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모 펠트 영상을 보다 보면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이 가끔 나온다.
눈은 크다. 얼굴은 어딘가 줄어들었다. 양쪽 볼 높이가 다르다. 코 위치도 묘하게 불안하다.
분명 귀여워야 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생명력이 느껴진다.
“얘, 밤에 혼자 돌아다니는 거 아니야?”
이런 감상이 나오는 건 단순히 만든 사람이 서툴러서만은 아니다.
양모 펠트는 폭신한 재료와 귀여운 외형 뒤에 숨어 있는, 꽤 가혹한 3차원 밸런스 게임이기 때문이다.
1. 재료가 있다고 형태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양모, 바늘, 눈 파츠, 코 파츠. 재료만 보면 이미 완성품의 절반쯤 온 것 같다.
하지만 배치와 비율이 조금만 틀어져도 갑자기 전혀 다른 생물이 된다.
눈 자체는 예쁜데 간격이 너무 좁다.
코 자체는 귀여운데 너무 안쪽으로 들어갔다.
정면에서는 둥근데 사선에서는 한쪽만 튀어나와 보인다.
필요한 것은 귀여운 파츠가 아니다.
입체 안에서 파츠들의 상대적인 관계를 끝까지 유지하는 능력이다.
여기가 어렵다.
2. “여기가 이상하네” 하고 고치면 다른 곳이 이상해진다
양모 펠트의 무서우면서도 재미있는 점은 수정 자체가 형태 변형이라는 것이다.
“여기가 조금 너무 볼록하네.”
찌른다.
줄어든다.
그러면 옆이 상대적으로 커 보인다.
또 찌른다.
또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얼굴 전체는 점점 작아지는데, 처음 준비한 눈 파츠만 같은 크기로 남는다.
그리고 탄생한다.
눈만 비정상적으로 큰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매번 국소적으로는 “아까보다 나아졌다”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전체는 조금씩 목표에서 멀어진다.
양모로 하는 국소 최적화다.
3. 2D의 “뭔가 이상하다”가 3D에서는 모든 방향에서 온다
그림에서도 얼굴은 어렵다.
눈이 몇 밀리미터 높다. 입이 조금 왼쪽이다. 턱이 살짝 좁다.
부품 하나하나는 맞는데 전체는 이상할 수 있다.
양모 펠트에서는 여기에 깊이가 추가된다.
정면은 완벽하다.
옆에서는 코가 사라진다.
사선에서는 한쪽 볼만 강하다.
위에서 보면 머리 폭이 이상하다.
한 방향에서 맞는다고 입체 전체가 맞는 것은 아니다.
정면, 측면, 사선, 위아래를 계속 확인해야 한다.
이쯤 되면 귀여운 수공예보다 소형 3D 모델링에 가깝다.
4. 잘하는 사람은 바늘질보다 전체를 보는 능력이 강하다
초보자는 이상한 부분을 찾으면 바로 그 부분을 고치고 싶어진다.
하지만 입체에서는 그게 위험하다.
왼쪽 볼이 커 보여도 실제로 왼쪽이 큰 게 아닐 수 있다. 오른쪽이 너무 작을 수도 있고, 눈 간격이 좁을 수도 있고, 코가 너무 들어가 있어서 볼이 상대적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디를 찌를까?”보다 먼저 봐야 하는 것은,
어떤 비율이 무너졌는가
이다.
숙련자가 작품을 계속 돌려 보고, 조금 떨어져서 확인하는 것은 단순히 신중해서가 아니다.
국소 수정으로 전체를 망치지 않기 위한 품질 관리다.
5. 실패작이 묘하게 무서운 이유는 생명감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양모 펠트 실패작은 단순히 지저분해 보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눈이 있다. 코가 있다. 털이 있다. 얼굴 구조도 있다.
사람의 뇌는 그 신호를 보고 자동으로 생물을 읽어 낸다.
그래서 좌우가 약간 다르고, 윤곽이 찌그러지고, 눈만 커진 작품은 “못 만든 인형”이 아니라,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이렇게 생긴 생물
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낮에는 선반 위에 있어도 밤에는 위치가 바뀌어 있을 것 같다.
“재미있는 양모 펠트 영상 봐 봐”라는 말을 듣고 영상을 본 결과, 마지막 감상이 “얘 밤에 혼자 걸어 다닐 것 같은데”가 된다.
양모 펠트, 강하다.
6. 머릿속에서 3D 회전이 어렵다면 밖으로 꺼내면 된다
입체를 머릿속에서 자유롭게 돌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후자는 모든 것을 머릿속만으로 해결할 필요가 없다.
정면도, 측면도, 45도 참고 이미지를 둔다.
폭과 높이를 간단히 잰다.
중간 사진을 찍어 좌우 반전해 비대칭을 본다.
3D 모델을 기준 형태로 만든다.
즉,
공간 인지를 정신력으로 해결하기 전에 외부 도구로 빼낸다.
AI로 형태 아이디어를 만들고, Blender에서 3D화하고, 3D 프린터로 참고물을 뽑을 수도 있다.
그 출력물이 최종 작품에 들어갈 필요도 없다.
옆에 두고 비교만 해도 코가 얼마나 나와야 하는지, 머리 폭이 어디서 가장 넓어야 하는지 훨씬 보기 쉬워진다.
7. 여기서 “손기술을 연습하는 사람”과 “공정을 다시 만드는 사람”으로 갈린다
보통 어려운 수작업을 만나면,
“연습해서 잘해야지”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중간부터 다른 질문을 한다.
“이걸 매번 사람이 해야 해?”
같은 곳을 수백 번 찌른다.
좌우 대칭을 계속 확인한다.
형태가 틀어지면 수정한다.
또 잰다.
이쯤 되면 수공예보다 공정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머릿속에 기계가 자라기 시작한다.
XYZ 스테이지.
상하 운동하는 바늘.
카메라.
깊이 센서.
목표 3D 형상.
현재 형상과의 차이.
필요한 곳만 추가로 찌르는 제어.
어느 순간 만드는 것은 양이 아니다.
양모 펠트 생산 설비다.
8. 사고는 자연스럽게 자동 직기 방향으로 미끄러진다
반복 수작업을 보고 “사람이 계속 붙어 있을 필요 없지 않나?”라고 생각하면 발상은 자연스럽게 자동 직기 쪽으로 간다.
동작만 자동화하는 것이 아니다.
이상이 생기면 멈춘다.
품질이 흔들리면 감지한다.
사람은 계속 감시하지 않고 판단이 필요한 곳만 본다.
양모 펠트에 이 정도 산업적 사고가 필요한가?
당연히 아니다.
그래서 더 웃기다.
둘이 취미로 양모 펠트를 시작했는데 몇 번 지나면 한쪽에서,
“찌르는 공정은 자동화할 수 있겠는데?”
“카메라로 윤곽 잡으면 되겠네.”
“목표 형상과 차이를 보고 다음 바늘 위치 정하면 되지 않아?”
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공예 테이블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다.
9. 그래도 한 번은 손으로 해 보는 가치가 크다
자동화를 좋아해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기계에 넘길 필요는 없다.
직접 해 보면,
어떤 작업이 진짜 어려운지,
어떤 실수가 되돌리기 어려운지,
어디서 품질이 무너지는지,
무엇을 재야 재현성이 좋아지는지
알 수 있다.
이 정보는 자동화 설계에 중요하다.
현장을 모르고 만든 자동화는 중요하지 않은 곳만 빠르게 만들기 쉽다.
그러니 일단 직접 한 번 만들어 본다.
그리고 괴물을 한 마리 탄생시킨다.
그 괴물이 최고의 요구사항 정의서가 될 수 있다.
10.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그렇지!
한 번 반복 작업을 보면 공정으로 분해하는 사고가 생기면 일상이 조금 달라진다.
요리를 보면 흐름이 보인다.
집안일을 보면 자동화 후보가 보인다.
공예를 보면 센서와 제어가 보인다.
이제 순수하게 “열심히 손으로 해야지”만으로는 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게 취미를 망치는 것은 아니다.
손으로 만드는 사람은 손으로 만드는 재미를 추구하면 된다.
기계를 만드는 사람은 공정을 만드는 재미를 추구하면 된다.
같이 시작했는데 한 사람은 귀여운 양모 작품을 만들고, 다른 사람은 옆에서 자동 바늘 장치를 조립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훌륭한 공동 제작이다.
자동화 사고가 되어 버렸으니…… 그렇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