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과 사귀게 됐다. 기분이 좋아서 평범한 저녁밥도 맛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말을 듣는다.
“우리 부모님이 내 휴대전화 위치를 보시거든.”
잠깐만요. 나는 연애를 시작했지, 가족 감시 서비스에 가입한 게 아닌데?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린다. 그래도 부모가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과 애인 자신이 결정을 못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걱정과 감시는 다르다
무사히 집에 도착했는지 묻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된 자녀의 위치를 계속 보고, 사적인 메시지를 확인하고, 만날 사람이나 살 곳까지 정하려 든다면 단순한 걱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가 키워 줬잖아”라는 말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마음대로 움직일 권리가 되지는 않는다.
걱정은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자녀의 휴대전화와 미래를 관리할 필요는 없다.
부모님을 만나는 자리는 쌍방 면접이다
첫인사를 드릴 때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부모님만 나를 보는 게 아니다. 나도 두 사람이 정한 약속을 존중할 가족인지 보고 있다.
데이트 일정까지 부모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지, 중요한 일은 당사자가 결정하는지 차이는 크다.
부모가 성인 자녀의 위치를 확인하지 않는 가족도 있다는 사례를 말해 줄 수 있다. 우리 집이 더 낫다는 자랑이 아니다. 가족 사이에도 다른 거리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애인이 어떻게 선택하는지가 중요하다
중요한 건 “부모가 얼마나 강한가”만이 아니다.
반대에 부딪혔을 때 애인이 “내 생각은 이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결정해 본 경험이 있다면 좋은 신호다. 물론 머리 모양을 고르는 일과 집을 나오는 일은 다르다.
연애하자마자 가족과 싸우라고 요구할 필요는 없다.
그 대신 두 사람의 일은 두 사람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예민한 경보기는 토스트에도 울린다
애인이 가족을 데려다줬다.
순간 “가족과 거리를 못 두는 건가?” 하고 의심한다.
하지만 원래 약속은 그때 끝날 예정이었다. 더 만나고 싶었던 건 내 쪽이었다.
애인은 아무 약속도 어기지 않았다.
토스트 하나 구웠는데 소방차가 출동한 셈이다.
가족을 돕거나 같이 산다는 사실만으로 독립적이지 못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연애를 하고 싶지, 집안 회의를 진행하고 싶진 않다
내가 애인의 가족을 고칠 의무는 없다. 애인도 부모의 성격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다만 부모의 말 때문에 약속이 반복해서 취소되고, 내 개인 정보가 허락 없이 전달되고, 함께 내린 결정이 계속 뒤집힌다면 두 사람이 이야기해야 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문제로 애인을 미리 탈락시킬 필요도 없다.
애인은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가?
연애에 온 가족 회의 자동 참석 기능까지 딸려 올 필요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