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젊을 때는 스펀지처럼 뭐든 일단 받아들이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봤다.
여러 사람, 생각, 작품, 경험을 일단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그때는 제각각이던 것들이 나중에 내 윤곽을 만들어 준다는 얘기다.
이 말을 보고 내 '스펀지 시기'는 대학교 3학년쯤에 끝난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 보니 조금 달랐다.
지금도 나는 무언가를 일단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내 안에 넣는다. 상대의 말을 겉으로만 처리하지 않고,
왜 그렇게 생각할까 어떤 전제라면 그런 결론이 나올까 본인 안에서는 무엇이 일관되어 있을까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무엇을 지키려는 걸까
여기까지 파고든다.
그러니까 스펀지 성향이 사라진 게 아니다.
오히려
흡수하는 스펀지에 분석·검증·편집 기능이 더해졌다
고 보는 편이 맞다.
다만 이 능력에는 부작용이 있다.
상대를 지나치게 이해하면
- 상대의 마음을 대신 말로 정리해 주고
- 문제를 대신 정리해 주고
- 해결책을 대신 만들어 주고
- 실행까지 관리해 버리는
'혼자 프로젝트 매니저(PM, 일을 기획하고 끌고 가는 사람)'가 되기 쉽다.
요즘은 일, 가족, 친구에게는
이런 건가 싶은데 아니면 알려 줘 나머지는 모르겠다
하고 가설만 건네고 본인의 몫으로 돌려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연인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글에서는 내 스펀지 성향, 상대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식, 이해와 대행의 경계선, 연애에서 다시 혼자 PM으로 돌아갈 가능성까지 정리해 본다.
1. 스펀지 시기가 끝난 게 아니라, 흡수한 뒤의 처리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무방비로 빨아들였다
대학생 무렵까지는
재밌겠다 그런 생각도 있구나 그게 맞을지도 몰라 일단 해 보자
하고 비교적 그대로 받아들이는 비율이 높았다.
이건 나쁜 일이 아니다.
가치관이나 판단 기준이 아직 굳지 않은 시기에는 많은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
책, 음악, 일, 연애, 친구, 여행, 실패, 취미.
일단 안에 넣어 보지 않으면 나한테 맞는지도 알 수 없다.
지금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 흡수하는' 과정은 남아 있다
지금도
먼저 그 안으로 들어가 본다
는 점은 변함이 없다.
음악이라면 작곡가의 세계관과 선율의 움직임을 꽤 깊이 받아들인다. 일 이야기라면 그 사람이 무엇을 문제로 보고 있는지 이해한다. 연애 이야기라면 상대의 감정과 가치관이 본인 안에서 어떻게 성립하는지까지 생각한다.
그래서
대학교 3학년 때 스펀지 성향이 끝났다
는 정리는 정확하지 않다.
정확히는
무방비하게 빨아들이기만 하던 시기에서, 흡수한 뒤에 분해하고 검증하고 재구성하는 시기로 넘어갔다
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고성능 스펀지 + 분석 장치'
지금의 처리 과정은 이렇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 안쪽에서 이해한다 → 전제를 찾는다 → 인과관계를 구조화한다 → 내 경험과 대조한다 → 남길 것과 버릴 것을 정한다 → 나에게 맞게 재구성한다
흡수하지 않게 된 게 아니다.
오히려 흡수한 뒤에 가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능력은 상대를 이해할 때도 강하게 작동한다.
2. 상대의 말이 아니라 상대의 'OS'를 이해하려 한다
겉으로 드러난 발언에서 끝내지 않는다
상대가
결혼식을 하고 싶어 아이를 갖고 싶어 새 차를 사고 싶어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그냥 왠지 싫었어
라고 말할 때, 그 말만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을까 누구의 기대가 영향을 주고 있을까 본인은 무엇을 얻고 싶은 걸까 무엇을 잃는 게 두려운 걸까 그 바람은 일시적일까, 장기적일까 본인의 다른 가치관과 맞아떨어질까
까지 생각한다.
이는 상대의 결론이 아니라 그 결론을 만들어 내는 OS(운영체제, 즉 생각의 밑바탕이 되는 방식)를 이해하려는 행위다.
상대의 OS를 내 안에서 잠깐 돌려 본다
내 가치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의견이라도
이런 전제를 갖고 있다면 확실히 그렇게 되겠네 이런 불안이 있다면 그 선택을 하고 싶겠다 이런 경험을 했다면 그런 말이 나오겠지
하고 상대의 내부 논리를 재현해 본다.
한 번 상대의 세계관을 내 안에 넣고 돌려 보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이해는 된다 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감정은 알겠다 하지만 부담까지 넘겨받지는 않는다
하고 나눈다.
이렇게 할 수 있으면 단순한 찬성이나 반대보다 훨씬 정밀한 이해가 된다.
3. 가장 좋은 건 '경계선을 지키면서 가설로 깊이 파고드는 것'
완전히 동화될 필요는 없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상대의 감정에 완전히 휩쓸릴 필요는 없다.
상대가 불안하면 나까지 같은 불안을 짊어지고, 상대가 화났으면 나까지 같은 분노 속으로 들어간다.
거기까지 가면 상대와 나 사이의 경계선이 흐려진다.
필요한 건
상대의 속을 상상하되 나와 상대는 분리해 둔다
는 것이다.
바깥에서 분석만 하는 것도 부족하다
반대로
이 사람은 이런 유형이고 원인은 이거고 대처법은 이거다
하고 바깥에서만 분석하면 본인의 실감과 어긋날 때가 있다.
상대의 마음은 내 추측만으로는 확정할 수 없다.
그래서 가장 안정적인 건
상대의 안쪽으로 들어가 가설을 만들고, 그 가설을 본인에게 돌려주어 고쳐 달라고 하는
방법이다.
"이런 거야?" 하고 돌려준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결혼식을 원하셔서 하고 싶다
는 이야기라면
"네가 하고 싶다기보다,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게 무서운 거 아냐?"
하고 가설을 돌려준다.
상대가
그럴지도
라고 하면 이해가 한 걸음 나아간다.
상대가
아니, 내가 직접 하고 싶어졌어
라고 하면 가설을 고친다.
중요한 건 내가 상대의 내면을 멋대로 확정하지 않는 것이다.
가설은 내되, 최종 답은 본인에게 돌려준다
이 방식이라면
- 상대를 깊이 이해하려 하고
- 상대가 말로 표현하는 걸 돕고
- 추측을 사실처럼 다루지 않고
- 상대의 자기결정을 남겨 두고
- 내가 전부 떠안지 않는
것이 동시에 가능하다.
한 문장으로 하면
이런 거야? 아니면 알려 줘. 거기서부터는 네 안건이야.
이다.
4. 이해와 대행은 다르다
이해는 한다
이해란
- 상대의 배경을 듣고
- 감정을 추측하고
- 전제를 정리하고
- 말로 하기 어려운 부분을 가설로 돌려주고
- 상대의 제약을 아는
것이다.
대행은 하지 않는다
대행이란
- 상대의 마음을 대신 확정하고
- 상대 대신 문제를 정의하고
- 상대의 바람을 이룰 방법을 전부 생각해 주고
- 상대의 부담까지 넘겨받고
- 상대의 결정에 대한 책임까지 지고
- 상대가 나중에 불만을 말하면 전부 고쳐 주는
것이다.
이 둘은 꽤 다르다.
상대를 이해했다고 해서 상대의 과제가 내 담당이 되는 건 아니다.
예전에는 이해에서 혼자 PM으로 넘어가기 쉬웠다
예전에는
상대를 이해하고 싶다 →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따져 본다 → 상대 대신 말로 정리한다 → 문제점을 정리한다 → 대안을 만든다 → 실행 방법을 생각한다 → 결과까지 책임진다
로 흘러가기 쉬웠다.
여기까지 가면 공감이 아니라 프로젝트 관리다.
상대는 바람과 불만을 내놓는다. 나는 구현한다. 상대는 마지막에 승인하거나 거절한다.
그건 함께하는 관계가 아니다.
요즘은 중간에 멈출 수 있게 되었다
일, 가족, 친구에게는
이런 것 같은데 아니면 고쳐 줘 나머지는 본인이 생각해 봐
하고 멈출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차가운 게 아니다.
상대의 자기 이해와 자기결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전부 내가 완성해 버리면 상대는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잃는다. 나도 지친다. 결국 둘 다에게 좋지 않다.
5. "나머지는 몰라"는 방치가 아니라 담당을 돌려주는 것
정말로 무관심한 게 아니다
"나머지는 몰라"라고 하면 무성의하게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기까지는 이해를 돕는다 여기서부터는 본인이 생각한다 함께하는 부분이면 같이 생각한다 본인만의 문제라면 본인에게 돌려준다
는 역할 분담이다.
상대의 문제를 상대에게 돌려준다
예를 들어 상대가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
나는
인간관계가 싫다기보다, 평가 기준이 애매해서 뭘 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이 힘든 걸까
하고 가설을 돌려줄 수 있다.
하지만
- 정말 그만둘지
- 이직할 곳은 어디로 할지
- 수입은 어떻게 할지
- 언제 움직일지
까지 내가 전부 정할 필요는 없다.
본인이 생각한다. 필요하면 함께 의논한다. 하지만 본인의 인생을 대행하지는 않는다.
이해한 뒤에 돌려주니까 대충 내버려 두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듣지 않고
몰라
하고 잘라 내는 것과는 다르다.
먼저 이해한다. 가설을 돌려준다. 본인이 고칠 여지를 만든다. 그다음에 담당을 본인에게 돌려준다.
이것은
공감한 위에서 긋는 경계선
이다.
6. 일, 가족, 친구에게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에서는 역할을 나누기 쉽다
일에는
- 담당
- 권한
- 기한
- 결과물
- 판단하는 사람
이 있다.
그래서
여기까지는 나 여기부터는 상대 최종 판단은 상사
하고 나누기 쉽다.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더라도 전부 떠안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하기 쉽다.
가족이나 친구는 결국 본인의 인생이라는 걸 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이야기는 듣는다 가설은 낸다 상담에는 응한다 다만 결정하는 건 본인
이라는 식으로 하기가 쉬워졌다.
조금 걱정되더라도 본인의 과제를 본인에게 돌려줄 수 있다.
능력은 이미 있다
그러니까
경계선을 긋는 능력이 없는
게 아니다.
일, 가족, 친구에게는 요즘 꽤 잘하고 있다.
문제는 연인에게도 그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느냐이다.
7. 연인에게만은 혼자 PM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연인에게는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얹힌다
연인과의 문제에는
- 관계를 깨고 싶지 않다
- 미움받고 싶지 않다
-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미래를 잃고 싶지 않다
-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곳을 지키고 싶다
- 상대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같은 감정이 얹힌다.
일이나 친구보다 결과에 걸린 이해관계가 크다.
그래서
상대가 정리하지 못하면 내가 정리하자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내가 풀자 관계가 깨질 것 같으면 내가 어떻게든 하자
가 되기 쉽다.
애정과 PM이 뒤섞인다
연인을 소중히 하고 싶다. 그 마음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소중히 하는 것 = 상대의 문제를 전부 푸는 것
이 되면 혼자 PM이 시작된다.
- 상대의 감정을 읽고
- 상대의 속마음을 추측하고
- 대화를 설계하고
- 대안을 만들고
- 비용을 계산하고
- 일정을 정하고
- 부모님과의 관계까지 조율하고
- 마지막에 상대의 불만까지 처리한다
여기까지 떠안으면 연인이 아니라 운영 책임자가 된다.
관계를 지키려다 관계를 지치게 한다
혼자 PM을 하면 단기적으로는 일이 진행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왜 나만 생각하고 있지 상대는 뭘 맡고 있는 거지 혼자인 게 더 편하지 않나
가 된다.
관계를 지키려고 넘겨받은 일이 관계를 소모시킨다.
8. 연인이 생겨도 경계선을 유지하기 위한 점검 항목
연인이 생겼을 때 봐야 할 것은
깊이 이해할 수 있는가
가 아니다.
그건 이미 할 수 있다.
봐야 할 것은
이해한 뒤에 상대의 과제를 상대에게 돌려줄 수 있는가
이다.
점검 1. 가설을 낸 뒤 본인이 생각하게 하고 있는가
이런 거야?
하고 돌려준 뒤, 침묵을 메우려고 뒷이야기를 전부 내가 하고 있지는 않은가.
상대가 생각할 시간을 남겨 두고 있는가.
점검 2. 상대도 대안을 내고 있는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에서
- 나만 선택지를 만들고
- 나만 조건을 정리하고
- 나만 부담안을 내는
상태가 되어 있지 않은가.
상대 쪽에서도
나는 이렇게 하고 싶어 그러려면 여기는 내가 부담할게 이 안은 어때?
가 나오고 있는가.
점검 3. 상대의 불안을 내 책임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상대가 불안한 것과, 내가 그 불안을 없애 줄 책임을 지는 것은 별개다.
곁에 있어 주고, 들어 주고, 안심시켜 준다.
하지만 상대가 자기 감정을 스스로 다루어야 할 몫까지 대행하지는 않는다.
점검 4. 공동 안건과 상대 안건을 나누고 있는가
공동 안건
- 주거
- 결혼
- 아이
- 큰 지출
- 이사
- 생활 설계
상대 안건
- 상대 자신의 일
- 상대 자신의 친구 관계
- 상대 자신의 취미
- 상대 자신의 바람 때문에 추가되는 비용
- 상대 자신의 감정 정리
공동 안건은 함께 생각한다. 상대 안건은 본인에게 돌려준다.
점검 5. 관계를 잃는 두려움 때문에 철수 기준을 지워 버리지 않았는가
상대가 매번
- 바람만 말하고
- 대안은 내지 않고
- 나중에 불만을 꺼내고
- 자기 부담은 떠안지 않고
- "우린 안 맞아"로 대화에서 도망친다
면, 내가 이해를 더 깊이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해가 부족한 게 아니라 함께 꾸려 가는 능력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9. 나에게 맞는 최종 형태
나에게 필요한 건 공감력을 낮추는 게 아니다.
스펀지 성향을 버리는 것도 아니다.
상대를 깊이 파고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건
깊이 이해한다. 하지만 추측은 본인에게 확인한다. 감정은 받아 준다. 하지만 과제는 본인에게 돌려준다. 함께하는 부분만 같이 설계한다.
는 것이다.
한 문장으로 하면
상대의 OS는 이해한다. 하지만 상대의 OS를 유지·보수하는 일까지 넘겨받지는 않는다.
이것이 가장 나다운 방식이다.
정리
내 스펀지 성향은 대학교 3학년에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 흡수하고 → 상대의 속을 파고들고 → 전제와 감정을 구조화한다
는 일을 하고 있다.
달라진 건 그 뒤다.
예전에는 이해한 뒤에
말로 정리 → 문제 정리 → 해결안 → 실행
까지 넘겨받기 쉬웠다.
요즘은 일, 가족, 친구에게
이런 거야? 아니면 알려 줘 나머지는 본인 안건이야
하고 돌려줄 수 있게 되었다.
공감이 줄어든 게 아니다.
이해와 책임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는 변화다.
다만 연인에게는
-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 애정
- 미래
- 마음 놓고 쉴 곳을 지키고 싶은 마음
이 얹히기 때문에 다시 혼자 PM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다음 연애에서 봐야 할 것은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가
가 아니다.
이해한 뒤에도 두 사람의 문제는 두 사람에게, 상대의 문제는 상대에게 돌려줄 수 있는가
이다.
그리고 상대 쪽에도
- 자기 감정을 스스로 정리하고
- 자기 바람을 말로 표현하고
- 자기 부담을 스스로 떠안고
- 함께 풀 문제에 대안을 내고
- 나중이 아니라 미리 걱정을 꺼내는
힘이 필요하다.
최종적인 운영 방식은 이걸로 충분하다.
이런 거야? 아니면 알려 줘. 여기까지는 같이 생각해 보자. 여기서부터는 네 안건이야.
이것은 차가운 게 아니다.
상대를 이해하면서, 나도 상대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하기 위한 경계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