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가 내건 '되지 말았으면 하는 직원' 다섯 유형
- 사내 운동회 기획에서 벌어진, 숫자부터 정해놓은 논의
- 건설적으로 우려를 말하는 것은 '평론가'가 아니다
- 책임·능력·실적의 삼중 세탁
- 위에서 받은 지적이 부하 직원에 대한 압박으로 바뀐다
- 다 들여다보여도 멈추지 않는 이유
- 역주행을 멈추기 위한 최소 조건
- 정리
회사가 내건 '되지 말았으면 하는 직원' 다섯 유형
어느 회사의 승진자 교육에서 경영자가 '이런 직원은 되지 말았으면 한다'며 다섯 가지 특징을 꼽았다.
- 과거의 성공에 얽매인다
- 행동이 먼저고, 논리는 나중에 갖다 붙인다
- 책임을 남에게 떠넘긴다
-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한 것처럼 다룬다
- 평론가처럼 굴면서 정작 일의 질은 낮다
이를 거꾸로 읽으면, 회사가 진짜 원하는 사람은 지금의 사실을 바탕으로 생각을 고쳐 나가고, 목적과 가설을 갖고 움직이며, 자기 판단에 책임을 지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고, 지적받은 내용을 실제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이념을 가르치는 입장인 중간관리자가 현장에서 이 다섯 가지를 그대로 재연하는 일이 있다.
자격증, 예전에 있던 부서, 연봉, 직책 같은 것은 그 사람의 경력을 보여 주는 정보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 논점에 답하는 대신 "나는 자격증이 있다", "예전에 전문 부서에 있었으니 안다", "관리자니까 내가 맞다"는 식으로 쓰면, 경력은 근거가 아니라 검증을 피하기 위한 방패가 된다.
직책은 결정권의 근거는 될 수 있어도 판단 내용이 옳다는 증거는 아니다. 과거의 경험도 지금의 문제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설명하지 못하면 그저 간판을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사내 운동회 기획에서 벌어진, 숫자부터 정해놓은 논의
젊은 직원들이 중심이 되어 사내 운동회를 기획했다. 젊은 직원이 의견을 내고 주변을 끌어들이며 일을 진행하는 것 자체는 조직에 가치 있는 활동이었다.
기획의 배경에는 '직장에서 친구가 생기면 퇴사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교류할 기회가 소속감을 높여 한동안 직원을 붙잡아 두는 요인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야근, 업무 설계, 상사와의 관계, 말을 꺼내기 쉬운 분위기 같은 퇴사 요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회의에서 한 관리자가 "운동회를 하면 업무 시간이 몇 시간 줄어드는지 숫자를 내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운동회와 업무 생산성 사이의 인과관계, 측정 기간, 비교 대상, 쓸 지표는 아무것도 설계되어 있지 않았다.
젊은 직원은 이렇게 되물었다.
- 어설픈 숫자를 내놓으면 기획 전체의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을까요?
- 업무 생산성은 부수적인 효과인데 왜 숫자로 전면에 내세우나요?
- 부수 효과가 여러 개인데 왜 업무 생산성만 골라야 하나요?
- 숫자가 필요하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재야 하나요?
이는 반항이 아니라 목적, 인과관계, 측정 방법, 선정 기준을 확인하는 정당한 품질 점검(QC) 질문이다.
그런데 관리자는 구체안을 요구받자 "그건 다 같이 생각하는 거지"라고 답했다. 지표를 요구하는 쪽에 측정 가설이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부서의 방침에 '업무 효율화'가 올라가 있었고, 그 관리자 본인이 보고할 만한 단축 시간 수치를 만들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운동회 기획에서 효율화 수치를 뽑아내 자기 부서의 방침 실적에 끼워 넣고 싶었던 게 아니냐는 시각이 공유됐다.
동기를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행동의 순서는 다음과 같아 보인다.
기획의 목적을 정한다 → 효과를 고른다 → 지표를 설계한다
가 아니라,
보고에 쓸 수 있는 숫자가 필요하다 → 기획에 업무 효율화를 갖다 붙인다 → 이유와 측정 방법은 부하에게 생각하게 한다
는 순서다.
이는 '논리에서 행동으로'가 아니라 원하는 결론을 먼저 깔아 두는 KPI 사후 끼워 맞추기다. (KPI는 일이 잘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수치 목표를 말한다.)
건설적으로 우려를 말하는 것은 '평론가'가 아니다
이 기획에 대해 다른 직원은 먼저 이렇게 말했다.
젊은 직원들이 의견을 내고 주변을 끌어들이며 진행하는 것 자체는 아주 좋은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의견을 물어보셨으니, 나중에 지적받아 기획이 무산되는 일이 없도록 먼저 우려되는 점을 공유하고 싶어요.
그러고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설명했다.
- 직장 친구는 일시적으로 퇴사를 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
- 하지만 월 100시간씩 야근이 이어지는 환경에서는 친구만으로는 사람이 남지 않는다
- 업무상 문제를 상사에게 올려도 "일이니까"라며 묵살당한다면 말할 의미가 없어진다
- 오히려 믿을 만한 친구가 있어서 "같이 그만두자"며 퇴사를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 따라서 친구 만들기뿐 아니라 업무량, 재량, 상사의 대응, 역할, 심리적 안전감 등도 함께 살펴야 한다
이는 기획을 바깥에서 깎아내리는 평론이 아니다.
평론가라면 "운동회 같은 건 의미 없다", "기획이 얕다"고 말하고 끝낸다. 반면 위의 발언은 활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효과의 범위를 한정하고, 성립 조건과 부작용을 정리해서, 나중에 기획이 무산될 위험을 줄이려 한다.
즉 비판이긴 하지만 평론가에서 그치지 않는다. 기획 리뷰, 전제 감사, 프리모템(일이 실패했다고 가정하고 그 원인을 미리 찾아보는 기법), 리스크 분석에 가깝다.
숙고란 오래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전제를 확인하고, 인과를 쪼개 보고, 다른 설명을 떠올리고, 2차 효과를 읽고, 작게 시험해 보고 결과에 따라 고쳐 나가는 것이다. 결론까지 빨리 가는 사람은 중간 사고 과정이 주변에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이 보이지 않는 것과 생각하지 않는 것은 같지 않다.
책임·능력·실적의 삼중 세탁
다른 업무에서는 본인 앞으로 보낸 서류가 여러 번 관리 부서로 반송되고 있었다. 그런데 첫 반송 사실은 담당자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담당자는 첫 서류가 도착했다고 생각한 채 다음 서류를 추가로 보냈다. 수신처, 부서명, 이름을 분명히 적고, 어디를 보면 되는지 알려 주고, "문제가 있으면 이유를 적어 돌려보내고, 문제가 없으면 안내문은 버리세요"라는 동선도 덧붙였다. 본 서류는 본인에게 도착했다.
담당자의 계획은 단계적이었다.
- 서면에 수신처와 처리 방법을 분명히 적는다
- 실제로 본인에게 닿는지 본다
- 닿지 않으면 관계자와 직접 이야기해서 경로를 확인한다
- 추가 발송일과 확인일을 캘린더로 관리한다
그런데 관리자는 담당자의 계획도, 첫 반송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현황 파악이 안 되고 있다", "문제 해결력이 부족하다", "리더로서 기초부터 교육하겠다"고 평가했다. 그러고는 자료를 15번, 20번이라도 고치게 해서 완성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서는 세 종류의 세탁이 일어날 수 있다.
| 종류 | 변환 전 | 변환 후 |
|---|---|---|
| 책임 세탁 | 관리자의 정보 공유 부족 | 부하의 현황 파악 부족 |
| 능력 세탁 | 부하가 원래 갖고 있던 숙고와 단계적 설계 | 관리자가 기초부터 키워 준 능력 |
| 실적 세탁 | 젊은 직원이 만든 기획·수치·성과 | 관리자의 지도 실적·부서 방침 달성 |
실패와 부족함은 부하에게 흘려보내고, 부하의 능력과 성과는 상사 쪽으로 거둬들인다. 한 방향으로만 걸러지는 필터다.
이 '책임·능력·실적 세탁'은 이 글에서 직장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려고 쓰는 분석용 표현이며, 확립된 학술 용어는 아니다. 다만 '성공은 자기 능력 덕, 실패는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기 쉽다'는 자기 위주 귀인 편향이나, 파괴적 리더십이 부하에게 미치는 영향과는 이어진다.
위에서 받은 지적이 부하 직원에 대한 압박으로 바뀐다
경영자가 제시한 다섯 가지 문제 행동이 어떤 관리자 자신에게 해당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자기 점검이다.
하지만 위에서 내려온 지적을 '내가 고쳐야 할 과제'가 아니라 '부하에게 가르쳐야 할 과제'로 바꿔 버리는 경우가 있다.
경영진이 문제 행동을 지적한다 → 내 과제로 인정하면 과거의 관리 부실까지 따져 묻게 된다 → "부하의 문제 해결력이 부족하다"고 다시 규정한다 → 나는 개선 대상이 아니라 교육하는 자리에 남는다 → 부하에게 몇 번이고 고치게 한 뒤, 마지막에 지도 성과로 거둬들인다
이는 하나의 가설이며, 개인의 동기를 바깥에서 단정할 수는 없다. 의도적인 조작이라고 할 수도 없고, 본인이 무의식중에 자신을 방어하고 있을 수도 있다.
다만 부하의 설명을 듣기도 전에 "못 하고 있다"고 결론 내리고, 반증이 되는 사실이 나와도 전제를 바꾸지 않는다면, 그 자리의 목적은 능력 진단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대화가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라는 역할을 고정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영자가 자기 점검을 위해 내놓은 이념이 중간관리자의 손에서 부하를 바로잡는 무기로 바뀐다. 이념에 역행하는 사람에게 교육 권한을 주면, 회사가 막고 싶어 하는 행동이 되풀이되는 온상이 된다.
다 들여다보여도 멈추지 않는 이유
이런 세탁이 반드시 주변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아니다.
- 젊은 직원은 논리를 나중에 갖다 붙인 점과 측정 가설이 없다는 점을 회의 중에 지적했다
- 주변 직원들도 숫자에 대한 집착과 부서 방침 실적과의 연결을 짐작했다
- 담당자는 정보 공유 부족이 능력 부족으로 바뀐 구조를 알아챘다
- 경영자 본인도 비슷한 행동을 '바람직하지 않은 직원'의 특징으로 이야기했다
즉 세탁 과정의 배관은 꽤 투명하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 것은 간파당하는 것과 책임을 추궁당하는 것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평가권, 교육권, 정보 배분권을 같은 관리자가 쥐고 있는 한, 주변에서 구조를 꿰뚫어 봐도 이 운영은 계속될 수 있다.
심리적 안전감에 관한 대규모 메타분석(많은 연구를 모아 다시 분석한 연구)에서는, 심리적 안전감이 통상적인 업무 성과뿐 아니라 자발적인 협력 행동과도 관련이 있다고 나타났다. 환경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직장의 스트레스 요인이나 리더십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므로 생각하고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 추가 제안이나 협력을 삼가는 것은 반드시 능력이나 책임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말해 봐야 나중에 묵살당하고 성과만 빼앗기는 환경에서는 재량으로 하는 기여를 줄이는 것이 합리적인 자원 방어다.
역주행을 멈추기 위한 최소 조건
이념 교육만으로 이 문제를 막기는 어렵다. 최소한 다음과 같은 운영이 필요하다.
판단 과정을 기록한다
누가 어떤 사실을 바탕으로 무엇을 결정했는지 남긴다.정보 공유 책임을 분명히 한다
필요한 정보가 담당자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면, 그것을 담당자의 파악 부족으로만 처리하지 않는다.지표는 목적에서부터 설계한다
원하는 숫자를 먼저 정해 놓고 나중에 기획에 갖다 붙이지 않는다. 잴 수 없는 부수 효과를 억지로 정밀한 숫자로 만들지 않는다.교육하기 전에 진단한다
"못 하고 있다"고 정하기 전에 본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실행하고, 어떤 정보를 갖고 있었는지 듣는다.성과의 출처를 나눈다
기획자, 실행자, 판단자, 지원자의 기여를 뒤섞지 않아서, 관리자가 모든 것을 자기 지도 성과로 거둬들이지 못하게 한다.관리자도 다면평가 대상으로 삼는다
상사의 평가뿐 아니라 부하, 동료, 관련 부서에게서 정보 공유, 요건 정의, 책임지는 방식을 확인한다.지적한 사람을 '반항아'로 만들지 않는다
목적, 인과, 측정 방법을 묻는 질문은 기획을 무너뜨리는 행위가 아니라 기획을 지키는 품질 보증으로 취급한다.
정리
회사가 '깊이 생각하고, 책임지고, 실행하는 직원'을 원한다고 해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다음과 같다면 실제로 길러지는 것은 다른 인물상이다.
- 깊이 생각하면 '굼뜨다'는 소리를 듣는다
- 전제를 물으면 '반항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 관리자의 공유 부족이 부하의 파악 부족이 된다
- 부하의 성과가 관리자의 지도 실적이 된다
- 원하는 숫자가 먼저 정해지고 논리는 나중에 갖다 붙인다
이런 환경에서 적응하는 쪽은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보다 평가자의 머릿속 정답을 맞히고, 책임을 피하고, 이견을 삼가는 사람이다. 회사가 내건 이상과 현장에서 살아남는 인물상이 뒤집힌다.
조직이 정말 바뀌는지는 문제 행동을 교육에서 이야기했는지로 정해지지 않는다. 누가 정보를 막았고, 누가 판단했고, 누가 실패를 떠안았고, 누구의 성과로 기록됐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지로 정해진다.
간파하는 것은 첫걸음일 뿐이다. 투명한 세탁을 멈추려면 이념이 아니라 권한·평가·기록의 체계를 바꿔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