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을 텐데"는 전력이 아니다. 현장에서 움직이려면 일을 단계로 쪼개야 한다

"이 사람이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이 팀이면 해낼 수 있겠지." "좀 주도적으로 움직여 줬으면 좋겠어." "공격적으로 가 보자." "개선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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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 수 있을 텐데 못하는 이유
  •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원인
  • 추상적인 업무 지시 구체화
  • 업무 지시 이해하기 어려울 때
  • 업무 쪼개는 방법
  • 목적 모를 때 일 시키는 상사
  • 회의 자료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
  • 표준화 매뉴얼화 중요성
  • 일이 특정 사람에게 쏠리는 문제 해결법
  • 상사가 멋대로 포기할 때
  • 윗선이 현장에 맡기지 않을 때
  • 팀 관리 업무 지시 요령

들어가며: 능력은 대단한데 정작 실전에서는 못 쓴다

"이 사람이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이 팀이면 해낼 수 있겠지." "좀 주도적으로 움직여 줬으면 좋겠어." "공격적으로 가 보자." "개선해 나가자."

직장에서 흔히 듣는 말들입니다.

말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문제가 되는 건 바로 이 지점입니다.

"할 수 있을 텐데"와 "실제로 할 수 있다"는 다르다.

능력이 있다는 것과 그 능력을 실전에서 쓸 수 있다는 건 별개입니다.
방침이 있다는 것과 그 방침대로 사람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별개입니다.
"공격적으로 가자"고 말하는 것과 공격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도 별개입니다.

게임 레이드 보스전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 캐릭터가 세다더라" 하는 소문을 들었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막상 본게임이 시작되니 강한 능력이 반짝 켜졌다가 금세 꺼져 버립니다. 계속 쓸 수가 없어요.
언제 써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발동 조건도 모릅니다.
결국 각성하기도 전에 적에게 밀려서 집니다.

더 최악인 경우도 있습니다. 현장은 아직 싸우지도 않았는데, 윗선의 결정권자가 멋대로 항복해서 게임이 끝나 버리는 겁니다.

현장 입장에서는 이런 심정입니다.

아니, 아직 싸우지도 않았는데요.
우리는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왜 마음대로 항복하는 건데요.
네, 쓰레기 게임. 저 접습니다.

게임 얘기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꽤 직장 얘기입니다.


결론: "할 수 있다"는 능력 이름이 아니라 작업 단계로 쪼갰을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이 글의 결론은 간단합니다.

"할 수 있다"는 능력의 이름이 아니라 작업 단계의 이름으로 쪼갰을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좀 더 세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할 수 있을 텐데"는 전력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까지 쪼개 놓아야 비로소 전력이 된다.

"공격적으로 간다" "개선한다" "생각한다" "주도적으로 움직인다" "자료를 만든다"

말 자체는 알아듣겠습니다.
하지만 그 상태로는 현장에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실제로 움직이려면 이런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 무엇을 달성하면 되는가
  • 누가 판단하는가
  •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는가
  • 어디까지 하면 끝인가
  • 어떤 순서로 진행하는가
  • 언제 확인받는가
  • 실패하면 어디로 돌아가는가
  • 누가 무엇을 맡는가
  • 윗선의 결정권자는 어디까지 싸울 생각이 있는가
  • 어떤 조건이 되면 철수하는가

여기까지 내려오지 않은 것은 아직 "일"이 아닙니다.
그냥 구호입니다.


"공격적으로 가자"고 해도 사람은 공격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상사나 팀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해 봅시다.

이번에는 공격적으로 갑시다.

말로만 보면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현장 사람 입장에서는 이 말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공격적으로 간다" 안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단계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1. 무엇을 이기는 것으로 볼지 정한다
  2. 상대, 과제, 제약을 파악한다
  3. 우리가 쓸 수 있는 자원을 확인한다
  4. 어디에 집중할지 정한다
  5. 누가 무엇을 맡을지 나눈다
  6. 언제까지 무엇을 내놓을지 정한다
  7. 작게 시험해 본다
  8. 결과를 보고 고친다
  9.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상태로 만든다
  10. 실패했을 때 되돌아갈 길을 정한다
  11. 윗선의 결정권자가 중간에 멋대로 항복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받는다
  12. 철수 조건을 미리 정한다

한 단어처럼 보이지만 "공격적으로 간다"는 사실 꽤 복잡한 작업입니다.

이렇게 쪼개지 않고 "공격적으로 가"라고만 하면 현장은 이렇게 됩니다.

  • 뭘 해야 공격한 게 되는지 모른다
  • 어디까지 하면 되는지 모른다
  • 제멋대로 진행하면 나중에 "그게 아닌데"라는 말을 듣는다
  • 확인하려고 하면 주도성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 열심히 하는 사람일수록 번아웃이 온다
  • 현장이 싸우기도 전에 윗선이 먼저 포기한다

이건 본인의 능력 부족이 아닙니다.
지시가 실행할 수 있는 형태로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윗선의 결정권자가 멋대로 항복하면, 현장의 노력은 게임 밖에서 짓밟힌다

여기가 꽤 중요합니다.

현장이 아무리 준비해도 윗선의 결정권자가 멋대로 항복하면 그 순간 끝입니다.

아직 싸우지 않았습니다.
아직 시도해 보지 않았습니다.
아직 개선할 여지가 있습니다.
현장은 이제부터 움직이려던 참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먼저 이렇게 말해 버립니다.

이제 무리네요.
그만둡시다.
상대에게 맞춥시다.
일단 이번에는 빠집시다.
뭐, 어쩔 수 없죠.

현장 입장에서는 정말 힘든 상황입니다.

현장이 진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장이 싸우기 전에 승부의 권한을 쥔 사람이 게임을 끝내 버렸을 뿐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현장이 배울 수가 없습니다.

  • 뭐가 통했는지 모른다
  • 뭐가 실패였는지 모른다
  • 개선점이 남지 않는다
  • 다음에 이길 재료가 남지 않는다
  • "어차피 위에서 빠질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 현장의 의욕이 사라진다

이건 정말 쓰레기 게임입니다.

게임으로 치면, 플레이어가 아직 조작도 안 했는데 NPC 여신이 멋대로 적에게 항복해서 패배 화면이 뜨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고서 "왜 못 이겼는지 반성합시다"라고 하면 현장은 난감합니다.

아니, 우리는 아직 싸우지도 않았는데요.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위에서 정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다만 승부 조건은 밝혀 둬야 한다

물론 윗선의 결정권자가 철수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닙니다.

예산, 리스크, 납기, 법령, 고객과의 관계, 조직 방침처럼 현장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철수가 옳은 상황도 있습니다.

문제는 철수 조건이 미리 공유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리 이렇게 정해져 있다면 납득이 갑니다.

  • 예산을 넘으면 철수한다
  • 기한까지 A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B안으로 바꾼다
  • 고객이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번에는 보류한다
  • 법무 리스크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중단한다
  • 현장 검증을 한 번 해 보고 안 되면 다음 안으로 넘어간다

이렇다면 현장도 수긍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공유되지 않은 채 갑자기 위에서 항복하면 현장은 이렇게 느낍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말해 주지.
그런 조건이 있었으면 움직이는 방식이 달라졌을 텐데.
거기가 승부선이면 먼저 공유해 줬어야지.
지금까지 준비한 건 다 뭐였나.

철수 판단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철수 조건이 보이지 않는 철수는 현장에게는 뒤늦게 터지는 패배 이벤트입니다.


"주도적으로 움직여"도 마찬가지다

"주도적으로 움직여 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위험합니다.

물론 주도성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주도적으로 움직여"라는 말만으로는 사람이 움직이지 못합니다.

주도적으로 움직이려면 최소한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

  • 목적
  • 권한
  • 판단 기준
  • 우선순위
  • 실패했을 때의 처리 방식
  • 보고와 상담의 타이밍
  • 해도 되는 범위
  • 하면 안 되는 범위
  • 윗선의 결정권자가 어디까지 뒷받침해 주는가
  • 어떤 조건에서 방향을 바꾸는가

이게 없는 채로 "주도적으로"라고 하는 건 꽤 위험합니다.

현장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테니까요.

"멋대로 했다가 혼나는 거 아냐?" "어디까지 판단해도 되지?" "이 판단은 누가 책임져?" "나중에 아니라고 하는 거 아냐?" "너무 나서면 나댄다고 하지 않을까?" "안 하면 주도성이 없다고 할까?" "결국 위에서 먼저 포기할 거면 열심히 할 의미가 있나?"

이런 상태에서 사람이 멈추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그걸 "주도성이 없다"고 치부하는 건 꽤 성의 없는 판단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주도성이 없는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설계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일 잘하는 사람일수록 목적 불명의 업무를 알아서 메워 버린다

골치 아픈 건 일 잘하는 사람일수록 이 구멍을 메워 버린다는 점입니다.

목적이 애매해도 대충 맥락을 읽습니다.
완성형이 애매해도 과거 경험으로 짐작합니다.
판단 기준이 없어도 가설을 세워서 진행합니다.
부족한 정보를 자기 머리로 채웁니다.

그 결과 주변에서는 이렇게 보입니다.

저 사람한테는 애매하게 부탁해도 어떻게든 해 주겠지.

이게 계속되면 구조가 나빠집니다.

  • 부탁하는 쪽이 목적을 구체화하지 않게 된다
  • 판단 기준을 내놓지 않게 된다
  • 완성형을 말로 정리하지 않게 된다
  • 일 잘하는 사람이 매번 알아서 메운다
  • 메운 결과가 어긋나면 일 잘하는 사람이 수정을 떠안는다
  • 윗선의 결정권자는 승부 조건을 내놓지 않은 채 마지막에만 판단한다

이것이 바로 구멍 뚫린 동물원입니다.

시스템에 구멍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구멍을 볼 줄 아는 사람, 일 잘하는 사람, 선의의 사람이 메워 버립니다.
그러면 구멍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결국 일 잘하는 사람일수록 지칩니다.


"회의부터 잡자"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건 미팅이나 회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미팅합시다." "회의 잡읍시다." "자료 만들어 주세요."

이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회의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회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원래는 이런 순서여야 합니다.

  1. 무엇을 정하고 싶은가
  2. 누가 판단하는가
  3. 판단에 필요한 정보는 무엇인가
  4. 그것은 회의에서만 정할 수 있는 일인가
  5. 사전에 무엇을 공유해야 하는가
  6. 회의가 끝났을 때 무엇이 정해져 있으면 성공인가
  7. 정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
  8. 윗선의 결정권자가 멋대로 방침을 바꾸는 조건은 무엇인가

이게 없는 채로 일정만 잡으면 이렇게 됩니다.

  • 시간이 됐으니 사람들이 모인다
  • 그런데 자료가 안 되어 있다
  • 애초에 무슨 자료인지도 모른다
  • 참석자도 무엇을 판단해야 하는지 모른다
  • 결국 "다시 확인해 봅시다"로 끝난다
  • 아니면 윗선의 결정권자가 그 자리의 분위기에 휩쓸려 항복한다

이건 진척이 아닙니다.

회의가 진척인 척하고 있을 뿐입니다.


"○○을 한다" 안에는 또 여섯 단계쯤 숨어 있다

일의 무서운 점은 얼핏 단순해 보이는 말 안에 수많은 단계가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료를 만든다."

이것만 해도 실제로는 이런 단계가 있습니다.

  1. 누구에게 보여 줄 자료인지 확인한다
  2. 무엇을 판단하게 할 자료인지 확인한다
  3. 목적을 한 문장으로 쓴다
  4. 필요한 정보를 모은다
  5. 필요 없는 정보를 덜어 낸다
  6. 구성을 정한다
  7. 한 페이지에 한 메시지만 담는다
  8. 도표나 글머리 기호로 정리한다
  9. 판단하는 사람의 눈으로 다시 살펴본다
  10. 사전 확인을 받는다

"자료 만들어 줘"라고 하는 쪽은 지시를 하나 내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받는 쪽에서는 최소한 이만큼의 작업이 있습니다.

그리고 목적이 애매한 채로 자료를 만들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긋납니다.

자료 작성이 느린 게 아닙니다.
자료 작성 능력이 낮은 것도 아닙니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가 정의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규칙을 만들었다"만으로도 부족하다

여기서 더 중요한 건 규칙이나 절차를 만들어 놓기만 해서는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이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현장이 움직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단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1. 규칙의 목적을 이해한다
  2. 어떤 상황에서 쓰는지 안다
  3. 예외 상황에서의 처리를 안다
  4.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다
  5. 판단이 헷갈릴 때 어디에 물어볼지 안다
  6. 몇 번 써 보면서 몸에 익힌다
  7. 개선점을 피드백한다

즉,

규칙이 있다 = 할 수 있다

가 아닙니다.

올바른 공식은 이렇습니다.

규칙이 있고, 목적을 알고, 쓸 상황을 알고, 연습이 되어 있고, 물어볼 경로가 있고, 현장에서 돌아간다
= 할 수 있다

이 차이를 무시하면 "매뉴얼이 있는데 왜 못 하는 거야"가 됩니다.

하지만 현장 입장에서는 이런 상태일 수 있습니다.

매뉴얼은 있는데,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강캐"도 발동 조건이 없으면 진다

여기서 다시 게임 비유로 돌아가겠습니다.

강한 능력을 가진 캐릭터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정보가 없습니다.

  • 언제 쓰는가
  • 어떤 적에게 쓰는가
  • 무엇을 계기로 발동하는가
  • 얼마나 지속되는가
  • 실패하면 어떻게 하는가
  • 다른 멤버는 무엇을 하는가
  • 본게임 전에 연습해 봤는가
  • 윗선의 결정권자가 어디까지 싸울 생각인가

이 상태에서는 강캐도 집니다.

잠깐 능력이 반짝 켜져도 계속 운용할 수 없으면 전력이 아닙니다.
설정상 강해도 실전에서 쓰지 못하면 이기지 못합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 우수한 사람이 있다
  •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있다
  • 경험자가 있다
  •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 있다
  •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

그래도 목적, 작업 단계, 권한, 확인 경로가 없으면 집니다.

"사람이 강하니까 괜찮다"가 아닙니다.

강한 사람을 전력으로 쓸 수 있는 설계가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지시를 내리는 쪽이 해야 할 일

지시를 내리는 쪽은 "해 줘"가 아니라 최소한 여기까지는 내놓아야 합니다.

1. 목적을 밝힌다

이건 무엇을 위해 하는 일인가.
무엇을 해결하고 싶은가.

예:

이번 자료는 다음 주 회의에서 A안과 B안 중 어느 쪽을 채택할지 판단하는 데 쓸 겁니다.

2. 완성 기준을 밝힌다

무엇이 되어 있으면 끝인가.

예:

A안과 B안의 장점, 단점, 비용, 리스크를 한 장에서 비교할 수 있으면 OK입니다.

3. 판단하는 사람을 밝힌다

누가 보는가.
누가 결정하는가.

예:

최종 판단은 부장님이 하십니다. 먼저 팀 안에서 확인한 뒤 부장님께 올릴 거예요.

4. 작업 단계를 밝힌다

어떤 순서로 진행하는가.

예:

먼저 오늘 안에 비교 항목만 뽑아 주세요. 내일 오전에 한 번 보고, 오후에 자료로 만들죠.

5. 확인 타이밍을 밝힌다

끝까지 만든 다음에 아니라고 하는 건 위험합니다.

예:

갑자기 완성본으로 가지 말고, 먼저 구성만 보여 주세요.

6. 하지 않을 범위를 밝힌다

범위가 없으면 작업이 끝없이 늘어납니다.

예:

이번에는 비용 비교까지만 하고, 자세한 계약 조건 확인은 다음으로 넘깁니다.

7. 철수 조건을 밝힌다

윗선의 결정권자가 도중에 판단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면 미리 공유해야 합니다.

예:

고객이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번에는 보류합니다.
다만 그 전에 A안만큼은 한 번 제시해 보겠습니다.

이것만 있어도 현장은 훨씬 움직이기 쉬워집니다.


지시를 받는 쪽이 스스로를 지키는 질문

지시를 받는 쪽도 목적이 불분명한 채로 돌진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특히 목적이나 완성형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작업 시작이 아니라 질문 시작입니다.

쓸 만한 질문은 이런 것들입니다.

이 작업은 무엇을 결정하기 위한 건가요?

누가 보고 무엇을 판단하는 걸 상정하고 계신가요?

완성형은 자료, 목록표, 비교표, 메모 중 어느 쪽에 가깝나요?

어디까지 만들면 일단 OK인가요?

먼저 구성만 확인받고 진행해도 될까요?

이번에 하지 않을 범위가 있나요?

기한까지 전부 하기 어려우면 우선순위는 어떻게 되나요?

어떤 조건이 되면 철수나 방침 변경이 되나요?

이 질문은 상대를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나와 상대의 인식을 맞추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선의로 일하는 사람을 밤 9시까지 불태우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작업을 멈추는 것"은 농땡이가 아니다

목적을 모를 때 작업을 멈추는 건 농땡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올바른 리스크 관리입니다.

목적을 모르는 채로 진행하면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 작업 시간이 낭비된다
  • 관계자의 기대와 어긋난다
  • 수정이 늘어난다
  • 작업자가 지친다
  • 나중에 책임을 추궁당한다
  • 원래 목적에서 멀어진다
  • 윗선의 결정권자가 뒤늦게 철수해서 전부 없던 일이 된다

그러니 목적을 모를 때는 이렇게 생각해도 됩니다.

지금 진행하는 것보다 먼저 물어보는 게 빠르다.

이건 소극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일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판단입니다.


"안다"와 "할 수 있다"와 "재현할 수 있다"는 다르다

일에서는 이 세 가지를 나눠서 생각해야 합니다.

안다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예:

자료의 목적은 알겠습니다.
개선이 필요하다는 건 알겠습니다.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건 알겠습니다.

할 수 있다

내가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입니다.

예:

무엇을 조사하면 되는지 안다.
어떤 순서로 진행하면 되는지 안다.
어디서 확인하면 되는지 안다.

재현할 수 있다

다른 사람도 똑같이 움직일 수 있는 상태입니다.

예:

매뉴얼이 있다.
판단 기준이 있다.
템플릿이 있다.
예외 상황에서 확인할 곳이 있다.
처음 하는 사람도 헤매기 어렵다.

많은 직장에서 "안다"를 "할 수 있다"로 착각합니다.
게다가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를 "조직으로서 재현할 수 있다"로 착각합니다.

여기가 특정 사람에게 일이 쏠리는 문제의 입구입니다.


구멍 뚫린 동물원에서는 "강한 개인"이 구멍을 메워 버린다

구멍 뚫린 동물원에서는 시스템의 구멍을 개인이 메웁니다.

  • 목적이 없다
  • 작업 단계가 없다
  • 권한이 없다
  • 판단 기준이 없다
  • 확인 경로가 없다
  • 완성 기준이 없다
  • 철수 조건이 없다

그런데 일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럭저럭 돌아갑니다.

그러면 조직은 착각합니다.

잘 돌아가고 있네.

하지만 실제로는 돌아가는 게 아닙니다.
개인이 구멍을 막고 있을 뿐입니다.

그 개인이 쉽니다.
이동합니다.
퇴사합니다.
바빠집니다.
마음이 꺾입니다.

그 순간 시스템의 구멍이 드러납니다.

그러니 강한 개인에게 기대지 말고 작업 단계로 풀어내야 합니다.


바로 쓸 수 있는 "추상적 지시 분해 템플릿"

추상적인 지시를 받으면 다음 형태로 바꿔 두면 안전합니다.

[목적]
이 작업은 무엇을 위해 하는가?

[판단하는 사람]
누가 보고, 누가 결정하는가?

[완성 기준]
무엇이 되어 있으면 일단 OK인가?

[결과물]
자료, 표, 메모, 구두 보고, 체크리스트 중 무엇인가?

[작업 단계]
어떤 순서로 진행하는가?

[확인 타이밍]
언제, 누구에게, 무엇을 확인받는가?

[하지 않을 범위]
이번에는 어디까지 하지 않는가?

[철수 조건]
어떤 조건이 되면 멈추거나 방침을 바꾸는가?

[리스크]
어긋날 것 같은 점, 아직 정해지지 않은 점은 무엇인가?

[다음 액션]
먼저 무엇을 하는가?

이 템플릿만 써도 "대충 알아서 해 줘"가 상당히 줄어듭니다.


정리: 목적 다음은 작업 단계, 작업 단계 다음은 승부 조건이다

목적을 정하는 건 중요합니다.

하지만 목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목적이 정해졌다면 다음은 작업 단계입니다.

  • 무엇을 하는가
  • 어떤 순서로 하는가
  • 누가 하는가
  • 어디서 확인하는가
  • 무엇을 기준으로 끝났다고 하는가
  • 어디까지 하지 않는가

여기까지 내려와야 비로소 사람은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필요한 것이 승부 조건입니다.

  • 어디까지 싸우는가
  • 어디서부터 철수하는가
  • 누가 철수를 판단하는가
  • 철수하기 전에 무엇을 시도해 보는가
  • 윗선의 결정권자는 무엇을 뒷받침하는가

이게 없으면 현장이 싸우기도 전에 윗선의 결정권자가 멋대로 항복하고 끝납니다.

현장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쓰레기 게임입니다.

"할 수 있을 텐데" "강할 텐데"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텐데" "공격할 수 있을 텐데"

이 "텐데"에 기대면 현장은 불탑니다.

일을 진행하려면 재능이나 의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필요한 건 능력을 현실에서 쓸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설계입니다.

"할 수 있을 텐데"는 전력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까지 작업 단계로 풀리고, 윗선의 결정권자가 승부 조건을 공유해야 비로소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전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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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과 일상의 불편함을 구조화해 이해하기 쉬운 다음 행동으로 연결하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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