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란 특공평화회관에서 가장 힘든 것은 무기의 성능이나 전과 숫자가 아니었다.
나이였다.
19세. 20세. 21세.
영정과 편지를 읽기 시작하면 ‘특공대원’이라는 역사 용어가 갑자기 한 사람의 얼굴로 바뀐다. 짧은 머리, 군복, 굳은 표정 때문에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학생이었고,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던 아들이었고, 연인과 형제자매가 있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 근처에는 35년 동안 바다에 잠겨 있던 낡은 제로센이 있다. 녹슨 금속과 드러난 기계는 솔직히 폐허 속 고대 기계처럼 멋있다.
그런데 바로 옆에 19세 청년의 마지막 편지가 있다.
그 감정의 낙차가 지란이다.
1. 낡은 제로센은 정말 35년 동안 바다 밑에 있었다
전시된 제로센은 1945년 5월 가고시마현 고시키지마 앞바다에 가라앉았고 1980년 6월 인양된 52형 병형이다.
약 35년 동안 바닷물 속에 있었기 때문에 기체가 심하게 부식되어 있다.
복원된 새 기체처럼 반짝이지 않는다. 금속 위에 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오히려 강렬하다.
새 비행기는 공업제품처럼 보이지만, 부서지고 녹슬면 유적처럼 느껴진다.
옆의 엔진과 프로펠러는 기종이 확정되지 않았다. 박물관은 구 일본 해군의 97식 함상공격기일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을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곧바로 ‘제로센 엔진’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2. 대부분 서른 살쯤이 아니었다. 평균은 21.6세였다
군복 사진은 나이를 알아보기 어렵게 만든다.
짧은 머리, 군복, 진지한 표정.
한 종류의 ‘병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박물관 교육자료에 따르면 오키나와 전투에서 사망한 육군 항공 특공대원은 17세에서 32세, 평균 21.6세였다.
지금의 고등학생과 대학생 나이다.
박물관에 남은 수기에도 18세, 19세, 20세가 여러 명 나온다.
29세였던 후지이 하지메 소좌는 오히려 평균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짧은 머리도 군대 생활의 실용성, 위생, 모자 착용, 집단 관리에 맞는 형태였다. 겉모습은 비슷해졌지만 각자의 인생까지 같았던 것은 아니다.
3. 왜 19세 전후가 이렇게 많았을까
‘19세를 특공에 선발했다’는 단순한 제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젊은 항공요원이 많던 시기에 전쟁 말기의 큰 손실과 인력 부족이 겹쳤다.
소년비행병으로 일찍 항공의 길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다. 대학과 전문학교 학생들은 학도출진으로 징병 유예가 중단됐고, 육군은 학생을 위한 특별조종견습사관 제도를 만들었다.
지란의 전시자료에 따르면 이 제도로 약 8,000명이 항공요원이 됐다. 오키나와 전투 육군 특공 전사자 1,036명 가운데 273명이 이 출신이었다.
지란 비행장은 원래 교육용 비행장이었다. 약 3년 동안 약 600명의 조종사를 양성했다.
그리고 1945년 3월 특공기지가 됐다.
비행을 배우는 장소가 돌아오지 않는 작전의 출발지가 된 것이다.
4. 전국에서 왔지만 ‘전국 특공 모집’은 아니었다
출신지는 홋카이도부터 규슈까지 넓게 퍼져 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 아래 있던 조선 출신자도 기록돼 있다.
하지만 전국에서 직접 ‘특공대원’을 모집했다고 생각하면 조금 다르다.
먼저 비행병, 학생병, 항공요원, 일반 군인으로 군 체계에 들어가고, 훈련과 부대 배치를 받은 뒤 나중에 특공부대로 편성될 수 있었다.
현대식으로 ‘배치 가챠’라고 부르고 싶어질 수 있지만 완전한 무작위는 아니다.
기량, 부대, 기종, 계급, 시기, 손실, 작전 수요가 영향을 줬다.
그래도 당사자에게는 배치와 타이밍이 인생을 크게 갈라놓았다.
처음부터 ‘언젠가 지란에서 출격하겠다’고 인생계획을 세운 사람들은 아니었다.
5. “싫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이 문제는 가장 단순화하기 어렵다.
특공은 흔히 ‘지원’ 형식을 취했다.
하지만 국립국회도서관의 참고자료가 소개하는 연구에서도, 지원제이면서 강제된 면이 적지 않았다고 정리된다.
즉,
지원란이 존재했다 = 현대적 의미에서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었다
가 아니다.
군대의 위계, 동료의 시선, 전시사회 가치관,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이 명예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제도상 거부 가능성이 있는 순간과 실제로 거부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동시에 존재했다.
그러므로 ‘모두 기쁘게 자원했다’도, ‘모두 총으로 협박당했다’도 지나치게 단순하다.
개인의 의사와 압력이 섞여 있었다.
6. 편지에는 어머니가 유난히 많이 나온다
전시를 읽다 보면 어머니에게 쓴 편지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무시한 것은 아니다.
아버지에게만 보낸 편지, ‘아버님·어머님’ 두 분에게 함께 쓴 편지, 형제자매, 아내, 아이, 친구, 연인에게 보낸 편지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강하게 남는 이유는 많은 작성자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기 때문이다.
폭탄을 실은 비행기를 타는 군인이 마지막 문장에서는 다시 누군가의 아들이 된다.
그래서 울컥한다.
전시 마지막에 ‘가족 사랑과 삶을 생각해 보자’고 해도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하기 어렵다.
실제 편지는 교훈보다 훨씬 복잡하다.
7. 29세 후지이 소좌 가족의 이야기는 특히 무겁다
후지이 하지메 소좌는 29세였다.
1944년 12월 그의 아내는 자신과 아이들이 남편의 미련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을 남기고 두 딸과 함께 아라카와 강에 들어가 세 사람 모두 사망했다.
그 뒤 후지이 소좌는 특공을 강하게 원했고 제45진무대 대장으로 1945년 5월 28일 지란에서 출격해 전사했다.
여기서 ‘아내와 자녀가 자살했다’고 한꺼번에 말하면 중요한 차이를 놓친다.
아내는 자살했지만 어린 두 딸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 구분 때문에 오히려 더 무겁다.
‘가족이 미련이 된다면 먼저 사라지겠다’는 논리가 군인 개인을 넘어 가족 안까지 들어온 것이다.
8. 개인 기량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자원과 생산의 게임이다
조종사의 기술은 중요하다.
하지만 총력전은 개인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비행기, 연료, 탄약, 부품, 정비병, 수송선, 공장, 훈련용 연료가 전부 필요하다.
미국 외교문서에 따르면 1940년 일본이 사용한 석유의 71.8%를 미국이 공급했다.
“규슈에는 돌이 엄청 많잖아”라고 해도 그 돌로 전투기는 날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석유, 금속자원, 고무와 산업 체계다.
1940년 인구는 일본 약 7,311만 명, 미국 약 1억 3,216만 명으로 약 1.8배 차이였다.
하지만 실제 격차는 인구 이상이었다. 자원, 공업력, 선박, 생산설비, 연료 공급이 모두 겹쳤다.
전쟁 말기에는
연료 부족
→ 훈련 감소
→ 신참 숙련도 저하
→ 손실 증가
→ 숙련자 감소
라는 악순환이 생기기 쉽다.
개인의 실력으로 시스템 차이를 모두 지울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다.
9. “적함인지 어떻게 알아?” 실제로 많은 기체가 빗나갔다
오키나와 바다까지 날아가 정확한 적함을 찾아 돌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 해군 분석에서 오키나와 함선 상공까지 도달한 특공기 793대 중 181대가 명중, 95대가 근접 낙하로 피해를 주었고 517대는 완전히 빗나가 피해를 주지 못했다.
65%가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오키나와에서는 레이더 초계 임무의 구축함 등 작은 함정이 많이 공격받았다.
‘항공모함을 정확히 식별하고 직선으로 돌입’이라는 이미지보다 훨씬 혼란스러웠다.
중간에 격추된 기체, 날씨와 고장으로 귀환한 기체, 표적을 놓친 기체도 있었다.
마지막 편지를 쓰고 출격했지만 군사적으로 아무 피해도 주지 못하고 사망한 사람도 많았다.
통계로는 퍼센트지만 박물관에서는 한 명씩 얼굴이 있다.
10. 조직적 가미카제 공격을 시작한 사람은 누구인가
해군의 조직적 가미카제 특별공격대를 대규모로 추진한 인물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사람은 오니시 다키지로 중장이다.
1944년 10월 필리핀에서 제1항공함대를 지휘하던 오니시는 폭탄을 실은 제로센을 미군 항공모함에 충돌시키는 특별공격대 편성을 추진했다.
10월 19일 최초 부대가 편성됐고, 10월 25일의 공격에서는 미 호위항공모함 세인트 로가 침몰했다.
다만 자폭공격 발상 자체가 한 사람 머리에서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전황 악화 속에서 여러 곳에서 비슷한 생각이 나오고 조직화됐다.
그리고 초기에 눈에 띄는 전과가 나오면서 빠르게 확대됐다.
반년도 지나지 않아 규슈 등지에서 10대와 20대가 대규모로 출격하는 체계가 됐다.
11. 시청각실에서는 ‘병사’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다
관내에는 사회과 견학으로 보이는 중학생 단체가 있었다.
다른 시간에는 중년 이상 남성 단체가 눈에 띄어 ‘회사 연수인가?’ 싶을 정도였다.
물론 외모만 보고 회사 연수인지 관광단체인지 알 수 없다. 공식 통계가 아니라 그날 한 방문자의 관찰일 뿐이다.
그런데 시청각실에 들어가면 그런 구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방에서 코 훌쩍이는 소리가 난다.
울기 싫어서 조용히 버틴다.
평소에는 웃긴 어느 만화의 ‘슈퍼 고스트 카미카제 어택’이라는 기술명도 이 공간에서는 갑자기 무겁게 들린다.
영상이 계속된다.
19세라는 숫자에 얼굴이 생긴다.
얼굴에 글씨가 생긴다.
글씨 속에 어머니가 나온다.
무장한 군인이었지만 결국 평범한 사람이었다.
결론 ― ‘가족 사랑과 삶을 생각하자’로 끝내기에는 너무 무겁다
지란은 하나의 교훈만 남기지 않는다.
망가진 제로센은 멋있다.
기술 이야기도 흥미롭다.
전쟁이 자원과 생산의 게임이라는 구조도 보인다.
배치, 지원, 압력, 공격 성공률, 젊은 나이의 이유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에 남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19세가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가족 사랑.’
‘평화.’
‘어떻게 살 것인가.’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실제 편지와 얼굴을 본 직후에는 너무 깔끔한 문장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완벽한 교훈보다 코를 훌쩍이는 것이 더 솔직한 반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