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는 이상하게 "설교하고 싶을 뿐", "지적하고 싶을 뿐"인 사람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지적부터 한다. 시스템을 만들기보다 마음가짐 얘기를 늘어놓는다. 자기 결재 서류는 쥐고 있으면서 남에게는 책임감을 요구한다. 중요한 안건보다 별 의미 없는 회의나 외부 응대에 시간을 쓴다. 야근이 적은 사람이나 연차를 쓰는 사람은 왜인지 몰아붙인다.
이런 사람을 보면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든다.
일을 해라. 직장을 네 자존감 회복 시설로 만들지 마라.
이건 단순한 험담이 아니다. 구조로 보면 꽤 중요한 문제다.
본인은 "지도하고 있다", "관리하고 있다", "부하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인정받지 못한 마음과 지배욕, 사생활의 불완전연소를 직장의 상하 관계로 달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일이라면 원래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업무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한다
- 원인을 개인이 아니라 구조에서 찾는다
- 정보 공유가 끊긴 곳을 찾는다
- 누가, 언제, 어디까지 대응할지 정한다
- 미처리·보류 건을 눈에 보이게 만든다
- 서류를 돌린다
- 판단할 사람에게 판단을 넘긴다
- 재발 방지 장치를 만든다
예를 들어 계약 전환이나 인수인계에서 사고가 났다면, 필요한 건 "더 조심해라"가 아니다.
대상자별로
- 현재 계약 구분
- 현재 계약 기간
- 다음 계약 구분
- 다음 계약 기간
- 본인 의사
- 승인 상황
- 관련 부서에 공유했는지 여부
- 보류 사항
- 다음 할 일
- 담당자
- 기한
을 눈에 보이게 정리하는 것이다.
정보가 오지 않으면 담당자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개인의 주의력이 아니라, 상태가 보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게 일이다.
그런데 설교하고 싶은 사람은 "시스템화"를 싫어한다
정말 재발을 막고 싶다면 목록 만들기, 기한 관리, 책임 범위 명확화를 하면 된다.
그런데 설교하고 싶을 뿐인 사람은 이런 구체적인 방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시스템으로 만들면 "누가 막고 있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관리 대장을 만든다. 기한을 적는다. 담당자를 적는다. 승인 상황을 적는다. 보류 건을 적는다. 다음 할 일을 적는다.
그러면 갑자기 보이기 시작한다.
"어, 이 서류를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지?" "어, 이 승인을 안 돌린 사람이 누구지?" "어, 이 회의에서 뭐가 결정된 거지?" "어, 2시간 동안 뭐가 진행된 거지?"
다시 말해 설교 무대가 끝나고, 본인의 관리 책임이 시작된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조심해라", "의식해라", "책임감을 가져라"는 좋아하면서도 "그럼 대장으로 관리합시다", "갱신 담당을 정합시다", "기한을 분명히 합시다", "누구 공인지 눈에 보이게 합시다" 라는 말이 나오면 갑자기 움직임이 둔해진다.
이건 개선이 아니다. 개선 놀이다.
설교가 본인에게는 보상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왜 설교와 지적에 빠질까.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정말로 부하의 성장을 바라며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꼭 필요한 주의나 피드백도 있다.
다만 문제는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설교"다.
이런 유형의 사람에게 설교는 업무가 아니라 보상이 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 내가 위에 설 수 있다
- 내가 아는 쪽이 될 수 있다
- 상대를 깎아내리면 내가 올라간 기분이 든다
- 내 미처리 업무를 안 봐도 된다
- 일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 관리자처럼 행세할 수 있다
- 내 인생의 불완전연소를 잠깐 잊을 수 있다
즉 설교는 본인에게 값싼 자존감 회복 수단이 되어 있다.
이건 꽤 골치 아프다.
본인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지적하면서 기분 좋아지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태가 되면 부하나 팀원은 일하는 동료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정욕구 회복 장치가 되어 버린다.
서열 싸움, 마운팅, 인생 만회
이 구조를 대충 이름 붙여 보면 몇 가지 요소가 있다.
1. 원숭이 요소: 서열 확인
"누가 위인지"를 확인하려고 지적한다.
일의 성과보다 상하 관계 확인이 우선이다. 논리로 이기는 것보다 "내가 위, 너는 아래"라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목적이 된다.
이건 일이 아니라 서열 확인이다.
2. 마운팅 요소: 고생의 도덕화
"나는 야근하고 있다" "나는 연차도 못 쓴다" "나는 힘들었다" "내가 젊을 때는 훨씬 혹독했다"
이런 고생을 왜인지 도덕적 우위로 바꿔 버린다.
하지만 야근이 많다고 대단한 게 아니다. 연차를 못 쓰는 것도 미담이 아니다. 그건 자기 관리, 일정 관리, 우선순위 설계, 조직 설계의 문제일 수도 있다.
고생한 사람이 대단한 게 아니다. 일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 사람이 대단한 것이다.
3. 인생 만회 요소: 직장에서 자기 평가를 회복한다
사생활이 채워지지 않는다. 자기 인생에 불완전연소가 있다. 자신의 실적이나 능력에 자신이 없다. 그래도 직장에는 직급이 있다. 부하에게는 세게 나갈 수 있다.
그러면 직장이 "인생 만회 무대"가 된다.
원래는 일을 진행하는 곳인데, 본인의 자존감 회복 이벤트가 시작된다.
이건 정말 필요 없다.
직장은 누군가의 사생활 결핍을 메워 주는 곳이 아니다. 부하는 상사의 인정 부족을 채우려고 존재하는 게 아니다.
약해 보이는 상대에게만 세게 나가는 사람
더 괴로운 건 상대를 골라서 세게 나가는 유형이다.
자기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는다. 논리로 받아치는 사람에게는 파고들지 않는다. 대등하게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은 피한다. 반박하기 어려운 사람, 거절하기 어려운 사람, 입장이 약한 사람에게만 세게 나간다.
이 경우 문제는 상대의 속성이 아니다. 나이, 성별, 체격, 학력이 문제인 게 아니다.
문제는 반박당하기 어려운 상대를 이용해 자기 우위를 확인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정말로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은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 자기보다 젊고 우수한 사람, 자기와 다른 전문성을 가진 사람도 잘 활용한다.
반대로 미숙한 관리자일수록 자기를 위협하지 않는 사람만 주변에 두고 싶어 한다.
그건 매니지먼트가 아니다. 자기가 기분 좋게 위에 서기 위한 무대 만들기다.
제일 질이 나쁜 건, 남을 깎아내려서 자신을 지키는 것
이런 유형의 가장 질 나쁜 점은 혼자 자기만족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속으로만 "나는 열심히 하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주변에 끼치는 해는 아직 작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남을 짓밟는다. 남을 깎아내린다. 다른 사람의 야근 시간이나 연차 사용을 꼬투리로 삼는다. 부하의 실수와 불안을 이용해 자기를 위에 올려놓는다. 반박하기 어려운 상대에게만 세게 나간다.
이쯤 되면 이건 개인의 인정욕구가 아니라 주변에 실질적인 피해를 주는 행동이다.
"나를 지키려고 남을 깎아내린다." 이 구조는 정말 괴롭다.
원래 자신의 불안, 불만, 채워지지 않는 마음, 인생의 불완전연소는 자기 생활 안에서 풀어야 한다. 취미든, 휴식이든, 친구든, 전문가 상담이든 좋다. 일터 밖에서 풀면 된다.
그런데 그걸 직장에 들고 와서 부하나 팀원으로 자존감을 회복하려 하면 직장 전체가 오염된다.
주변은 위축된다. 정보가 올라오지 않는다. 실수는 숨겨진다. 개선안은 나오지 않는다. 유능한 사람일수록 거리를 둔다. 남는 건 설교를 견디는 사람과, 지적받지 않으려고 입을 다무는 사람뿐이다.
이건 일이 아니다. 남을 깎아내려 자신을 지키는, 직장판 자기 위로다.
세게 말하자면, 그런 건 혼자서 처리해 주었으면 한다. 직장에 들고 오지 마라.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라. 부하를 이용하지 마라. 일처럼 보이는 자기만족으로 남의 시간과 신경을 갉아먹지 마라.
직장은 룸살롱도 상담실도 아니다
세게 말하면 이렇다.
직장은 네 인정욕구 회복용 접대 술집이 아니다. 직장은 네 감정 처리용 상담실도 아니다.
근무 시간에 인정욕구를 채우려 하지 마라. 부하로 자존감을 회복하지 마라. 설교로 기분 좋아지지 마라. 사생활의 불완전연소를 직장의 상하 관계로 끌고 오지 마라.
필요하면 일터 밖에서 처리해 주었으면 한다. 상담한다. 쉰다. 취미를 갖는다. 친구와 이야기한다. 전문가와 상담한다. 자기 생활을 정돈한다.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부하나 팀원을 이용해 자기의 인정 부족을 채우는 건 아니다.
회사는 일하는 곳이지, 누군가의 인생 만회 쇼 무대가 아니다.
"지도"와 "설교 놀이"는 다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지도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필요한 지도는 있다. 실수에 대한 주의도 필요하다. 기준을 알려 주는 것도 필요하다. 미숙한 사람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도와 설교 놀이는 다르다.
지도
- 목적이 분명하다
- 행동이 바뀐다
- 다음에 뭘 하면 되는지 알 수 있다
- 기한·기준·역할이 제시된다
- 상대의 성장이나 업무 개선으로 이어진다
- 시스템 개선도 함께 생각한다
설교 놀이
- 목적이 모호하다
- 상대를 깎아내리기만 한다
- "의식", "책임감" 같은 추상어가 많다
- 다음에 할 일이 없다
- 자기 미처리 업무는 보지 않는다
- 지적하는 쪽만 기분이 좋다
이 차이는 크다.
지도는 일을 진행시킨다. 설교 놀이는 시간을 태워 버린다.
심리적 안전감이 무너지면 정보 공유는 더 죽는다
설교, 위압, 마운팅이 늘어나면 직장에서 정보가 올라오지 않는다.
말한 사람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하면 혼난다.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면 몰아붙인다. "정보가 안 왔습니다"라고 하면 변명 취급을 받는다. "시스템 문제입니다"라고 하면 책임 회피로 몰린다.
이러면 사람은 입을 다문다.
결과적으로 문제는 더 안 보이게 된다. 정보 공유 부족을 설교로 해결하려다가 정보 공유 부족을 더 악화시킨다.
이건 완전히 역효과다.
정말 필요한 건 말하기 편한 분위기와 눈에 보이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 미처리 건을 목록으로 볼 수 있다
- 책임 범위를 정한다
- 기한을 정한다
- 갱신 담당을 정한다
- 개인의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것이 관리다.
대응책: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설교로 자기 회복을 하는 사람"에게 정론을 들이밀면 위험하다.
상대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설교할 무대를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그 무대에 올라가게 된다.
대응은 단순해도 된다.
1. 증거를 남긴다
"언제, 무엇을, 누구에게 제출했는지"를 남긴다.
예:
○월 ○일, 재발 방지안을 작성해 책상 위에 제출함. 내용은 대상자별 계약 상태·본인 의사·승인 상황·보류 사항의 가시화, 갱신 담당·확인 시점·책임 범위의 명확화. 이후 판단과 결재 회람은 소속 부서장이 대응.
2. 역할 범위를 분명히 한다
양식이나 항목안은 제가 낼 수 있습니다. 다만 관리 책임자, 갱신 담당, 확인 시점을 정하지 않으면 또 개인에게 의존하게 될 것 같습니다.
3. 개인의 마음가짐 논의에 말려들지 않는다
개인의 주의만이 아니라, 관계자들이 상태를 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4. 쫓아가지 않는다
자료를 냈다. 안을 냈다. 역할 범위도 전했다.
그다음의 회람, 판단, 우선순위는 관리하는 쪽의 일이다.
내가 끝없이 주워 담으러 다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구멍을 메우는" 구조로 되돌아간다.
정리
설교하고 지적하고 싶을 뿐인 사람은 일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자기를 회복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마운팅. 서열 확인. 인생의 불완전연소 보상. 인정욕구 해소. 책임 회피.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의 연출.
그 모든 것이 직장에서 "지도"라는 얼굴로 나타날 때가 있다.
하지만 직장은 그 사람의 자존감 회복 시설이 아니다. 부하는 그 사람의 인정 부족을 채우려고 존재하는 게 아니다. 회사는 접대 술집도 상담실도 아니다.
정말 필요한 건 설교가 아니다.
- 우선순위
- 기한 관리
- 정보 공유
- 역할 범위
- 가시화
- 갱신 책임
- 인건비 의식
- 시스템으로 하는 재발 방지
이것이 일이다.
설교로 기분 좋아질 시간이 있으면 서류부터 돌려라. 쓸데없는 회의를 줄여라. 누구 공인지 눈에 보이게 해라. 연차 쓰는 사람을 몰아붙이지 마라. 야근 시간을 훈장으로 삼지 마라. 부하를 이용해 인생을 만회하려 하지 마라.
일을 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