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구호가 소름 끼치는 이유

구호 자체가 싫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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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안전 표어는 괜찮은데 "인재(人財)가 돼라, 인죄(人罪)가 되지 마라"가 싫은 까닭

구호 자체가 싫은 건 아니다.

예를 들어 교통안전 표어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게 많다.

"속도를 줄이자" "좌우를 살피자" "일시정지를 지키자"

이런 표어는 하고 싶은 말이 구체적이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행동하면 사고를 막을 수도 있다. 표어가 실제 행동과 이어져 있다.

그래서 이런 표어는 그냥 좋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직장에서 쓰이는 일부 구호다.

특히 이런 말들이다.

"인재가 돼라, 인죄가 되지 마라" (일본어로 '인재'는 발음이 같은 '人材'(인재)와 '人財'(보물 같은 사람)로 쓸 수 있는데, 여기에 '죄'를 뜻하는 글자를 넣어 '짐이 되는 사람'을 비꼬아 만든 말장난이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마라" "의식을 바꿔라" "마음가짐의 문제다" "불평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해라"

이런 말이 관리하는 쪽의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쓰이는 순간, 단숨에 소름이 돋는다.


구호는 전제 조건이 제대로일 때만 작동한다

구호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짧은 말로 행동이나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다. 헷갈릴 때 돌아갈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안전이나 품질을 다루는 현장에서는 짧고 외우기 쉬운 말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다만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구호를 쓰는 쪽, 즉 관리자, 평가하는 사람, 제도를 설계하는 사람이 제대로여야 한다.

이게 무너지면 구호는 그저 도덕을 강요하는 말이 된다.

예를 들어 "보고·연락·상담을 중요하게 여기자"(일본에서는 '호렌소'라고 줄여 부르며, 신입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다)라는 구호가 있다고 하자.

상사가 보고를 제대로 들어주고, 상담해도 짓밟지 않고, 필요한 판단을 내려준다면 그 구호는 작동한다.

그런데 보고하면 혼난다. 상담하면 "알아서 생각해"라며 돌려보낸다. 문제를 알리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취급을 받는다.

이런 상태에서 "보고·연락·상담이 중요하다"고 해봐야 그냥 책임 전가다.

즉, 구호는 사육사가 제대로인 동물원에서만 작동한다.

사육사가 허술하면 구호는 우리를 고치는 데가 아니라 우리 안의 원숭이를 입 다물게 하는 데 쓰인다.

이게 바로 '사육사는 제대로라는 전제의 구호'다.


교통안전 표어가 그나마 납득이 되는 이유

교통안전 표어가 비교적 납득이 되는 건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속도를 줄인다. 멈춘다. 확인한다. 거리를 둔다.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 분명하다.

게다가 사고라는 위험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

나도 위험하다. 상대도 위험하다. 보행자도 위험하다. 차도 망가진다. 인생이 바뀐다.

그래서 "조심하자"는 표어에도 현실의 무게가 있다.

물론 교통안전도 표어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로 설계, 신호, 표지판, 단속, 교육, 차량의 안전 성능 같은 구조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그래도 개인의 행동으로서 "확인하자", "멈추자"라고 하는 건 이해하기 쉽다.

반면 직장의 정신론 구호는 다르다.

"인재가 돼라" "의식을 바꿔라"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마라"

이건 구체적인 행동이 너무 모호하다.

뭘 해야 인재인가. 뭘 하면 인죄인가. 누가 그걸 판정하는가. 문제를 봤을 때 정말 못 본 척하는 게 맞는가. 불편한 목소리는 듣지 않는 게 맞는가.

이런 게 정해지지 않은 채 쓰이면 구호는 편리한 인격 딱지가 된다.


"인재가 돼라, 인죄가 되지 마라"가 소름 끼치는 이유

"인재가 돼라, 인죄가 되지 마라"는 얼핏 보면 긍정적으로 들린다.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자. 주변에 나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지 말자. 그런 뜻으로 쓰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판정하는 사람이다.

누가 '인재'와 '인죄'를 정하는가.

평가 기준이 분명하고, 관리자도 공정하고, 조직의 체계도 갖춰져 있다면 그나마 이해가 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정의되지 않은 업무를 떠맡는다. 책임 범위가 모호하다. 판단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다. 윗선이 결정을 안 한다. 나중에 말이 바뀐다. 문제를 지적하면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인죄가 되지 마라"고 하면 그건 개선이 아니라 협박에 가깝다.

사실은 조직 설계가 허술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개인의 인격과 의식 문제가 되어 있다.

이게 소름 끼친다.

'인죄'라는 말은 너무 편리하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 귀찮은 소리를 하는 사람. 구조의 구멍을 지적하는 사람. 윗사람의 책임을 눈에 보이게 하는 사람. 애매한 지시를 확인하려는 사람.

이런 사람을 아무렇게나 '인죄' 취급할 수 있다.

그건 인재 육성이 아니라 인격에 딱지를 붙이는 일이다.


삼원숭이 구호가 직장에서 망가지는 순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마라"도 원래 뜻이나 쓰임새에 따라서는 나쁜 말이 아니다.

쓸데없는 험담은 보지 않는다. 소문에 휘둘리지 않는다. 감정적인 다툼에 휘말리지 않는다.

그런 지혜로서라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직장의 개선, 안전, 괴롭힘, 정의되지 않은 업무, 책임 범위 이야기에 쓰이면 뜻이 달라진다.

보지 마라 → 문제를 봐도 입 다물어라

듣지 마라 →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마라

말하지 마라 → 개선 제안이나 이의를 내지 마라

이렇게 된다.

게다가 직장에서는 여기에 2가지가 더 붙는다.

결정하지 마라 → 규칙, 책임 범위, 판단하는 사람을 정하지 않는다

책임지지 마라 → 결국 아래에 떠넘긴다

그러니까 이렇게 된다.

안 보고, 안 듣고, 말 안 하고, 결정 안 하고, 책임 안 지고.

이건 더 이상 3원숭이가 아니다.

체 같은 관리다. (일본어로 원숭이를 뜻하는 말 '사루'가 '체, 구멍 숭숭 뚫린 소쿠리'를 뜻하는 '자루'와 비슷해서, 구멍투성이 관리를 빗대어 '자루 관리'라고 부른 말장난이다)


구조의 문제를 의식의 문제로 바꿔치기하지 마라

정말 싫은 건 구조의 문제를 아랫사람의 의식이나 도덕 문제로 바꿔치기한다는 점이다.

원래 관리하는 쪽이 해야 할 일은 많다.

  • 규칙을 정한다
  • 책임 범위를 정한다
  • 판단하는 사람을 정한다
  • 평가 기준을 분명히 한다
  • 문제가 생기면 짓밟지 않고 받아 준다
  • 보고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 개선 제안을 다루는 체계를 만든다
  • 윗선이 책임을 진다

이걸 하지 않은 채 아래를 향해

"의식을 바꿔라" "마음가짐의 문제다" "인재가 돼라" "불평하지 마라"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마라"

라고 한다.

이건 의식 개혁이 아니다.

의식 문제화 세탁이다.

제도, 설계, 관리의 문제를 개인의 감정과 도덕으로 세탁하고 있을 뿐이다.

"체계가 나쁜" 건데 "네 의식이 나쁘다"로 바뀐다.

"책임 범위가 모호한" 건데 "주체성이 부족하다"로 바뀐다.

"윗선이 결정을 안 한" 건데 "현장이 못 움직인다"로 바뀐다.

이건 이상하다.


짓밟힌 원숭이의 도덕 릴레이

이런 구호를 쓰는 사람 중에는 본인도 예전에 윗사람에게 짓밟혀 온 사람이 있다.

나도 참았다. 나도 입 다물고 지냈다. 나도 부당함을 견뎠다. 그러니 너도 입 다물어라.

이런 흐름으로 도덕 구호가 다음 세대에 넘겨진다.

이게 '짓밟힌 원숭이의 도덕 릴레이'다.

사실은 자기가 당한 싫은 일을 멈추면 된다.

그런데 멈추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넘겨 버린다.

그러고는

"사회인은 원래 그런 거야" "다들 참고 있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인재가 돼라"

라고 한다.

이건 교육이 아니다.

저주를 물려주는 것이다.


좋은 구호와 나쁜 구호의 차이

좋은 구호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것.

"확인하자" "멈추자" "기록하자" "곤란하면 상담하자"

이런 건 이해가 된다.

다음으로 책임지는 주체가 맞을 것.

현장에 요구할 건 현장에. 관리자에게 요구할 건 관리자에게. 회사에 요구할 건 회사에.

이걸 섞으면 구호는 책임 전가가 된다.

그리고 문제를 입 다물게 하지 않을 것.

좋은 구호는 위험이나 위화감을 보고하기 쉽게 만든다. 나쁜 구호는 위험이나 위화감을 입 다물게 한다.

이 차이는 크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정말 쓸 거라면 이런 구호가 낫다.

"문제를 발견한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정의되지 않은 건 투지가 아니라 확인으로 없앤다" "개선 제안은 담당자, 판단하는 사람, 기한과 함께 다룬다" "보고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윗선이 정해야 할 일을 아랫사람의 의식 문제로 만들지 않는다"

이런 구호라면 그래도 작동한다.

행동과 책임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정리: 구호가 나쁜 게 아니라 쓰는 방식이 나쁘다

구호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교통안전처럼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구호는 쓸모가 있다. 안전이나 품질을 다루는 현장에서도 짧고 외우기 쉬운 말이 필요한 순간은 있다.

하지만 직장에서 쓰이는 구호가 관리하는 쪽의 책임 회피와 침묵 장치가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인재가 돼라, 인죄가 되지 마라"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마라" "의식을 바꿔라" "마음가짐의 문제다"

이런 말들이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인격, 의식, 도덕 문제로 바꿔치기하는 데 쓰인다면 위험하다.

필요한 건 아랫사람에게 도덕을 떠넘기는 게 아니다.

윗선이 결정할 것. 책임 범위를 분명히 할 것. 보고한 사람을 짓밟지 않을 것. 문제를 본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 것. 개선 제안을 다루는 체계를 만들 것.

원숭이 산에서 "인재가 돼라"고 외치기 전에 먼저 사육사가 우리를 고쳐야 한다.

3원숭이를 읊기 전에, 안 보고 안 듣고 말 안 하고 결정 안 하고 책임 안 지는 체 같은 관리부터 그만둬야 한다.

구호는 현실을 낫게 하려고 쓰는 것이다.

현실에서 눈을 돌리려고 쓰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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