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 제목 (2)
카피바라는 잘못 없다. 그래도 PM은 못 맡긴다 | 귀여운 것과 살림 운영은 따로 심사한다
카피바라는 잘못이 없다.
이 말부터 먼저 해두고 싶다.
카피바라는 그냥 카피바라로 살 뿐이다. 풀을 먹고, 물가에서 지내고, 무리 지어 살다가, 내키면 느릿느릿 움직인다. 사람이 제멋대로 "쇼를 해줬으면", "인사를 했으면", "걸어줬으면" 하고 기대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카피바라가 안 움직인다고 해서 죄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든다.
카피바라에게 PM(프로젝트 매니저, 일정과 진행을 총괄하는 사람)은 못 맡기겠다.
이건 꽤 중요한 감각이다.
다케시마 수족관(일본 아이치현에 있는 작지만 인기 많은 수족관)의 카피바라 쇼를 보면 주인공은 카피바라다. 하지만 쇼를 성립시키는 건 사육사다.
카피바라가 움직이도록 풀을 준비한다.
다가오면 타이밍을 잡는다.
안 움직이면 분위기를 이어 간다.
관객에게 설명한다.
잘 된 것처럼 보이게 한다.
카피바라의 기분을 살피면서 쇼 형태로 다듬는다.
이건 완전히 PM이다.
카피바라 본인은 악의 없이 그저 느긋하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존재를 쇼로 만들려면 사람 쪽의 운영 부담이 필요하다.
이 얘기는 사람 관계에도 그대로 옮길 수 있다.
연애에서도 일에서도 같은 구조가 있다.
상대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귀엽다.
마음이 편해진다.
같이 있으면 안심이 된다.
그런데 같이 살림을 꾸리거나 일을 운영하는 단계가 되면, 나만 계속 풀을 베게 된다.
일정을 정하고.
상대 기분을 살피고.
친척 문제를 고민하고.
돈 계획을 세우고.
생활의 순서를 짜고.
문제가 생기면 설명하고.
분위기를 수습한다.
상대는 악의 없이 그냥 앉아 있다.
이건 "나쁜 사람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귀엽냐 아니냐"의 문제도 아니다.
"생활이나 일을 함께 운영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귀여운 존재와 PM을 맡을 수 있는 존재는 다르다.
온기를 주는 것과 인생 설계를 함께 짊어지는 것도 다르다.
스킨십이나 안정감 때문에 "이 사람은 전부 믿어도 된다"고 생각해 버리면 이 점을 놓치기 쉽다.
카피바라는 귀엽다.
하지만 통장은 맡기지 않는다.
카피바라는 힐링이다.
하지만 인생 설계의 관리자 권한은 주지 않는다.
카피바라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매일 풀을 베는 담당이 되는 관계는 정말로 무겁다.
이렇게 정리하면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도 거리를 둘 수 있다.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 안 돼"가 아니라,
"따뜻함을 주는 자리로는 좋다. 하지만 공동 운영자로서는 부담이 크다"
라고 볼 수 있다.
꽤 건강한 판단이다.
다케시마 수족관의 카피바라 쇼는 웃기기만 한 게 아니다.
귀여운 존재를 운영하는 쪽의 부담을 아주 알기 쉽게 보여 준다.
카피바라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PM은 사육사가 하고 있다.
이게 보이면 연애에서도 일에서도 조금은 냉정해질 수 있다.
이 글의 한 줄
카피바라는 잘못 없다. 하지만 귀여움과 생활 운영 능력은 따로 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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