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체가 된 일, 그리고 여백 사냥
업무를 효율화했는데도 왜 근무 시간은 줄지 않을까.
원래대로라면 IT 도입이든 AI든 업무 개선이든, 일이 빨리 끝난 만큼 일찍 집에 가야 한다.
예전보다 연락은 빠르다.
자료 만들기도 빠르다.
검색도 빠르다.
공유도 빠르다.
계산도 집계도 빠르다.
AI를 쓰면 글쓰기, 요약, 기획, 코딩, 자료 작성까지 꽤 빨라진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은 별로 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쳐 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고, 꽤 잔인하다.
노동은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그릇'으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이 있으니까 8시간 일하는 것
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상당히 많은 경우
8시간 동안 자리에 있어야 하니까 8시간어치 일이 생기는 것
이 된다.
근무 시간이 줄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은 액체가 아니라 기체다
일은 액체가 아니다.
액체라면 그릇에 담은 만큼에서 멈춘다.
정해진 양을 처리하면 끝난다.
하지만 많은 회사의 일은 기체에 가깝다.
기체는 용기가 있으면 그 크기만큼 퍼진다.
8시간이라는 용기가 있으면 8시간까지 부풀어 오른다.
주 5일이라는 용기가 있으면 주 5일까지 부풀어 오른다.
인원이 줄면 남은 사람의 용기로 흘러 들어간다.
효율화로 틈이 생기면 그 틈으로도 흘러 들어간다.
이것이 바로
일의 기체화
다.
일은 끝났기 때문에 끝나는 게 아니다.
담을 그릇이 있는 한 계속 늘어난다.
그래서 효율화로 1시간이 비어도 그 1시간은 휴식이 되지 못한다.
대개 이렇게 된다.
"그럼 이것도 좀 부탁해요."
"하는 김에 이것도 해줘요."
"시간 남으면 개선 활동도 같이 하죠."
"여유 있으면 회의에도 들어와요."
"아직 퇴근 시간까지 한참 남았죠?"
이렇게 해서 빈 시간은 일을 쌓아 두는 창고가 된다.
8시간은 상한선이었는데, 어느새 표준 그릇이 됐다
일본에서는 원칙적으로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이 법정 근로시간의 기본이다.
원래 이것은 과로를 막기 위한 상한선이다.
그런데 현실의 직장에서는 이것이 흔히 표준 그릇으로 취급된다.
"8시간을 넘겨서 일을 시키면 안 된다"가 아니라
"8시간은 일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원래는 제한이었던 것이 어느새 의무처럼 변한다.
그 결과
8시간 안에 끝날 만큼으로 업무량을 조절하는 것
이 아니라
8시간을 채우도록 일을 배치하는 것
이 되기 쉽다.
이런 발상에서는 효율화가 노동자의 여가가 되지 않는다.
효율화는 남는 용량이 생긴 것으로 취급된다.
즉,
일이 빨라진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휴식이 아니라 다음 일이다.
파킨슨의 법칙, 그리고 회사의 현실
이 현상은 파킨슨의 법칙과 닮았다.
파킨슨의 법칙을 간단히 말하면
일은 완성을 위해 주어진 시간을 다 채울 때까지 팽창한다
는 생각이다.
마감이 2주면 2주가 걸린다.
마감이 2시간이면 2시간 안에 끝난다.
시간이 있으면 일은 그 시간에 맞춰 부풀어 오른다.
회사의 근무 시간도 이와 비슷하다.
근무 시간은 8시간이다.
그러니 일도 8시간어치로 부풀어 오른다.
게다가 요즘 일은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료는 더 꼼꼼하게 만들 수 있다.
보고는 더 세세하게 할 수 있다.
확인 절차는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회의는 더 잡을 수 있다.
개선 활동은 끝이 없다.
데이터 분석도, 교육도, 매뉴얼 정비도, 채용도, 홍보도 마음먹으면 전부 할 수 있다.
그래서 일은 끝나지 않는다.
"여기까지"라고 분명히 선을 긋지 않는 한 일은 계속 늘어난다.
옛날은 편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건, "옛날은 편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옛날에는 옛날 나름의 지옥이 있었다.
"24시간 싸울 수 있습니까"라는 말(1980년대 일본의 자양강장 음료 광고 문구)로 상징되는 기업 전사, 장시간 노동, 정신력, 회식, 접대, 휴일 반납, 이동, 체력전의 분위기는 분명히 있었다.
그러니 옛날의 일하는 방식을 그대로 미화하는 것은 맞지 않다.
옛날도 옛날대로 꽤 무리한 시절이었다.
다만 옛날의 무리와 지금의 무리는 종류가 다르다.
옛날의 고통은
장시간, 이동, 정신력, 체력, 회사에 인생을 몰빵하는 것
에 가까웠다.
지금의 고통은
짧은 틈까지 메우기, 즉답, 고밀도, 가시화, 관리, 여백 제로
에 가깝다.
옛날에는 "오래 싸워라"였다.
지금은 "같은 8시간 안에 더 많이 밀어 넣어라"가 됐다.
그러니까
쇼와 시대와 헤이세이 초기는 '24시간 싸울 수 있습니까'형.
지금은 '8시간 고압가스'형.
이것이 차이다.
옛날에는 물리적 마찰이 업무량을 제한했다
옛날 일에는 물리적 마찰이 있었다.
예를 들어 플로피 디스크나 종이 자료를 들고 공장이나 다른 부서를 오간다.
전표를 가져다준다.
인쇄한다.
도장을 받으러 간다.
전화가 연결될 때까지 기다린다.
담당자가 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실물을 보러 간다.
우편이 오기를 기다린다.
이동한다.
카페에서 시간을 때운다.
다른 사업장에 간다.
지금 눈으로 보면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이 비효율에는 다른 면도 있었다.
물리적 마찰이 업무량의 상한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플로피 디스크를 배달하러 가는 동안에는 다른 일을 끼워 넣을 수 없다.
공장에 가면 이동 중에는 처리 건수가 늘지 않는다.
종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그동안은 다음 단계로 못 넘어간다.
전화가 안 되면 즉답은 불가능하다.
사람을 만나러 가면 시간이 물리적으로 소모된다.
다시 말해 옛날에는 '느림'과 '번거로움'이 결과적으로 일의 밀도를 낮춰 주고 있었다.
이 마찰은 비효율이면서 동시에 완충 장치이기도 했다.
지금은 마찰이 사라진 만큼 일이 빽빽하게 들어찬다
지금은 다르다.
플로피 디스크를 배달하지 않아도 파일은 순식간에 간다.
종이를 돌리지 않아도 클라우드로 공유할 수 있다.
만나러 가지 않아도 Teams나 Zoom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전화가 안 돼도 채팅이 날아온다.
자료는 템플릿으로 만든다.
집계는 Excel이나 BI(데이터를 한눈에 보여 주는 분석 도구)로 빠르게 끝난다.
글은 AI로 빠르게 쓴다.
번역도 요약도 빠르다.
얼핏 보면 최고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땠을까.
일 하나하나는 빨라졌지만, 비어 버린 틈에 다음 일이 들어오게 됐다.
옛날에는 공장에 갔다 오는 것만으로도 30분이 걸렸다.
지금은 채팅으로 3분이면 된다.
그럼 27분 일찍 퇴근할 수 있을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 27분에는 다른 채팅, 다른 자료, 다른 회의, 다른 보고, 다른 개선 활동이 들어찬다.
즉 기술 혁신은 일을 줄인 게 아니라
일을 밀어 넣는 능력을 높였다
고도 할 수 있다.
같은 8시간이라도 옛날과 지금은 내용이 다르다
옛날의 8시간과 지금의 8시간은 같지 않다.
옛날의 8시간에는
- 이동
- 대기
- 직접 전달
- 종이 처리
- 연락 기다리기
- 실물 확인
- 잡담
- 카페
- 준비 작업
- 손 놓고 기다리는 시간
이 들어 있었다.
물론 그게 전부 좋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비효율도 많았다.
장시간 노동도 있었다.
부조리도 있었다.
정신력 타령도 있었다.
그래도 일의 밀도라는 면에서는 자연스러운 빈틈이 많았다.
반면 지금의 8시간에는
- 즉답
- 채팅
- 온라인 회의
- 자료 작성
- 업무 관리
- 데이터 입력
- 보고
- 개선 활동
- 감시
- 교육
- 문의 대응
- 추가 업무
- AI로 빨라진 만큼 다시 투입되는 일
이 가득 찬다.
즉
근무 시간은 같아도 노동 밀도는 올라갔다.
이건 꽤 중요하다.
주 5일, 하루 8시간이라는 겉모양만 보면 옛날과 똑같아 보인다.
하지만 속은 다르다.
옛날의 8시간은 군데군데 공기를 머금은 스펀지였다.
지금의 8시간은 압축된 고밀도 블록이 됐다.
여백은 땡땡이가 아니라 완충 장치였다
회사는 여백을 싫어하기 쉽다.
한가해 보인다.
쓸데없어 보인다.
효율이 나빠 보인다.
인건비가 아까워 보인다.
하지만 여백이 곧 땡땡이는 아니다.
여백은 완충 장치다.
예상 못 한 문제에 대응하고,
판단을 그르치지 않고,
사람을 가르치고,
확인하고,
실수를 막고,
회복하고,
새 아이디어를 내고,
다른 부서와 조율하고,
머리를 전환하는 일.
이런 일에는 여백이 필요하다.
여백을 전부 깎아 내면 단기적으로는 효율이 좋아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 실수가 늘고
- 피로가 쌓이고
- 사람이 그만두고
- 교육이 부실해지고
- 특정 사람에게만 일이 몰리고
- 개선할 힘이 없어지고
- 아무도 생각할 여유가 없어진다
는 결과가 따른다.
즉, 여백을 너무 사냥하면 조직의 회복력이 떨어진다.
이것은 겉보기만 효율화일 뿐, 실제로는 노동 밀도를 과적한 것이다.
효율화의 배당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효율화를 하면 원래는 배당이 생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8시간 걸리던 일이 6시간에 끝나게 됐다고 하자.
이때 효율화의 배당은 2시간이다.
문제는 그 2시간을 누가 가져가느냐다.
선택지는 크게 3가지다.
1. 노동자에게 시간으로 돌려준다
일찍 퇴근한다.
쉰다.
주 4일 근무로 바꾼다.
근무 시간을 줄인다.
2. 노동자에게 돈으로 돌려준다
월급을 올린다.
상여금을 늘린다.
성과급으로 바꾼다.
3. 회사가 업무량으로 회수한다
추가 업무를 넣는다.
인원을 줄인다.
채용을 줄인다.
처리 건수를 늘린다.
품질 요구 수준을 올린다.
관리, 보고, 회의를 늘린다.
현실에서는 3번으로 기울기 쉽다.
다시 말해 효율화의 배당이 노동자의 자유 시간이 아니라 회사의 처리량, 이익, 인건비 절감, 관리 강화로 흘러가기 쉽다.
이것이
효율화 배당 가로채기 문제
다.
물론 회사에도 사정은 있다.
경쟁이 있다.
이익을 내야 한다.
인건비는 무겁다.
고객 요구는 늘어난다.
가격에 전가하기도 어렵다.
다른 회사도 효율화하고 있다.
그래도 노동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보인다.
빨라졌는데 편해지지 않았다. 효율화했는데 여백이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밀도만 올라간다.
일 잘하는 사람일수록 손해 보는 구조
이 구조에서는 일 잘하는 사람일수록 손해를 보기 쉽다.
일이 빠른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보통 사람이 8시간 걸리는 일을 5시간에 끝낸다.
원래라면 3시간어치 여백이 생겨야 한다.
그런데 직장에서는 대개 이렇게 된다.
"빠르네요. 그럼 이것도 부탁해요."
"여유 있어 보이니까 이것도 좀 봐줘요."
"하는 김에 신입 교육도 맡아 줘요."
"개선안도 내 주세요."
"자료도 만들어 줘요."
"회의에도 들어와 주세요."
그러면 빠른 사람은 보상이 아니라 추가 업무를 받는다.
이래서는 효율화할수록 손해다.
일 잘하는 사람은 일을 빨리 처리한다.
그러면 빈 시간에 일이 흘러 들어온다.
또 처리한다.
또 흘러 들어온다.
이것이
유능한 사람의 여백 흡수 시스템
이다.
그리고 조직은 이것을 '주도성', '협력', '성장 기회'라고 부르기 십상이다.
울타리 구멍 난 동물원이나 다름없다.
회사는 왜 여백을 일로 채우는가
회사가 여백을 일로 채우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1. 인건비를 시간으로 보기 때문이다
월급을 주고 있는 이상 그 시간을 쓰고 싶어 한다.
노동자에게는 자기 인생의 시간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이미 사 둔 자원으로 보인다.
2. 성과보다 붙잡아 두는 쪽이 관리하기 쉽기 때문이다
성과로 관리하기는 어렵다.
무엇을 성과로 볼 것인가.
어디까지 해야 완료인가.
질을 어떻게 볼 것인가.
누가 판단할 것인가.
이를 정하는 건 힘든 일이다.
반면 시간은 관리하기 쉽다.
몇 시에 출근했는가.
몇 시까지 있었는가.
몇 시간 일했는가.
그래서 시간 관리로 기운다.
3. 일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를 늘린다.
확인을 늘린다.
회의를 늘린다.
개선 활동을 늘린다.
교육을 늘린다.
가시화를 늘린다.
자료를 다듬는다.
일은 만들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4. 여백을 이익으로 돌려주는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효율화한 사람이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제도가 없으면 여백은 일이 된다.
"일찍 끝나면 가도 된다."
"성과가 나오면 짧게 일해도 된다."
"효율화한 만큼은 급여나 휴가로 돌려준다."
이런 장치가 없는 한 여백은 회수된다.
'근무 시간'이 아니라 '노동 밀도'를 봐야 한다
앞으로의 일하는 방식을 생각한다면 근무 시간만으로는 부족하다.
물론 장시간 노동은 문제다.
하지만 같은 8시간이라도 밀도가 다르면 피로는 완전히 다르다.
8시간 중에 이동과 대기와 잡담과 준비 작업이 섞여 있는 일.
8시간 내내 채팅, 회의, 자료, 판단, 즉답이 빈틈없이 들어찬 일.
이 둘은 같은 8시간이 아니다.
근무 시간 논의에 더해
노동 밀도
를 보는 게 좋다.
얼마나 집중을 요구받는가.
얼마나 즉답을 해야 하는가.
얼마나 판단이 필요한가.
얼마나 자주 끊기는가.
얼마나 감정 노동이 있는가.
얼마나 여백이 있는가.
얼마나 회복할 수 있는가.
이걸 보지 않으면 요즘의 피로는 설명할 수 없다.
'24시간 싸울 수 있습니까'형과 '8시간 고압가스'형
옛날의 일하는 방식을 한마디로 하면
'24시간 싸울 수 있습니까'형
이었다.
장시간.
정신력.
이동.
회식.
접대.
회사에 대한 충성.
체력전.
인생을 통째로 회사에 가져다 바치는 느낌.
반면 지금의 일하는 방식은
'8시간 고압가스'형
이다.
법정 근로시간 안에 맞추려고 한다.
하지만 속은 고밀도다.
IT로 틈이 깎여 나간다.
채팅으로 즉답이 날아온다.
회의가 잘게 쪼개져 들어온다.
일이 가시화된다.
여백이 사냥당한다.
옛날에는 오래 싸우게 했다.
지금은 압축해서 싸우게 한다.
둘 다 문제다.
그래서 옛날보다 낫냐 아니냐만으로 이야기하면 논점이 어긋난다.
정말로 봐야 할 것은
시간의 길이만이 아니라, 그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일이 채워져 있는가
다.
근무 시간이 줄지 않는 본질
근무 시간이 줄지 않는 본질은 업무량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그릇이 먼저 있다는 점이다.
8시간 동안 있어야 한다.
그러니 8시간어치 일이 들어온다.
주 5일 동안 있어야 한다.
그러니 주 5일어치 일이 들어온다.
효율화한다.
그러니 빈 시간에 일이 들어온다.
사람이 줄어든다.
그러니 남은 사람의 시간에 일이 들어온다.
이렇게 일은 기체처럼 퍼진다.
그래서 효율화만으로는 부족하다.
효율화와 함께 필요한 것은
여백을 돌려주는 규칙
이다.
일찍 끝나면 퇴근할 수 있다.
효율화한 만큼 평가받는다.
업무량의 상한을 정한다.
회의와 보고를 지나치게 늘리지 않는다.
사람을 줄이기 전에 부하를 살핀다.
여백을 완충 장치로 취급한다.
노동 밀도를 측정한다.
체력 차이를 전제로 한다.
이런 설계가 필요하다.
라벨 후보
- 일의 기체화
- 여백 사냥 노동
- 효율화 배당 가로채기 문제
- 8시간짜리 양동이에 일을 들이붓는 사회
- 일의 고압가스화
- '24시간 싸울 수 있습니까'형
- '8시간 고압가스'형
- 유능한 사람의 여백 흡수 시스템
- 마찰 없는 과적 노동
- IT화로 일을 밀어 넣는 능력만 올라간 문제
- 노동 밀도를 보라는 문제
- 여백은 땡땡이가 아니라 완충 장치
정리
효율화해도 근무 시간이 줄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회사가 나빠서라기보다, 노동의 기본 단위가 '성과'가 아니라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라는 그릇이 있는 한 일은 그 크기까지 퍼진다.
옛날에는 옛날 나름의 '24시간 싸울 수 있습니까'형 가혹함이 있었다.
지금은 지금대로 IT화로 마찰이 사라지면서, 같은 8시간 안에 일이 고밀도로 채워지는 가혹함이 있다.
그래서 필요한 건 효율화만이 아니다.
효율화한 만큼의 여백을 누구에게 돌려줄 것인가.
이걸 정하지 않는 한 노동자는 편해지지 않는다.
일은 기체다.
용기가 있는 한 부풀어 오른다.
그러니 정말 필요한 것은 일을 빠르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릇을 작게 만들고
여백을 지키고
노동 밀도를 낮추는 것
이다.
참고 메모
- 일본 후생노동성 「노동시간·휴일」
https://www.mhlw.go.jp/stf/seisakunitsuite/bunya/koyou_roudou/roudoukijun/roudouzikan/index.html - C. Northcote Parkinson "Parkinson's Law" / The Economist
https://www.economist.com/news/1955/11/19/parkinsons-law - 리게인 공식 사이트·CM 갤러리 / 리게인의 역사
https://www.daiichisankyo-hc.co.jp/site_regain/cm/
https://regain-suppli.jp/stc/about/default.asp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