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차례로 예민해진다면, 사람 말고 구조를 보자

읽기 기능 사용법

듣기는 본문을 읽어 줍니다. 속독은 구절을 차례로 표시하며 속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언어 연습은 다른 언어판과 번역을 비교합니다. 저장한 북마크는 이 브라우저의 플레이어 목록에서 다시 열 수 있습니다.

이 글 공유하기

이 글 공유하기

광고
광고

직장에서 유독 한 사람만 계속 기분이 안 좋아 보일 때가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저 사람이 말을 좀 꼬아서 듣는 건가?" "저 사람이랑만 유독 안 맞나?" "저 사람 능력이나 태도가 문제인가?"

그런데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조금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전임자도 똑같이 닳아 있었다. 대신 들어온 사람도 금방 지쳤다. 나한테 압박이 쏠리던 시기도 있었다. 내가 거리를 두자 이번에는 다른 사람에게 부담이 넘어갔다. 그리고 그 사람도 점점 예민해지고 있다.

이쯤 되면 더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정의되지 않은 일이, 받아주는 사람에게 계속 흘러가는 구조다.


두루뭉술한 일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만 정의되어 있다

직장에는 두루뭉술한 요청이 있다.

"현황이랑 과제 좀 정리해 줘." "적당히 잘 정리해 봐." "이거 좀 봐 둬." "어떻게든 해 봐." "전체적인 그림 좀 잡아 줘." "비율이 올라갔다는 게 아니라……"

말하는 쪽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대충 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받는 쪽은 알 수 없다.

누구한테 보여 줄 이야기인지. 무엇을 판단하려는 건지. 어디까지 하면 되는지. 목표가 뭔지. 최종 결정은 누가 하는지. 하면 안 되는 게 뭔지. 어느 정도로 자세히 정리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이 전부 정해지지 않은 채로 일이 날아온다.

그러면 받는 사람은 혼자 요구사항을 정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요청한 사람이 하지 않은 '정의 작업'을 받는 사람이 대신 하고 있는 셈이다.

딱 1건이라면 괜찮다. 하지만 매번 이런 일이 이어지면 사람은 타버린다.


'엄마 지수'가 높은 사람에게 부담이 몰린다

두루뭉술한 요청이 모두에게 똑같이 날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상하게도 잘 받아줄 것 같은 사람에게 쏠린다.

상대의 의도를 읽어 주는 사람. 애매한 이야기를 실제 작업으로 바꿔 줄 수 있는 사람. 분위기를 험하게 만들지 않는 사람. 빈틈을 잘 메워 주는 사람. 남을 챙기게 되는 사람. 감정까지 받아 주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 일이 계속 흘러간다.

좋게 말하면 '잘 챙겨 주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정의되지 않은 업무의 받이다.

요청하는 쪽이 무의식중에

"이 사람이라면 눈치채 주겠지." "이 사람이라면 화내지 않고 받아 주겠지." "이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해 주겠지." "이 사람이라면 작업으로 풀어 주겠지."

하고 학습해 버리면 그 사람에게 부담이 집중된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한계에 가까워진다.

처음에는 다정하게 대응하던 사람도 점점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다.

"그건 누가 한 말인가요?" "어떻게 되길 바라시나요?" "누구한테 보여 줄 이야기인가요?" "'어떻게'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요?" "어디까지 하면 될까요?"

이것은 반항이 아니다.

정의되지 않은 것을 정의되지 않은 채로 받지 않게 된 것뿐이다.


요구사항을 물어보면 요청한 사람이 불쾌해하기도 한다

원래 요구사항을 확인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목적이 뭔지. 어디까지 할 건지. 무엇을 우선할 건지. 무엇이 안 되는지. 누가 판단하는지.

이걸 확인하지 않으면 일은 나중에 뒤집힌다.

하지만 두루뭉술하게 던진 사람이 자기 요청이 정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면, 요구사항 확인이 '추궁'처럼 보일 수 있다.

"왜 못 알아듣는 거야?" "왜 그렇게 하나하나 물어?" "보통은 알잖아." "그게 아니라." "그런 뜻이 아니라."

그렇게 짜증과 압박이 나온다.

즉 받는 사람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받는 사람이 요구사항을 정의하기 시작하는 바람에 요청한 사람의 미정의가 드러났을 뿐이다.

두루뭉술한 요청은 받는 사람이 알아서 메워 주는 능력 덕분에 성립한다. 그 메우기를 그만두면 요청한 쪽의 미정의가 그대로 보인다.

그 순간 짜증을 낸다면 구조적으로 꽤 위험하다.


한 사람이 거리를 두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간다

이 구조의 무서운 점은 받이가 바뀌기만 할 뿐 계속된다는 것이다.

전임자에게 부담이 집중된다. 그 사람이 그만둔다. 대신 들어온 사람에게 부담이 집중된다. 그 사람도 지친다. 다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 그 사람이 요구사항을 물어서 되돌려 주기 시작한다. 또 압박이 나온다.

이 흐름을 보면 꽤 이해하기 쉽다.

문제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다.

그 시점에 '받아 줄 사람'에게 두루뭉술한 미정의 업무가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거리를 두면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간다. 다른 사람이 타기 시작한다. 주변은 점점 예민해진다.

이것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업무가 흐르는 길의 문제다.


'네가 받아들이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나만 닳고 있던 시기에는 아무래도 헷갈린다.

내가 너무 신경 쓰는 건가. 내 태도가 나쁜 건가. 내 능력이 부족한 건가. 나만 유독 안 맞는 건가.

하지만 같은 패턴이 다른 사람에게도 나타나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전임자도 그랬다. 대행으로 들어온 사람도 그랬다. 나도 그랬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여기까지 오면 재현성이 꽤 높다.

그렇다면 이것은 '네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에게 미정의를 떠넘기는 구조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걸 알아차리면 스스로를 지키기가 쉬워진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다. 그냥 받이로 쓰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거리를 두었다. 거리를 두었더니 다른 받이로 흘러갔다.

이렇게 보이면 내 책임이라며 혼자 끌어안을 필요가 없어진다.


선의도 업무가 되면 타버린다

이런 직장에서는 선의도 위험하다.

예를 들어 신입이 잘해 낸 작업이 있다고 하자.

"스캔이 깔끔했어요." "똑바르고 보기 편했어요." "그림자도 없고 좋았어요." "본인한테 전해 주고 싶어요." "괜찮으면 선택적으로 공유해 주시면 도움이 될지도요."

원래라면 좋은 이야기다.

잘한 점을 칭찬한다. 본인의 성공 경험으로 만든다. 주변의 참고 자료로 삼는다.

하지만 관리자나 상사를 거치면 선의가 변질되기도 한다.

'선택적 공유'가 사실상 업무 지시가 된다. '잘한 점'이 체크 항목이 된다. '칭찬'이 비교 재료가 된다. '참고'가 표준화가 된다. '공유해 주시면 도움이 될지도요'가 말 꺼낸 사람의 책임이 된다.

이렇게 되면 신입의 일이 늘어난다. 칭찬했을 뿐인데 본인에게 부담이 날아간다. 선의가 업무와 책임으로 세탁된다.

그래서 분위기가 안 좋은 직장에서는 선의가 지나갈 길을 골라야 한다.

본인에 대한 칭찬은 본인에게 직접 전한다. 관리자에게는 완료 보고만 한다. 표준화나 공유는 공수, 역할, 책임이 정식으로 정해진 뒤에 한다.

선의를 지키기 위해 선의를 조직에 넘기지 않는 판단도 필요하다.


'선택'은 상사를 거치면 선택이 아니다

'선택적으로'라고 쓰면 안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사나 선배를 거친 순간, 받는 사람에게는 선택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상사가 말했으니까." "선배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하는 게 좋을 것 같은 분위기야." "거절하면 인상이 나빠질 것 같아." "사실상 지시 아닌가?"

특히 신입이나 젊은 직원에게 윗사람을 거친 '선택'은 꽤 무겁다.

문구가 선택적이냐보다 누구에게서 왔느냐가 더 세다.

그러니 선의라 해도 주의가 필요하다.

"공유해 주시면 도움이 될지도요." "선택적으로 해 주시면 좋겠어요." "괜찮으면 정리해 주세요."

이런 말은 경우에 따라 일을 늘린다.

상대를 위한 칭찬이 상대의 부담이 된다. 그건 피하는 편이 좋다.


교육은 범위를 정한 뒤에 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신입한테 좀 가르쳐 놔." "적당히 잘 봐 줘." "알 수 있게 해 놔." "쓸 만하게 만들어 놔."

이런 요청은 위험하다.

어디까지 할 수 있으면 되는지. 누가 합격 여부를 판단하는지. 어디까지 가르칠지. 어디서부터는 본인이 하게 할지. 무엇을 시키면 안 되는지. 언제까지 할 수 있으면 되는지.

이것들이 정해지지 않은 채 교육을 맡으면 교육 담당이 탄다.

게다가 나중에

"거기까지 시킬 필요는 없었어." "더 가르쳐 줬으면 했는데." "왜 아직 못 하는 거야?" "그냥 떠넘긴 거 아냐?"

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래서 교육을 부탁받으면 가장 먼저 되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어느 수준까지 할 수 있는 상태를 목표로 할까요?" "어느 범위까지 가르치면 될까요?" "판단이 애매한 부분은 누구에게 확인하나요?" "본인에게 맡길 범위와 제가 볼 범위를 정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떠넘기기가 아니다.

교육의 요구사항 정의다.


분위기 좋은 직장과 분위기 나쁜 직장의 차이

같은 선의라도 직장에 따라 흘러가는 방식이 다르다.

분위기 좋은 직장이라면 이렇게 된다.

"신입분 스캔 깔끔했어요." "좋네요. 본인에게도 전해 둘게요." "여유 있을 때 앞으로 참고할게요."

이걸로 끝난다.

칭찬은 칭찬으로 전해진다. 발견은 발견으로 다뤄진다. 공유는 선택으로 남는다. 일을 늘린다면 공수와 역할을 제대로 정한다.

하지만 분위기 나쁜 직장에서는 이렇게 된다.

"그럼 표준화하자." "그럼 공유해 줘." "그럼 체크 항목으로 만들자." "그럼 누가 관리해?" "그럼 말 꺼낸 사람이 봐." "그럼 신입한테도 정리해 달라고 하자."

선의가 관리 기준이나 추가 업무로 바뀐다.

이게 계속되면 사람들은 선의를 내놓지 않게 된다. 칭찬하지 않게 된다. 제안하지 않게 된다. 개선하지 않게 된다.

직장을 좋게 만들려 할수록 타버린다면 아무도 좋게 만들려 하지 않는다.


관찰자 모드로 들어간다

이 구조가 보이면 억지로 구해 주지 않아도 된다.

물론 눈앞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돕고 싶어질 수 있다. 하지만 도우러 들어가면 또 내가 받이가 된다.

대신 관찰자 모드로 들어간다.

누구에게 두루뭉술한 안건이 날아갔는지. 무엇이 정의되어 있지 않았는지. 누가 요구사항을 물어서 되돌려 줬는지. 요청한 사람이 어느 지점에서 불쾌해졌는지. 받는 사람이 언제부터 지치기 시작했는지. 일이 진행되지 않는 원인이 작업자인지, 미정의인지.

이걸 담담하게 본다.

이것은 험담이 아니다. 구조 로그다.

사람들이 차례로 예민해지고 있다면 그것은 꽤 중요한 관찰 데이터다.


구조 로그 쓰는 법

기록한다면 감정보다 구조를 남기는 편이 강하다.

예를 들면 이렇게 쓴다.

날짜:
대상:
날아온 내용:
정의되지 않았던 점:
받는 사람의 확인:
요청한 사람의 반응:
결과:
소감:

구체적으로는 이런 식이다.

날짜: 6월 ◯일
대상: A 씨
날아온 내용: 현황과 과제를 정리해 달라는 요청
정의되지 않았던 점: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목표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로 자세히 할지 불명확
받는 사람의 확인: "누구에게 보여 줄 이야기인가요?" "어떻게 되길 바라시나요?"
요청한 사람의 반응: 약간 불쾌해함, 사소한 표현 차이를 지적함
결과: 작업 조건은 분명해지지 않았고, 받는 사람은 불만스러운 상태
소감: 개인 문제가 아니라 미정의 안건이 받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으로 보임

이러면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관찰이 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짜증 났는가"가 아니라 어떤 미정의가, 누구에게, 어떻게 흘러갔는가다.


기록하는 목적은 공격이 아니라 방어

구조 로그를 남기는 목적은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다.

같은 패턴이 여러 번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면 내 잘못이라고 끌어안지 않아도 된다. 다음에 비슷한 요청이 왔을 때 요구사항 확인으로 되돌려 줄 수 있다. 떠안으면 안 되는 안건을 가려낼 수 있다. 내가 다시 받이로 돌아가지 않게 할 수 있다. 이직이나 부서 이동을 판단할 자료도 된다.

기록이 있으면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볼 수 있다.

"그냥 싫다"가 아니라 "미정의가 매번 받는 쪽으로 밀려나고 있다" "요구사항을 확인하면 요청한 사람이 불쾌해한다" "받이가 바뀌면 압박의 대상도 바뀐다" 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은 꽤 강력하다.


구하지 않는 것도 필요한 방어다

주변이 타고 있으면 돕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건 이렇게 정리하면 돼요." "제가 대신 할게요." "일단 한번 정리해 볼게요." "신입한테도 제가 가르쳐 둘게요."

하지만 그걸 반복하면 내가 또 만능 해결사가 된다.

미정의의 통역 담당. 교육 담당. 불 끄는 담당. 중간 전달 담당. 말 꺼낸 사람 책임자.

그렇게 되면 나도 탄다.

그러니 돕더라도 범위를 정해야 한다.

"그 범위라면 할 수 있습니다." "목표가 정해지면 정리할 수 있습니다." "판단하는 사람을 정해 주시면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는 윗선에서 정해 주세요."

이걸로 충분하다.

전부 구하지 않는다. 전부 끌어안지 않는다. 요구사항이 나온 범위만 지원한다.

이것이 방어다.


사람이 예민해지는 것은 약해서가 아니다

사람이 예민해지면 '감정적이다'라고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정의되지 않은 안건을 계속 받다 보면 예민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매번 상대의 의도를 추측한다. 매번 배경을 보충한다. 매번 작업 조건을 스스로 만든다. 매번 뒤늦은 변경에 대비한다. 매번 사소한 부분까지 지적받는다. 매번 또 다음 두루뭉술한 안건이 온다.

이런 걸 계속하면 누구라도 지친다.

처음에는 정중하게 묻던 사람도 점점 목소리가 굳어진다. 확인하는 방식이 날카로워진다. 표정이 어두워진다. 반응이 느려진다.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성격이 나빠진 것이 아니다.

구조에 깎이고 있는 것이다.


정리: 사람이 차례로 타버린다면 구조를 보는 편이 좋다

직장에서 누군가 예민해져 있을 때, 곧바로 그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 문제로 돌리지 않는 편이 좋다.

비슷한 예민함이 다른 사람에게도 차례로 나타나고 있다면 구조일 가능성이 높다.

전임자가 탔다. 대행자가 탔다. 내가 탔다. 다른 사람이 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봐야 할 것은 개인이 아니다.

정의되지 않은 일이 누구에게 흘러가고 있는지. 누가 요구사항 정의를 대신 떠맡고 있는지. 누가 감정을 받아 주고 있는지. 누가 뒤늦은 변경을 처리하고 있는지. 누구의 선의가 업무로 바뀌고 있는지.

거기를 본다.

그리고 내가 너무 받이가 되지 않도록 한다.

칭찬은 본인에게 직접 전한다. 관리자에게는 필요 최소한만 보고한다. 교육은 범위를 정한 뒤에 맡는다. 선택적 공유는 상사를 거쳐 던지지 않는다. 미정의 안건은 요구사항 확인으로 되돌려 준다. 돕는다면 정의된 범위만 돕는다. 타고 있는 구조는 곁눈으로 관찰하고 기록한다.

이것은 차가운 것이 아니다.

내 삶과 시간을 지키기 위한 꽤 현실적인 업무 요령이다.

이 글 공유하기

광고

하나 더, 뭐 재미있는 거 없어?

다 읽은 김에. 가까운 이야기 몇 편과, 전혀 다르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골랐어요.

  1. 가까운 이야기글 2혈압은 약 때문에만 내려갔을까 — EMA5로 보는 “약 + 수면 + 스트레스 풀세트”
  2. 전혀 다르지만 재미있는인류, 이거 못 이깁니다『PRAGMATA』를 달의 미술관처럼 구경하다가 기계 문명의 물량에 절망한 이야기
  3. 혼자 행동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누가 없으면 못 움직인다”를 분해하고 ‘혼자 행동 OS’를 키우는 법
  4. 왜 오늘만 유난히 반말 비슷한 말을 많이 듣는 걸까 ― “응응”, “오, 그래?”, “괜찮아요~”에서 시작하는 서비스 현장의 사회언어학
  5. 마라탕은 왜 유행할까?식감 게임을 국물이 살렸다

오늘은 이 글

이 글을 읽은 분이 다음에 품는 질문에 각각 답하는 글입니다.

전체 글에서 찾기‘직장 인간관계’ 글 더 보기

다른 글 찾기

모든 기사

Mendoi-chan

사이트 운영자

Mendoi-chan

직장과 일상의 불편함을 구조화해 이해하기 쉬운 다음 행동으로 연결하는 글을 씁니다.

광고

새 글

  1. 1독자가 글 끝까지 안 읽는다면 본문을 광고로 샌드위치 만들지 마세요: PC 화면의 빈 옆자리를 파는 애드스테라 배치법
  2. 2AI 시대의 똑똑함은 답을 내는 힘이 아니라 질문을 설계하는 힘
  3. 3일주일 만에 AI 글 자동화가 '자율 공장'이 된 이야기
  4. 4정신건강의학과에서 마스크 필수라는데, 안 사면 진료를 거부당해도 될까?
  5. 5무조건 외우는 게 약하면 머리가 나쁜 걸까?

함께 읽으면 좋은 글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