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흑당, 맛있다. 그런데 정체가 뭘까
흑당은 맛있다.
백설탕은 그냥 달기만 하다. 흑당은 단맛에 더해서 살짝 탄 듯한 향과 깊은 맛이 난다. 가고시마나 오키나와 가게에서 흑당 과자를 보면 갑자기 눈길이 간다.
그러면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흑당은 사탕수수로 만드는 걸까?
답은 "그렇다"이다.
게다가 진짜 "고쿠토"는 그냥 갈색 설탕이라는 뜻이 아니다. 일본 소비자청의 정의로는, 사탕수수 즙을 끓여 졸인 뒤 당밀을 빼지 않고 식혀서 굳힌 것이 흑당이다. [1]
아주 거칠게 말하면 이렇다.
사탕수수를 짠다 → 즙을 졸인다 → 단 성분을 통째로 굳힌다.
흑당은 사탕수수의 맛과 향이 많이 남아 있는 설탕이다.
1. 색이 검다고 다 흑당은 아니다
별것 아닌 듯해도 중요한 부분이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흑당과 "가공흑당"을 나눈다. [2]
흑당은 사탕수수 즙을 졸여서 만든다.
가공흑당은 원당이나 당밀 같은 재료에 흑당을 섞어서 만든 것이다. 색도 검고 맛도 진해서 비슷해 보이지만, 표시상으로는 다른 제품이다.
그러니 진짜 흑당을 사고 싶다면 제품 이름만 보지 말고 원재료 표시를 확인하는 게 좋다.
해외 독자라면 하나 더 조심할 게 있다. 영어의 "brown sugar"는 일본 흑당과 완전히 같은 말이 아니다. 해외 브라운 슈거 중에는 정제한 설탕에 당밀을 다시 섞은 것도 많다.
이 글에서 말하는 흑당은 사탕수수즙을 당밀째 굳힌 일본의 흑당(고쿠토)이다.
2. 그럼 평범한 백설탕도 사탕수수로 만들까?
이것도 "대부분 그렇지만, 전부는 아니다"가 답이다.
설탕의 주된 원료는 두 가지다. [3]
하나는 사탕수수다. 따뜻한 곳에서 자라며, 일본에서는 주로 가고시마현의 남서제도와 오키나와현에서 재배한다.
다른 하나는 사탕무(비트)다. 커다란 순무처럼 생겼고, 일본에서는 주로 홋카이도에서 재배한다.
어느 쪽으로든 같은 성분의 설탕을 만들 수 있다.
백설탕이 하얀 건 하얀 식물로 만들어서가 아니다.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뽑은 당액을 깨끗이 거르고, 결정을 분리해서 정제하기 때문에 하얗게 된다.
그러니
흑당만 사탕수수고, 백설탕은 완전히 다른 것
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백설탕 중에도 사탕수수로 만든 것이 흔하다.
3. '생산량'은 무엇을 세느냐에 따라 자릿수가 달라진다
여기가 가장 헷갈리는 부분이다.
"흑당 생산량", "사탕수수 수확량",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의 양"은 모두 다른 숫자다.
일본 농축산업진흥기구(ALIC)에 따르면, 2024 설탕연도(2024년 10월~2025년 9월)에 가고시마현과 오키나와현의 사탕수수 생산량은 합쳐서 140만 4,000톤이었다. 이것으로 만든 감자당(사탕수수 설탕)은 15만 1,000톤이었다. [4]
한편 흑당처럼 당밀이 남아 있는 "함밀당"은 훨씬 적다.
농림수산성의 2025 설탕연도(2025년 10월~2026년 9월) 전망에서는 국내산 함밀당 공급량이 9,000톤, 수입 함밀당이 6,000톤이었다. [5]
같은 "설탕 이야기"라도
- 사탕수수라는 농작물: 100만 톤 단위
-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 10만 톤 단위
- 흑당 같은 함밀당: 1만 톤 안팎
으로 자릿수가 다르다.
숫자만 보면 "아까 9,000톤이라더니 140만 톤이라고?" 싶겠지만, 재는 대상이 다를 뿐이다.
4. 흑당의 본진은 오키나와. 가고시마도 중요하지만 지역이 다르다
일본 국내 흑당은 주로 오키나와현과 가고시마현 남서제도에서 만든다.
ALIC가 2023년에 낸 산업 소개 글에 따르면, 당시 국내 흑당 생산량 약 9,000톤 가운데 약 90%가 오키나와산이었다. [6]
그래서 "흑당의 본진이 어디야?" 하고 묻는다면 오키나와가 강하다.
그렇다고 가고시마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가고시마현과 가고시마시를 같은 곳으로 생각하면 어긋난다.
가고시마현의 사탕수수는 주로 다네가시마와 아마미 제도에서 자란다. 농림수산성의 섬별 자료에 따르면 2022년산 가고시마현 사탕수수 수확량은 53만 4,100톤이었고, 도쿠노시마가 약 32%, 다네가시마가 약 29%, 기카이섬과 오키노에라부섬이 각각 약 15%였다. [7]
그러니 가고시마 시내를 걸으면서
"사탕수수밭이 없네? 다른 도시랑 별로 다르지 않은데?"
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밭은 바다 건너에 있다.
5. 사탕수수밭은 어떻게 생겼을까
사탕수수는 볏과 식물이다.
멀리서 보면 커다란 풀밭이나 키 큰 억새밭처럼 보이기도 한다. 잎은 가늘고 길며, 줄기는 굵고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다.
다 자라면 사람 키를 넘는 일도 흔하다.
처음 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옥수수인가?" "그냥 큰 풀인가?" "전부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네."
구분하려면 잎보다 줄기를 보면 된다.
마디가 있는 굵은 줄기 속에 당분이 모여 있다.
그 줄기를 짠 즙이 흑당도 되고, 보통 설탕도 된다.
가고시마 시내에서 이런 풍경이 이어지지 않는 건, 사탕수수가 가고시마현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6. 국산만 있는 게 아니다. 흑당도 수입한다
"국산이 적으면 흑당이 없어지는 거 아냐?" 하고 걱정할 수도 있지만, 수입도 있다.
일본 재무성 무역통계를 ALIC가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12월까지 함밀당 수입량은 6,493톤이었다. [8]
주요 수입국은 다음과 같다.
- 중국: 3,350톤
- 태국: 2,603톤
- 필리핀: 266톤
- 볼리비아: 142톤
중국과 태국을 합치면 약 92%다.
그래서 일본의 흑당류 시장은
국산(오키나와, 가고시마 남서제도) + 중국·태국 등에서 오는 수입품
으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로 백설탕의 원료가 되는 원당도 대량으로 수입하며, 최근 주요 수입국은 호주와 태국이다. [9]
설탕 코너는 하얗고 조용하지만, 그 뒤는 꽤 큰 국제 물류다.
7. "그럼 가고시마가 분화해도 흑당은 괜찮나?"라는 최악의 확인
여행 중에 화산을 너무 오래 보면 생각이 이상해진다.
"대분화하면 어떻게 될까" ↓ "그래도 흑당 좋아하는데, 흑당이 없어지면 곤란한데" ↓ "잠깐, 가고시마시에는 사탕수수밭이 없잖아" ↓ "그럼 흑당 방어선은 여기가 아니었나?"
정말 철없는 생각의 흐름이 완성된다.
사실만 정리하면, 가고시마의 사탕수수 중심은 가고시마시가 아니라 다네가시마와 아마미 제도다. 게다가 흑당은 오키나와 비중이 더 크고, 수입도 있다.
그래서
가고시마시가 큰 재해를 입으면 일본에서 흑당이 바로 사라진다
는 구조는 아니다.
물론 도시의 피해, 인명, 항구와 물류, 현 전체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다른 문제다. 대분화라면 피해 범위가 분화 규모와 바람 방향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지므로, "밭이 섬에 있으니 다 안전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흑당만 지키는 지리 퀴즈라면, 가고시마시는 최전선이 아니었다
는 블랙 조크일 뿐이다.
도시는 당연히 지켜졌으면 좋겠다.
8. 결론: 흑당을 따라가면 설탕 코너에서 남서제도까지 날아가게 된다
처음 궁금증은 간단했다.
"흑당은 사탕수수로 만들까?"
답은 "그렇다"이다.
그런데 조사해 보니 이런 것들을 알게 됐다.
- 흑당은 사탕수수 즙을 당밀째 졸여서 만든 설탕이다.
- 가공흑당은 표시상으로도 다른 제품이다.
- 보통 백설탕도 사탕수수나 사탕무로 만든다.
- 일본 국내 사탕수수는 가고시마현 남서제도와 오키나와현이 중심이다.
- 가고시마 시내에서 밭이 안 보이는 건 당연하다.
- 가고시마현의 주산지는 다네가시마와 아마미 제도다.
- 흑당에서는 오키나와의 비중이 더 크다.
- 수입 흑당류는 중국과 태국이 중심이다.
- 그러니 "가고시마시 = 흑당 생산지의 한복판"은 아니다.
꽤 지리 이야기가 됐다.
가게에서 흑당 하나를 봤을 뿐인데, 마지막에는 섬 농업과 국제무역에 닿는다.
설탕, 생각보다 세계가 넓다.
그리고 흑당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결론은 이것이다.
흑당은 오늘도 제대로 사탕수수였다.
- 소비자청 「식품표시기준 Q&A」 caa.go.jp
- 농림수산성 「설탕의 종류」 maff.go.jp
- 농림수산성 「설탕 만드는 법」 maff.go.jp
- 농축산업진흥기구 「설탕 가격조정 업무 실적(2024 설탕연도)」 alic.go.jp
- 농림수산성 「2025 설탕연도 설탕 및 이성화당 수급 전망」 maff.go.jp
- 농축산업진흥기구 「오키나와의 흑당 산업, 코로나 위기를 발판 삼아 새 시장을 열다」 alic.go.jp
- 규슈농정국 「가고시마의 농업을 소개합니다」 maff.go.jp
- 농축산업진흥기구 「설탕의 국내 수급」 alic.go.jp
- 농축산업진흥기구 「일본의 주요 수입국 동향」 alic.go.j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