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직장 첫날을 마치면 게임이나 하면서 쉬려고 했다. 애니메이션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시작한 건 그날 생긴 궁금증을 풀어 보는 일이었다. 전체 구조는 어떻게 이어질까? 왜 이런 순서일까?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하나를 알아내면 질문이 둘로 늘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밤이었다. 입사 첫날부터 자발적으로 야간 연장전이라니.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혼자 신났다.
전 직장에서는 유능해지는 게 손해처럼 느껴졌다
예전에는 퇴근하면 일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일을 더 잘하게 될수록 책임이 계속 늘고, 결국 소수에게 부담이 집중될 것 같았다. 능력을 키운 결과가 시간과 자유를 잃는 미래라면 적극적으로 뛰어들 이유가 줄어든다.
그래서 스스로를 일이 싫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배움 자체보다는 잘하는 사람에게 일이 끝없이 쌓일 것 같은 구조가 부담이었던 듯하다.
새 직장에서는 업무가 퍼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첫날 들은 설명을 계기로 전체 그림이 궁금해졌다. 한 부분을 이해하면 다른 부분의 관계가 보였고, 곧 개선할 만한 곳을 상상하게 됐다.
정해진 순서대로 자료를 읽는 것보다 내가 품은 질문을 따라가는 편이 더 재미있었다. AI는 일반적인 원리를 빠르게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됐지만, 실제 직장의 사정은 현장에서 확인해야 한다.
머릿속에서는 벌써 개선 회의가 열렸다. 직급은 신입인데 상상 속에서는 임원 회의 진행 중. 물론 실제 변경은 권한을 가진 사람과 영향을 받는 동료의 논의가 필요하다.
원래도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몇 달 동안 이어 온 창작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해야 작동하는지, 무엇을 바꾸면 나아지는지 고민하며 시도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시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궁금증 발견, 조사, 가설, 실험, 새로운 궁금증. 그 과정 자체가 보상이었다. 이직 후 갑자기 성실한 사람이 된 게 아니라 원래 즐기던 게임에 새로운 맵이 열린 셈이다.
심리학이 설명하는 부분
자기결정성이론은 스스로 선택할 여지, 실력이 늘었다는 감각, 타인과의 연결을 자발적 동기에 중요한 조건으로 본다 [1]. 궁금한 부분을 내가 정하고, 이해를 늘리고, 사람들과 확인하는 경험이 여기에 닿아 있다.
호기심의 정보 격차 이론은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은 것 사이의 빈틈이 탐색을 부른다고 설명한다 [2]. 호기심이 강할 때 학습과 기억이 달라질 수 있다는 실험도 있다 [4]. 직무 요구와 자원에 관한 연구는 업무량뿐 아니라 재량과 지원도 몰입과 소진에 중요하다고 본다 [3].
단 하루의 즐거움으로 천직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 업무가 늘었을 때 분담이 실제로 잘되는지도 지켜봐야 한다.
재미있어도 쉬어야 한다
몰입하면 피곤함을 덜 느낄 수 있지만 수면과 회복이 필요 없어진 것은 아니다. 원하는 때에 시작하고 멈출 수 있는 자유가 중요하다.
그래도 첫날의 반전은 확실하다. 게임을 켜려고 집에 왔는데 일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있었다. 이직 첫날, 취미 하나가 추가됐다. 이름이 하필 '일'이다.
참고 자료 (1건)
[1] Ryan & Deci (2000): https://pubmed.ncbi.nlm.nih.gov/11392867/ [2] Loewenstein (1994): https://doi.org/10.1037/0033-2909.116.1.75 [3] Bakker & Demerouti (2017): https://pubmed.ncbi.nlm.nih.gov/27732008/ [4] Gruber 외 (2014):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42524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