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이 글에는 『주술회전』 후반부 스쿠나전, 카시모와의 전투, 세계를 가르는 참격에 관한 스포일러가 들어 있다.
들어가며: "용린·반발·한 쌍의 유성", 리듬 너무 좋지 않아?
『주술회전』의 스쿠나 하면 유난히 귀에 박히는 영창이 하나 있다.
용린·반발·한 쌍의 유성.
글자만 봐도 세다.
리듬도 좋다.
게다가 어디든 써먹고 싶어진다.
스매시브라더스에서 가논도로프의 뒤돌아 마인권을 꽂을 때.
상대의 복귀 루트를 읽고 격추 타이밍에 기술을 깔아 둘 때.
동아리에서 스매시를 날릴 때.
서브를 넣을 때.
게임하다가 "여기에 기술을 놓으면 상대 죽겠다" 싶을 때.
그럴 때 속으로 이렇게 읊고 싶어진다.
용린·반발·한 쌍의 유성.
피해 보든가.
왜 이렇게까지 쓰고 싶어지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 영창은
신화, 물리, 천문 단어를 짧게 늘어놓아서 맞으면 끝나는 판을 위해 압축해 놓은 영창
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카시모전까지 같이 읽으면, 스쿠나의 강함은 "맨날 봐주면서 논다"가 아니다.
오히려 여유로운 얼굴 그대로, 위험한 상대에게는 곧바로 답을 내놓는다.
이 글에서는 스쿠나 영창의 어감, 헤이안 시대다운 느낌, 카시모전의 의미, 그리고 왜 스매시브라더스나 스포츠에 갖다 쓰고 싶어지는지를 정리해 본다.
"용린·반발·한 쌍의 유성"은 뭐가 이렇게 멋있을까?
먼저 글자를 쪼개서 보자.
용린
용의 비늘.
이 단어만으로 신화, 이형, 왕, 고대, 괴물의 느낌이 난다.
스쿠나의 "인간이 아닌 강자", "저주의 왕"이라는 이미지와 잘 맞는다.
"비늘"이라는 말도 좋다.
방어, 단단함, 생물의 느낌, 기괴함이 있다.
그냥 용이 아니라 용의 표면, 용의 몸 구조에 가까운 곳을 짚어 주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용린은 주술적이고 신화적인 질감을 맡고 있다.
반발
다음에 나오는 게 "반발".
여기서 갑자기 물리 시간 느낌이 난다.
힘과 힘이 부딪친다.
밀어낸다.
작용과 반작용.
대상과의 어긋남.
술식끼리의 간섭.
공간과의 반작용.
이런 뉘앙스가 풍긴다.
"용린"의 신화적인 느낌과 달리 "반발"은 이과 느낌이다.
이 섞임이 꽤 현대 배틀 만화답다.
주술인데도 어딘가 물리 현상처럼 보인다.
그래서 세련되게 들린다.
한 쌍의 유성
마지막은 "한 쌍의 유성".
"한 쌍"은 둘이 하나의 짝을 이룬다는 뜻이다.
짝, 대, 쌍, 페어.
"유성"은 천체 현상이다.
떨어진다.
빠르다.
피하기 어렵다.
하늘에서 온다.
궤도가 있다.
순식간에 달린다.
즉 "한 쌍의 유성"에는 두 갈래의 궤도, 두 번의 낙하, 피하기 힘든 파괴의 이미지가 있다.
게다가 "짝"이라는 예스러운 말과 "유성"이라는 우주적인 말이 나란히 붙는다.
여기서 영창의 스케일이 땅에서 하늘로 단숨에 올라간다.
신화 → 물리 → 천문, 3단 점프
이 영창이 듣기 좋은 건 아마 단어의 순서 덕도 있을 것이다.
용린
→ 신화, 생물, 이형
반발
→ 물리, 역학, 작용
한 쌍의 유성
→ 천문, 궤도, 낙하
즉,
신화의 몸 → 물리의 힘 → 천체의 궤도
라는 3단 점프로 되어 있다.
이게 강하다.
그냥 "벤다"라고 하는 것보다,
세계 자체를 끊기 위한 좌표, 구조, 힘, 궤도를 지정하는 것처럼 들린다.
작중 술식 이론에서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독자가 너무 단정 지으면 안 된다.
다만 어감만 보면,
세계를 베기 위해 신화적 재료, 물리적 반응, 천체의 궤도를 나열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필살기 앞에 붙는 한마디"로서 듣는 맛이 있다.
헤이안 시대에도 용이나 유성이라는 개념이 있었을까?
"헤이안 시대 사람이 왜 이렇게 세련된 말을 쓰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용이나 유성이라는 개념 자체는 헤이안풍 세계관과 꽤 잘 맞는다.
물론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우주 이해와는 다르다.
다만 고대와 중세 일본에서 천체 현상은 정치, 길흉, 음양도(음양오행에 바탕을 둔 일본식 점술·천문 체계), 천문도와 이어져 있었다.
헤이안 시대에는 음양료(역법, 천문, 점술 등을 맡은 관청)가 있어서 달력, 천문, 점 같은 일을 다뤘다.
별, 달, 일식, 월식, 혜성, 유성 같은 천변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나라나 천황에 관한 조짐으로 읽혔다.
그러니까 유성은 "우주가 예쁘다" 같은 현대적인 낭만만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는 이변, 흉조, 압도적인 것
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용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온 신화, 음양오행, 방위, 물, 날씨, 왕권의 상징과 궁합이 맞는다.
그래서 스쿠나의 영창에 "용"이나 "유성"이 나와도 헤이안 시대 기준으로 그렇게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헤이안의 천문, 음양, 신화 어휘를 현대 배틀 만화의 필살기 포맷으로 압축했다
고 보면 엄청 납득이 간다.
이 영창은 누가 생각해 낸 걸까?
여기는 두 겹으로 보면 좋다.
현실 쪽: 아쿠타미 게게 선생의 언어 감각
현실에서 『주술회전』은 아쿠타미 게게 선생의 작품이다.
따라서 독자 입장에서는 영창의 어감, 배치, 타이밍을 작가의 센스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물론 편집자와의 상의나 제작 과정의 세부는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적어도 작품으로서 독자에게 닿는 영창은 작가의 언어 연출의 일부다.
"용린·반발·한 쌍의 유성"은 짧은데도 정보량이 엄청나다.
이건 아쿠타미 선생의 단어 선택이 이긴 거라고 생각한다.
작중 쪽: 스쿠나의 술식 발동 프로토콜
작중에서는 스쿠나가 그 자리에서 시를 짓는다기보다, 술식의 출력과 조건을 맞추기 위한 주문, 영창, 발동 절차에 가깝다고 본다.
『주술회전』에는 영창, 장인(손으로 맺는 인), 속박(스스로 거는 제약), 술식 조건에 따라 기술의 출력이나 발동 조건이 달라지는 묘사가 있다.
그러니 그 영창도 그냥 폼 잡는 게 아니라,
세계를 가르는 참격을 발동하기 위한 기동 커맨드
로 읽는 게 자연스럽다.
정리하면,
현실에서는 작가의 시적 감각.
작중에서는 스쿠나의 술식 발동 프로토콜.
이 두 겹이 겹쳐 있다.
왜 일상이나 게임에 갖다 쓰고 싶어질까?
이 영창을 쓰고 싶어지는 건 단어의 뜻 때문만이 아니다.
리듬이 좋다.
짧다.
세 단어로 끝난다.
그런데 스케일은 크다.
게다가 마지막에 "유성"이 와서 낙하, 충돌, 격추의 느낌이 있다.
그래서 뭔가를 확실히 끝내러 갈 때 어울린다.
스매시브라더스에서 쓰고 싶어지는 장면
예를 들어 스매시브라더스에서 상대가 낭떠러지 밖에 있다.
복귀 루트가 보인다.
점프는 이미 없다.
회피도 다 썼다.
이쪽은 가논도로프다.
상대는 돌아와야만 한다.
이때 이쪽은 기술을 놓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 내면 상대가 죽기 쉽다.
여기서 휘두르면 말려들기 쉽다.
이 루트면 확정이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 봐.
이런 판에서
용린·반발·한 쌍의 유성.
은 너무 기분 좋다.
센 기술을 쓰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판이 다 보이기 때문이다.
이 영창은
다 읽은 뒤에 누르는 처형 버튼
으로 쓰기 좋다.
동아리나 스포츠에서 쓰고 싶어지는 장면
동아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스매시.
서브.
슛.
결정구.
상대 자세가 무너져 있다.
코스가 비어 있다.
치면 들어간다.
이럴 때 속으로 읊고 싶어진다.
초중고생이 속으로 배틀 만화 영창을 하면서 스매시를 날리는 건 꽤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영창은 자기 동작에 의미를 붙여 주니까.
그냥 서브가 아니게 된다.
그냥 스매시가 아니게 된다.
내 안에서는 필살기가 된다.
"봐주기 처형 영창"으로서의 강함
이 영창은 평범한 공격 전 대사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미 이길 길이 보일 때 읊는 말
이다.
상대가 도망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쪽은 못 도망친다고 읽었다.
맞으면 끝.
피할 수 있으면 피해 봐.
이런 느낌.
그래서 이름을 붙이자면,
봐주기 처형 영창
이다. (일본 게임 속어로 "나메프"는 얕보고 봐주면서 싸우는 것을 말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봐주기는 단순한 방심이 아니다.
진짜 강한 사람의 봐주기는 판이 보인다.
이길 길이 있다.
상대에게 도망갈 곳이 없다.
그래서 여유로워 보인다.
"용린·반발·한 쌍의 유성"에는 바로 이런 공기가 있다.
카시모전의 스쿠나는 봐주고 있었을까?
여기서 카시모와의 한판을 보자.
카시모는 스쿠나와 싸우기 위해 현대에 되살아난 전투광 캐릭터로, 술식 "환수 호박"을 가지고 있다.
이 술식은 전기적인 주력으로 육체를 일시적으로 인간 이상의 모습으로 바꾸는 일회용 술식으로 그려진다.
쓰고 나면 몸이 무너지기 때문에 오래 이어 갈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즉 카시모는
인생을 건 일회용 전력 모드
로 스쿠나에게 도전했다.
그럼 스쿠나는 봐주고 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카시모전의 스쿠나는 단순히 봐준 게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여유로운 얼굴 그대로 필요한 카드를 꺼내 가장 빨리 처리했다
에 가깝다.
카시모는 스쿠나에게 "회복 카드"를 쓰게 했다
카시모전에서 중요한 건 스쿠나가 진짜 모습으로 이행했다는 점이다.
고죠전 이후의 스쿠나는 꽤 소모된 상태였다.
반전술식(부상을 치유하는 술식)의 출력도 떨어져 있었다.
후시구로의 몸을 쓰는 상태라 육체적으로도 지쳐 있었다.
거기에 카시모가 온다.
카시모는 일회용 술식을 해방한다.
전기, 전자파 같은 성질을 가진 미지의 전력 모드.
오래 가진 않지만 뭘 해 올지 모른다.
스쿠나 입장에서 생각하면, 소모된 상태로 질질 끌어서 얻는 이득이 별로 없다.
게다가 이 뒤에는 고전(주술고전, 주술사를 키우는 학교) 쪽 주술사들이 기다리고 있다.
오코쓰, 이타도리, 히구루마, 마키 등, 싸움은 아직 이어진다.
그러니 카시모전에서 진짜 모습으로 이행한 건,
회복 카드를 쓰게 만들었다
라고도 읽을 수 있다.
카시모는 졌다.
하지만 스쿠나가 아껴 두던 변신·회복 자원을 쓰게 했다.
이건 그냥 크다.
잡졸 처리가 아니다.
스쿠나는 초조했을까?
여기는 미묘하다.
"사실은 초조했다"까지 말하면 좀 지나칠지도 모른다.
스쿠나는 겉으로는 꽤 여유로워 보인다.
상대를 관찰하고, 말을 주고받고, 강자로서 대응한다.
다만,
방심할 시간이 없었다
는 꽤 가깝다고 생각한다.
카시모는 일회용 전력 술식이다.
어떤 현상을 일으킬지 모른다.
시간을 끌면 미지의 공격이 늘어난다.
게다가 스쿠나는 고죠전 이후다.
이 뒤에도 연전이 있다.
그래서 스쿠나는 여유로운 얼굴을 하면서도 전술적으로는 속도를 올렸다.
이건 초조함이라기보다,
리스크 관리로서의 즉시 처리
다.
스쿠나의 무서움이 여기에 있다.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짜 성가신 상대에게는 제대로 최적해를 고른다.
즉 카시모전의 스쿠나는
봐주는 얼굴 그대로 진지하게 처리하는 타입
이었다고 생각한다.
"좀 더 이어졌으면 좋겠지만, 뭐 끝나겠지"
카시모전에는 약간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스쿠나는 강자와의 싸움을 즐긴다.
카시모도 인생을 걸고 스쿠나에게 도전한다.
그래서 스쿠나 속에는
오, 재밌네.
더 보고 싶은데.
그래도 이건 오래 못 가겠군.
그럼 전력으로 답해 주고 끝내자.
같은 감각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다정함이라기보다 강자에 대한 예의다.
카시모는 시간이 다 되면 몸이 무너지는 술식을 쓰고 있다.
스쿠나가 도망치거나 기다렸다면 더 얄미운 방식으로 이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왔으면 답한다.
전력이면 전력으로 되받는다.
끌 의미가 없으면 정면에서 끝낸다.
그래서 카시모전은
처형이라기보다, 단명하는 전력 모드에 대한 즉시 대답
이다.
"용린·반발·한 쌍의 유성"과 카시모전은 조금 다르다
여기서 정리해 보자.
"용린·반발·한 쌍의 유성"은 독자 눈에는 꽤 처형 영창 같다.
맞으면 끝.
피할 수 있으면 피해 봐.
판은 이미 보이고 있다.
반면 카시모전의 스쿠나는 단순한 봐주기 처형이 아니다.
카시모는 스쿠나에게 진짜 모습으로의 이행을 쓰게 했다.
미지의 일회용 술식을 갖고 있었다.
끌면 위험이 있었다.
스쿠나는 여유로운 얼굴로 일찍 처리했다.
즉,
영창=처형 전의 완성된 판 연출
카시모전=강자에 대한 즉시 대답·리스크 관리·최단 처리
이다.
둘 다 스쿠나답다.
하지만 결이 조금 다르다.
스매시브라더스에 빗대면 쉽다
스매시브라더스로 비유해 보자.
봐주기 처형 영창의 장면
상대는 낭떠러지 밖.
복귀 루트가 고정되어 있다.
이쪽은 가논.
상대에게 점프는 없다.
공중 회피도 막았다.
이쪽은 뒤돌아 마인권을 깔아 둔다.
이게
용린·반발·한 쌍의 유성.
피해 보든가.
의 장면이다.
이미 다 읽었다.
맞으면 끝.
못 피하면 죽는다.
카시모전의 장면
상대가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평소보다 빠르다.
뭘 할지 모른다.
내버려 두면 귀찮다.
이쪽도 이 뒤에 연전이 있다.
이런 경우에는 마인권으로 노는 것보다 확정 격추 기술을 깐다.
이게 카시모전의 스쿠나다.
여유로운 얼굴은 하고 있다.
하지만 실무는 최단 처리.
이 영창은 왜 초중고생에게 꽂힐까?
이런 영창은 아이들이나 학생에게도 잘 꽂힌다.
이유는 자기 동작을 필살기로 만들 수 있어서다.
서브를 넣는다.
스매시를 친다.
슛을 쏜다.
게임에서 기술을 쓴다.
시험에서 답을 쓴다.
체육 시간에 뛰어나간다.
그 전에 속으로 영창한다.
그러면 그냥 동작이 이야기가 된다.
초중고생만이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다.
스매시브라더스에서 격추 기술을 깔 때 속으로 영창하면, 그냥 기술 휘두르기가 처형 연출이 된다.
이 변환이 즐겁다.
사람은 자기 행동에 의미나 연출을 붙이는 걸 좋아한다.
"용린·반발·한 쌍의 유성"은 그걸 위한 말로는 너무 강하다.
응용 템플릿
이 영창을 일상이나 게임에 응용한다면, 쓰는 조건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써도 되는 장면
- 판이 보인다
- 상대의 도망갈 곳이 적다
- 맞으면 끝난다
- 내 안에서 다 읽었다는 느낌이 있다
- 강공격, 결정구, 격추 기술, 서브 직전
- 살짝 봐주는 느낌을 내고 싶다
- 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읽고 있다
어울리는 장면
- 스매시브라더스의 벼랑 사냥(낭떠러지 밖의 상대를 노리는 것)
- 가논의 뒤돌아 마인권
- 테니스, 배드민턴의 스매시
- 배구의 스파이크
- 탁구의 강타
- 축구의 슛
- FPS의 예측 사격
- 격투 게임의 확정 반격
- 장기, 체스의 메이트 수순
- 일에서 빈틈없이 다듬어 낸 자료 제출
어울리지 않는 장면
- 아무것도 못 읽었다
- 그냥 자포자기다
- 실패하면 보통 부끄럽다
- 주변에 들리면 사회적으로 위험하다
- 업무 회의에서 소리 내어 읊기
속으로 쓰는 게 안전하다.
정리: "피해 보든가"는 처형 영창. 하지만 카시모전은 즉시 대답
"용린·반발·한 쌍의 유성"이 멋진 건 단순한 중2병 단어라서가 아니다.
거기에는
- 용린의 신화성
- 반발의 물리성
- 한 쌍의 유성의 천문성
- 세 단어의 리듬
- 세계를 가르는 참격과의 궁합
- 맞으면 끝이라는 처형감
- 속으로 응용하기 쉬운 짧음
이 있다.
그래서 게임이나 스포츠에서 쓰고 싶어진다.
한편 카시모전의 스쿠나는 단순한 봐주기 처형이 아니다.
카시모는 일회용 술식으로 스쿠나에게 도전했고, 스쿠나에게 진짜 모습으로의 이행이라는 회복 카드를 쓰게 했다.
스쿠나는 여유로운 얼굴이었지만 끌어서 얻을 이득은 적었다.
미지의 전력 모드를 상대로 방심하고 놀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카시모전은
강자에 대한 즉시 대답. 여유로운 얼굴의 최단 처리. 봐주기가 아니라 진짜 고수의 리스크 관리.
그리고 영창은
판이 보였을 때의 처형 연출.
스매시브라더스에서 상대의 복귀를 읽어 냈을 때, 속으로 읊으면 된다.
용린·반발·한 쌍의 유성.
피해 보든가.
이걸로 상대가 날아가면 이미 이긴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