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애니에 몰입이 안 되는 이유

주변 사람들이 『얼음의 성벽』(Koori no Jouheki) 같은 공감 애니를 보고 "완전 공감돼", "마음에 꽂혀", "이거 내 얘기야"라고 한다.

읽기 기능 사용법

듣기는 본문을 읽어 줍니다. 속독은 구절을 차례로 표시하며 속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언어 연습은 다른 언어판과 번역을 비교합니다. 저장한 북마크는 이 브라우저의 플레이어 목록에서 다시 열 수 있습니다.

이 글 공유하기

이 글 공유하기

광고
광고

"나야 나" 하기 전에, 이미 지나온 길이라는 게 먼저 보이는 사람에게

주변 사람들이 『얼음의 성벽』(Koori no Jouheki) 같은 공감 애니를 보고 "완전 공감돼", "마음에 꽂혀", "이거 내 얘기야"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정도로 빠져들지 못한다.

작품이 재미없는 건 아니다.
캐릭터 마음을 전혀 모르겠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꽤 잘 안다.

다만 감정이입을 하기도 전에,

아, 이건 방어 반응이네
이건 상대의 시선을 너무 크게 생각하고 있네
이건 인싸(밝고 사교적인 사람)와 아싸(조용한 사람)로 흑백을 나누고 있네
이건 상대의 동기와 목적을 보면 되겠네
안 맞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면 되겠네
좋은 사람만 곁에 두면 되겠네

이렇게 구조가 먼저 보여 버린다.

그래서 작품을 봐도 "헉, 이거 나잖아……"가 아니라,

네네, 이 단계구나
이건 과거의 버그 로그네
이미 내 안에서는 다 푼 문제집이야

이런 반응이 나온다.

이건 공감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주제로 꽤 오래 고생해 왔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못 했다.
다들 보는 앞에서 왜 목소리가 안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친척들 앞에서 말이 잘 안 나왔다.
누가 기분 나쁜 말을 하면 그 말을 계속 곱씹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무서웠다.
사람을 상처 입힌 적도, 상처 입은 적도 있었다.
거리감을 몰라서 아픈 일도 겪었다.
그래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경험하고, 생각하면서 현실 속에서 하나씩 소화해 왔다.

그래서 지금은 상대가 정말 이상한 사람만 아니라면, 마음을 열고 편하게 대할 수 있다.

다만 이게 "완전히 무적이 됐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도 화나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난다.
기분 나쁜 말을 들으면 한동안 계속 생각이 난다.
머릿속에서 몇 번씩 재생될 때도 있다.

그래도 예전과 다른 점은, 그걸 이유로 사람 전체를 무서워하지는 않게 됐다는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이제 방어선을 긋는다.
기대하지 않는다.
이해받으려고 너무 애쓰지 않는다.
상대의 문제를 내 가치의 문제로 만들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정면으로 받아들였다가는 내가 무너질 것 같은 상대에게는 마음속으로 잠깐 "원숭이 라벨"을 붙여 둔다.

이 라벨은 상대를 영원히 깔보려고 붙이는 게 아니다.
나를 지키기 위한 임시 라벨이다.

아, 이 사람 말을 정면으로 들으면 위험하겠다
이 말을 내 인생에 내려진 판결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
이 사람한테는 기대 안 하는 게 편하겠다
이건 사람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원숭이 울음소리쯤으로 낮춰도 되겠다

이렇게 정리하면 마음이 꽤 편해진다.

이 글에서는 공감 애니에 몰입이 안 되는 이유를 "감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이미 그 주제를 지나왔기 때문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해 보려 한다.


1. 공감 애니는 "아직 소화하지 못한 감정"에 꽂힌다

공감 애니가 강한 건 화려한 사건보다 내면의 감정을 차분하고 섬세하게 그리기 때문이다.

『얼음의 성벽』으로 말하면, 사람 대하는 게 서툴러서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 벽을 쌓아 버리는 코유키 같은 캐릭터가 나온다.

이런 캐릭터와 비슷한 감정을 지금 한창 안고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 깊게 꽂힌다.

  •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된다
  • 사실 싫은 게 아닌데 차갑게 대하게 된다
  • 친해진 뒤에 상처받을까 봐 무섭다
  • 인싸 같은 사람을 보면 괜히 경계하게 된다
  • 나만 쳐다보는 것 같다
  • 그래도 속으로는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다

이런 게 소화되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면 작품이 "이야기"가 아니라 "내 속마음을 영상으로 옮긴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거 나야"가 된다.

공감 애니는 아직 말로 풀지 못한 아픔, 아직 졸업하지 못한 불안, 아직 내 안에 살고 있는 과거의 나에게 꽂힌다.


2. 하지만 이미 소화한 주제라면 "교재"로 보인다

반면 비슷한 문제를 이미 지나온 사람에게는 같은 작품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캐릭터의 마음은 안다.
왜 벽을 쌓는지도 안다.
왜 상대를 경계하는지도 안다.
말을 걸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재판이 시작되는 그 느낌도 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거기 살지 않는다.

그래서 감정이입보다 분석이 먼저 시작된다.

이건 방어 반응이네
이건 상대의 시선을 과대평가하고 있네
이건 인싸·아싸라는 흑백 라벨로 상대를 보고 있네
이건 상대의 동기와 목적을 보면 훨씬 편해지겠네
이건 경계선과 거리 조절의 문제네

이렇게 되면 작품은 "꽂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졸업한 교재가 된다.

예전에 쓰던 문제집을 다시 펼쳐 본 것 같은 기분이다.

내용은 안다.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이제 와서 지금의 내 위치로 읽을 수는 없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공감돼" 하며 우는 옆에서 나만 "네네, 그런 구조죠" 하고 있게 된다.


3. 식은 게 아니라, 꽤 힘들게 지나왔다는 뜻이다

공감 애니에 몰입이 안 되면 "내가 냉정한 건가", "감정이 메말랐나"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과거에 비슷한 아픔을 꽤 진지하게 소화해 온 사람일수록, 공감보다 구조 이해가 먼저 오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인간관계에서 예전에는 이렇게 느꼈다고 해 보자.

  • 왜 나는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말을 못 할까
  • 친척이나 반 친구들 앞에서는 목소리가 안 나온다
  •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무섭다
  • 미움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 밝은 사람들은 나를 깔보는 것 같다
  • 기분 나쁜 말을 들으면 계속 머릿속에서 곱씹게 된다
  • 늘 누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이건 당사자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다.

밖에서 보면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에게는 정말 전쟁터다.

말하기 전부터 머릿속에서 실패하는 장면이 재생된다.
들은 한마디가 몇 번이고 되돌아온다.
상대의 표정이나 목소리 톤을 지나치게 읽어 버린다.
내 존재가 주변에서 계속 채점당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거기서 빠져나오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그래도 경험이 쌓이면 조금씩 달라진다.

  • 상대는 생각보다 나를 안 본다
  • 좀 이상한 말을 해도 상대는 금방 잊는다
  • 미움받아도 세상은 안 끝난다
  • 안 맞으면 거리를 두면 된다
  • 괜찮은 사람도 있고 이상한 사람도 있다
  • 모두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살 수 있다
  • 좋은 사람들하고만 친하게 지내면 된다

여기까지 몸으로 알게 되면, 예전의 나와 닮은 캐릭터를 봐도 그저 괴롭기만 한 게 아니다.

"아, 이 단계구나" 하고 알아봐 버린다.

이건 차가운 게 아니라 지나온 경험이다.


4. "극복했다"는 말이 상처받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가 중요하다.

인간관계의 서투름을 극복했다고 해서,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되는 건 아니다.

화나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난다.
상처 되는 말을 들으면 상처받는다.
싫었던 말이 나중에 몇 번이고 떠오르기도 한다.

즉, 곱씹는 일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예전과 다른 건, 그 말을 내 가치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한마디가 그대로 인생의 판결문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아, 나는 안 되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상한 사람이구나
나는 미움받는 사람이구나
이제 끝이다

하지만 경험이 조금씩 쌓이면 이렇게 나눠서 볼 수 있게 된다.

이 사람은 지금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
이 말은 불쾌하지만 내 가치와는 별개다
이 사람에게 이해받을 필요는 없다
이 사람한테는 기대하지 않는 게 편하다
이 사람은 거리를 둬야 할 상대다

이 차이가 크다.

극복이란 아픔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아픔이 왔을 때,
"이건 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미숙함이나 공격성, 거리 감각 고장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고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5. "원숭이 라벨"은 기대치를 낮추기 위한 방어 기술이다

세상에는 괜찮은 사람도 있다.
좋은 사람도 있다.
거리감이 가까울 뿐 악의는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일부는 정말 버거운 사람이다.

내 기분은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상처 주는 말을 한다.
자기 불안이나 공격성을 나한테 쏟아붓는다.
지위나 분위기를 이용해 나를 지치게 한다.
그 말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깎여 나간다.

그런 상대에게까지 매번,

이 사람은 왜 이런 말을 할까
내가 잘못했나
이해시킬 수 있게 설명해야 하나
제대로 받아들여야 하나

이렇게 하다 보면 지친다.

그럴 때 도움이 되는 게 마음속 "원숭이 라벨"이다.

상대를 사람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상대를 영원히 깔보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한 방어 기술이다.

아, 이 사람 말은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위험하다
이 사람에게 기대하면 피곤해진다
이 사람의 평가를 인생의 판결로 삼을 필요 없다
이건 대화가 아니라 울음소리쯤으로 낮춰도 된다
거리를 두자

그렇게 기대치를 낮춘다.

괜찮은 사람에게는 편하게 대한다.
좋은 사람과는 제대로 친해진다.
하지만 확실히 위험한 사람에게는 억지로 마음을 열지 않는다.

이건 흑백 사고가 아니라 거리 조절이다.

중요한 건 모든 사람에게 "원숭이 라벨"을 붙이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예전에는 사람 전체가 무서웠다.
지금은 사람을 가려서 볼 수 있다.

괜찮은 사람에게는 열고,
위험한 사람에게는 닫는다.
그게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6. 『얼음의 성벽』에 몰입이 안 되는 이유는 답이 보이기 때문이다

『얼음의 성벽』 같은 작품은 아직 인간관계의 거리감으로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깊게 꽂힌다.

하지만 이미 비슷한 문제를 지나온 사람에게는 캐릭터의 망설임에 대한 답이 보여 버릴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코유키처럼 벽을 쌓는 타입을 보면 이렇게 보일 수 있다.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방어 반응이야
가까워진 뒤에 상처받는 게 무서울 뿐이야
그래도 밖에서 보면 차갑게 보이지
상대도 그렇게까지 나를 안 보는데
인싸·아싸로 흑백을 나누면 오독하게 돼
상대의 동기와 목적을 보면 돼
실제로 해가 없는 상대라면 무서워할 필요 없어
이상한 사람하고만 거리를 두면 돼
벽을 부수는 게 아니라 문을 달면 되는 거야

여기까지 보이면 이야기의 갈등에 들어가기도 전에 해결 순서도가 먼저 나와 버린다.

캐릭터가 고민하는 장면에서 내 머릿속은 이미,

자, 이건 거리 조절
자, 이건 흑백 사고
자, 이건 남의 시선 과대평가
자, 이건 경계선을 보여 주고 상대 반응을 보는 장면

이렇게 처리하고 있다.

즉 감정이입이 아니라 문제 해결 모드로 들어가 버린다.

이게 공감 애니에 몰입이 안 되는 큰 이유다.


7. 공감보다 구조가 보이는 사람의 강점

이런 타입에게는 분명한 강점이 있다.

1. 사람의 감정을 "구조"로 볼 수 있다

그냥 "왠지 무서워", "왠지 싫어"에서 끝나지 않고,

  • 상대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
  • 무엇을 얻고 싶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가
  • 나에게 실제로 해가 되는가
  • 거리를 둘 수 있는 상대인가

이렇게 나눠서 볼 수 있다.

이건 꽤 강력하다.

2. 흑백 사고에서 빠져나오기 쉽다

예전에는 "인싸라서 무서워", "아싸라서 안심돼" 하는 식으로 봤더라도, 극복한 뒤에는 좀 더 세밀하게 볼 수 있다.

인싸 같아도 그저 분위기를 밝게 하고 싶을 뿐인 사람이 있다.
열심히 분위기를 이끌지만 뒤에서는 엄청 신경 쓰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아싸 같아도 남을 오해하거나 자기 방어를 정당화하는 사람이 있다.

속성이 아니라 동기, 목적, 실제 피해로 본다.

이게 되면 인간관계가 훨씬 편해진다.

3. 남의 평가를 "인생의 판결"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예전에는 상대의 반응이 전부 나에 대한 판결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흠
안 맞았네
뭐, 다음
그래도 살 수 있어

이 정도로 낮출 수 있다.

남의 평가를 가볍게 볼 수 있다.
이건 꽤 큰 성장이다.

4. 마음을 열 상대를 고를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건 누구에게나 닫는 게 아니다.

반대로 누구에게나 여는 것도 아니다.

괜찮은 사람에게는 편하게 대한다.
좋은 사람과는 제대로 친해진다.
위험한 사람에게는 방어선을 긋는다.
기대하지 않을 상대에게는 기대하지 않는다.

이렇게 전환할 수 있게 되면 인간관계가 훨씬 가벼워진다.


8. 다만 "네네" 하고 넘겨 버리는 함정도 있다

한편 주의할 점도 있다.

자기가 지나온 주제일수록, 지금 거기 있는 사람에게 좀 거칠어지기 쉽다.

아니, 상대는 너 별로 안 봐
그냥 자의식 과잉이잖아
거리 두면 되는 거잖아
좋은 사람하고만 친하면 되잖아
네네, 과거 버그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아직 현재진행형인 아픔이다.

내가 예전에 친척 앞에서 말을 못 했거나 교실에서 사람들 시선이 무서웠다면, 그때의 나 역시 "너무 신경 쓰는 거야"라는 말만 들어서는 달라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깔보지 않는 게 좋다.

지금의 나는 구조가 보인다.
하지만 상대는 아직 그 구조 안에 있다.

이 거리감은 중요하다.

공감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도 한때 거기 있었다는 건 잊지 않는 게 좋다.


9. 공감 애니를 즐기는 방식을 바꿔도 된다

공감 애니에 몰입이 안 된다고 해서 그 작품을 즐길 수 없는 건 아니다.

즐기는 방식을 바꾸면 될 뿐이다.

1. 내 성장을 확인하는 용도로 본다

"예전의 나였다면 꽂혔을지도 몰라"
"지금은 구조로 보이네"
"나는 여기를 빠져나왔구나"

이렇게 성장을 확인하는 용도로 보는 것이다.

의외로 가치가 있다.

2. 다른 사람의 현재 위치를 이해하는 교재로 본다

나는 이미 지나왔지만, 주변에는 아직 그 주제에 꽂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그 작품을 보고 있다면,

아, 이런 주제에 반응하는 걸지도 몰라
이런 벽이나 방어 반응이 있는 걸지도 몰라
이런 거리감 고민이 있는 걸지도 몰라

하고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3. 글로 풀어낼 소재로 본다

공감이 안 되는 작품일수록 오히려 글로 쓰기 쉬울 때가 있다.

나는 왜 몰입이 안 될까.
어디가 이미 소화된 부분일까.
어떤 생각이 흑백 사고일까.
어떻게 하면 편해질까.

이걸 글로 풀어내면, 똑같이 "공감 애니에 몰입이 안 되는 사람"에게 꽂히는 글이 된다.


10. 공감하지 못하는 나를 탓하지 않아도 된다

주변이 우는 작품에서 울 수 없다.
주변이 "이거 나야" 하는 캐릭터에 몰입이 안 된다.
그렇다고 내가 차가운 사람인 것처럼 느낄 필요는 없다.

작품과의 거리감은 사람마다 다르다.

지금의 나에게 꽂히는 작품도 있고, 예전의 나였다면 꽂혔을 작품도 있다.
반대로 이미 지나왔기 때문에 구조로 보이는 작품도 있다.

공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현재 위치가 다를 뿐이다.

특히 과거에 비슷한 문제를 스스로 고생하며 소화해 온 사람은 공감보다 분석이 먼저 올 수 있다.

그건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살면서 경험을 제대로 소화하고, 그것을 말로 풀어내고 대처할 방법까지 갖게 되었다는 증거다.


정리: 공감 애니에 몰입이 안 되는 건, 졸업한 교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감 애니에 몰입이 안 되는 이유는 반드시 작품이 별로라서도, 내게 감정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 주제가 이미 내 안에서 소화된 상태라서일지도 모른다.

  • 캐릭터의 마음은 안다
  • 하지만 지금의 내가 아니다
  • 감정이입보다 구조 이해가 먼저 온다
  •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의 버그 로그로 보인다
  • "꽂히는 작품"이 아니라 "졸업한 교재"로 보인다

이건 식은 게 아니라 지나왔다는 뜻이다.

물론 아직 그 주제로 힘들어하는 사람을 깔볼 필요는 없다.
예전의 나도 거기 있었을 테니까.

그래도 내가 거기서 걸어 나왔다는 사실은 제대로 인정해도 된다.

공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더는 그 문제 안에 살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싫은 말을 곱씹을 때가 있다.
화가 날 때도 있다.
상처받을 때도 있다.

그래도 괜찮은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 수 있다.
위험한 사람에게는 방어선을 그을 수 있다.
기대하지 않을 상대에게는 기대하지 않고 지낼 수 있다.

그건 꽤 큰 성장이다.


오늘은 이 글

이 글을 읽은 분이 다음에 품는 질문에 각각 답하는 글입니다.

전체 글에서 찾기‘애니메이션’ 글 더 보기

이 글 공유하기

광고

하나 더, 뭐 재미있는 거 없어?

다 읽은 김에. 가까운 이야기 몇 편과, 전혀 다르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골랐어요.

  1. 가까운 이야기섀도우버스 WB, 승률 51%왜 시간만 녹을까
  2. 왜 오늘만 유난히 반말 비슷한 말을 많이 듣는 걸까 ― “응응”, “오, 그래?”, “괜찮아요~”에서 시작하는 서비스 현장의 사회언어학
  3. 전혀 다르지만 재미있는쉬고 있을 뿐인데 “아깝다”무급 생산성 OS, 반추 루프, 그리고 너무 거친 “몸만 보고 만난다”라는 라벨
  4. 성공한 사람도 우울증에 걸린다. 그런데 야마구치 이치로는 왜 다시 라디오와 라이브로 돌아왔을까 — “예전의 나”를 복원하는 대신 “새로운 나”를 만드는 복귀
  5. 최강 능력은 왜 이야기를 망칠까예약 힐부터 자동 빈사까지
  6. 『하렘왕의 이세계 프레스 유랑기』는 왜 뭐든 되는 걸까

다른 글 찾기

모든 기사

Mendoi-chan

사이트 운영자

Mendoi-chan

직장과 일상의 불편함을 구조화해 이해하기 쉬운 다음 행동으로 연결하는 글을 씁니다.

광고

새 글

  1. 1애드센스 승인 거절, 대체 뭐가 문제인지 좀 알려 달라
  2. 2독자가 글 끝까지 안 읽는다면 본문을 광고로 샌드위치 만들지 마세요: PC 화면의 빈 옆자리를 파는 애드스테라 배치법
  3. 3AI 시대의 똑똑함은 답을 내는 힘이 아니라 질문을 설계하는 힘
  4. 4일주일 만에 AI 글 자동화가 '자율 공장'이 된 이야기
  5. 5정신건강의학과에서 마스크 필수라는데, 안 사면 진료를 거부당해도 될까?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