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내세우는 이상적인 조직론과 개인의 가치관이 반드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도전하자.
직장을 개선하자.
사람을 키우자.
특정 개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자.
책임을 지자.
팀으로 성과를 내자.
이런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구호가 아니다.
문제는 실제 현장 운영에 구멍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책임 범위가 불분명하다.
누가 결정하는지도 불분명하다.
업무에 필요한 시간이 배정되어 있지 않다.
연락 수단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교육에는 대본이나 표준 절차가 없다.
명확한 작업 절차나 평가 기준도 없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의식’, ‘주도성’, ‘책임감’으로 해결하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좋은 조직 철학도 실행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진지하고 유능한 사람일수록 시스템의 빈틈을 더 많이 떠안게 된다.
직장에서 ‘의식’을 반복해서 말한다면, 설계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
직장에서 ‘의식’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자주 등장한다면, 실제로는 업무 시스템이 충분히 설계되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업무라면 적어도 다음 질문에는 답이 있어야 한다.
- 무엇을 달성하려는가?
- 누가 책임자인가?
- 어느 수준이면 완료로 볼 것인가?
-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 문제가 생기면 무엇을 고칠 것인가?
- 재발을 막는 장치는 무엇인가?
이런 요소가 먼저 존재한 뒤에야 개인의 ‘의식’이나 주도성이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어떤 직장에서는 순서가 뒤집혀 있다.
절차가 없다.
책임자가 명확하지 않다.
결정권자도 명확하지 않다.
교육 체계도 없다.
시간도 배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직원에게는 “좀 더 의식을 가져라”라고 말한다.
이것은 개선이 아니다.
구조적인 빈틈을 개인의 성실함으로 메우게 만드는 방식이다.
성실함은 중요하다.
하지만 성실함 그 자체가 성과는 아니다.
성실함을 성과로 바꾸려면 구조가 필요하다.
대본.
절차.
기준.
책임 경계.
기록.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일을 체계화하려고 한다.
그런 사람에게 “의식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핵심을 놓친 것이다.
애매한 업무를 계속 주워 담는 사람은 왜 결국 소진되는가?
책임자가 정해지지 않은 회색지대 업무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누군가 눈치챈 사람이 처리하면 될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위험하다.
원래 담당자는 없다.
그런데 아무도 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먼저 알아챈 사람이 주워 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이 담당자로 취급된다.
주변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주워 든 사람만 답답해진다.
그리고 다음 회색지대 업무도 다시 그 사람에게 간다.
이 글에서는 이런 현상을 ‘선의 세탁’이라고 부르겠다. 원래 조직이 정해야 할 책임을, 누군가의 선의가 계속 대신 떠안으면서 정상적인 업무처럼 보이게 되는 상태다.
성실한 사람일수록 처음에는 이런 일을 주워 들기 쉽다.
하지만 정의되지 않은 업무를 계속 떠안으면 결국 이런 생각이 쌓인다.
왜 다른 사람은 하지 않을까?
왜 나만 알아챌까?
왜 책임은 나만 지게 될까?
그렇게 사람이 소진된다.
역할 기대와 맞지 않는 ‘부당한 업무(illegitimate tasks)’에 관한 연구에서는 이런 업무가 낮아진 자기평가, 조직에 대한 분노, 번아웃과 관련될 수 있다고 보고한다. 또한 업무 부담과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의 균형을 설명하는 직무요구-자원(Job Demands-Resources, JD-R) 모델에서도 요구 수준이 높고 자원이 부족한 상태는 번아웃 위험을 키울 수 있다.
따라서 답은 “더 의식적으로 더 많이 주워라”가 아니다.
회색지대 업무를 누군가가 몰래 흡수하지 않아도 돌아가도록 일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 답이다.
경계를 세우는 사람이 왜 차갑게 보일 수 있을까?
어려운 점은 경계를 분명히 하는 사람이 단기적으로는 차갑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료는 제공한다.
대본도 만든다.
평가표도 만든다.
진행 방법도 보여 준다.
하지만 최종 판단과 결과 책임까지 대신 떠안지는 않는다.
도움을 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느낄 수 있다.
좀 더 도와줄 줄 알았다.
왜 거기까지만 도와주지?
우리도 진지하게 하고 있는데.
버림받은 것 같다.
차갑다.
하지만 이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다.
매번 모든 책임을 대신 흡수하면 그 일이 상대의 일이 되지 않기 때문에, 책임을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대신 전부 해 주는 것이 가장 쉽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상대는 스스로 일을 굴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공식 책임자가 아닌 사람이 책임만 떠안게 된다.
조직은 “유능한 사람이 빈틈을 메우면 된다”고 학습한다.
결국 누구에게도 이득이 아니다.
그래서 경계가 필요하다.
그것은 냉정함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양쪽 모두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상호 이익의 설계다.
“우리 교육에 함부로 끼어들지 마라”라고 한다면 교육 책임도 함께 져야 하지 않을까?
교육의 주도권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 자체는 문제없다.
하지만 주도권을 갖는다면 교육 방침, 진행 판단, 결과 책임도 함께 가져야 한다.
허락 없이 교육하지 마라.
하지만 사람은 키워라.
책임도 져라.
성과도 내라.
의식 수준도 관리해라.
이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권한을 원한다면 책임도 함께 가져야 한다.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권한의 범위도 제한되어야 한다.
이 부분이 계속 모호하면 유능한 사람이 또다시 조직의 흡수재가 된다.
외부에는 차분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식 차이를 피하기 위해 앞으로의 교육 방침과 진행 판단은 담당 팀에서 일원화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미 공유한 자료, 대본, 평가표의 범위에서 지원하겠습니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해도 된다.
‘의식’으로 운영하고 싶은 팀이라면 그 방식의 책임까지 포함해 직접 운영하면 된다.
지역에서 취업한 것 자체가 실수였을까?
이런 상황에 놓이면 “지역에서 취업한 것이 실수였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확히는 조금 다르다.
지역 일자리 자체가 반드시 실수였던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얻은 경험도 많다.
인사 실무.
계약 관리.
파견 인력 갱신 업무.
교육 설계.
품질관리(QC).
Excel과 VBA.
AI 활용.
애플리케이션 개발.
글쓰기.
책임 범위 정리.
대본 작성.
문서화와 증적 관리.
이런 경험은 모두 다른 조직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진짜 문제는 폐쇄적인 직장에서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 설계자로 평가받지 못하고, 조직의 구멍을 메우는 흡수재로만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역에서 취업한 것이 실수였다”라고 단순화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폐쇄적인 소규모 조직의 운영체제 안에서 이상적인 업무 방식을 구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논밭에서 F1 자동차를 달리게 한다고 해서 자동차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달릴 도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약점을 외부 도구로 보완할 수 있게 됐다면 이동할 때가 아닐까?
과거에는 외부로 옮기는 일이 위험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즉석에서 말하기.
분위기 읽기.
단기 기억.
모호한 책임 범위.
성과를 보여 주는 방법.
사후적으로 추가되는 비판에 대응하기.
이런 부분이 약점이면 일을 잘하더라도 외부에 자신의 가치를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를 수 있다.
AI를 사고 보조 도구로 쓸 수 있다.
대본을 만들 수 있다.
Markdown 문서를 만들 수 있다.
생각을 기사나 글로 정리할 수 있다.
채팅에 기록을 남길 수 있다.
애플리케이션 개발 경험을 포트폴리오로 만들 수 있다.
경험을 이력서나 경력기술서로 바꿀 수 있다.
자신의 강점을 언어화할 수 있다.
책임의 경계도 그을 수 있다.
즉, 예전에는 개인 안에만 있던 약점 상당 부분을 외부 도구와 구조로 보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일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설명하고, 증명하고, 방어하는 데 약한 사람이었을 수 있다.
이제는 일을 구조화하고, 결과물로 만들고, 외부에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동하기에 좋은 시점이다.
결론: ‘의식의 나라’에서 ‘설계가 통하는 나라’로
결론은 단순하다.
회사의 이상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론 자체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진지하게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거부하는 것은 설계되지 않은 구조적 구멍을 개인의 의식과 성실함으로 메우게 만드는 현장 운영체제다.
그 환경에서 이상적인 업무 방식을 구현하려는 사람은 설계자가 아니라 흡수재가 되기 쉽다.
그래서 옮기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것은 도망이 아니다.
구멍을 메우는 사람에서,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멘도이짱’식으로 표현하면 이것은 단순히 어둠의 마법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보호 결계를 더 적절한 장소에 다시 치는 일이다.
‘의식’만으로 날고 싶은 팀이라면 그렇게 해도 된다.
당신은 이미 다리를 만들었다.
그들이 그 다리를 쓰지 않기로 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결정이다.
이제는 설계가 평가받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참고 자료 (6건)
- Semmer, N. K., et al. “Illegitimate tasks as a source of work stress.” Work & Stress / PMC.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4396521/
- Schaufeli, W. B. “Applying the Job Demands-Resources model.” https://www.wilmarschaufeli.nl/publications/Schaufeli/476.pdf
- Deci, E. L., Olafsen, A. H., & Ryan, R. M. “Self-Determination Theory in Work Organizations.” https://selfdeterminationtheory.org/wp-content/uploads/2017/03/2017_DeciOlafsenRyan_annurev-orgpsych.pdf
- McAnally, K., et al.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Workplace Outcomes.”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1200516/
- Edmondson, A. C. “Psychological Safety Does Not Equal Anything Goes.” https://amycedmondson.com/category/psychological-safety/
- World Health Organization / ICD-11 관련 직업성 번아웃 설명. 번아웃은 일반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와 관련된 직업적 현상으로 다뤄지며, 탈진, 일에 대한 냉소 또는 심리적 거리감, 직업 효능감 저하 등의 특징으로 설명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