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면 연인만 잃는 게 아니다: 그 사람 앞의 ‘나’도 사라진다

이별이 괴로운 이유는 보통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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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5초 결론: 이별은 사람 한 명만 잃는 일이 아닐 수 있다

이별이 괴로운 이유는 보통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맞다.

하지만 일본 코미디 듀오 하루토히코키의 군피이는 이별의 상실감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말했다. 연인을 잃는 것뿐 아니라, 그 연인에게만 보여 주던 자신의 모습까지 잃는 느낌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도 연애 관계가 자기 인식에 영향을 주고, 이별 뒤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감각이 흐려질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1][2]

즉 현상 자체는 완전히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그런데 표현이 강하다.

“그 사람이 없다”가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만 존재하던 나도 없다”로 바뀌는 순간, 이별은 갑자기 아주 사적인 이야기가 된다.

1. 이별은 두 겹의 상실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누구 앞에서나 완전히 똑같지 않다.

가족 앞에서는 대충 굴고, 친구 앞에서는 장난을 치고, 직장에서는 설명을 잘하고, 연인 앞에서는 유난히 솔직하거나 응석을 부릴 수 있다.

어느 쪽이 가짜라는 뜻이 아니다.

관계마다 다른 부분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별하면 잃는 것은 연인 한 명만이 아닐 수 있다.

  • 그 사람
  • 함께하던 생활
  • 둘만 아는 장소와 친구
  • 둘만 알아듣는 농담
  • 함께 상상하던 미래
  • 그 사람 앞에서만 켜지던 나

마지막 항목이 특히 묘하다.

사진은 남는다. 메시지도 남는다. 물건도 남는다.

하지만 특정한 사람 앞에서만 자연스럽게 나오던 말투, 웃음, 응석, 솔직함은 그 사람이 사라지면 다시 나타날 조건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파일은 있는데 실행 프로그램이 없어진 느낌이다.

2. ‘분인주의’로 보면 설명이 깔끔해진다

일본 작가 히라노 게이이치로가 제안한 ‘분인주의’는 사람에게 어디서나 동일한 하나의 ‘진짜 나’만 있다고 보지 않는다.

관계와 환경에 따라 여러 모습의 내가 생기며, 그 모두가 진짜 나라는 관점이다.[3]

일상어로 바꾸면 간단하다.

친구 A와 있을 때의 나. 가족과 있을 때의 나. 혼자 있을 때의 나. 연인과 있을 때의 나.

다 나다.

이렇게 보면 이별은 단순히 한 관계의 종료가 아니다.

그 관계에서만 존재하던 한 가지 ‘나의 등장 장소’가 닫히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분인주의는 정신과 진단명이나 심리학의 확정된 법칙이 아니다. 사람을 보는 철학적·문학적 틀에 가깝다.

3. 심리학도 “너 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연구했다

2010년 한 연구의 제목은 매우 직접적이었다.

“Who am I without you?”

연애 관계 속에서는 친구, 활동, 습관, 자기 인식이 서로 겹칠 수 있다. 연구에서는 이별 뒤 자기 개념의 내용이 변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명확함이 낮아지는 현상이 관찰되었다.[1]

그 명확함이 낮을수록 이별 뒤 정서적 고통도 더 큰 경향이 있었다.[1]

그래서 이별의 괴로움은 단순히

“보고 싶다”

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이 사람이 없으면 나는 원래 뭘 하던 사람이었지?”

까지 간다.

상대 자리가 비는 것과 자기 설명서 일부가 깨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4. 관계 속에서 얻은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반대쪽 이야기도 있다.

연애 중에 생긴 새로운 나의 일부가 이별과 동시에 전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2014년 연구에서는 연애 관계에서 파트너의 영향으로 자기 안에 받아들인 특성이 이별 뒤 어떻게 되는지 살폈다.[4]

그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 본인도 노력했던 경우에는, 관계가 끝난 뒤에도 자기 일부로 남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4]

누군가 덕분에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 요리를 배웠을 수도 있다. 여행을 좋아하게 됐을 수도 있다.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웠을 수도 있다.

연애가 끝났다고 그 성장까지 전 연인에게 반납할 필요는 없다.

사라지는 나도 있고, 남는 나도 있다.

5. 왜 이 표현은 유난히 사적이고 시적으로 들릴까

“이별은 아프다”는 누구나 이해하는 공적인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만 보여 주던 내가 사라진다”는 순간,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들어간다.

그 나는 사진에 없을 수 있다. 이력서에도 없다. 친구들도 모를 수 있다.

둘만의 대화 속도, 쓸데없는 농담, 응석, 목소리 톤, 밤늦게만 나오는 이상한 성격.

그런 것은 관계 안에만 저장되어 있다.

그래서 사라진 크기를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도 결국 그 관계 안에 있던 사람들뿐이다.

사건은 흔하다.

사라진 것의 모양은 개인적이다.

그래서 시적으로 들린다.

6. 그런데 갑자기 유희왕이 들어온다

이렇게 예쁜 이야기를 한 뒤 동료 츠치오카가 “유우기와 어둠의 유우기의 이별이 떠오른다”는 식으로 받아쳤다고 한다.

갑자기 유희왕이다.

문학에서 듀얼로 직행한다.

그런데 웃긴 점은 구조만 보면 묘하게 맞는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 존재하던 상대와 헤어질 때 남는 쪽은 “상대가 없다”뿐 아니라 “상대와 함께였던 나”도 잃는다.

연애와 유희왕이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함께 존재함, 관계가 만든 자기 모습, 이별, 혼자인 자신으로 다시 정리하기

라는 뼈대는 닮아 있다.

농담인데 완전히 틀렸다고 쫓아내기도 어렵다.

7. 군피이는 시적인가: 비유보다 관찰이 시적이다

시적인 말이라고 하면 어려운 비유나 예쁜 단어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번 표현에 어려운 단어는 거의 없다.

연인. 이별. 나. 잃다.

평범한 단어뿐이다.

그런데 시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시선을 “떠난 상대”에서 “그 상대와 있을 때의 나”로 한 번 돌렸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잃었다.”

에서

“그 사람과 있을 때의 나도 잃었다.”

로.

단어가 화려해진 것이 아니다.

관찰의 해상도가 높아졌다.

그게 시적이다.

8. 연구가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연구에서 비교적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 연애 관계는 자기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 이별 뒤 자기 개념의 내용과 명확함이 변할 수 있다
  • 자기 감각을 다시 정리하는 과정은 회복과 관계가 있다
  • 연애 중 얻은 특징 일부는 관계 종료 뒤에도 남을 수 있다

[1][4][2]

하지만 모든 이별이 반드시 “분인을 잃어서” 괴로운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정체성 변화를 겪는 것도 아니다.

분인주의 자체가 심리학 실험으로 완전히 증명된 것도 아니다.

더 정확한 결론은 이렇다.

연구에서 이미 다루던 현상을, 어려운 용어 없이 한 문장으로 잡아냈다.

그래서 시처럼 들린다.

  1. Slotter, E. B., Gardner, W. L., & Finkel, E. J. (2010). “Who am I without you? The influence of romantic breakup on the self-concept.”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6(2), 147–160 pubmed.ncbi.nlm.nih.gov
  2. Larson, G. M., & Sbarra, D. A. (2015). “Participating in Research on Romantic Breakups Promotes Emotional Recovery via Changes in Self-Concept Clarity.” 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 6(4), 399–406 journals.sagepub.com
  3. Keiichiro Hirano official site, explanation of “分人主義 / dividualism”: different selves emerge through different relationships and environments, and all are parts of the person k-hirano.com
  4. Slotter, E. B., Emery, L. F., & Luchies, L. B. (2014). “Me After You: Partner Influence and Individual Effort Predict Rejection of Self-Aspects and Self-Concept Clarity After Relationship Dissolution.”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0(7), 831–844 pubmed.ncbi.nlm.nih.g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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