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꽃』은 “이런 나를 지워 버리고 싶다”를 어떻게 끝내는가 ― 작가도 답을 모른 채 시작해, 파멸 뒤에서 “안고 살아가기”에 도착한 이야기

『악의 꽃』은 가스가가 사에키의 체육복을 충동적으로 훔치면서 시작한다.[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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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스포일러 주의. 중학교 편, 고등학교 편, 결말까지 다룬다. 결론은 “체육복을 훔쳐도 자기수용하면 괜찮다”가 아니다. 체육복은 돌려주자. 여기서 다루는 것은 행동 밑에 있는 ‘싫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다.

1. 체육복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나는 싫다”가 아닐까?

『악의 꽃』은 가스가가 사에키의 체육복을 충동적으로 훔치면서 시작한다.[1]

엄청난 출발이다. 그러나 작품이 오래 추적하는 문제는 도난품만이 아니다.

가스가는 자신이 평범한 반 친구들과 다르다고 믿고 싶어 한다. 세련되고 문학적인 자신이고 싶다. 성적 욕망, 비겁함, 추한 충동은 ‘진짜 나’와 분리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자기 안에 있다.

뿌리에는 이런 생각이 있다.

“이런 나는 싫다. 더 깨끗하고 진짜인 내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체육복은 문제 전체라기보다 지나치게 화려한 기폭 장치다.

중학생의 자기혐오에 만화용 폭약을 추가했다.

2. 왜 가스가와 나카무라는 ‘저편’으로 가고 싶어 할까?

가스가는 처음 사에키를 이상화한다.

깨끗한 사에키, 문학을 읽는 나, 평범한 아이들과 다른 특별한 나. 그 세계에 있으면 더러운 자신에게서 달아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나카무라는 반대 방향에서 온다. ‘평범한’ 세계 자체를 싫어하고 그것을 부숴 ‘저편’으로 가고 싶어 한다. 고단샤의 7권 소개도 두 사람이 ‘저편’에 가기 위한 마지막 무대에 선다고 설명한다.[2]

겉으로는 정반대다.

가스가: 깨끗해지고 싶다.

나카무라: 전부 더럽히고 부수고 싶다.

하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지금 여기 있는 나와 세계로는 안 된다. 다른 곳에서야 진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서로 강하게 끌린다.

“평범해져라”와 “평범함을 다 부숴라”는 반대처럼 보이지만, 둘 다 지금의 자신을 그대로 두지 못한다.

3. 왜 ‘전부 부수기’까지 가도 해결되지 않을까?

중학교 편의 클라이맥스는 파멸로 향한다.

오시미 슈조 본인도 그 마지막 큰 사건을 파멸의 상징으로 그렸다고 설명했다.[3]

하지만 더 중요한 말은 그다음이다. 그는 『악의 꽃』의 가장 큰 주제가 파멸 뒤에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3]

이 순간 작품은 갑자기 현실적이 된다.

중학생 머릿속 영화에서는

“전부 부수면 엔딩!”

이 되기 쉽다.

현실은

다음 날 아침이 온다.

가족도, 기억도, 결과도, 자신도 남는다.

파멸은 ‘저편’으로 가는 순간이동 장치가 아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편은 더 어려운 질문으로 간다.

“그것도 나였다. 이제 어떻게 살지?”

4. ‘빛’이 아니라 ‘물’로 읽으면 왜 전체가 이어질까?

애니메이션 ED 「꽃 -a last flower-」에 대해 오시미는 마지막의 ‘물’이 무엇인지 찾으면서 『악의 꽃』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4]

공식 사전이 아니라 작품 해석으로,

빛 = “이렇게 되면 옳아진다”는 이상.

물 = 이미 여기 존재하는 자신이 계속 살기 위해 필요한 기반.

으로 읽을 수 있다.

가스가는 계속 빛을 쫓는다. 사에키, 문학소년이라는 자기상, 나카무라와 가는 ‘저편’까지.

하지만 마지막에 필요한 것은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바뀌는 빛이 아니다.

과거 기록을 삭제하지 않고도 그 기록을 가진 사람으로 삶을 만들 수 있게 하는 물이다.

꽃을 다른 종으로 갈아치우지 않는다.

먼저 지금 여기 핀 꽃을 인정한다.

5.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슨 행동이든 OK라는 뜻일까?

아니다. 이 구분이 중요하다.

감정이나 충동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그 충동대로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도망가고 싶다.”

“전부 부수고 싶다.”

“누군가를 깔보고 싶다.”

이런 감정이 떠올라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존재하면 안 된다”라고 두 번째 공격을 가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생각했으니 해도 된다”도 아니다.

정리하면:

  1. 지금 내가 이렇게 느낀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2. 감정의 존재 자체를 범죄로 만들지 않는다.
  3. 행동은 따로 선택한다.
  4. 감정을 영원히 재판하지 말고 지나가게 둔다.

한 줄로 말하면:

“확인했다. 이런 나도 있다. OK. 그래서 이제 뭘 하지?”

이렇게 읽으면 『악의 꽃』은 악을 긍정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면을 존재째 삭제하려는 시도를 그만두는 이야기다.

6. ‘알아차리고 OK로 흘려보낸다’는 생각은 심리학적으로 이상할까?

오시미가 심리치료 교재로 만화를 그렸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에는 가까운 개념이 있다. 싫은 생각과 감정을 곧바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평가하기보다, 먼저 현재 존재하는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1,003명 조사, 156명 실험, 222명 6개월 추적을 결합한 연구에서는 생각과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낮은 부정적 정서 반응과 이후의 심리적 건강과 관련됐다.[5]

여기서도 수용은 찬성이 아니다.

분노를 알아차리는 것과 때리는 것은 다르다.

도망가고 싶음을 알아차리는 것과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다르다.

감정은 존재하게 두고 행동만 선택할 수 있다.

7. 작가는 처음부터 이 답을 알고 있었을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몰랐다.

2026년 인터뷰에서 오시미는 연재 시작 때 가스가가 체육복을 훔치고, 이상한 여자아이에게 들켜 협박받는 설정 정도까지 생각하고 시작했다고 말했다. 본인도 그 뒤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의 출발이었다.[6]

또 창작 동기에 대해, 자신이 사춘기에서 무엇인가 빠져나왔다는 감각은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만화로 만들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14세 소년소녀가 사춘기를 빠져나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자신의 옛 상처와 폐쇄감을 다루는 작업도 됐다고 한다.[7]

즉,

“정답은 자기수용입니다. 11권 동안 설명하겠습니다.”

가 아니다.

이름 없는 문제를 캐릭터에게 던지고, 순수함도 시도하고, 파멸도 시도하고, 그래도 인생이 이어지는 것을 본 뒤 “그럼 어떻게 살지?”로 간 것이다.

게다가 2026년의 오시미는 새 드라마를 보고 당시 자신이 가스가와 나카무라를 해석한 방식이 틀렸을지도 모른다고까지 말했다.[6]

작가 책상에도 완전 공략집은 없었다.

8. 마지막의 가장 큰 변화는 ‘다른 사람의 내면을 상상할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가스가는 마지막에 공장 초기화된 인간이 되지 않는다.

과거는 남는다.

나카무라도 “이해 불가능한 미친 사람”으로 처리되지 않는다.

2019년 대담에서 오시미는 가스가가 마지막에 이야기를 쓰는 것을 희망으로 그렸다고 말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가스가가 나카무라의 내면을 상상해 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8]

같은 대담에서 그는 나카무라를 단순히 미친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밖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도 그 사람만의 필연성과 고통이 있다고 설명했다.[8]

초기의 가스가에게 타인은 자기 이야기의 역할이 되기 쉽다.

사에키 = 여신.

나카무라 = 저편으로 데려가는 존재.

하지만 마지막에는

“이 사람에게는 이 사람 안에서 보이는 세계가 있다.”

를 상상할 수 있다.

9. 그래서 결론은 ‘검은 꽃을 뽑지 말고 물을 줘라’가 된다

가장 짧게 정리하면:

이런 나는 싫다.

→ 더 깨끗한 내가 되고 싶다.

→ 안 된다. 그럼 다 부수고 저편으로 가자.

→ 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

→ 그것도 나였다.

→ 존재까지 지울 필요는 없다.

→ 행동은 지금부터 선택할 수 있다.

→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 내면이 있다.

그래서 “나쁜 부분을 없애 예쁜 꽃이 되자”가 아니다.

검은 흙에서 이상한 꽃이 피었다. 이미 피었다. 이제 이 꽃을 어떻게 살게 할까?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작가도 처음부터 답을 들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같은 인간 문제를 작가와 독자가 다른 경로로 생각하다 비슷한 곳에서 만난다.

반전 맞히기보다 이쪽이 더 재미있다.

체육복 단계는 생략해도 된다.


  1. 講談社『惡の華』作品ページ — 作品の公式あらすじ、春日が佐伯の体操着を盗む導入。 kodansha.co.jp
  2. 講談社『惡の華(7)』 — 春日と仲村が「向こう側」へ行くため最後の舞台に立つ展開の公式紹介。 kodansha.co.jp
  3. コミックナタリー (2019), 「映画『惡の華』特集 押見修造×井口昇監督インタビュー」 — 中学編ラストを破滅の象徴として描いたこと、「破滅の先にも人生は続く」が作品の中心テーマであること。 natalie.mu
  4. BARKS (2013), 「『惡の花譜』リリース記念 『惡の華』原作者の押見修造が全曲試聴&各曲へコメント発表」 — 「花 -a last flower-」の絶望・希望と、最後の「水」を求めて作品を描くという押見のコメント。 barks.jp
  5. Ford BQ, Lam P, John OP, Mauss IB. The psychological health benefits of accepting negative emotions and thoughts: Laboratory, diary, and longitudinal evide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2018;115(6):1075-1092. PMID: 28703602 pubmed.ncbi.nlm.nih.gov
  6. テレ東プラス (2026), 「『惡の華』漫画家・押見修造、ドラマ化に…」 — 連載開始が見切り発車だったこと、2026年時点で過去の人物解釈を更新していること。 tv-tokyo.co.jp
  7. テレ東プラス (2026), 「“あの感情は何だったのか?”押見修造、漫画に描くことは『思春期に抱えた傷の治療』」 — 精神的自伝、14歳の少年少女が思春期を抜け出るまでというテーマ、何から抜けたのか分からないから漫画にしたという創作動機。 tv-tokyo.co.jp
  8. ORICON NEWS (2019), 「ふみふみこ&押見修造対談(後編)」 — 春日が最後に物語を書くことを希望とした理由、仲村の内面を想像する成長、「狂っている人はいない」という押見の考え。 oricon.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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