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활약이나 다양성 추진 이야기에서 요즘 자주 보이는 말들이 있다.
"상대의 심층 심리를 가시화한다" "본인 안에 있는 브레이크를 찾아낸다" "개인과 기업이 생각하는 이상의 간극을 측정한다" "직원이 더 일하고 싶어지도록 행동 변화를 이끈다"
얼핏 보면 꽤 좋아 보인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관, 불안, 강점, 커리어관이 보인다. 회사는 그걸 바탕으로 더 나은 지원을 한다. 여성 활약과 다양성 추진에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말하면 딱히 반박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함정이 있다.
가시화하는 것과 사람을 회사가 바라는 이상에 끼워 맞추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가시화는 유용하다. 그러나 그 결과를 가지고 회사가 멋대로 커리어를 짜고,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려 한다면 그건 지원이 아니라 유도다.
그리고 의욕을 내지 않는 직원의 심층 심리를 캐기 전에, 회사가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그 의욕 스위치를 누른 직원은 정말 보상받는가.
가시화 자체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쓰기에 따라서는 꽤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직원 본인이 이런 가치관이나 제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 가정을 소중히 하고 싶다
-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중심에 두고 일하고 싶다
- 돈은 필요하지만 책임이 너무 무거운 일은 피하고 싶다
-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 관리직보다 전문직으로 일하고 싶다
- 지금은 건강이나 체력 면에서 무거운 책임을 질 여력이 별로 없다
- 회사 이념보다 자기 생활과 자유를 중시하고 싶다
이게 보인다는 것 자체에는 의미가 있다.
본인의 바람과 제약이 보이면 회사는 배치와 근무 방식을 조정할 수 있다. 관리직으로 키우는 게 좋을까, 전문직 경로가 나을까. 풀타임이 전제여야 할까, 단축 근무나 재택을 섞는 편이 능력을 더 잘 발휘할까. 책임을 늘린다면 보수와 재량, 지원 체계도 함께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판단의 재료가 된다면 가시화는 유효하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지도'다.
지도를 보고 어느 목적지로 갈지는 본인과 회사가 대화로 정해야 한다.
문제는 회사가 그 지도를 본 순간 멋대로 목적지를 정해 버리는 것이다.
커리어 지원과 커리어 유도는 다르다
가시화한 결과, 회사가 이런 말을 하기 시작하면 위험하다.
"당신은 리더형입니다." "관리직 후보로 육성하겠습니다." "회사 이념과 차이가 있습니다." "사명 수행력을 키웁시다." "더 주체적으로 회사에 기여합시다."
물론 본인도 원한다면 문제없다.
하지만 본인은 원하지 않는데 회사가 "이 사람에게는 이런 커리어가 맞다"고 정해 버린다면, 그건 공정하지 않다.
그것은 커리어 지원이 아니라 회사 사정에 맞춘 커리어 유도다.
본인은 가정을 소중히 하고 싶다. 관리직이 되고 싶지 않다. 책임보다 안정을 중시한다. 회사보다 개인의 기술이나 부업에 관심이 있다.
이런 것들은 '미숙함'도 '브레이크'도 아니다. 본인의 가치관이고 생활 조건이며, 합리적인 손익 계산이다.
그걸 '심층 심리의 과제'로 찾아내서 회사의 이상에 가깝게 만들려 한다면, 그건 다양성이 아니다.
다양성의 탈을 쓴 회사 최적화다.
의욕 스위치를 찾기 전에, 눌렀을 때 보상받는 환경부터 만들어라
"의욕 스위치는 어디에 있을까. 내가 찾아 줄게."
이런 발상은 꽤 위험하다.
직원이 의욕을 내지 않는다. 여성이 관리직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젊은 직원이 리더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가정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 책임 있는 일을 피한다.
그럴 때 곧바로 본인의 내면부터 들여다본다.
왜 도전하지 않을까. 왜 의욕이 없을까. 심층 심리에 어떤 브레이크가 있을까. 스스로를 바꾸는 힘이 부족한 걸까. 사명 수행력이 부족한 걸까.
하지만 그 전에 봐야 할 것이 있다.
의욕을 낸 사람은 제대로 이득을 보는가.
책임만 늘어난다. 부하 직원 대응이 늘어난다. 위에서 내려오는 숫자 책임이 무거워진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불만 처리도 늘어난다. 가정에 부담이 간다. 실패하면 본인 책임이 된다. 월급은 조금밖에 오르지 않는다. 재량도 인원도 지원도 늘지 않는다. 단축 근무나 육아와의 병행이 어려워진다.
이런 상태에서 "왜 의욕이 안 나죠?"라고 묻는 건 순서가 틀렸다.
의욕이 없는 게 아니다. 의욕 스위치를 누르면 손해를 보도록 배선되어 있을 뿐이다.
눌렀을 때 손해라면 누르지 않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니 회사가 해야 할 일은 직원의 의욕 스위치를 찾는 게 아니다.
눌렀을 때 보상받도록 배선을 바꾸는 것이다.
관리직 승진이 본인에게 꼭 보상인 것은 아니다
기업 쪽에서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관리직 후보로 채용했다." "능력이 있으니 리더가 되어 주었으면 한다." "월급도 오르니 본인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승진이 반드시 보상인 것은 아니다.
본인이 관리직을 하고 싶지 않다면, 승진은 보상이 아니라 짐을 얹는 일이 된다.
관리직이 되면 본인에게 이런 부담이 얹힌다.
- 사람 사이 관계 조율
- 부하 직원의 문제 대응
- 상사가 내려 주는 숫자 책임
- 아래에서 올라오는 불만 처리
- 자기 실무 시간 감소
- 감정노동 증가
- 가정에서 보낼 시간 압박
- 건강 위험
- 실패했을 때의 책임
그에 비해 월급이 조금만 오른다면 솔직히 남는 장사가 아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인정하고 있다", "승진시켜 주고 있다"일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은 "내 인생에 무거운 책임이 얹혔다"고 느낄 수도 있다.
실제로 관리직이나 리더가 된 뒤에 우울증을 앓거나, 번아웃에 빠지거나, 회사를 떠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 회사는 "본인에게 리더 적성이 없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을 수 있다.
본인이 원하지도 않는 관리직 승진을, 회사가 멋대로 그 사람의 커리어로 예약해 두었다는 것.
이건 '동의 없는 리더 만들기'다.
관리직 후보로 채용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까지 회사가 예약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복선 커리어를 만들 거라면, 정말 지나갈 수 있는 길로 만들어라
그럼 해결책으로 '복선형 커리어'를 만들면 될까.
관리직 경로뿐 아니라 전문직 경로, 단축 근무 고숙련 경로, 프로젝트형 경로, 재택 중심 경로, 부업 허용 경로 등을 마련한다.
방향은 맞다.
다만 여기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복선 커리어를 겉만 번지르르하게 만들지 마라.
겉으로는 "관리직 말고도 커리어가 있습니다"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관리직 경로가 아니면 평가받지 못한다. 전문직 경로에는 예산이 붙지 않는다. 단축 근무 경로에는 중요한 일이 오지 않는다. 프로젝트형 사람에게는 승급 기회가 적다. 관리직 후보가 아니면 승진 심사를 통과하기 어렵다. 의사결정 권한도, 보수도, 성장 기회도 결국 관리직 경로에 쏠려 있다.
이건 복선 커리어가 아니다.
복선 커리어를 가장한 것이다.
겉모양뿐인 선택지를 두는 것은 거의 거짓말에 가깝다.
직원들은 처음엔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몇 년 일하면 안다.
"전문직 경로가 있다더니 실제로는 올라갈 수가 없네." "단축 근무로도 활약할 수 있다더니 중요한 일은 안 돌아오네." "가정과 병행할 수 있다더니 결국 평가받는 건 풀 커밋하는 사람뿐이네." "관리직 말고도 길이 있다더니 대우도 재량도 완전히 다르네."
이렇게 되면 유능한 사람부터 떠난다.
복선 커리어를 만들 생각이 없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는 편이 낫다.
"우리 회사는 관리직 경로를 중심으로 평가합니다." "풀타임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중시합니다." "전문직 경로는 제한적입니다." "단축 근무는 가능하지만 승진과 보수 면에서는 제약이 있습니다."
차갑게 들릴지 몰라도 거짓말보다는 낫다.
문제는 듣기 좋은 말로 기대를 품게 해 놓고, 실제로는 지나갈 수 없는 길을 깔아 두는 것이다.
그건 직원의 인생 시간을 빼앗는 일이다.
그러니 복선 커리어를 만든다면 정말 지나갈 수 있는 길이어야 한다.
- 평가 기준이 있다
- 보수 테이블이 있다
- 승진 상한이 명시되어 있다
- 필요한 심사(어세스먼트)가 투명하다
- 실제로 그 경로에서 승급·승진한 사람이 있다
- 관리직 경로 밖에도 재량과 성장 기회가 있다
- 중간에 경로를 바꿀 수 있다
- 어느 길에 어떤 제약이 있는지 미리 설명되어 있다
여기까지 갖춰져야 비로소 복선 커리어라고 할 수 있다.
만들고 싶지 않다면 먼저 말하면 된다.
지나갈 수 없는 길을 지나갈 수 있는 길처럼 보이게 하지 마라.
가시화한 뒤에 회사가 할 일은 네 가지뿐이다
직원의 가치관과 제약을 가시화했다면, 회사가 정말 해야 할 일은 크게 네 가지뿐이다.
1. 배치·역할·근무 방식을 바꾼다
가정이 우선인 사람에게 가정을 무너뜨리는 근무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전문직 지향인 사람에게 억지로 관리직을 떠맡기지 않는다. 단축 근무로도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에게는 단축 근무를 전제로 한 역할을 설계한다.
2. 보수·재량·책임 설계를 바꾼다
책임을 늘린다면 보수도 재량도 지원도 늘린다. 관리직으로 만든다면 인원과 권한, 물러설 수 있는 길도 함께 준다. 쥐꼬리만 한 월급 인상만으로 끝없는 감정노동을 지우지 않는다.
3. 복선형 커리어를 정말로 만든다
관리직만 정답은 아니다. 전문직, 프로젝트 리더, 육아·간병과 병행할 수 있는 고숙련 직무, 부업과 양립하는 근무 방식 등 여러 길을 진짜로 만든다.
다만 겉치레로는 의미가 없다. 보수·평가·재량·승진 심사, 그리고 실제로 그 길을 걸은 사람까지 갖춰져 있지 않으면 복선 커리어라고 할 수 없다.
4. 맞지 않으면 억지로 바꾸지 말고 거리를 둔다
진단 결과 본인이 회사의 이상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가정이 최우선이다. 독립 지향이 강하다. 회사 이념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관리직은 되고 싶지 않다. 책임보다 안정을 택하고 싶다.
그렇다는 걸 알았다면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본인의 가치관을 회사 색으로 물들이는 것은 다양성이 아니다.
맞지 않으면 맞지 않는다는 전제로 역할을 조정한다. 아니면 서로 무리하지 않는 거리를 둔다.
이것도 훌륭한 조직 설계다.
능력 이름을 늘려도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인재 육성 프로그램에는 온갖 능력 이름이 등장한다.
체력·건강 유지 관리 능력. 잠재 능력. 이념 보유력. 사명 수행력. 미래 구상력. 전략 수립·실행력. 리더십 능력. 매니지먼트 능력. 정보 인풋 능력. 정보 아웃풋 능력. 이문화 적응 능력. 시간 관리 능력. 자기 혁신 능력. 실무 능력.
이름만 보면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능력 이름의 개수가 아니다.
그걸 어떻게 측정하는가. 측정한 결과, 무엇을 바꾸는가. 본인이 납득하고 있는가. 회사 제도의 미비를 개인 능력 부족으로 바꿔치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능력이 올랐을 때 본인은 보상받는가.
이게 보이지 않으면 그저 말로 치장한 장식에 불과하다.
능력 이름을 늘려도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고, 행동한 끝에 보상받는 환경이 있을 때다.
다양성이란 회사 색으로 물들이는 것이 아니다
다양성 추진에 필요한 것은 직원의 심층 심리를 가시화해서 회사의 이상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가치관이 다른 사람도 계속 일할 수 있는 설계를 만드는 것이다.
가정을 소중히 하고 싶은 사람. 아이를 중심에 두고 일하고 싶은 사람. 전문직으로 남고 싶은 사람. 관리직을 하고 싶은 사람. 관리직은 하고 싶지 않지만 실무 능력이 뛰어난 사람. 돈은 필요하지만 생활을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은 사람. 회사보다 자기 자유를 소중히 하고 싶은 사람.
이런 사람들을 전부 똑같은 회사형 인간으로 물들이는 것이 다양성이 아니다.
저마다의 가치관과 제약을 전제로 하고도 성립하는 역할·보수·평가·근무 방식을 만드는 것.
그것이 본래의 다양성이다.
가시화는 그것을 위해 쓴다면 유효하다.
하지만 가시화를 써서 직원을 회사의 이상에 끌어당긴다면 위험하다.
의욕 스위치를 찾기 전에, 눌렀을 때 보상받는 환경을 만든다. 관리직 후보로 뽑았다고 해서 본인의 인생까지 예약하지 않는다. 복선 커리어를 만든다면 정말 지나갈 수 있는 길로 만든다. 만들 수 없다면 먼저 말한다.
결국 조직이 봐야 할 것은 직원의 심층 심리만이 아니다.
직원이 의욕을 냈을 때 제대로 보상받는 배선으로 되어 있는가.
그걸 고치지 않고 의욕 스위치만 찾아봐야 의미가 없다.
의욕 스위치를 찾지 마라. 누르면 손해 보는 직장의 배선을 고쳐라.
참고·출처 메모
일본 내각부 남녀공동참획국 「공동참획」 2025년 9월호 여성의 계속 취업률은 높아지고 있지만, 정규직 비율이 25~29세를 정점으로 나이가 들수록 떨어지는 'L자 곡선'이 남아 있다는 점, 남녀 임금 격차와 관리직 중 여성 비율의 과제가 정리되어 있다. https://www.gender.go.jp/public/kyodosankaku/2025/202509/202509_03.html
Harvard Business Review, “Why Diversity Programs Fail” 다양성 연수의 효과는 단기에 그치기 쉽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발을 낳을 수 있다고 정리되어 있다. https://hbr.org/2016/07/why-diversity-programs-fail
Alexandra Kalev, Frank Dobbin, Erin Kelly, “Best Practices or Best Guesses? Assessing the Efficacy of Corporate Affirmative Action and Diversity Policies” 다양성 연수나 평가보다 조직적 책임이나 멘토링 같은 구조가 효과를 내기 쉽다는 것을 보여 주는 연구. https://journals.sagepub.com/doi/10.1177/000312240607100404
Gallup, “The Antidote to Manager Burnout” 관리직은 부하 직원보다 번아웃에 빠지기 쉬운 경향이 있다고 하며, 관리직 지원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https://www.gallup.com/workplace/389057/antidote-manager-burnout.aspx
McKinsey & LeanIn.Org, “Women in the Workplace 2025” 여성의 관리직 승진에서의 'broken rung'(승진 사다리의 첫 단이 부러진 현상)과 승진 의욕·지원 격차에 관한 데이터가 소개되어 있다. https://www.mckinsey.com/capabilities/people-and-organizational-performance/our-insights/women-in-the-workpla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