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인다.
상대보다 구조가 더 잘 보인다. 자료가 얼마나 허술한지도 보인다. 리더십 이야기에서 층위가 뒤섞여 있다는 것도 보인다. 바탕은 서로에 대한 신뢰이고, 뒷받침하느냐 앞에서 이끄느냐는 행동 방식의 차이라는 것도 보인다.
문제 해결의 단계도 안다.
바람직한 모습, 현재 상태, 문제, 원인, 과제, 해결책.
어디가 뒤섞이면 논의가 엉망이 되는지도 안다.
그런데도 일부러 내놓지 않을 때가 있다.
내놓으면 짓밟히는 환경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이해를 못 했네." "가치가 없어." "판을 엎어 버리겠다." "아주 박살을 내 주겠다."
이런 말이 나오는 사람 앞에 제대로 정리한 구조를 내미는 건 위험하다.
내가 만든 결과물은 개선을 위한 재료가 아니라 공격의 표적이 된다.
그래서 겉으로는 지시를 기다린다.
시킨 범위만 한다.
내가 쓸 용도로는 따로 저장해 둔다.
필요한 때가 올 때까지 꺼내지 않는다.
이건 게으름이 아니다.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원래 보이는 것을 꺼낼 수 있는 환경에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덜 끝난 상태로도 내놓을 수 있다.
어긋나도 같이 고칠 수 있다.
일찍 내놓는 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
스스로 생각한 내용이 틀렸더라도 배움의 재료로 대접받는다.
그런 환경이라면 보이는 것을 꺼낼 수 있다.
하지만 내놓은 것이 "박살 낼 거리"가 되는 환경에서는 내놓지 않는 쪽이 합리적이다.
보이지 않아서 못 내놓는 게 아니다.
보이니까 내놓을 곳을 고르는 것이다.
진심을 담은 결과물은 서로 신뢰하는 사람에게 내놓아야 한다.
강점을 짓밟는 사람에게 강점을 바칠 필요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