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맡는 사람부터 무너지는 직장

직장에서 누군가 휴직하거나 퇴사하면, 조직은 사람마다 따로 떼어 사정을 따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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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맡아주는 사람이 먼저 쓰러지는 회사

휴직·퇴사가 잇따를 때, 사람이 아니라 부담의 흐름을 보자

직장에서 누군가 휴직하거나 퇴사하면, 조직은 사람마다 따로 떼어 사정을 따지곤 한다.

본인의 건강. 집안 사정. 커리어 방향. 적성. 인간관계. 이사.

물론 사람이 떠나는 이유가 하나만은 아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시차를 두고 계속 휴직하거나 퇴사한다면, 개인별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봐야 할 것은 이것이다.

누가 약했느냐가 아니라, 부담이 어디서 어디로 흘러갔느냐

"맡으면 안전하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직장에서는 책임을 맡는 사람이 인정받는다고들 한다.

곤란한 사람을 돕는다. 주인 없는 애매한 일을 주워 온다. 후배를 챙긴다. 상사와 현장 사이를 조율한다. 마감이 위태로운 건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하나하나는 가치 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맡은 사람의 기존 업무는 줄지 않고, 권한도 늘지 않고, 보상도 그대로인 환경에서는 선의와 능력이 부담을 쌓아 올리는 장치가 되어 버린다.

흐름은 단순하다.

  1. 한 번 문제를 수습한다
  2. "이 사람한테 맡기면 일이 된다"는 인식이 생긴다
  3. 정리 안 된 다음 일도 모여든다
  4. 다른 사람의 실수와 지연까지 떠안게 된다
  5. 담당 범위가 흐려진다
  6. 거절하면 협조성이나 주체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몰린다
  7. 만성적인 과부하에 빠진다
  8. 휴직이나 퇴사로 빠져나간다

이런 구조에서 일을 맡는 것은 안정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일이 될 수 있다.

빠져나오기 어려운 역할에 스스로를 붙박아 두는 행위

일의 양만이 아니라 업무 자원을 봐야 한다

일의 부담을 따질 때 건수나 야근 시간만 봐서는 부족하다.

직무 요구-자원 이론(Job Demands–Resources theory, 흔히 JD-R 이론)은 일에서 요구되는 것과 그 요구에 맞설 수 있는 자원을 나누어 본다.

일에서 요구되는 것에는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 있다.

  • 업무량
  • 마감
  • 감정노동
  • 사람 사이 조율
  • 역할의 모호함
  • 모순된 지시
  • 책임
  • 가정생활을 침범하는 일

반면 업무 자원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 재량
  • 인력
  • 상사의 지원
  • 분명한 역할
  • 정당한 평가
  • 필요한 정보
  • 배울 기회
  • 회복할 시간
  • 거절할 권리

요구가 커도 권한, 지원, 시간, 보상이 있으면 버틸 수 있을 때가 있다.

반대로 겉으로 보이는 업무량이 적어도 다음 같은 환경에서는 지친다.

  • 뭘 해도 나중에 기준이 바뀐다
  • 남의 문제를 떠안게 된다
  • 결정권은 없는데 책임만 있다
  •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 거절하면 인격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바쁘냐 아니냐"만이 아니다.

부담에 맞설 자원이 있느냐

이다.

휴직과 퇴사는 후행 지표다

몸과 마음의 이상이 겉으로 드러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처음에 나타나는 건 대개 작은 변화다.

  • 발언이 줄어든다
  • 질문을 하지 않는다
  • 개선 제안을 그만둔다
  • 잡담이 줄어든다
  • 일을 최소한으로만 한다
  • 쉬는 날이 늘어난다
  • 감정이 무뎌진다
  • 자책이 심해진다
  • 집에 가서도 일 생각을 한다
  •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그래도 일은 그럭저럭 돌아간다.

그래서 관리하는 쪽은 "문제없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무너질 때까지 부담이 안에 쌓이고 있었다.

휴직과 퇴사는 갑자기 터진 이상 현상이 아니다.

그동안 놓쳐 온 부담이 마침내 숫자로 드러난 후행 지표

이다.

한 사람이 빠지면 다음 한 사람에게 흘러간다

부담의 발생원이 고쳐지지 않은 채 누군가 빠지면,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남은 사람에게 넘어간다.

특히 표적이 되기 쉬운 사람은 이렇다.

  • 성실한 사람
  • 반응이 빠른 사람
  • 설명을 잘하는 사람
  • 문제의 구조가 보이는 사람
  • 거절하기 전에 일단 생각부터 해 보는 사람
  • 주변을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는 "능력이 뛰어나니까 일이 모이는 것"이라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실상은 이럴 수도 있다.

조직이 설계하지 않은 빈틈을 개인의 책임감으로 메우고 있을 뿐

한 사람이 완충재 노릇을 하는 동안에는 관리상의 결함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빠지면 조직에 새 문제가 생긴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

원래 있던 문제가 눈에 보이게 되었을 뿐이다.

"내가 안 도우면 누군가 희생된다"는 위험한 질문이다

구조가 보이는 사람일수록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빠지면 다른 사람이 희생되는 건 아닐까.

이건 다정함이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그 사람에게 관리 권한이 없다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된다.

  • 문제 있는 관리자를 바꿀 수 없다
  • 인원을 늘릴 수 없다
  • 업무 배분을 정할 수 없다
  • 평가 제도를 바꿀 수 없다
  • 재발 방지를 강제할 수 없다

권한 없는 사람이 남아도 근본 원인은 고칠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자신이 부담을 흡수해서 문제가 드러나는 시점을 늦추는 것뿐이다.

즉,

조직을 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결함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상태가 될 수 있다.

다음에 누군가 다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그 책임은 문제를 알고도, 바로잡을 권한이 있으면서도 방치한 쪽에 있다.

자기 건강을 내놓아 그것을 막아야 할 의무는 개인에게 없다.

맡기 전에 확인할 여섯 가지 조건

일을 맡을지 판단할 때는 책임감보다 먼저 조건을 확인한다.

1. 범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내 담당인가.

2. 종료 조건

무엇을 해야 끝난 것으로 치는가.

3. 권한

방법, 우선순위, 관계자에게 요청하는 일을 내가 정할 수 있는가.

4. 기존 업무

추가되는 일만큼 무엇이 줄어드는가.

5. 보상

평가, 보수, 경험, 자유 시간, 결과물 등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무엇인가.

6. 철수 조건

상황이 나빠졌을 때 범위를 줄이거나 끝낼 수 있는가.

이것들이 애매하다면, 맡는 것은 일이 아니라 빚일 수 있다.

결론

휴직과 퇴사가 띄엄띄엄 이어지는 직장에서는, 떠난 사람의 성격을 한 명씩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봐야 할 것은 이렇다.

  • 누구에게 일이 모여 있었는가
  • 권한과 책임이 맞아떨어졌는가
  • 일을 맡은 사람의 업무가 줄었는가
  • 같은 관리자나 같은 부서에 쏠려 있지 않은가
  • 떠난 뒤 같은 부담이 누구에게 넘어갔는가

이다.

맡는다는 것이 언제나 선은 아니다.

맡을수록 휴직·퇴사에 가까워지는 구조에서는, 선을 지키는 것이 직업인으로서의 리스크 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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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과 일상의 불편함을 구조화해 이해하기 쉬운 다음 행동으로 연결하는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