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스쿠나전으로 보는 '대가'와 '한 번 더 오는 절망'
※ 이 글에는 『주술회전』 후반부, 스쿠나전과 쵸소 주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때 "사람이 죽는 만화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 돌아보면 이건 "사람만 죽으면 뭐든 재미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의미 없이 사람이 죽기만 하면 그냥 허술해 보인다. 갑자기 퇴장시키면 되는 것도 아니다. 독자를 놀라게 하려는 죽음은 오히려 김이 빠지기도 한다.
재미있게 느껴지는 건 죽음이나 상실 때문에 이야기의 선택이 무거워질 때다.
누군가를 지키려고 깎여 나간다. 이기기 위해 뭔가를 잃는다. 버텼다고 생각한 뒤에 한 번 더 절망이 밀려온다. 주인공이 "그래도 일어서는"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다.
그럴 때 이야기는 단숨에 무거워진다.
『주술회전』의 스쿠나전, 특히 '복마어주자'에서 '부엌/열기'로 이어지는 흐름은 그 감각이 아주 강하다.
'버텼다' 싶은 뒤에 한 번 더 온다
스쿠나전 후반에서 강렬한 건 "버텼다"고 생각하게 만든 다음에 오는 두 번째 공격이다.
복마어주자의 참격. 그것만으로도 보통은 끝났을 것이다. 영역 자체가 재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읽는 쪽은 어딘가에서 이렇게 생각한다.
버텨라. 버텨라. 아직 갈 수 있어. 여기만 넘기면 다음 전개가 있어.
그리고 실제로 간신히 버틴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에 '부엌/열기' 계열의 불꽃과 폭발이 온다.
이게 정말 세다.
버텼다고 생각한 뒤에 오는 한 번 더.
사람은 "여기를 넘겼다" 싶은 직후의 추가 공격에 약하다.
마음이 잠깐 풀린다.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반격이다" 하고 생각한다. 바로 그 순간, 한 단계 더 깊은 절망이 닥친다.
이 구조는 꽤 잔인하다.
그냥 화력이 센 게 아니다. 희망을 한 번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재해를 또 얹는다.
스쿠나의 공격은 '적의 필살기'가 아니라 '재해'로 보인다
스쿠나의 기술은 악당의 필살기라기보다 재해에 가깝다.
참격. 영역. 불꽃. 폭발. 잔해. 타버린 공간. 고요한 절망.
어느 것도 사람끼리 치고받는 싸움이라기보다 자연재해에 휘말린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름답다.
잔혹한데 그림은 곱다. 부조리한데 구도는 완성되어 있다. 사람의 의지라기보다 세계 자체가 무너지는 것처럼 보인다.
스쿠나의 재해 연출이 강한 건 바로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적이 "내 필살기를 받아라" 하는 게 아니라 재해가 한 번 더 온다.
지진 뒤에 쓰나미. 참격 뒤에 불꽃. 버텼다고 생각한 뒤에 한 번 더.
이 이단 구성이 읽는 맛이 꽤 좋다.
물론 좋다고 해도 밝은 쾌감은 아니다.
"와, 여기까지 하는구나" 싶은 잔혹함. "버텼는데 아직도 오는 거야?" 싶은 절망. "이건 사람이 상대할 화력이 아니다" 싶은 아름다움.
이런 감각이 있다.
쵸소의 죽음이 가슴에 박히는 이유
스쿠나의 공격이 잔혹하기만 했다면 그냥 절망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장면이 강한 건 거기에 쵸소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쵸소는 죽기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이타도리를 지킨다. 형으로서 마지막 역할을 다한다. 자기 목숨을 써서 동생을 남긴다.
그래서 박힌다.
여기서 중요한 건 죽음 자체가 아니다.
죽기까지 맡은 역할이다.
캐릭터가 그냥 퇴장하면 독자는 "대충 처리됐다"고 느낀다. 하지만 마지막에 무엇을 지켰는지, 무엇을 남겼는지, 누구를 위해 깎여 나갔는지가 보이면 무게가 달라진다.
쵸소의 경우 '형'으로서의 역할이 마지막에 결정(結晶)처럼 굳는다.
이타도리에게 그는 그냥 전력이 아니다. 독자에게도 그냥 전투 요원이 아니다.
그래서 퇴장이 아프다.
죽음이 재미있는 게 아니다.
지키기 위해 죽는 것이 이야기의 의미를 무겁게 한다.
목숨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선택이 무거워서 재미있다
"사람이 죽는 만화가 재미있다"고 하면 조금 위험하게 들린다.
하지만 본질은 아마 거기에 있지 않다.
목숨이 가벼워서 재미있는 게 아니다.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선택이 무거워진다.
아무도 죽지 않는다. 뭘 해도 살아난다. 편리하게 전원이 돌아온다. 실패해도 큰 대가가 없다.
그런 이야기에도 안심하고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긴장감은 떨어지기 쉽다.
반대로 죽음이나 상실이 있는 이야기에서는 선택이 무거워진다.
지키겠다고 하면 정말로 뭔가를 내놓아야 한다. 이기겠다고 하면 정말로 누군가 깎여 나갈 수 있다. 주인공이 일어선다면 그 배경에 되돌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독자는 진지해진다.
이 세계는 만만하지 않다. 이 싸움에는 대가가 있다. 이 캐릭터의 결단에는 무게가 있다.
그렇게 느낀다.
재미있는 건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대가가 있어서 이야기의 말이 진짜가 되는 것이다.
가혹한 주인공이 가슴에 박히는 이유
"가혹한 주인공이 안쓰러워서 좋다"고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단순히 주인공이 괴로우면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저 당하기만 하는 주인공은 보기 힘들다. 불행을 쌓는다고 재미있어지는 건 아니다. 부조리만 쌓아 올리면 독자는 지친다.
가슴에 박히는 건 가혹한 상황에서도 주인공이 일어서는 순간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 지키지 못한 것이 있다.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다음 순간 다시 싸워야 한다.
이때 주인공의 속이 보인다.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가. 무엇을 위해 일어서는가. 얼마나 깎여도 꺾이지 않는가. 아니면 꺾일 듯하면서도 계속 나아가는가.
가혹함은 주인공을 안쓰럽게 만들려고 있는 게 아니다.
주인공의 가치관을 드러내기 위해 있다.
그래서 박힌다.
'사람이 죽는다'와 '의미 있는 죽음'은 다르다
여기는 구분하는 편이 좋다.
사람이 죽는 작품이 다 재미있는 건 아니다.
허술한 죽음. 놀라게 하려는 죽음. 이야기 사정상 퇴장시킬 뿐인 죽음. 캐릭터를 쌓아 온 것이 없는 죽음. 죽은 뒤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죽음.
이런 건 오히려 김이 빠진다.
독자는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거기 있던 관계와 선택과 역할에 반응한다.
그래서 의미 있는 죽음에는 조건이 있다.
그 캐릭터가 무엇을 짊어졌는가. 누구와 관계가 있었는가. 무엇을 지켰는가. 무엇을 남겼는가. 그 죽음으로 주인공과 세계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이게 있으면 죽음은 단순한 퇴장이 아니게 된다.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움직인다.
쵸소의 장면이 가슴에 박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죽지 않는 작품'이 나쁜 건 아니다
물론 아무도 죽지 않는 작품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일상물. 코미디. 힐링. 성장물. 러브코미디. 스포츠. 직장물.
죽음이 없어도 재미있는 작품은 얼마든지 있다.
이야기에 꼭 필요한 건 죽음이 아니다.
필요한 건 대가와 되돌릴 수 없음이다.
죽음이 아니어도 된다.
관계가 돌아오지 않는다. 신뢰가 깨진다. 시간을 잃는다. 기회를 놓친다. 누군가에게 선택받지 못한다. 꿈을 포기한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한다.
이런 되돌릴 수 없음만 있어도 이야기는 무거워진다.
죽음은 그중에서 가장 알기 쉽고 강한 대가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니까 재미있다"기보다 되돌릴 수 없는 대가가 있는 이야기는 재미있어지기 쉽다 는 쪽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주술회전 후반은 레이드 보스전으로서 재미있다
주술회전의 스쿠나전은 단행본으로 읽으면 꽤 재미있다.
주간 연재로 따라가면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도 스쿠나랑 싸워?" 싶다. 매주 작전 감사관 같은 독자가 대량으로 쏟아진다.
하지만 몰아서 읽으면 흐름이 잘 보인다.
고죠전. 그 뒤의 레이드전. 깎고, 이어 가고, 버티고, 교대하고, 또 깎는다. 그래도 스쿠나는 다음 수를 꺼낸다.
최강 레이드 보스전(여럿이 함께 거대한 보스에 도전하는 온라인 게임 방식의 전투)으로서 꽤 재미있다.
게다가 단순한 화력전이 아니다.
영역. 술식. 속박. 반전술식. 몸의 상태. 적응. 누구의 능력을 어떻게 쓰는가. 어느 타이밍에 카드를 내는가.
꽤 설계 문서 같은 싸움에 가깝다.
그래서 독자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그게 되면 먼저 하지." "그 조합이면 이길 수 있었던 거 아냐?" "그 작전 회의, 요구사항 정의가 충분해?" "거기서 스쿠나도 고죠도 대충 한 거 아냐?"
이런 태클까지 포함해서 재미있다.
스쿠나전은 배틀 만화이면서 설계 문서와 예외 처리를 읽게 만드는 싸움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재해와 의미 있는 죽음
스쿠나의 '복마어주자'에서 '부엌/열기'로 이어지는 흐름이 좋은 건 아마 이 두 가지가 갖춰져 있어서다.
아름다운 재해. 의미 있는 죽음.
스쿠나의 공격은 재해처럼 아름답다. 사람의 노력을 한꺼번에 짓누르는 부조리함이 있다. 그래도 캐릭터들은 버티려 한다.
그리고 버텼다고 생각한 뒤에 한 번 더 온다.
그 '한 번 더 오는 절망' 앞에서 쵸소가 마지막 역할을 다한다.
여기서 잔혹함과 의미가 겹친다.
그래서 강하다.
그냥 슬프기만 한 게 아니다. 그냥 화려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사람이 죽을 뿐인 것도 아니다.
아름다운 재해 속에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지킨다.
이 구도가 가슴에 박힌다.
정리: 사람이 죽는 만화가 재미있는 건 목숨이 가벼워서가 아니다
사람이 죽는 만화가 재미있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건 목숨이 가벼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목숨이 무겁기 때문에 죽음이 이야기를 움직인다. '지킨다'는 말에 대가가 붙는다. 이긴다는 선택에 무게가 실린다. 주인공이 계속 서 있는 것의 의미가 강해진다.
『주술회전』의 스쿠나전이 가슴에 박히는 것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복마어주자를 버텼다고 생각한 뒤에 부엌/열기가 한 번 더 온다. 스쿠나의 공격은 아름다운 재해처럼 보인다. 그 한복판에서 쵸소가 형으로서 이타도리를 지킨다.
이건 그냥 사람이 죽는 장면이 아니다.
부조리한 세계에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깎여 나가는 장면이다.
그래서 아프다. 그래서 아름답다. 그래서 재미있다.
사람이 죽어서 재미있는 게 아니다.
대가가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선택이 진짜가 된다.
거기에 강한 이야기의 재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