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누가 그만두면 꼭 이런 말이 나온다.
"요즘 애들은 오래 못 버텨."
"주도성이 부족해."
"책임감이 없어."
"좀 더 가르쳐야 해."
하지만 3년쯤 지나면 팀원이 거의 다 바뀌는 직장이라면, 먼저 봐야 할 건 개인의 근성이 아니다.
그곳에 사람이 눌러앉을 만한 구조가 있는가.
이걸 봐야 한다.
1명이 그만두는 거라면 궁합이나 집안 사정, 커리어 사정일 수도 있다.
2명이 그만둬도 우연일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하지만 3년 만에 팀원이 100% 바뀐다면, 그건 더 이상 "개인 문제"로만 넘기기 어렵다.
그건 직장의 구조가 내놓은 성적표다.
"3년 전원 교체 동물원"이라는 현상
이런 직장은 겉으로는 평범한 회사처럼 보인다.
회의가 있다.
매뉴얼이 있다.
상사가 있다.
교육도 있다.
어쨌든 조직으로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안에 있는 사람 눈에는 이런 작은 스트레스가 쌓여 있다.
- 해주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
- 고맙다는 말도, 보탬이 됐다는 실감도 돌아오지 않는다
- 못한 부분만 파헤쳐진다
- 사소한 실수를 목소리 압박으로 큰 사건처럼 취급한다
- 준비 부족이나 시스템의 구멍을 가까이 있는 사람이 메우게 된다
- 권한은 없는데 책임만 떠안는다
- '주도성'이라는 말로 땜질 작업이 미화된다
이걸 한마디로 하면 3년 전원 교체 동물원이다.
우리 안의 동물이 잘못한 게 아니다. 우리의 설계, 먹이를 주는 방식, 동선, 돌보는 방법, 소리 크기, 거리감까지 전부 미묘하게 이상하다.
그런데 운영하는 쪽은 "이상하게 동물들이 안 정착하네"라고 말한다.
아니, 밭을 보라고.
모종만 탓하지 말고.
'감점 채굴'은 육성이 아니다
사람이 정착하지 못하는 직장에서 흔한 게 감점 채굴형 지도다. 잘한 건 놔두고 못한 것만 캐내는 방식이다.
뭔가를 맡긴다.
도움이 된다.
사실 그 사람 덕분에 시간이 남는다.
사실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돌아가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도 돌아오는 말은 이렇다.
"여기, 안 돼 있네?"
"왜 이렇게 했어?"
"다음부터 조심해."
"이건 보통 하는 거잖아."
물론 실수를 짚어야 할 때는 있다.
일이니까 품질도 필요하고 확인도 필요하다.
하지만 매번 "못한 부분"만 캐내면 사람은 배운다.
"뭘 해봤자 어차피 흠만 잡힌다."
"괜히 나서지 않는 게 안전하다."
"일을 맡을수록 손해다."
"여기서 애써봤자 보상받지 못한다."
이건 육성이 아니다.
사람이 움직이려는 의욕을 깎는 작업이다.
감점 채굴을 계속하면 밭이 황폐해진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요즘 젊은 애들은 안 큰다"고 말한다.
아니다.
너무 파헤쳐서 싹이 안 나는 것뿐이다.
"도움이 됐어요"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잡무를 가치 있는 일로 바꾼다
반대로 똑같은 잡무를 맡겨도, 어떻게 돌려주느냐에 따라 상대가 받아들이는 느낌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잡무를 맡긴 뒤에,
"진짜 큰 도움이 됐어요."
"시간 안에 못 끝낼 줄 알았는데."
"맡기길 잘했네요."
"이걸 해준 덕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어요."
라고 전한다.
이건 그냥 빈말이 아니다.
"당신 작업이 누군가의 시간을 구했다"고 돌려주는 것이다.
신입이나 젊은 직원은 특히 자기 일이 무엇으로 이어지는지 알기 어렵다.
잡무를 맡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있어."
"나는 쓸모가 있긴 한가?"
"민폐 끼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쉽다.
그럴 때 "도움이 됐다"고 구체적으로 돌려주면, 잡무가 잡무로 끝나지 않는다.
그건 기여가 된다.
경험이 된다.
다음에도 움직여 보자는 작은 자신감이 된다.
사람은 완벽한 평가 제도만으로 크지 않는다.
날마다 돌아오는 작은 한마디에서 "여기 있어도 된다"고 느낀다.
목소리 압박으로 조약돌을 바위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
직장에서 사람이 닳는 건 내용 자체보다 '얹는 방식' 때문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회의실 예약을 안 해뒀다.
하지만 당일에 예약해도 늦지 않는다.
실제로 비어 있으면 바로 잡을 수 있다.
이 경우 원래는 이 정도면 된다.
"회의실, 당일로 잡자."
"빈 데 있는지 확인해 줘."
"다음엔 미리 알면 사전에 잡자."
그런데 목소리에 괜히 힘을 주면서,
"회의실 안 잡았더라."
"내가 잡아놨어."
라고 오는 사람이 있다.
내용은 조약돌이다.
그런데 목소리만 바위다.
이렇게 목소리 압박으로 조약돌을 바위로 만드는 소통은 은근히 사람을 깎아낸다.
듣는 쪽의 머릿속이 제멋대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지금 질책받는 건가?"
"중대한 실수 취급인가?"
"반박해야 하나?"
"내가 뭘 잘못했나?"
하지만 차분히 보면 내용은 회의실 예약이다.
당일 예약으로 끝날 얘기다.
문제는 회의실이 아니다.
사소한 일정 수정에 쓸데없는 압박을 얹는 것이다.
"해주는 게 당연한" 직장에서는 사람이 조용히 사라진다
사람이 그만두는 직장에서는 고함이나 뚜렷한 괴롭힘만이 원인은 아니다.
훨씬 눈에 안 띄는 것들이 쌓인다.
해주는 게 당연하다.
도움이 됐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못한 건 말한다.
자기가 할 땐 모른 척한다.
남이 할 땐 탓한다.
지도라는 명목으로 결점만 줍는다.
작은 구멍을 큰 문제처럼 다룬다.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부주의로 바꿔치기한다.
이런 곳에서 사람은 크게 폭발하지 않는다.
조용히 닳는다.
조용히 기대를 접는다.
조용히 구직 사이트를 본다.
그리고 조용히 그만둔다.
남은 쪽은 말한다.
"갑자기 그만뒀네."
"좀 더 일찍 말해주지."
"요즘 사람들은 참을성이 없어."
하지만 본인 안에서는 갑작스러운 게 아니다.
매일의 작은 감점 채굴로, 이미 답은 충분히 나와 있었을 뿐이다.
사람이 남는 직장은 완벽한 직장이 아니다
오해하면 안 되는 건, 사람이 남는 직장이 "실수를 지적하지 않는 직장"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일을 제대로 하는 직장일수록 확인도 지적도 필요하다.
다만 사람이 남는 직장에는 최소한의 순서가 있다.
먼저 해준 일을 본다.
도움이 됐다고 전한다.
일의 의미를 돌려준다.
그런 다음에 다음번에 고칠 점을 나눈다.
말하자면,
"고마워요. 근데 다음엔 여기를 이렇게 해봐요."
라는 거다.
이게,
"여기 틀렸어. 끝."
이 되면 육성이 아니라 감점이다.
사람은 자기 존재와 기여가 0 취급을 받은 채로 개선만 요구받으면 지친다.
반대로 기여를 인정받고 있다는 걸 알면, 개선 요청도 훨씬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3년 만에 사람이 전부 바뀐다면, 먼저 구조를 봐야 한다
3년 만에 팀원이 100% 바뀌는 직장이라면, 먼저 봐야 할 건 이런 것들이다.
- 지도가 감점 채굴이 되고 있지 않은가
- 고맙다는 말보다 지적이 많지 않은가
- 목소리 압박으로 작은 문제를 크게 보이게 하고 있지 않은가
- 잡무와 보조 작업을 '당연한 것'으로 소모하고 있지 않은가
- 권한 없는 사람에게 책임만 떠넘기고 있지 않은가
- 시스템의 구멍을 개인의 선의로 메우게 하고 있지 않은가
- 그만둔 사람을 '약한 사람'으로 처리하고 있지 않은가
- 남은 사람에게 땜질을 더 떠넘기고 있지 않은가
사람이 안 남는 직장은 대개 '사람 보는 눈' 이전에 '사람이 남는 설계'가 없다.
그리고 그 설계 부족을 인정하지 않는 직장일수록 그만둔 사람 탓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3년 만에 전원이 바뀐다면, 그건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이 낳은 결과다.
정리: 모종이 나쁜 게 아니라 밭이 황폐해진 건지도 모른다
사람이 그만둘 때마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근성을 분석하는 직장이 있다.
하지만 정말 봐야 할 건 거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왜 여기서 웃지 못하게 됐을까.
왜 스스로 움직이지 않게 됐을까.
왜 일을 맡는 걸 피하게 됐을까.
왜 조용히 그만둘 준비를 시작했을까.
답은 매일의 작은 소통에 있다.
해주는 게 당연하다.
못한 부분만 판다.
조약돌을 목소리 압박으로 바위로 만든다.
시스템의 구멍을 사람의 선의로 메운다.
그리고 사람이 사라진 뒤에 "요즘 사람들은 오래 못 간다"고 말한다.
그건 이제 모종의 문제가 아니다.
밭의 문제다.
3년 전원 교체 동물원에서는 동물을 탓하기 전에 우리와 먹이와 동선과 사육 방식을 다시 살펴보는 편이 낫다.
사람은 제대로 인정받고,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듣고, 자기 일의 의미를 돌려받는 곳에서는 조금 웃을 수 있다.
그 작은 웃음을 만들 수 있느냐.
거기에 직장의 진짜 육성력이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