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1화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단순했다.
이거 그냥 ONE PIECE 극장판 마지막 30분 아닌가?
전투가 싫은 건 아니다. 루피가 때리는 것도 좋고, 로키가 끼어드는 것도 좋고, 거인족의 대형 기술도 좋다.
그런데 상대가 이무다.
세계정부의 위에 있고, 공백의 100년과 조이보이에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800년 전 세계의 진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큰 존재다. 그런 캐릭터를 앞에 두고 지금 독자가 가장 보고 싶은 게 정말로 “더 커졌습니다! 세 명이 합체 필살기 씁니다!”일까.
아니다. 이제는 800년 전 회의록부터 내놔라 싶다.
1. 먼저 사실 확인: 1191화에서 이무는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
이건 확실히 해두자.
1191화에서 이무는 새로운 이형으로 변하고, 몸이 더 커지며 네 개의 뿔과 검게 변한 양팔을 드러낸다. 가반과 대치한 뒤 하이루딘이 난입해 이무를 주먹으로 날려버린다. 다만 하이루딘도 이무의 마성 같은 기운에 영향을 받는다.
이후 로키가 도착하고, 루피는 보관해 둔 음식을 먹고 회복한다. 마지막에는 루피·로키·하이루딘 셋이 함께 이무에게 합동 공격을 날린다.
그리고 끝난다.
이무가 쓰러졌는지, 큰 피해를 입었는지, 멀쩡한지, 재생하는지, 애초에 공격이 먹혔는지는 1191화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이무 벌써 졌네”라고 보는 건 너무 빠르다.
하이루딘이 이무를 날렸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위치를 움직였다는 것과 내구를 뚫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ONE PIECE에서는 날려버렸다 = 데미지가 들어갔다가 아니다.
이무가 폭발이나 불꽃을 맞고도 “으아악ㅋㅋ” 정도로 끝나는 타입이라면, 하이루딘의 주먹도 단순히 거대한 질량으로 몸을 밀어낸 것일 수 있다.
2. 왜 “극장판밖에 안 보인다”고 느끼는가
문제는 전투력보다 구도다.
1191화의 흐름만 뽑아보면 이렇다.
- 최종 보스급 적이 새로운 형태를 공개한다
- 더 커지고 더 괴물처럼 변한다
- 대형 아군 캐릭터가 난입한다
- 주인공이 회복한다
- 강한 캐릭터들이 집결한다
- 모두가 합동 필살기를 날린다
- 폭발 결과는 다음 화로 넘긴다
이거 너무 영화다.
『ONE PIECE FILM GOLD』에서는 테조로가 거대한 황금 골렘을 조종한다. 『STAMPEDE』에서는 불릿이 주변을 흡수해 거대한 콜로서스가 된다. 『FILM RED』에서는 토트 무지카라는 거대한 위협을 상대로 밀짚모자 일당과 빨간 머리 해적단이 연계 공격을 퍼붓는다.
세부 내용은 당연히 다르다.
하지만 화면의 문법은 닮았다.
적이 커진다. 아군이 모인다. 필살기를 겹친다. 쾅.
영화에서는 엄청 잘 먹힌다.
그런데 본편의 이무에게 이걸 적용하면, 800년 동안 세계의 뒤를 지배한 존재가 갑자기 극장판 보스의 HP 바가 된다.
제목까지 붙이면 된다.
ONE PIECE FILM: IMU
나는 팝콘 안 샀다.
3. 하이루딘을 강하게 보일 장면이 아니라 이무의 격을 올릴 장면이었다
1191화를 보고 “하이루딘 원래 이렇게 셌나?”라고 느끼는 것도 이해된다.
하이루딘은 드레스로자 때부터 거인족다운 괴력은 확실했다. 거의 만신창이 상태에서 초중량의 마하바이스를 하늘로 날려버리는 장면도 있었다.
그러니 순수한 완력 자체는 원래 강했다.
하지만 “하이루딘의 주먹이 엄청 세다”와 “세계의 왕 이무와 정면 승부가 된다”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이 하이루딘의 격을 올리는 장면일 필요가 없었다고 본다.
올려야 했던 건 이무의 격이다.
가반조차 팔 하나를 잃은 상대다.
그런 이무에게 하이루딘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며 달려든다면, 독자가 느껴야 할 건
“하이루딘 개세네!”
보다
“야 하이루딘, 그거 죽는다.”
쪽이어야 했다.
4. “때렸더니 하이루딘 쪽이 튕겨 나감” 정도여도 됐다
극단적으로는 이렇게 해도 됐다.
하이루딘이 전력으로 주먹을 꽂는다.
이무는 움직이지 않는다.
하이루딘의 팔이 먼저 망가진다.
혹은 일단 이무를 멀리 날려버린다.
하이루딘이 통했다고 생각한다.
다음 컷.
이미 이무가 뒤에 서 있다.
한 방.
하이루딘 빈사.
이 정도면 분위기가 바로 바뀐다.
이무가 평소 감정적으로 조금 쪼잔해 보여도, 전투에서는 완전히 다른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아, 얘는 웃고 넘길 상대가 아니구나.”
지금 이무에게 필요한 건 이거다.
솔직히 “하이루딘이 이무를 때렸는데 반동으로 하이루딘이 날아간다” 정도도 괜찮았다. 800년 동안 세계 정상에 있던 존재라면 그 정도로 불합리해도 된다.
로키가 와도 안 된다. 루피가 회복해도 힘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
그러면 전투는 단순한 화력 측정이 아니라 공략 규칙 찾기가 된다.
그게 훨씬 재미있다.
5. 이무는 이미 “조이보오오오이!!” 문제를 안고 있다
이무의 격을 가장 깎는 건 약함이 아니라, 감정을 드러낼 때 갑자기 너무 인간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무의 첫 등장은 906화, 2018년이다. 실제로 어제 갑자기 등장한 캐릭터는 아니다.
그런데도 묘하게 “후반에 갑자기 나온 최종 보스” 느낌이 남는다.
이유는 오랫동안 이무가 인물이라기보다 수수께끼의 상징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밀짚모자.
찢긴 사진.
허의 옥좌.
무릎 꿇는 오로성.
독자는 계속 “대체 뭐야 얘?”라고 생각했다.
그 모름 자체가 이무의 위엄이었다.
그런데 1122화에서 에메트에 보존되어 있던 조이보이의 패기가 해방되자, 멀리 마리조아에 있던 이무까지 고통스럽고 격하게 반응한다.
그 순간부터 머릿속 이무 이미지는 자꾸 이쪽으로 간다.
“조이보오오오오이!!!”
세계의 왕인데 800년 동안 한 남자에게 정서적으로 붙잡혀 있다.
이 설정 자체는 오히려 재미있다.
하지만 이미 “초월적인 존재”에서 “조이보이 때문에 인생이 타버린 사람” 쪽으로 인간화되고 있는데, 전투까지
거대화!
으아악!
날아감!
다 같이 필살기!
로 가면 위엄 재고가 위험하다.
조이보이 극성팬 + 극장판 거대 보스가 되어버린다.
6. 그래서 이 전투에 필요한 건 시원함보다 절망감이다
이무전이 카이도전처럼 “더 큰 주먹으로 더 세게 때리면 되는가”의 문제가 되면 아쉽다.
카이도의 매력 중 하나는 압도적인 육체와 내구를 어떻게 넘어설지였다.
이무의 재미는 다른 곳에 있다.
- 왜 800년 넘게 존재하는가
- 무엇이 본체이고 무엇이 원격 지배인가
- 오로성과 신의 기사단의 계약 구조는 무엇인가
- 왜 조이보이의 패기에 저렇게 반응하는가
- 릴리와 무슨 일이 있었는가
- 공백의 100년에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
- 세계정부는 처음부터 이무의 체제였나, 아니면 이무가 나중에 빼앗았나
이게 진짜 본편이다.
그러니 “세 명의 화력을 합치니까 HP가 깎였다”보다
“몇 번을 때려도 의미가 없다. 애초에 쓰러뜨리는 규칙을 모른다.”
가 이무에게 더 어울린다.
비블로가 쵸파에게 전한 정보, 하레이라는 신전, 고대 벽화, 가반의 지식이 전투 공략과 연결되면 전투와 세계관 설명이 동시에 진행된다.
그럼 전투를 오래 해도 이유가 생긴다.
7. 그래도 진짜 보고 싶은 건 전투가 아니라 공백의 100년이다
결국 본심은 하나다.
싸움도 좋으니까 이제 공백의 100년 좀 보여줘.
엘바프에는 역사 떡밥이 너무 많이 모였다.
하레이.
공백의 100년 벽화.
거인족 신화.
조이보이.
니카.
이무.
갓밸리와 연결된 가반.
피거랜드 가문과 연결된 샴록.
세계 최대 자료실 문을 열어놓고 그 한가운데서 거대 보스전을 몇 주씩 하면, 자료 보러 왔는데 체육관으로 끌려간 느낌이다.
ONE PIECE는 이제 단순한 섬별 모험이 아니다.
공백의 100년, 고대병기, 세계정부, D, 니카, 종족사, 갓밸리, 로저, 샹크스가 한 덩어리의 가상 세계사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 가장 설레는 연출은 더 큰 주먹이 아니다.
페이지 구석의 짧은 문구다.
“800년 전――”
이 네모난 회상 캡션 하나면 거대화 3단계보다 세다.
특히 알고 싶은 건 이무가 현재의 세계질서를 처음부터 만든 존재인지, 아니면 원래 있던 협정·봉쇄·전후 체제를 나중에 탈취한 존재인지다.
후자라면 이무가 과거에 집착하는 모습, 조이보이에 대한 과민반응, 묘한 소인배 느낌까지 전부 하나의 캐릭터로 연결된다.
전투력표 말고 역사를 열어줘.
8. 샹크스 군, 이제 진짜 다 말해줘
그리고 또 한 명.
샹크스, 이제 좀.
1화부터 있다.
루피에게 밀짚모자를 줬다.
로저 해적단에 있었다.
지금은 사람사람 열매 환수종 모델 니카로 밝혀진 열매를 세계정부 측에서 빼앗았다.
오로성과 수상한 접점이 있었다.
엘바프와 깊은 관계가 있다.
그리고 엘바프에서는 샴록이 샹크스의 쌍둥이 형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피거랜드 가문과의 혈연도 명확해졌다.
이 남자는 정보를 너무 많이 들고 있다.
그런데 등장할 때마다 중요한 말 한 마디만 하고 사라진다.
“슬슬 가지러 갈까.”
아니.
그 전에 설명회를 열어.
궁금한 게 너무 많다.
- 로저는 라프텔에서 돌아온 뒤 샹크스에게 무엇을 말했나
- 샹크스는 왜 울었나
- 니카 열매의 정체를 어디까지 알고 있었나
- 왜 후샤 마을에 있었나
- 피거랜드 가문과 얼마나 접촉했나
- 마리조아로 돌아갔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나
- 왜 지금까지 ONE PIECE를 찾으러 가지 않았나
- 검은수염의 무엇을 그렇게 경계하나
- 키드를 원펀치한 뒤 대체 어디를 돌아다니고 있나
키드 체력바 지울 시간은 있었다.
질의응답할 시간도 있지 않겠냐.
9. 결론: 영화관은 됐고 “800년 전” 네모칸을 보여줘
1191화 하나만 보고 이무전을 실패라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무는 패배하지 않았다.
하이루딘의 주먹이 유효타였는지도 모른다.
세 명의 합동 공격 결과도 아직 안 나왔다.
다음 화에서 이무가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고, “애초에 이런 방식으로는 못 쓰러뜨린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
그럼 충분히 재미있다.
하지만 그대로
거대화 → 공투 → 더 큰 기술 → 더 거대화 → 니카 최종 펀치 → 쾅
으로 가면 감상은 하나다.
극장판이다.
이무에게 기대하는 건 영화 한정 보스보다 큰 몸이 아니다.
800년치 답이다.
하이루딘을 날려버려라.
로키도 절망하게 만들어라.
루피의 화력만으로 풀리지 않는 규칙을 보여줘라.
그리고 빨리 페이지를 넘겨서
“800년 전――”
을 보여줘.
그리고 샹크스는 의자에 앉혀서 질문 전부 답하게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