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급식은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요?
미역 밥. 데리야키 치킨. 카레. 튀김빵. 부드러운 면. 유리병 우유. 남은 우유를 걸고 하던 가위바위보. 추가 배식을 받으려고 선 줄.
추억 보정이 있긴 할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회사의 맛없는 구내식당이나, 원하든 말든 월급에서 떼어 가는 종이 맛 점심과 비교하면 학교 급식은 꽤 완성도가 높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게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학교 급식은 그냥 대량으로 만든 음식이 아닙니다.
꽤 제대로 '설계된 급식'이었습니다.
학교 급식은 '영양'만 생각한 게 아니다
학교 급식은 점심에 칼로리만 채워 주는 제도가 아닙니다.
일본 문부과학성(교육부에 해당하는 정부 부처)은 학교 급식을 '살아 있는 교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학교 급식은 영양 균형뿐 아니라 식사에 대한 이해, 바람직한 식습관, 지역의 음식 문화, 자연과 생산자에 대한 감사, 식량의 생산·유통·소비에 대한 이해 같은 것을 배우는 자리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교 급식에는 여러 가지 목적이 겹쳐 있습니다.
- 점심으로 먹는다
- 영양을 섭취한다
- 음식 문화를 배운다
- 지역 식재료를 알게 된다
- 계절을 느낀다
- 먹는 즐거움을 경험한다
- 친구와 함께 먹는다
- 편식과 식습관의 폭을 넓힌다
- 식사를 통해 생활 리듬을 바로잡는다
목적이 이렇게 많으면 '영양표만 통과한 밥'으로는 곤란합니다.
아이들이 실제로 먹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학교 급식은 영양뿐 아니라 식단, 맛, 계절감, 즐거움까지 고려해서 만듭니다.
누가 맛과 반응을 지켜볼까?
학교 급식은 식당처럼 매출만으로 피드백이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반응을 살피는 장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급식 시설에서는 섭취 현황 조사, 잔반 조사, 기호 조사, 검식(아이들이 먹기 전에 미리 맛보고 확인하는 일) 기록 분석 같은 것을 합니다.
다시 말해 먹는 사람이 얼마나 먹었는지, 어떤 메뉴가 남았는지, 어떤 맛이 받아들여지는지를 확인하는 구조가 있다는 뜻입니다.
학교 급식에는 이런 사람들이 관여합니다.
- 영양교사(영양 지도를 맡은 교사)
- 학교 영양사
- 조리원
- 담임 교사
- 교장·교감 등 관리자
- 교육위원회
- 학교급식센터(여러 학교의 급식을 한꺼번에 만드는 대형 조리 시설)
- 학교급식운영위원회 등의 관계자
- 학부모 시식회나 설문에 참여하는 학부모
- 실제로 먹는 학생들
아이들은 솔직합니다.
맛있으면 더 달라고 합니다. 맛없으면 남깁니다. 인기 메뉴는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인기 없는 메뉴는 잔반이 늘어납니다.
이런 반응이 완전히 무시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모든 학교에서 이상적으로 개선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고, 조리 방식도 다르고, 급식센터에서 한꺼번에 만드는지 학교마다 자체 조리실에서 만드는지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영양교사와 조리원의 노력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도 학교 급식에는 적어도 '먹는 사람의 반응을 보려는 장치'가 있습니다.
이 점이 종이 맛 강제 식당과 크게 다른 부분입니다.
잔반은 꽤 솔직한 피드백이다
아이들이 남기느냐 마느냐는 꽤 솔직한 신호입니다.
어른들이 쓰는 설문보다 더 솔직할지도 모릅니다.
급식을 남기는 이유는 하나가 아닙니다.
- 입맛에 안 맞는다
- 양이 많다
- 먹어 본 적이 없다
- 모양이 마음에 안 든다
- 식감이 싫다
- 시간이 부족하다
- 친구들과의 분위기
- 몸 상태
- 집에서 먹는 맛과 다르다
그래서 잔반이 많다고 바로 '맛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래도 잔반은 중요한 데이터입니다.
어떤 메뉴가 잘 먹혔는지. 어떤 메뉴가 남았는지. 학년에 따라 다른지. 계절에 따라 다른지. 새 메뉴가 받아들여졌는지.
이런 걸 살피면 식단 개선과 식생활 교육으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학교 급식은 먹는 사람의 반응이 눈에 보이는 식사입니다.
이 점에서, 남겨도 매출이 줄지 않는 강제 식당과는 다릅니다.
왜 메뉴 종류가 그렇게 다양했을까?
학교 급식은 종류가 꽤 다양합니다.
매일 같지 않습니다.
쌀밥. 빵. 면. 국물 요리. 생선. 고기. 채소. 콩. 해조류. 과일. 디저트. 향토 요리. 명절·행사 음식. 세계 각국의 요리. 지역 식재료를 쓴 식단.
왜 이렇게 다양할까요?
문부과학성의 학교 급식 실시 기준에는 지역 농산물 활용, 전통 음식 문화, 세계의 음식 문화, 요리 이름과 식재료 이름이 분명한 식단 짜기 등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식단을 짤 때는 식품 조합과 조리법을 개선해 학생들의 편식을 없애도록 배려할 것, 매력적이고 맛있는 급식이 되도록 조리 기술 향상에 힘쓸 것, 조리 후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알맞은 온도로 제공할 것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교 급식은 '영양만 채우면 된다'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식재료를 접해 보고, 향토 요리를 접해 보고, 음식 문화를 배우고, 계절을 느끼고, 낯선 음식도 조금씩 경험해 보는 것.
이런 교육 목적이 있어서 메뉴가 넓어집니다.
미역 밥도, 데리야키 치킨도, 카레도 단순한 인기 메뉴가 아니라 다양한 식단 구성 속에 놓여 있던 것입니다.
미역 밥은 왜 강할까
미역 밥이 맛있었던 이유는 꽤 알기 쉽습니다.
쌀. 짭짤함. 미역의 감칠맛. 적당한 향. 먹기 편함. 주식다운 안정감. 반찬과도 잘 어울림.
급식의 미역 밥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쌀과 짠맛과 해조류의 감칠맛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아이들도 먹기 쉽습니다.
식어도 비교적 맛있고, 대량으로 만들어도 잘 안 퍼지고, 더 먹기 쉽고, 반에서 인기를 얻기 쉽습니다.
꽤 강한 메뉴입니다.
흰밥이면 좀 심심했을 날도 미역 밥이 되는 순간 하나의 이벤트가 됩니다.
급식에서 미역 밥은 수수해 보여도 완성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데리야키 치킨이 맛있는 이유
데리야키 치킨 같은 급식이 맛있었던 것도 이해가 갑니다.
달콤짭짤하고. 밥과 잘 어울리고. 고기 기름이 있고. 양념 향이 나고. 아이들도 알기 쉬운 맛이고. 씹을 때 만족감이 있습니다.
급식 중에서도 꽤 승률이 높은 메뉴입니다.
영양만 따지면 더 담백한 식단도 있습니다.
하지만 데리야키 치킨은 '먹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힘이 셉니다.
점심에 밥과 데리야키 치킨이 나오면 오후까지 버틸 수 있습니다.
이건 종이 맛 점심과는 아예 다른 장르입니다.
우유 가위바위보까지 합쳐서 '급식 경험'이었다
급식의 맛은 입맛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유 가위바위보. 추가 배식 가위바위보. 배식할 때 풍기던 냄새. 급식 당번. 식단표를 보는 재미. '오늘은 당첨이다' 하는 느낌. 친구와 같은 음식을 먹던 시간.
이 모두가 급식 경험입니다.
특히 유리병 우유는 기억에 잘 남습니다.
종이팩이어도 우유는 우유지만, 유리병에는 이벤트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무겁고. 차갑고. 달그락 소리가 나고. 남으면 가위바위보를 하고. 따내면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경험까지 포함해서 급식은 기억에 남습니다.
미각만이 아니라 학교생활 속의 이벤트로서 강했던 것입니다.
급식은 수익 사업일까?
학교 급식은 보통 식당 같은 수익 사업이 아닙니다.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합니다.
급식은 '팔아서 이익을 내는 가게'가 아니라 교육·건강·복지 요소를 가진 제도입니다.
일본의 학교급식법에서는 학교 급식 실시에 필요한 시설·설비 비용과 운영에 드는 일정한 비용은 의무교육 학교의 설치자(대개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편 학부모가 부담하는 것은 주로 식재료비입니다.
문부과학성 자료에서도 학교 급식에 필요한 시설과 인건비 등은 각 학교의 설치자가 부담하고, 학부모가 부담하는 것은 주로 식재료비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급식비는 '식재료값' 쪽에 가깝습니다.
일반 식당이라면 식재료비에 더해 인건비, 임대료, 공과금, 이익, 광고비까지 전부 가격에 얹습니다.
하지만 학교 급식은 인건비와 시설비의 상당 부분을 공적 자금이 뒷받침합니다.
그래서 같은 금액이라도 내용이 좋아지기 쉽습니다.
바꿔 말하면, 학교 급식은 '이익을 내기 위한 밥'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먹이기 위한 밥'입니다.
이 점이 구내식당이나 강제 식당과 다릅니다.
세금으로 나가는 걸까?
학교 급식에는 부분적으로 세금이 쓰입니다.
대략 이렇습니다.
식재료비 주로 학부모 부담. 다만 지자체에 따라 무상화나 보조가 있습니다.
인건비·시설 설비비·운영비 일부 학교 설치자, 즉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합니다.
저소득 가구 등에 대한 지원 생활보호나 취학 원조(학용품·급식비 등을 대 주는 제도) 같은 것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지원합니다.
최근의 부담 경감책 국가나 지자체에서 급식비 부담을 덜어 주거나 무상화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모두의 세금만'으로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완전히 '가정에서 내는 급식비만'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학부모가 식재료비를 부담하고, 지자체 등이 인건비·설비·운영을 뒷받침합니다.
이 조합으로 성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 급식은 보통 구내식당이나 식당보다 공공성이 훨씬 높은 제도입니다.
그래서 싸고, 종류도 많고, 맛있다
학교 급식이 강한 이유는 이런 비용 구조에도 있습니다.
보통 식당이라면 500엔으로 내놓을 수 있는 내용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임대료, 인건비, 공과금, 이익, 음식물 폐기 위험, 광고비, 카드 결제 수수료, 포장 용기값 등이 얹히니까요.
하지만 학교 급식은 주로 식재료비를 학부모가 내고, 인건비와 시설 설비비 등은 설치자가 부담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내는 급식비에 비해 실제로 나오는 식사의 가치가 높아 보이기 쉽습니다.
게다가 영리가 아니라 교육 제도라서 계절, 지역, 영양, 식생활 교육도 넣기 쉽습니다.
그래서 싼데도 종류가 다양하고 평범하게 맛있습니다.
이는 식당처럼 수지를 맞추는 구조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아이가 급식을 기다리는 장면은 일본 전국에서 흔한 일일까?
드라마나 만화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가 급식을 기다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이게 완전한 창작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급식에는 아이들의 영양을 뒷받침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집안 사정과 상관없이 학교에 가면 점심에 일정한 식사가 나옵니다.
이건 꽤 큽니다.
물론 급식의 질과 양, 지역 차이, 가정 사정은 제각각입니다.
그래도 일본의 초등학교는 급식 실시율이 매우 높아서, 급식은 많은 아이들에게 공통의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급식이 기다려진다'는 묘사가 많은 사람에게 통합니다.
미역 밥, 카레, 튀김빵, 우유 가위바위보 같은 기억을 다들 공유하는 것은 학교 급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종이 맛 강제 식당과의 결정적인 차이
여기서 직장의 맛없는 강제 식당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학교 급식
- 아이들이 먹는다는 전제로 만든다
- 영양교사·학교 영양사 같은 전문직이 관여한다
- 식단에 교육 목적이 있다
- 지역성·계절성·음식 문화가 들어간다
- 잔반과 기호를 살핀다
- 식생활 교육으로서 의미가 부여된다
- 먹게 하는 것이 목적에 포함된다
- 학부모·학교·지자체의 관심이 쏠린다
- 식재료비 이외의 부분을 공적으로 뒷받침한다
종이 맛 강제 식당
- 성인 직원의 만족도를 확인하지 않는다
- 강제로 걷으니 매출이 줄지 않는다
- 남겨도 개선 압력이 되지 않는다
- 영양표와 위생만 통과하면 끝이다
- 누가 품질 책임자인지 모호하다
- 먹는 사람의 목소리가 식단이나 계약에 반영되지 않는다
- 거부할 권리가 약하다
- '제도상으로는 제공했다'로 끝난다
이 차이입니다.
학교 급식은 먹는 사람까지 설계된 밥.
종이 맛 강제 식당은 돈을 걷는 것까지만 설계된 밥.
이 차이는 꽤 큽니다.
학교 급식을 어른에게 팔면 수요가 있을 것 같다
어른을 위한 학교 급식 식당이 있다면 수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 꽤 많습니다.
- 그립다
- 마음이 편하다
- 메뉴가 다양하다
- 영양 균형이 좋을 것 같다
- 가격이 알기 쉽다
- 혼자서도 들어가기 쉽다
- 외식보다 죄책감이 적다
- 미역 밥이 먹고 싶다
- 유리병 우유와 추가 배식 문화에 대한 추억이 있다
- 카레, 튀김빵, 데리야키 치킨 같은 추억의 메뉴가 강력하다
다만 학교 급식을 그대로 장사로 삼기는 어렵습니다.
학교 급식은 식재료비 이외의 부분을 공적으로 뒷받침하기 때문에 싸게 낼 수 있습니다.
일반 식당으로 낸다면 인건비, 임대료, 공과금, 이익을 얹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로 가게로 한다면 가격은 보통 급식비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콘셉트로서는 꽤 강합니다.
'어른을 위한 학교 급식 식당' '미역 밥 런치' '유리병 우유 가위바위보 세트' '쇼와·헤이세이 급식 플레이트'(쇼와와 헤이세이는 지나간 일본의 연호) '종이 맛이 아닌, 강제도 아닌 급식'
이런 것들은 평범하게 마음에 꽂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업 대상으로도 가능성이 있다
기업을 대상으로 내놓는다면 더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 점심으로,
- 식단이 매일 바뀐다
- 영양 균형이 있다
- 가격이 일정하다
- 따뜻한 국물이 있다
- 밥 메뉴가 강하다
- 미역 밥이나 데리야키 치킨 같은 당첨 메뉴가 있다
- 잔반과 만족도 설문을 조사한다
- 주문은 자유 선택으로 한다
- 한 달에 1번 인기 메뉴를 부활시킨다
- 성인 입맛에 맞게 맛을 조정한다
이렇게 설계하면 꽤 좋은 직원 식당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학교 급식의 '제도'만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피드백 회로를 따라 하는 것입니다.
학교 급식 같은 겉모습만 흉내 내고 잔반·기호·만족도를 보지 않으면 결국 종이 맛 강제 식당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미역 밥 자체가 아니라, 미역 밥이 당첨 메뉴로 태어나 먹히고 평가받는 구조입니다.
정리: 급식이 맛있었던 건, 먹는 사람까지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
학교 급식이 맛있었던 이유는 하나가 아닙니다.
추억 보정도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먹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추가 배식이나 우유 가위바위보 같은 이벤트 느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학교 급식은
영양 안전 식생활 교육 지역성 계절감 식단의 다양성 잔반·기호 피드백 전문직의 관여 공적인 비용 구조
이 모두가 맞물린 꽤 강력한 식사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미역 밥이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데리야키 치킨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우유 가위바위보까지 즐거웠습니다.
학교 급식은 그냥 대량으로 만든 음식이 아닙니다.
먹는 사람까지 설계된 밥입니다.
반면 종이 맛 강제 식당은 먹는 사람이 아니라 돈 걷는 것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차이가 큽니다.
급식이 맛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거꾸로 맛없는 구내식당의 문제도 보입니다.
맛있는 식사에 필요한 것은 호화로운 식재료만이 아닙니다.
먹는 사람을 보는 것. 반응을 보는 것. 개선하는 것. 그리고 파는 쪽이 스스로 먹을 수 있는 밥을 내놓는 것.
그것만으로도 종이 맛 점심은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