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뿐 아니라 하루도 대화도 끝낼 수 있게 됐다
'처리 완료'로 넘기는 힘은 머릿속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일할 때도, 대화할 때도, 하루를 마무리할 때도
오늘은 여기까지 퇴근 시간이다 나머지는 내일 그럼 나 먼저 갈게
하고 딱 끊을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 아직 말할 수 있는데
- 조금 더 할 수 있는데
- 어중간하게 끊으면 미안한데
- 상대가 아직 남아 있는데
- 완전히 납득한 다음에 끝내고 싶은데
이런 마음 때문에 끝내는 시점이 자꾸 늦어졌다.
이제는 끝내는 조건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칼퇴하는 사람'은 직장 분위기까지 바꾼다
잡담을 하다가도 퇴근 시간이 되면
아, 그럼 나 갈게
하고 퇴근한다.
옆에서 보면 좀 웃기기도 하다.
하지만 이건 그냥 캐릭터가 아니다.
그 사람은 직장에
정시에 퇴근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는 실제 사례를 매일 보여 주고 있다.
첫 한 사람이 퇴근하면 다른 사람도 퇴근하기가 쉬워진다.
- 저 사람도 가는데
- 혼나지 않았고
- 일도 안 무너졌고
- 나도 가도 되겠구나
하는 안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주변 사람들도 정시에 퇴근하게 된다.
거창한 개혁 회의를 열지 않아도 행동으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칼퇴 캐릭터
가 아니라
퇴근해도 안전하다는 걸 매일 몸으로 보여 주는 사람
이 된 것이다.
행동이 빠른 건 판단과 마무리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몸에 이상이 느껴졌을 때도
좀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 그날 안에 내과에 간다 → 수치를 잰다 → 의사에게 전달한다 → 급한 상태인지 확인한다 → 그 뒤로는 정기적인 경과 관찰로 바꾼다
이렇게 움직였다.
불안을 며칠씩 끌고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상 신호를 무시하고 '기분 탓'으로 덮어 버린 것도 아니다.
신호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전문가에게 맡기고, 결과를 확인하고, 급하지 않으면 지켜보는 쪽으로 넘긴다.
이 흐름은 꽤 합리적이다.
'바로 행동하는 것'과 '조급하게 움직이는 것'은 다르다
행동이 빠르면 조급해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다음 두 가지는 별개다.
조급하게 움직이기
- 불안을 없애려고만 움직인다
- 정보가 부족한 채로 결정한다
- 계속 다른 행동으로 옮겨 간다
- 끝내는 조건이 없다
- 몸에 가는 부담을 무시한다
빠르게 처리하기
- 이상을 알아챈다
- 확인할 곳을 고른다
- 한 번 행동한다
- 결과를 지켜본다
- 계속할지 끝낼지 정한다
내가 지향하는 건 후자다.
알아차리기 → 행동 → 관찰 → 결과 챙기기 → 종료 또는 전환
이런 짧은 순환이다.
직장 내 괴롭힘 건에서도 똑같이 했다
직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도
- 느낌이 이상하다는 걸 그냥 넘기지 않았다
- 있었던 일을 기록했다
- 발언과 행동을 종류별로 나눴다
- 개인의 호불호가 아니라 구조로 정리했다
- 압도적인 분량의 목록으로 만들었다
- 정식 창구에 제출했다
- 부서 이동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여기까지 갔다.
이건 감정적으로 맞받아 소리를 지른 것도, 그냥 참고 버틴 것도 아니다.
내가 가진
- 구조를 보는 힘
- 글로 정리하는 힘
- 방대한 정보를 목록으로 바꾸는 힘
- 어디에 제출할지 고르는 힘
을 나 자신을 지키는 데 썼다.
그동안 직장의 문제를 풀 때 쓰던 능력을 나를 지키는 쪽으로 돌릴 수 있었다.
괴로웠지만 공략하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그때는 꽤 지쳐 있었다.
사생활도 일도 잘 풀리지 않았다.
태도도 나빠졌다.
늘 짜증이 났다.
머리가 빠질 것 같을 만큼 소진됐다.
그래도 돌아보면
썩어 빠진 구조를 꿰뚫어 보고 → 증거를 모으고 → 빠져나갈 수 없게 글로 정리하고 → 정식 경로로 올리고 → 결과를 얻는다
이 공략 과정은 재미있었다.
환경이 좋았다는 뜻은 아니다.
괴로움과 재미를 섞지 않는 게 좋다.
- 환경은 최악이었다
- 실제로 지쳐 버렸다
- 내 태도도 거칠어졌다
- 그 와중에 공략하는 능력을 썼다
- 결과를 얻어 낸 부분은 재미있었다
전부 동시에 맞는 말이다.
몸만은 머리보다 문을 늦게 닫는다
생각이나 일, 대화는 끝내는 조건을 정하기 쉽다.
하지만 몸은
오늘은 여기까지
라고 말하는 순간 바로 멈추지는 않는다.
흥분. 두근거림. 피로. 눈의 피로. 강한 자극을 찾는 느낌.
이런 것들은 조금 늦게까지 남는다.
그래서
머리는 영업을 끝냈는데 몸은 아직 뒷정리 중
인 시간이 필요하다.
이때 다시 혼자 인생 회의를 시작하면 몸이 닫히기도 전에 다음 처리가 들어와 버린다.
그래서 앞으로의 과제는
- 머리의 마무리
- 일의 마무리
- 대화의 마무리
- 몸의 마무리
를 따로따로 다루는 것이다.
정리
이 몇 달 사이에 커진 건 단순한 처리 속도가 아니다.
끝내는 조건을 스스로 정하고, 행동과 관찰을 하나의 순환으로 닫는 힘
이다.
이 힘이
- 같은 생각 되새기기
- 일
- 정시 퇴근
- 건강 관리
- 괴롭힘 대응
- 하루 마무리
로 옆으로 넓게 퍼졌다.
행동이 빠른 건 시작이 빨라서만이 아니다.
끝내는 것도 빨라졌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