 되는 조건은 이것. 판단하는 사람은 이 사람. 현장은 여기까지 한다. 여기서부터는 위에서 맡는다.
여기까지 풀어 주면 현장은 움직일 수 있다. 젊은 직원도 안을 낼 수 있다. 합리적인 사람일수록 가장 빠르게 맞춰 간다.
윗선의 사정은 말로만 해서는 가치가 되지 않는다. 아래가 움직일 수 있는 조건으로 바꿔 줘야 비로소 가치가 된다.
그래서 결론은 단순하다.
사정이 있다면 요구사항으로 번역하라. 밝힐 수 없다면 판단 기준과 목표를 내놓아라. 그마저도 내놓을 수 없다면, 그건 비합리가 아니라 미정의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