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 시대의 연애는 와카와 통혼(남성이 여성의 집을 방문하는 혼인 관행)만 보면 우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까지 들어가면 이야기는 갑자기 무거워진다.
현대처럼 세균 감염을 약으로 치료하고, 심한 출혈에 수혈을 하며, 필요하면 수술로 아기를 꺼내 산모와 아이를 살리는 의료 체계는 없었다. 출산은 어머니와 아기 모두에게 큰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즉, 안전장치가 거의 없는 상태로 실전에 들어가는 셈이었다.
현대 시스템 개발에 비유하면, 이것이 이 글에서 말하는 ‘출생 리스크 운영 환경’이다.
출산은 ‘가문의 경사’이기 전에 당사자의 몸으로 치르는 큰일이었다
헤이안 귀족의 출산에서는 기도와 여러 의례가 큰 역할을 했다.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에 묘사된 중궁 쇼시의 출산에서도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며 탄생을 기다리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출산 뒤에는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우부야시나이(産養)’라는 의례도 열렸다. 무사히 태어나는 것, 그리고 태어난 아이가 계속 자라는 것은 그만큼 중대한 일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기도와 의식을 단순히 “미신이니까”라고 치부하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현대적인 구명 수단이 없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것을 총동원해 산모와 아이의 무사를 빌었다.
높은 신분의 귀족 여성에게 출산은 정치와도 연결됐다
또 하나 무거운 요소는 가문의 사정이었다.
헤이안 중기에는 천황의 외가 친족이 되는 것이 큰 정치력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가 천황의 외척으로 지위를 굳힌 사실을 생각하면, 상류 귀족 가문에서 딸의 혼인과 그 자녀의 탄생이 정치와 완전히 분리된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것이 헤이안 시대의 모든 여성이 똑같은 압력을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황실과 연결된 상류 귀족 사회에서는 출산이 당사자 한 사람의 일로만 끝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가문에서 보면 “다음 세대가 태어난다.”
당사자에게는 “내 몸으로 낳는다.”
이 차이는 크다.
출산을 가문의 계승 행사로만 바라보면, 어머니가 떠안는 위험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영혼까지 걸고 낳는 것이다.
그렇게 표현하고 싶을 만큼 무거운 일이었다.
태어났다고 위험이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도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마쿠라노소시(枕草子)』에는 출산 뒤 아기를 잃은 방이 ‘스사마지키 모노(すさまじきもの)’의 하나로 등장한다. 현대의 전국 통계처럼 헤이안 사회 전체의 영유아 사망률을 정확한 숫자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당시의 기록과 아이의 성장을 축하하는 의례를 보면 출생과 성장 자체가 불확실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아이가 많았다”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낳는 사람과 태어나는 아이가 함께 떠안았던 위험이 빠져버린다.
‘출생 리스크 운영 환경’이라는 비유가 와닿는 이유
헤이안 시대에는 현대와 같은 구명 수단이 없었다. 동시에 상류 귀족 사회에서는 가문의 계승과 정치적 기대까지 출산에 겹쳐질 수 있었다.
이 두 가지를 합치면 출산은 단순한 “기쁜 가족 행사”가 아니었다.
산모와 아이의 신체적 위험은 큰데, 가문에서는 다음 세대를 기대할 수 있었다.
이것이 ‘출생 리스크 운영 환경’이라는 비유가 담고 있는 의미다.
와카의 세계는 우아해도 임신과 출산은 몸에서 일어난다.
거기까지 함께 보면 헤이안 시대 연애사는 갑자기 현실의 무게를 갖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