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은 필요하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쇼와식 자존심은 필요 없다

책임감은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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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책임감은 멋있다.

자기 역할을 다한다. 중간에 내던지지 않는다. 필요한 확인을 한다. 실패하면 고친다. 주변에 피해가 생기기 전에 공유한다.

이런 힘은 지금 시대에도 분명히 필요하다.

다만 책임감과 자존심은 나눠서 보는 편이 좋다.

특히 “남자니까 어떻게든 해야 한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지는 것이다”, “도움을 청하면 얕보인다” 같은 쇼와식 자존심은 자신을 지키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주변 사람에게 부담을 떠넘길 수 있다.

정말 필요 없는 것은 책임감이 아니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자존심이다.


1. 책임감과 자존심은 다르다

책임감이란 자신이 짊어져야 할 것을 짊어지는 힘이다.

예를 들면,

  • 자신의 담당 범위를 명확히 한다
  • 기한까지 일을 진행한다
  • 할 수 없는 일은 일찍 공유한다
  • 혼자 판단할 수 없는 일은 확인한다
  • 실수가 있으면 수정한다
  • 같은 문제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구조를 만든다

이런 것이 책임감이다.

반면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자존심은 다르다.

  • 모르면서도 모른다고 말하지 못한다
  •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 달라고 말하지 못한다
  • 불안하면서도 불안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 자신의 약함을 짜증으로 드러낸다
  • 설명이 부족한 부분을 주변 사람이 알아서 눈치채 주길 바란다
  • ‘엄마 지수’가 높은 사람에게 감정 처리를 맡긴다
  • 그러면서도 “나는 의존하지 않는다”는 얼굴을 한다

이건 책임감이 아니다.

자기 약함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한 채 주변에 흩뿌리는 것뿐이다.

정말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일찍 말한다.

이 부분은 확인하고 싶습니다.
이 부분은 저 혼자 판단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여기부터는 책임자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피해가 생기기 전에 공유하겠습니다.

나는 이런 태도가 현대적인 멋이라고 생각한다.


2. “남자니까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면서 저주가 될 수도 있다

“남자니까 어떻게든 해야 한다.”

이 감각은 얼핏 보면 책임감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 생각으로 버텨 온 사람도 있다. 가족을 부양하고, 직장에서 견디고, 약한 소리를 하지 않고, 앞으로 나선다. 그 안에는 미덕도 있다.

하지만 이 말에는 위험한 면도 있다.

도움을 청하는 것, 약함을 보이는 것, 모른다고 말하는 것까지 막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 규범에 대한 동조와 정신건강의 관계를 본 메타분석에서는 전통적 남성 규범에 강하게 동조할수록 정신건강과 관련된 불리한 결과, 그리고 심리적 도움을 구하는 데 덜 우호적인 태도와 연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self-reliance 규범은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게 만드는 성향과 맞물린다.

즉,

어떻게든 해 보려는 책임감
과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순간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게 하는 저주

는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있다.

그래서 더더욱 둘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3. 남자다움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사회적 OS다

‘남자다움’이라고 불리는 것은 생물학적 남성 그 자체가 아니다.

상당 부분은 사회가 남성에게 요구해 온 행동의 묶음이다.

WHO는 gender를 여성, 남성, 소녀, 소년과 연결되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특성, 규범, 행동,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즉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자연법칙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시대에 따라 변하는 OS다.

쇼와식 남성 OS에는 여러 요소가 섞여 있다.

  • 남자는 밖에서 싸운다
  • 남자는 돈을 번다
  • 남자는 약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
  • 남자는 스스로 어떻게든 한다
  • 남자는 위에 선다
  • 여성·어머니·아내·엄마 같은 부하는 안쪽을 정리한다
  • 남자의 짜증과 불안은 안쪽의 누군가가 받아 준다

이것이 가정이나 직장에 남아 있으면 꽤 골치 아파진다.

본인 머릿속에서는 “나는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가 된다.

하지만 주변에서 보면,

책임을 짊어진 사람처럼 보이는 모습을 지키기 위해 주변이 감정 처리를 떠안고 있는 상태

가 될 수 있다.


4. 의지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문제는 의존을 위장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사람에게는 안전기지가 필요하다.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 탐색할 수 있다. 힘들 때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다시 움직일 수 있다.

일본어권의 amae라는 개념도 단순한 게으름이나 의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받아 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가까이 다가가는 감각을 포함한다.

그러니 의지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럽다.

문제는 자신이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건강한 의지는 이런 식이다.

조금 힘들어.
도와줬으면 좋겠어.
고마워.
나도 할 수 있을 때는 돌려줄게.

반면 건강하지 않은 의지는 이렇게 된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눈치채.
내 불안을 처리해 줘.
내 짜증을 받아 줘.
하지만 나는 의존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내가 위야.

이건 건강한 의지가 아니라 의존의 위장이다.

그리고 그 위장을 유지하는 비용을 주변 사람에게 지불하게 하는 것이 가장 민폐다.


5. ‘엄마 지수’란 무엇인가

직장에는 ‘엄마 지수’가 높은 사람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엄마 지수는 성별 그 자체를 뜻하지 않는다.

  • 상대의 불안을 받아 준다
  •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 부족한 설명을 보완한다
  • 후배와 주변 사람의 감정을 살핀다
  • 회색지대 업무를 줍는다
  • 상사의 짜증을 달랜다
  • 한발 앞서 정리한다

이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돌봄 노동을 맡는 힘이다.

이 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조직에 필요한 순간도 있다.

다만 이것이 평가의 통화가 지나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능력·성과·업무 설계력이 아니라,

상사나 조직이 처리하지 못한 감정을 얼마나 많이 흡수할 수 있는가

가 평가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Harvard Business Review는 회의 일정 잡기, 메모, 잡무, 챙김 역할처럼 필요하지만 평가받기 어려운 일을 “office housework”라고 부른다. 이런 보이지 않는 일은 여성에게 편중되는 경우가 많고 승진이나 평가로 이어지기 어렵다.

직장의 엄마 지수도 이와 비슷하다.

조직의 버그를 부드럽게 감쌀 수 있는 사람은 중용된다.

하지만 감쌀 수 있기 때문에 버그 자체는 고쳐지지 않는다.


6. 엄마 역할과 거울 역할은 다르다

엄마 역할은 상사나 주변 사람의 처리되지 않은 감정을 감싼다.

거울 역할은 처리되지 않은 감정과 책임의 어긋남을 비춘다.

엄마 역할은 말한다.

괜찮아요.
그렇죠.
이쪽에서 정리해 둘게요.
잘 처리해 둘게요.

거울 역할은 말한다.

그건 자료의 취지와 어긋납니다.
그건 부하의 주도성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상사 쪽의 지원 책임이 빠져 있습니다.
그건 제도 설명이 아니라 개인의 가치관 아닌가요?
그건 개인 문제가 아니라 운영 설계 문제 아닌가요?

메타인지가 낮은 상사일수록 엄마 역할을 좋아한다.

엄마 역할은 편안하기 때문이다.

반면 거울 역할은 아프다.

자신의 설명 부족, 짜증, 책임 전가, 의존, 모순을 비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울 역할을 하는 사람은 “차갑다”, “너무 이론적이다”, “다루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하지만 조직을 개선하려면 거울 역할도 필요하다.

상사가 자신이 처리하지 못한 감정을 부하에게 흘리고 있다면 누군가는 그것을 비춰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은 계속 엄마 지수로 굴러가게 된다.


7. ‘대형견형’의 건강함

여기에는 다른 삶의 방식도 있다.

예를 들어 감정이 알아보기 쉬운 사람이다.

기쁠 때는 기쁘다. 졸릴 때는 졸리다. 힘들 때는 힘들다. 기대고 싶을 때는 기대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와 달라고 말한다.

이른바 ‘대형견형’이다.

겉으로 보면 약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꽤 건강하다.

자신의 약함이나 의존을 짜증·지배·“알아서 눈치채”라는 압력으로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견형은 처음부터 어느 정도 보인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은 떠난다. 남을 사람은 남는다.

이건 인간관계의 필터링이다.

반대로 쇼와식 자존심형은 약함을 숨긴다.

하지만 끝까지 숨길 수 없는 약함이 엄마 지수가 높은 일부 사람에게만 새어 나온다.

그 결과 본인은 강한 얼굴을 유지하면서 주변 사람이 감정 처리를 맡는다.

관계가 뒤틀린다.

약함을 보이는 것이 나쁜 게 아니다.

약함을 숨긴 채 다른 사람에게 처리시키는 것이 나쁜 것이다.


8. 멋있는 책임감이란 무엇인가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은 쇼와식 자존심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다룰 수 있는 책임감이다.

나는 멋있는 책임감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 할 수 없는 것은 일찍 말한다
  • 혼자 판단할 수 없는 것은 확인한다
  • 피해가 생기기 전에 공유한다
  • 도움을 받으면 감사한다
  • 상대에게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
  • 한 번 생긴 문제는 구조로 바꾼다
  • 자기 자존심 유지비를 다른 사람에게 내게 하지 않는다

반대로 민폐가 되는 자존심은 이렇다.

  • 모른다고 말하지 못한다
  • 도와 달라고 말하지 못한다
  • 불안을 짜증으로 드러낸다
  • 주변이 알아서 눈치채길 바란다
  • 엄마 지수가 높은 사람에게 의존한다
  • 그런데도 자신은 의존하지 않는 척한다
  • 약함을 인정하지 않은 채 주변을 끌어들인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

책임감은 필요하다.

그건 옳고 멋있다.

하지만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자존심은 필요 없다.


9. 직장에서 구분하는 방법

직장에서 “이 사람은 책임감이 있는 걸까, 아니면 민폐가 되는 자존심에 사로잡힌 걸까”를 보려면 다음 질문을 쓸 수 있다.

1. 모를 때 확인할 수 있는가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책임감이 있다.

확인하지 못한 채 혼자 끌어안다가 나중에 주변을 끌어들이는 사람은 자존심이 방해하고 있다.

2. 불안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가

“이 부분이 불안합니다”, “이 부분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강하다.

불안을 짜증·압박·침묵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주변에게 감정 처리를 떠넘기고 있다.

3. 도움받았을 때 감사할 수 있는가

감사가 함께하는 의지는 건강하다.

당연하다는 얼굴로 받아들이는 의존은 돌봄 노동의 착취다.

4. 약함을 지배로 바꾸고 있지 않은가

“도와줘”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알아서 눈치채”, “나를 세워 줘”, “분위기를 읽어”로 흐르기 쉽다.

이건 책임감이 아니라 약함의 위장이다.

5. 상대에게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는가

상대를 인간으로 본다면 경계를 존중할 수 있다.

상대를 돌봄 기능으로 본다면 무한히 받아 주길 기대하게 된다.


10. 결론

책임감은 필요하다.

그건 옳고 멋있다.

하지만 쇼와식 자존심까지 함께 계속 들고 갈 필요는 없다.

남자니까 약한 소리를 할 수 없다. 남자니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남자니까 불안을 보일 수 없다. 남자니까 의존하지 않는 척해야 한다.

그 결과가 짜증, 알아서 눈치채라는 압박, 엄마 지수 의존으로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책임감이 아니다.

정말 강한 사람은 약함을 숨기는 사람이 아니다.

약함을 말로 표현하고,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감사하고, 같은 문제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짊어져야 할 책임은 짊어진다.
하지만 자기 자존심 유지비를 다른 사람에게 내게 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지금 시대의 멋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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