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마디"가 중요한 건 맞지만,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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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말을 거는 첫마디가 정말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이런 말들이다.

  • 보고드릴 게 있는데요
  • 상의드릴 게 있는데요
  •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 판단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5분만 시간 괜찮으실까요?
  • 잡담에 가까운 얘기인데요

이렇게 먼저 운을 띄우면 듣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들어야 할지" 준비하기 쉬워진다.

이건 정말로 효과가 있다.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내는 것보다, 어떤 종류의 이야기인지 먼저 알려 주는 편이 상대 머릿속에서도 정리가 잘 된다.

다만 여기에는 큰 함정이 있다.


첫마디 설계가 만능은 아니다

"보고드립니다", "상의드립니다"라고 하면 반드시 잘 풀릴까? 그렇지 않다.

대화는 말하는 사람만으로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듣는 쪽이 다음과 같은 상태라면,

  • 들을 마음이 없다
  • 후배나 신입의 말을 가볍게 여긴다
  • 바쁘다는 핑계로 뭉개 버린다
  • 상대를 아래로 본다
  • 상담받는 걸 귀찮아한다
  • 가르칠 생각이 없다
  • 꼬투리를 잡고 싶어 한다
  • 상대를 쥐고 흔들고 싶어 한다
  •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

아무리 공손하게 말을 걸어도 대화가 되지 않는다.

이건 말하는 쪽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신기가 고장 난 상대에게는 아무리 깨끗한 신호를 보내도 잡음이 될 뿐이다.

말하자면 듣는 쪽이 '원숭이 서버'의 503 Service Unavailable(서비스 이용 불가) 상태인 셈이다.


신입과 주니어에게 하고 싶은 말

신입이나 입사 3년 차쯤 되는 사람들은 보고나 상담이 잘 안 풀리면 곧바로 자기 탓부터 한다.

내가 질문을 잘못했나? 요점을 더 깔끔하게 정리했어야 했나? 바쁜데 말을 건 내가 잘못인가? 상담 자체가 민폐였나? 나는 소통 능력이 없는 걸까?

물론 말하는 방식을 고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미리 운도 띄웠고, 타이밍도 살폈고, 요점도 정리했고, 내 의견도 냈다.

그런데도 함부로 대한다면, 그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듣는 쪽의 문제일 수도 있고, 교육하는 쪽의 문제일 수도 있고, 직장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니 신입이나 주니어는 보고나 상담이 잘 안 풀렸다고 해서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탓하지 않아도 된다.


"보고입니다"의 함정

회사에서는 흔히 '보연상'(일본 회사에서 말하는 報連相, 즉 보고·연락·상담을 줄인 말)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보고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정체불명의 국어사전 배틀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보고드릴 게 있는데요, A안과 B안 중에 고민 중인데 어떻게 할까요?

라고 하면,

그건 보고가 아니라 상담이잖아? "어떻게 할까요"가 아니라 네 안을 가져와야지 "A로 해도 될까요?"라고 말해 거기까지 생각하고 와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다.

실무적으로는 분명,

A안과 B안이 있습니다. 저는 A안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A로 진행해도 될까요?

쪽이 더 잘 통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원래 살펴봐야 할 것은 이런 것들이다.

  • A안과 B안의 차이
  • 어느 쪽이 업무 목적에 맞는가
  • 판단할 사람은 누구인가
  • 기한은 언제인가
  • 영향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 신입의 권한으로 정해도 되는 일인가

그런데 대화의 입구에서부터,

보고야, 상담이야? "어떻게 할까요"라고 하는 게 잘못이야 일단 네 안부터 내 묻는 방식이 틀렸어

이런 이야기로 빗나가 버린다.

이건 업무 판단이 아니라 입구 검열이다.

원숭이 검문소다.


말하는 쪽이 닳아 없어지는 이유

신입이 힘든 건 단순히 지적을 받아서가 아니다.

본론에 들어가기도 전에 깎여 나가기 때문이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전부다.

A와 B 사이에서 고민 중입니다 어느 쪽으로 갈지 판단이 필요합니다 제 권한으로는 정할 수 없습니다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입구에서 이런 말에 막힌다.

그건 보고가 아니잖아 상담을 못 하네 "어떻게 할까요"는 안 돼 네 안을 가져와 결론부터 말해 그렇다고 마음대로 정하진 마

이게 계속되면 말하는 쪽은 점점 닳아 간다.

상담하면 혼나고, 상담 안 해도 혼나고, 내 안을 내도 혼나고, 안을 안 내도 혼난다.

이렇게 되면 신입은 말하는 것 자체가 무서워진다.

이건 본인의 소통 능력 부족만이 아니라, 직장의 수신 환경 문제다.


교육 자료가 "상사는 100% 옳다"는 전제에 너무 기울어 있다

신입용 교육 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자주 나온다.

  • 보고·연락·상담을 철저히 하세요
  • 결론부터 말하세요
  • 자기 의견을 갖고 상담하세요
  • 상사의 시간을 빼앗지 마세요
  • 지적을 받으면 솔직하게 받아들이세요
  • 주도적으로 움직이세요

물론 이 모두가 틀린 말은 아니다.

신입 쪽에서 말하는 방식을 다듬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교육 자료가,

상사는 옳다 선배는 옳다 듣는 쪽은 제대로 받아 줄 것이다 후배가 고치면 다 잘 풀린다

라는 전제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에서는 듣는 쪽에도 문제가 있다.

  • 이야기를 들을 마음이 없는 상사
  • 바쁘다는 이유로 상담을 뭉개는 선배
  • 보고냐 상담이냐 하는 정의로 꼬투리를 잡는 사람
  • 판단 권한이 있는데도 판단하지 않는 사람
  • 신입의 말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
  • 자기 책임을 신입에게 다시 떠넘기는 사람
  • 상담해도 화내고, 상담 안 해도 화내는 사람

이런 사람은 흔히 있다.

그런데도 교육 자료가 "후배는 이렇게 하세요"뿐이라면, 신입은 로봇처럼 일방적으로 개선만 요구받게 된다.

이건 꽤 괴롭다.

보고·연락·상담은 말하는 쪽만의 기술이 아니다.

듣는 쪽의 수신 능력, 교육 능력, 판단 책임까지 포함한 쌍방향의 업무 설계다.


"보고·상담"으로만 나누지 말고 더 세밀하게 나누자

대책으로는 "보고입니다", "상담입니다"에서 그치지 말고 이야기의 종류를 조금 더 세밀하게 나누는 게 효과적이다.

추천하는 분류는 다음과 같다.

종류 목적 예문
사실 공유 알아 두셨으면 하는 것뿐 사실 공유입니다. 판단이나 대응은 필요 없습니다
진행 상황 보고 현재 위치를 알린다 진행 상황 보고입니다. 현재 ○○까지 끝냈습니다
질문 모르는 기준을 묻는다 질문입니다. ○○의 기준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상담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싶다 상담입니다. 아직 안이 정해지지 않아서 방향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방침 확인 진행 방식을 확인한다 방침 확인입니다. A안으로 진행해도 되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승인 요청 내 안에 OK를 받고 싶다 승인 요청입니다. A안으로 진행해도 될까요?
판단 요청 내 권한으로는 정할 수 없다 판단 요청입니다. 제 권한으로는 정할 수 없어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나누면 상대에게 무엇을 바라는지가 분명해진다.


쓰기 편한 템플릿

1. 사실 공유

사실 공유입니다. 판단이나 대응은 필요 없습니다. ○○ 건은 현재 △△ 상태입니다.

2. 진행 상황 보고

진행 상황 보고입니다. 현재 ○○까지 끝냈습니다. 다음으로 △△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3. 질문

질문입니다. ○○의 기준을 몰라서 확인하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로 생각하고 있는데, 맞게 이해한 걸까요?

4. 방침 확인

방침 확인입니다. A안과 B안이 있습니다. 저는 A안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입니다. A로 진행해도 될까요?

5. 승인 요청

승인 요청입니다. ○○ 방침으로 진행하고 싶습니다. 문제없다면 이 내용으로 진행해도 될까요?

6. 판단 요청

판단 요청입니다. A안과 B안이 있습니다. 제 의견은 A이지만, 영향 범위가 커서 제 권한으로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최종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7. 상담

상담입니다. 아직 안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 조건 때문에 고민 중이라 방향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제 의견은 A입니다. 다만 최종 판단은 부탁드립니다"가 강하다

신입이 가장 쓰기 쉬운 형태는 이것이다.

제 의견은 A입니다. 이유는 ○○입니다. 다만 △△의 영향이 있어서 제 권한으로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최종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이 말투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 생각 없이 온 게 아니다
  • 통째로 떠넘기는 것도 아니다
  • 내 의견은 내놓았다
  • 그렇다고 권한 밖의 책임까지 짊어지지는 않는다
  • 판단할 사람에게 판단 책임을 돌려줄 수 있다

신입도 자기 의견은 낼 수 있다.

하지만 권한 밖의 최종 판단까지 짊어질 필요는 없다.

이 둘을 나누기만 해도 훨씬 편해진다.


그래도 꼬투리를 잡는 사람은 있다

다만 여기까지 갖춰도 꼬투리를 잡는 사람은 있다.

예를 들어,

그런 식으로 말하면 말이야 그건 보고가 아니라 상담이잖아 더 생각하고 와 그래서 결국 뭘 말하고 싶은 건데? 그 정도는 알아서 판단해 근데 마음대로 판단하진 마

이런 사람이 있다.

그럴 때는 이미 말하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상담 상대로 적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입구 설계를 해도 안 되고, 내 의견을 내도 안 되고, 요점을 정리해도 안 되고, 권한 밖이라고 밝혀도 안 된다.

그렇다면 계속 자신을 탓하기보다 상담 경로를 바꾸는 편이 낫다.


상담 상대로 적합하지 않은 사람에게 대처하는 법

몇 번 시도해도 매번 뭉개 버리는 사람에게는 억지로 문을 열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대처법은 이렇다.

  • 말로 하지 말고 텍스트로 확인한다
  • 채팅이나 이메일로 기록을 남긴다
  • 다른 선배에게 확인한다
  • 교육 담당자에게 상담한다
  • 윗사람에게 확인한다
  • "확인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록해 둔다
  • 회의나 정례 모임에서 한꺼번에 확인한다
  • 내 권한 밖의 판단은 멋대로 떠안지 않는다

특히 중요한 건 기록이다.

○월 ○일, A안·B안에 대해 확인하려 했으나 시간이 없다고 하여 판단 보류. 기한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재확인 필요.

이렇게 험담이 아니라 업무 일지로 남긴다.


신입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각

신입은 이렇게 생각해도 된다.

내 담당 범위는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 상대의 담당 범위는 듣는 것, 판단하는 것, 필요하면 가르치는 것. 거기까지 나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다.

말하는 방식을 다듬으려는 노력은 해도 좋다.

하지만 들을 마음이 없는 사람까지 완벽한 소통으로 뚫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노력 부족이 아니라 회선 문제다.


정리

신입이나 입사 3년 차쯤 된 사람에게 보고와 상담은 꽤 진이 빠지기 쉬운 일이다.

"보고입니다", "상담입니다" 하고 운을 띄우는 건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듣는 쪽에 들을 마음이 없으면 대화는 성립하지 않는다.

교육 자료처럼 후배만 일방적으로 고치면 된다는 것도 아니다.

보고·연락·상담은 말하는 쪽과 듣는 쪽이 함께 만드는 업무 설계다.

신입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렇다.

  • 이야기의 종류를 나눈다
  • 자기 의견을 낸다
  • 권한 밖의 판단은 권한 밖이라고 분명히 한다
  • 최종 판단자에게 판단을 돌려준다
  • 말로 뭉개지면 텍스트로 남긴다
  • 상담 상대로 적합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억지로 문을 열지 않는다
  • 필요하면 다른 경로로 확인한다

그래도 뭉개진다면 자기 탓만 하지 않아도 된다.

받는 쪽이 원숭이라면 아무리 공손하게 보내도 잡음이 될 뿐이다.

그럴 땐 원숭이 검문소를 뚫으려 애쓰기보다, 경로를 바꾸고 기록을 남겨서 나를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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