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 마마" 뒤에서 시체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네가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소녀들끼리 거리가 가까운 백합 애니로 봤다. 미미가 시이나에게 키스하길래 나도 평소처럼 "츄우~"니 "마마~"니 하고 있었는데, 애니 쪽에서 먼저 "츄"와 "마마……"를 겹쳐 버렸다.
완전히 싱크로돼 버려서 웃음이 났다. 이 장면만 잘라서 올리면 꽤 오글거릴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달달한 장면만 보고 넘어갈 애니가 아닌 것 같다.
귀여운데, 죽음을 다루는 방식만 이상하다
배경은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을 전쟁용 병기로 키우는 학교다.
주인공 시이나는 14살이다. 사람을 죽이기 위한 마법을 훈련받고 있지만, 사실은 전쟁에 나가고 싶지 않고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일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시이나가 만나는 사람이 불사의 비밀 병기라 불리는 소녀 미미다.
설정만 봐도 처음부터 무겁다.
더 불길한 건 시체가 남지 않고 사라진다는 점이다.
단순히 잔인한 장면을 피하려는 연출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는 죽은 사람을 애도할 여유조차 없고, 사람이 죽는 일이 업무처럼 처리된다. 시체가 사라지니 죽은 사람이 이 세계에서 물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지워지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미미는 죽지 않는다.
"보통 아이들은 죽어서 사라진다", "미미만은 부서져도 돌아온다." 이 차이가 연애 관계와 맞물리는 순간, 아무리 생각해도 평화롭게 끝날 리가 없다.
원작은 아오노 나치의 백합 만화
원작은 아오노 나치의 만화이고, 『코믹 유리히메』(일진샤가 펴내는 백합 만화 잡지)에 연재되고 있다.
소설 원작이 아니다. 전쟁용 병기로 길러지는 소녀들의 '삶과 죽음과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2026년 7월 16일 기준 단행본은 제9권까지 나와 있다. 연재는 계속되고 있고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즉 애니도 '완결된 원작을 끝까지 영상화하는 작품'이 아니다.
1쿨(TV 애니메이션 한 시즌, 약 12화)이라면 어디를 종착점으로 고르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원작 중간이라도 감정이 가장 크게 터지는 지점을 마지막 화에 가져오는 구성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그 구성을 맡은 사람이 하나다 주키다.
하나다 주키라는 '후반 회수 장치'
시리즈 구성과 각본은 하나다 주키.
내가 꽤 좋아하는 『우주보다 먼 곳』, 『울려라! 유포니엄』, 『슈타인즈 게이트』에도 참여했다. 『러브라이브!』에서 인상 깊었던 「Snow halation」 주변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방식도 같은 계열이다.
하나다 작품의 강점은 갑자기 큰 사건을 터뜨려서 울리는 데 있지 않다.
전반부에 일상, 관계, 약속, 별것 아닌 말들을 쌓아 올린다. 시청자가 등장인물을 좋아하게 되고, 평소의 분위기를 안심하고 볼 수 있는 상태를 만든다. 그런 다음 후반부에서 예전부터 화면에 있던 물건이나 말의 의미를 바꿔서 감정을 단숨에 회수한다.
『우주보다 먼 곳』이라면 시라세가 엄마에게 계속 보내던 메일이다.
단순히 '엄마를 잃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닿지 않았던 시간, 포기할 수 없었던 시간, 계속 보낸 본인의 인생이 안 읽은 메일의 개수로 한꺼번에 현실이 된다.
『슈타인즈 게이트』라면 전반부에서 랩 멤버들과의 시시한 일상을 충분히 쌓은 뒤, 마유리의 죽음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 지옥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하나다 주키를 대충 설명하자면 "마유리를 몇 화에 걸쳐 죽인 사람"이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마유리가 반복해서 죽는 전개 자체는 원작 게임에 있다. 하나다 주키는 그것을 TV 애니메이션의 어느 위치에 놓고, 몇 화에 걸쳐 오카베와 시청자를 몰아붙일지 설계한 쪽이다.
'시리즈 구성'과 '각본'은 뭐가 다를까
시리즈 구성은 작품 전체를 설계하는 담당이다.
전 12화라면 어디에서 두 사람을 가까워지게 할지, 몇 화에서 세계의 구조를 보여줄지, 어떤 복선을 먼저 깔지, 어디에서 감정을 폭발시킬지, 원작을 어디까지 쓸지를 정한다.
각본은 각 화의 구체적인 장면을 만드는 담당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순서로 사건이 일어나는지, 어디에서 장면을 끊고 무엇을 마지막에 비춰 다음 화로 이어갈지를 쓴다.
『네가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에서 하나다 주키는 '시리즈 구성/각본'으로 크레딧에 올라 있고, 제2화 각본도 직접 맡았다.
요컨대 작품 전체의 감정 곡선을 설계하면서, 적어도 몇몇 화의 구체적인 묘사에도 직접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시체가 사라진다. 불사의 소녀가 있다. 키스로 거리가 좁혀진다. 아픔을 둘러싼 대화가 있다.
초반부터 깔려 있는 이런 요소들이 후반에 다른 의미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주제가는 ReoNa
오프닝 주제가는 ReoNa의 「Amore」.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어도 숨을 많이 머금은, 조용히 상처를 안고 있는 듯한 창법이라 바로 알 수 있다.
전쟁, 죽음, 불사, 소녀들끼리의 사랑이라는 작품에 ReoNa를 세운 시점에서, 제작진도 밝기만 한 백합 애니로 팔 생각은 없어 보인다.
달콤한 사랑 노래로 들려도 그 '사랑'이 생존과 상실로 곧장 이어지는 작품이다.
이건 '귀여운 백합'이 아니라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 생기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시이나는 처음부터 살아가는 일에 큰 희망을 품고 있는 아이가 아니다.
전쟁에 나가고 싶지 않다.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주변이 죽음에 익숙해져 있는 것에도 적응하지 못한다. 그런데 미미를 만나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이 시간을 잃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생겨난다.
사랑으로 구원받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동시에 사랑을 알아 버린 탓에 전보다 죽음이 무서워지는 이야기로도 보인다.
죽지 않는 미미와 죽는 시이나.
전장에서 돌아오는 미미와 언젠가 어른이 될지도 모르는 시이나.
귀여운 일상을 쌓으면 쌓을수록, 그 일상이 무너졌을 때의 위력은 커진다.
하나다 주키는 바로 이 '쌓아 놓고 부수는' 구성, 그리고 부순 뒤에 예전의 별것 아닌 장면까지 눈물 나는 장면으로 바꿔 놓는 구성이 강하다.
아직 초반인데 벌써 불길한 부품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츄우~, 마마……" 하고 애니에 맞춰 웃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시체가 사라지는 방식과 각본가의 과거 작품을 찾아보고 있다.
이거, 갓애니가 될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멀쩡하게 돌려보내 주진 않을 것 같다.
※작품 정보는 2026년 7월 16일 기준.
주요 확인처: TV 애니메이션 『네가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 공식 사이트, 일진샤 『코믹 유리히메』 공식 작품 소개, 『우주보다 먼 곳』 공식 사이트, 『울려라! 유포니엄』 공식 사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