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으로 일해서 미래에 무엇이 남는지 알 수 없었다
회사에 다니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일을 계속하면 그 끝에 무엇이 남을까.
월급은 들어온다.
출근하면 할 일이 있다.
매달 생활은 굴러간다.
사회보험도 있다.
보너스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미래에 희망이 생기는 건 아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뭐든 떠맡는 사람이 되어 간다.
신뢰를 받을수록 귀찮은 일이 늘어난다.
상사와 가까워질수록 방어적이고 우위를 과시하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밤과 휴일이 사라지고, 취미도 투자도 개인 개발도 글 쓸 여유도 없어진다.
그렇게 보이는 순간, 회사원으로서 열심히 일할 이유를 모르겠어진다.
그런데 나이 많은 어느 회사원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회사원이 전부 나쁜 건 아니다.
회사원 인생이 흑자가 되는 곳이 있고, 적자가 되는 곳이 있다.
그렇다면 회사원으로 일해서 미래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1. 월급이 투자 밑천이 된다
첫 번째는 월급이다.
이건 알기 쉽다.
회사원의 가장 큰 강점은 매달 어느 정도 안정적인 현금이 들어온다는 점이다. 안정된 수입이 있으면 생활비를 내면서 투자에 돌릴 수 있다. 앱, 글, 개인 개발, 자격증, 공부처럼 회사 밖에 자산을 쌓을 여력도 생긴다.
이때 회사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게 된다.
회사는 자금을 대 주는 장치가 된다.
회사에 충성하려고 일하는 게 아니다.
내 선택지를 늘리려고 일한다.
매달 받는 월급을 투자 밑천, 비상금, 개인 자산의 연료로 쓴다.
이렇게 볼 수 있다면 회사원은 꽤 강하다.
특히 갑자기 독립하는 것보다 회사원으로 수입을 얻으면서 바깥에 자산을 만드는 편이 더 안전한 사람도 많다. 월급을 받으면서 투자, 글, 앱, 기술, 경력을 쌓는다. 회사원의 안정성을 내 자유를 위해 쓰는 것이다.
다만 월급이 있어도 생활이 무너질 만큼 깎여 나간다면 의미가 약하다.
연봉이 올라도 야근, 통근, 시시콜콜한 간섭, 끝없는 책임, 정신적 방어 때문에 밤과 휴일이 사라진다면 그 월급은 높아 보여도 실질적으로는 적자일 수 있다.
월급은 중요하다.
다만 월급이 자유를 늘리는 형태로 남아야 한다는 게 조건이다.
2. 경력을 회사 밖으로 가져갈 수 있다
두 번째는 경력이다.
회사원으로 일한다면 그 경험을 회사 밖으로 가져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구매·조달, 업무 개선, AI 활용, VBA(엑셀 작업을 자동화하는 매크로), 자동화, 업무 표준화, 제조업에 대한 이해, 현장과 관리 부서를 잇는 일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경험은 회사를 옮겨도 설명하기 쉽다.
"어떤 업무를, 어떤 문제에서 출발해, 어떻게 개선하고, 어떤 성과를 냈는가."
이걸 말할 수 있다면 경력은 자산이 된다.
반대로 사내에서만 통하는 잡무, 상사 기분 맞추기, 말하지 않는 규칙 눈치 보기, 책임 떠넘기기 뒤처리, 우위를 과시하는 상사 수발. 이런 건 아무리 힘들어도 밖으로 가져가기 어렵다.
이력서에 쓸 수 없다.
면접에서 설명하기 어렵다.
다른 회사에 재현할 수 있다고 전하기 어렵다.
즉, 고생에 비해 자산이 되기 어렵다.
회사원으로 일해서 미래에 남느냐는 "바쁜가"보다 "경력으로 만들 수 있는가"로 갈리는 부분이 크다.
이 일을 미래의 내가 이직 시장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경험을 회사 밖에서도 통하는 말로 바꿀 수 있을까.
이 성과는 숫자, 구조, 프로세스, 표준으로 남을까.
이 부분을 본다.
3. 혼돈을 고칠 권한이 있다
세 번째는 혼돈을 고칠 권한이다.
어수선한 업무를 잘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
누가 무엇을 판단하는지 알 수 없다.
엑셀 파일이 특정 한 사람에게만 의존한다.
같은 확인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매뉴얼이 읽히지 않는다.
현장과 관리 부서 사이에서 정보가 막혀 있다.
시스템이나 RPA(반복 업무를 대신하는 소프트웨어 로봇), AI를 쓰면 편해질 것 같은데 실제 운영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런 상태를 보면 정리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혼돈을 고치는 일에도 해 볼 만한 혼돈과 피해야 할 혼돈이 있다.
해 볼 만한 혼돈은 이렇다.
목적이 있다.
범위가 정해져 있다.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
기한이 있다.
고친 결과가 남는다.
표준화된다.
내 성과로 설명할 수 있다.
다음부터 편해진다.
이건 자산이 된다.
반면 피해야 할 혼돈은 이렇다.
목적이 모호하다.
범위가 끝이 없다.
판단하는 사람이 없다.
뒤늦게 요구가 바뀐다.
책임만 무겁다.
고쳐도 또 다른 혼돈이 온다.
성과로 남지 않는다.
월급도 재량도 늘지 않는다.
이건 그냥 불 끄기다.
특히 벤처나 작은 조직에서는 "혼돈을 고치는 일"이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재량이 있고 성과가 보수나 스톡옵션, 경력으로 이어진다면 분명 강하다.
하지만 혼돈을 고쳐도 다음 혼돈이 올 뿐이고 월급도 경력도 자유도 늘지 않는다면, 그건 끝없는 불 끄기다.
혼돈이 있느냐가 아니라, 혼돈을 고친 뒤에 무엇이 남느냐.
이게 중요하다.
4. 심리적 안전감이 어느 정도 있다
네 번째는 심리적 안전감이다.
쉽게 말해, 질문하거나 위화감을 말하거나 개선을 제안해도 인격 공격이나 과도한 방어를 당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일하는 곳에서는 이게 꽤 중요하다.
개선에는 반드시 사람 사이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여기, 방식을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 업무의 목적이 뭔가요?"
"이 순서면 이중 관리가 되고 있지 않나요?"
"결정권자를 정하면 어떨까요?"
"같은 질문이 많으니 매뉴얼로 만들면 어떨까요?"
이런 말을 했을 때 상대가 배우려는 자세가 아니라 방어 태세로 들어가는 곳에서는 개선이 진행되지 않는다.
지적당했다고 받아들인다.
자기가 부정당했다고 느낀다.
이야기가 태도와 체면 문제로 옮겨 간다.
논점이 사라진다.
결국 말을 꺼낸 쪽의 HP(게임의 체력 수치처럼 쓰는 말)만 깎인다.
이런 환경에서는 구조화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지친다.
문제가 보인다.
고치는 방법도 보인다.
그런데 말하면 방어당한다.
그래서 입을 닫는다.
하지만 입을 닫으면 개선되지 않는다.
개선되지 않으니 혼돈이 다시 늘어난다.
이 악순환은 괴롭다.
회사에서 자기 강점을 살리려면 최소한의 심리적 안전감은 필요하다. 완벽하게 사이가 좋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질문이나 개선 제안이 매번 우위 과시나 방어로 바뀌는 곳은 위험하다.
5. 위로 올라간 사람이 매력적이다
다섯 번째는 위로 올라간 사람이 매력적인가 하는 점이다.
의외로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장은 미래의 견본이 전시된 곳이기도 하다.
계장, 과장, 부장, 임원, 정년 이후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보면 그곳에서 오래 일한 끝의 모습이 보인다.
그 가운데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저 사람처럼 일하고 싶다.
저 사람처럼 여유를 갖고 싶다.
저 사람처럼 가정과 취미를 지키고 싶다.
저 사람처럼 사람들이 의논하러 오는 존재이고 싶다.
저 사람처럼 밝게 지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곳은 따져 볼 가치가 있다.
반대로 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이렇게 느낀다면 어떨까.
저렇게 되면 끝이다.
우위를 과시해야만 인정받는다.
늘 방어하고 있다.
바쁜 것에 비해 인생이 흑자로 보이지 않는다.
취미도 가정도 여유도 남아 있지 않아 보인다.
나도 여기 남으면 저렇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곳에서 올라가는 건 위험하다.
매력적인 윗사람이 없는 직장에서 상사와 회사에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건,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까워지는 일이 된다.
이건 꽤 무섭다.
신뢰 자산과 신뢰 부채
회사 생활에서 자주 듣는 말이 "신뢰"다.
신뢰받는 건 중요하다.
다만 어떤 곳에서 신뢰받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좋은 곳에서 얻은 신뢰는 자산이 된다.
좋은 일이 들어온다.
재량이 늘어난다.
월급과 평가로 이어진다.
인맥이 남는다.
회사 밖에서도 설명할 수 있는 성과가 된다.
생활의 자유가 늘어난다.
이것이 신뢰 자산이다.
나쁜 곳에서 얻은 신뢰는 부채가 된다.
귀찮은 일이 들어온다.
거절하지 못하게 된다.
뭐든 해결해 주는 사람이 된다.
책임만 늘어난다.
주변이 의존한다.
그런데 월급도 평가도 자유도 늘지 않는다.
생활이 무너진다.
이것이 신뢰 부채다.
그래서 신뢰는 아무 데서나 쌓으면 되는 게 아니다.
이곳에서 신뢰를 쌓으면 나는 자유로워질까.
아니면 붙잡히게 될까.
이 부분을 보는 게 좋다.
회사원이 해 볼 만한 조건
나에게 회사원이 해 볼 만한 건 다음 조건이 갖춰질 때다.
- 월급이 투자 밑천이 된다
- 경력을 회사 밖으로 가져갈 수 있다
- 혼돈을 고칠 권한과 범위가 있다
- 심리적 안전감이 어느 정도 있다
- 위에 있는 사람이 매력적이고, 되고 싶은 미래가 보인다
이 조건이 있다면 회사원은 꽤 강하다.
매달 월급을 받으면서 투자할 수 있다.
실무 경험을 경력으로 만들 수 있다.
업무 개선과 AI 활용의 실적을 쌓을 수 있다.
회사의 간판을 이용해 혼자서는 얻기 어려운 경험을 얻을 수 있다.
가정과 취미, 개인 자산도 지킬 수 있다.
반대로 이 조건이 없다면 회사원은 위험하다.
월급은 있지만 생활이 무너진다.
경력이 되지 않는 잡무만 한다.
혼돈을 고쳐도 책임만 늘어난다.
개선 제안은 방어당한다.
위에 있는 사람이 매력적이지 않다.
이런 경우에는 열심히 할수록 인생이 적자가 된다.
정리: 회사원은 "쓰는" 것이기도 하다
회사원을 계속할지는 회사를 좋아할 수 있는지만으로 정하지 않아도 된다.
회사원은 쓰는 것이기도 하다.
월급을 쓴다.
사회보험을 쓴다.
회사의 간판을 쓴다.
실무 현장을 쓴다.
경력을 만든다.
투자 밑천을 만든다.
회사 밖으로 가져갈 수 있는 성과를 만든다.
회사에 인생을 맡기는 게 아니라, 회사를 써서 인생의 선택지를 늘린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회사원도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회사에 쓰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신뢰가 속박으로 바뀌는 곳.
혼돈이 끝없이 늘어나는 곳.
윗사람이 매력적이지 않은 곳.
심리적 안전감이 없어서 개선 제안이 방어당하는 곳.
그런 곳에서는 회사원으로서의 노력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회수할 수 있는 것만 회수한다.
회사원이 해 볼 만한지는 회사 이름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그곳에서 내 인생이 흑자가 되느냐로 정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