츳코미란 무엇일까.
개그로 말하면, 보케에 반응하는 것이다.
이상한 일에 대해 “그건 좀 이상하잖아”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리의 어긋남을 잡아내고, 웃음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더 넓게 보면, 츳코미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츳코미란, 위화감에 붙이는 라벨이다.
보통이라면,
“뭔가 이상해”
“뭔가 웃겨”
“뭔가 어긋나 있어”
“뭔가 찝찝해”
“뭔가 걸려”
로 끝나는 것들이 있다.
거기에 짧은 말을 붙인다.
“너 완전 마왕이잖아”
“마을에서 메테오 쓰지 마”
“심야 편의점 주차장 버그”
“차 안 개인실형 편의점”
“구멍 난 결혼식장”
“오타니 광고 줄 세우기 문제”
“뇌의 검색창”
“달콤한 에로스 상실”
이런 말이 붙는 순간, 흐릿했던 위화감에 모양이 생긴다.
이것이 츳코미이고, 라벨 붙이기이며, 글쓰기의 핵심이기도 하다.
츳코미는 위화감을 한순간에 나누는 기술이다
위화감은 말이 되기 전에는 다른 사람과 나누기 어렵다.
내 안에서는,
“뭔가 이상한데”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남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무엇이 이상한가.
어디가 어긋나 있는가.
왜 찝찝한가.
무엇과 무엇이 맞물리지 않는가.
그 부분을 한순간에 전하는 것이 츳코미다.
예를 들어 RPG에서 마을 근처에서 메테오나 알테마급 마법을 쓰는 용사를 본다.
보통이라면,
“뭐, 게임이니까”
로 끝난다.
하지만 현실 쪽으로 생각하면 이상하다.
마을 바로 옆에 운석을 떨어뜨린다.
넓은 범위를 부수는 마법을 쓴다.
번개와 폭발을 일으킨다.
그런데 마을은 멀쩡하다.
아니, 지키는 쪽이 아니라 당신이 재난 아닌가.
거기서,
너 완전 마왕이잖아
라고 츳코미를 건다.
이 한마디로 위화감이 공유된다.
“용사인데, 하는 짓은 마을에 닥친 재난이잖아”
라는 구조가 한순간에 전해진다.
츳코미는 압축된 구조 이해다
츳코미의 힘은 말이 짧다는 데만 있지 않다.
짧은 말 안에 구조 이해가 압축되어 있다.
마을에서 메테오 쓰지 마
이 한마디에는 꽤 많은 뜻이 들어 있다.
- 강한 힘은 편하다
- 하지만 실제 환경에서 쓰면 위험하다
- 적뿐 아니라 주변도 부순다
- 목적이 맞아도 운영이 나쁘면 재난이 된다
- 먼저 샌드박스에서 시험해라
- 현실의 AI, 맞는 말, 분노에 찬 긴 글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이만큼의 구조가 짧은 츳코미에 압축되어 있다.
즉, 좋은 츳코미는 그냥 분위기를 타는 말이 아니다.
구조 이해의 압축 파일
이다.
츳코미와 라벨은 가깝다
글을 쓸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독자는 아직 말로 만들지 못한 위화감을 가지고 있다.
“쉬고 있는데 쉬는 것 같지 않다”
“좋아했는데 결혼은 못 하겠다”
“오타니 광고가 너무 많다”
“밤 편의점에 차만 있다”
“전 연인이 그립지만, 다시 만나고 싶은지는 모르겠다”
“마법을 쓰고 싶다”
“게임에서 마을 옆에서 대마법을 쓰는 건 이상하지 않아?”
여기에 라벨을 붙인다.
뇌의 검색창
연애 성공, 결혼 불합격
오타니 광고 줄 세우기 문제
심야 편의점 주차장 버그
달콤한 에로스 상실
마법 = 인생의 조작 권한
거처 파괴 문제
라벨이 있으면 독자는 자기 위화감을 붙잡을 수 있다.
“아, 그거야”
가 된다.
즉, 글에서 라벨을 붙이는 일은 개그에서 츳코미를 거는 일과 꽤 가깝다.
둘 다,
위화감을 짧은 말로 함께 볼 수 있게 만드는 기술
이다.
비즈니스 개선도 사실 츳코미다
비즈니스 개선도 츳코미와 꽤 가깝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이렇게 생각한다.
“왜 매번 여기서 다시 하게 되지?”
“왜 결정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지?”
“왜 권한 없는 사람에게 책임만 오지?”
“왜 말로 설명하는 것만으로 운영하지?”
“왜 담당 범위가 애매한 채로 진행하지?”
이것은 업무에 대한 츳코미다.
다만 비즈니스에서는 웃음이 아니라 개선으로 바꾼다.
개그라면,
“왜 그러는데”
로 끝날지도 모른다.
비즈니스에서는,
“책임과 권한이 어긋나 있습니다”
“결정자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다시 하는 일을 막으려면 사전 확인이 필요합니다”
“특정 사람에게만 의존하고 있으니 표준화가 필요합니다”
“말로만 운영하지 말고, 절차서로 만드는 편이 좋습니다”
가 된다.
이것도 라벨 붙이기다.
위화감을 잡고, 문제에 이름을 붙인다.
이름이 붙으면 개선할 대상이 된다.
UX 개선도 츳코미다
앱이나 웹서비스 개선도 같다.
사용자가 이탈한다.
결제까지 가지 않는다.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설명을 읽지 않는다.
입력 폼에서 멈춘다.
여기서,
“왜 여기서 멈추지?”
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UX에 대한 츳코미다.
“이 버튼, 알아보기 어렵지 않아?”
“여기서 설명이 너무 많지 않아?”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망설이지 않아?”
“이 순서라면 사용자가 불안해하지 않아?”
“결제 전에 가치가 전달되지 않은 것 아니야?”
이런 위화감을 잡는다.
그리고,
- 동선이 약하다
- 가치를 보여주는 시점이 늦다
- 선택지가 너무 많다
- 불안을 덜어 주는 요소가 부족하다
- CTA가 보이지 않는다
- 입력 부담이 크다
- 믿을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
라고 라벨을 붙인다.
이것도 비즈니스판 츳코미다.
개그의 츳코미와 개선의 츳코미는 같은 OS다
개그와 비즈니스 개선은 멀어 보이지만 가깝다.
둘 다,
위화감을 찾는다
어긋남을 잘라낸다
말로 만든다
상대에게 공유한다
라는 흐름으로 움직인다.
다른 것은 출구다.
개그에서는 웃음으로 만든다.
비즈니스에서는 개선으로 만든다.
글에서는 독자의 공감으로 만든다.
UX에서는 쓰기 쉬움으로 만든다.
연애에서는 자기 이해로 만든다.
일에서는 책임 범위나 운영 규칙으로 만든다.
하지만 입구는 같다.
뭔가 이상해.
이 “뭔가 이상해”를 잡을 수 있는가.
그게 중요하다.
츳코미는 세상의 디버깅이다
프로그램에는 버그가 있다.
의도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상한 동작을 한다.
생각한 결과와 다르다.
일상에도 버그가 있다.
심야 편의점에 차가 있는데 매장 안에는 사람이 없다.
마을 옆에서 메테오를 쓰는 용사가 마을을 지키는 셈이 되어 있다.
모든 기업이 오타니 쇼헤이를 써서 차별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뇌만 계속 일하고 있다.
결혼에 설렘이 필요한지 사랑이 필요한지 말하면서, 함께 운영하는 이야기는 빠져 있다.
이것들은 일상의 버그다.
츳코미는 그 버그에 로그를 남기는 행동이다.
“여기, 이상하지 않아?”
“이 사양, 이상하지 않아?”
“이 운영, 망가진 것 아니야?”
“이 전제, 빠진 것 아니야?”
즉, 츳코미란,
세상의 디버깅
이다.
좋은 츳코미는 공격이 아니라 관찰이다
츳코미라고 하면 상대를 공격하는 것으로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정말 좋은 츳코미는 단순한 공격이 아니다.
좋은 츳코미는 관찰이다.
상황을 본다.
어긋남을 본다.
맥락을 본다.
무엇과 무엇이 맞물리지 않는지 본다.
거기에 짧은 말을 붙인다.
예를 들어,
“너 완전 마왕이잖아”
는 강한 말이지만, 그냥 욕하는 것은 아니다.
마을을 지켜야 하는 용사가 마을 옆에서 넓은 범위를 부수는 마법을 쓰고 있다.
이 모순을 짚고 있다.
즉, 사람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의 어긋남을 잘라내는 것이다.
여기가 중요하다.
츳코미는 사람을 대충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긋남을 보이게 만들기 위해 쓰는 편이 좋다.
츳코미가 너무 강하면 메테오가 된다
다만 츳코미에는 위험도 있다.
츳코미가 너무 강하면 메테오가 된다.
상대를 한 방에 쓰러뜨린다.
분위기를 얼린다.
도망갈 길을 막는다.
관계를 부순다.
맞는 말로 태워 버린다.
이건 위험하다.
츳코미는 라벨이고, 관찰이며, 공유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그대로 세게 쏘면 상대에게 너무 깊게 꽂힐 때가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쓸 때는 화력 조절이 필요하다.
글에서는 세게 써도 된다.
초안에서는 세게 말해도 된다.
AI와 생각을 부딪힐 때는 메테오를 쏴도 된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말할 때는 말투를 조절한다.
이것은,
마을에서 메테오 쓰지 마
와 같다.
츳코미도 쓸 장소를 골라야 한다.
라벨을 붙일 수 있으면 세상을 다루기 쉬워진다
라벨이 있으면 세상을 다루기 쉬워진다.
예를 들어,
“달콤한 에로스 상실”
이라는 라벨이 있으면 전 연인을 떠올렸을 때,
“이건 미련이 아니라 따뜻함을 잃은 느낌일지도 몰라”
라고 판단할 수 있다.
“구멍 난 결혼식장”
이라는 라벨이 있으면 결혼의 예쁜 겉모습뿐 아니라 돈, 친척, 자유, 경계선의 구멍도 볼 수 있다.
“뇌의 검색창”
이라는 라벨이 있으면 쉬고 있는데도 계속 생각해 버리는 상태를 이해할 수 있다.
“심야 편의점 주차장 버그”
라는 라벨이 있으면 밤 편의점의 수수께끼 같은 현상을 생활 관찰로 즐길 수 있다.
라벨은 세상의 손잡이다.
손잡이가 있으면 들 수 있다.
움직일 수 있다.
설명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다.
글 제목은 츳코미다
좋은 글 제목도 사실 츳코미와 가깝다.
“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쉬지 못할까”
이것은 휴식에 대한 츳코미다.
“결혼에 필요한 것은 설렘인가, 사랑인가”
이것은 연애 논의에 대한 츳코미다.
“오타니 광고 줄 세우기 문제”
이것은 광고 업계에 대한 츳코미다.
“마을 옆에서 메테오 쓰는 용사, 너 완전 마왕이잖아”
이것은 RPG에 대한 츳코미다.
글 제목은 독자 안에 있는 위화감을 먼저 말로 만든다.
그래서 제목이 좋으면 읽힌다.
독자는,
“나도 그 생각 했어”
“그거 뭔지 알 것 같아”
“아, 그런 거였구나”
가 된다.
즉, 글 제목이란 검색되는 츳코미다.
위화감을 평생 잡아내는 능력은 강하다
위화감을 잡아내는 능력은 평생 쓸 수 있다.
비즈니스에서도 쓸 수 있다.
개그에서도 쓸 수 있다.
글에서도 쓸 수 있다.
앱 개선에서도 쓸 수 있다.
연애에서 자신을 이해할 때도 쓸 수 있다.
일을 구조화할 때도 쓸 수 있다.
마케팅에서도 쓸 수 있다.
광고 비평에서도 쓸 수 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위화감이 끝없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동은 어긋난다.
제도는 어긋난다.
광고는 어긋난다.
앱은 어긋난다.
직장은 어긋난다.
연애는 어긋난다.
결혼은 어긋난다.
휴식조차 어긋난다.
거기에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은 소재가 마르지 않는다.
다만 전부 잡으면 지친다.
그래서,
잡아내는 힘
과
잡지 않겠다는 판단
이 둘 다 필요하다.
정리: 츳코미는 위화감을 쓸 수 있는 모양으로 만드는 라벨 붙이기다
츳코미란 단지 재미있는 말을 하는 기술이 아니다.
츳코미란,
위화감에 붙이는 라벨
이다.
뭔가 이상해.
뭔가 어긋나 있어.
뭔가 웃겨.
뭔가 찝찝해.
거기에 짧고 꽂히는 말을 붙인다.
너 완전 마왕이잖아.
마을에서 메테오 쓰지 마.
심야 편의점 주차장 버그.
구멍 난 결혼식장.
오타니 광고 줄 세우기 문제.
뇌의 검색창.
달콤한 에로스 상실.
그러면 위화감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게 된다.
개그에서는 웃음이 된다.
비즈니스에서는 개선이 된다.
UX에서는 동선 개선이 된다.
글에서는 제목이 된다.
연애에서는 자기 이해가 된다.
일에서는 책임 범위나 운영 규칙이 된다.
즉, 츳코미는 세상의 디버깅이다.
어긋남을 찾는다.
이름을 붙인다.
남에게 건넬 수 있는 모양으로 만든다.
이 힘은 꽤 강하다.
다만 츳코미는 너무 강하면 메테오가 된다.
그래서 쏠 장소를 골라야 한다.
글에서는 강하게.
초안에서는 자유롭게.
현실의 상대에게는 화력을 조절해서.
츳코미는 라벨이고, 관찰이며, 개선의 입구다.
위화감을 잡아내는 사람은 그저 생각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 츳코미를 걸고, 이름을 붙여서, 조금 더 다루기 쉽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꽤 강한 능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