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결론
행복감을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자율성을 빼앗을 정도로 간섭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편이 좋다.
다만 이것은 “누구와도 깊이 관계를 맺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연구를 보면 인간에게는 크게 다음과 같은 감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
-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감각
-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자기결정성이론에서는 이 가운데 ‘자율성’을 매우 중요한 기본 욕구로 다룬다. 여기서 자율성은 “모든 것을 혼자 한다”는 뜻이 아니다. 가까운 관계 안에서도 내가 납득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이 남아 있는 상태를 뜻한다.
즉, 바람직한 관계는 이런 모습이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선택권은 본인에게 남아 있다.
반대로 상대의 불안, 분노, 완벽주의, 외로움을 처리하기 위해 내 행동·인간관계·시간·돈·감정까지 허락을 받아야 하는 구조가 되면 행복감은 크게 깎이기 쉽다.
건강한 요구와 건강하지 않은 간섭의 차이
건강한 관계에서는 자신의 요구를 말해도 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나는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어
- 이건 나에게 힘들어
- 이 부분은 역할 분담을 바꾸고 싶어
- 이 상황이 계속되면 거리를 두고 싶어
이런 표현은 요구이고 협상이다.
반면 건강하지 않은 간섭은 이 선을 넘어간다.
- 그러니까 너는 이렇게 생각해야 해
- 그러니까 너는 이렇게 느껴야 해
- 그러니까 네 친구 관계를 제한할 거야
- 그러니까 네 자유시간은 허락을 받아야 해
- 그러니까 내가 납득할 때까지 계속 보고해
여기까지 가면 요구가 아니라 통제에 가까워진다.
경계선의 기준은 꽤 단순하다.
내가 겪는 어려움을 전달하는 데까지는 건강하다.
상대 인생의 운전석을 빼앗으러 가기 시작하면 위험하다.
간섭하는 사람의 네 가지 유형
간섭하는 쪽의 패턴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유형
상대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나에게서 멀어지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유형이다.
이런 사람은 일정 확인, 답장 요구, 인간관계에 대한 간섭, 위치 확인, 감정 확인을 늘리기 쉽다.
본인 입장에서는 그저 “안심하고 싶다”, “소중히 여겨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상대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면 관계는 무거워진다.
2. 완벽주의 유형
상대의 방식, 느린 속도, 대충 하는 모습, 실패 가능성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유형이다.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불안이나 ‘내가 옳다’는 감각을 처리하기 위해 상대의 행동을 세세하게 관리한다.
집안일, 업무, 육아, 돈 관리, 시간 관리 등에서 잘 나타난다.
3. 불안과 안심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유형
원래는 “내가 불안하다”, “내가 무섭다”, “내가 외롭다”처럼 자신의 감정으로 다뤄야 할 것을 상대의 행동을 제한해 해결하려는 유형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내가 불안하니까 회식에 가지 마.
내가 안심이 안 되니까 휴대폰을 보여줘.
내가 외로우니까 혼자 있는 시간을 줄여.
자기 감정을 상대의 자유를 깎아 해결하려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사소해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상당히 무거워질 수 있다.
4. 경계선이 없는 유형
가까움과 일체화를 혼동하는 유형이다.
“연인이니까”, “가족이니까”, “부부니까”, “걱정하니까”라는 말을 이유로 상대의 개인 영역까지 들어온다.
이런 사람은 상대의 No를 ‘경계선’이 아니라 ‘거절’, ‘배신’, ‘애정 부족’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래서 건강하게 거리를 두려 해도 죄책감을 유발하거나,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거나, 분노를 이용해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 할 수 있다.
No라고 말한 뒤의 반응을 보면 많은 것이 드러난다
상대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볼 것은 즐거울 때의 친절함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No라고 말한 뒤의 반응이다.
예를 들어,
- 그 정도까지는 공유하고 싶지 않아
- 그건 내가 직접 결정하고 싶어
- 그런 식으로 몰아붙이면 이 대화는 일단 멈추고 싶어
- 요구는 들을 수 있지만 허가제로 만들지는 않을 거야
라고 말했을 때 상대가 다시 대화와 조정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본다.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은 강하다.
반대로,
- 보통 사람은 그렇게 안 해
- 정말 좋아한다면 할 수 있어야지
- 내가 불안한데 너무하네
- 됐어, 이제 됐어
- 어차피 내가 잘못한 거지
- 왜 그렇게까지 숨기는 거야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은 관계 유지 비용이 매우 높다.
이때는 “상대가 나쁜 사람인가”보다 “이 사람이 경계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보는 편이 낫다.
여기서 말하는 ‘포크’란 무엇인가
여기서 포크란 관계를 계속 같은 하나의 길로 밀고 가지 않는 것을 뜻한다.
반드시 즉시 절연하라는 뜻은 아니다.
- 공개하는 정보의 양을 줄인다
- 상담하거나 의논하는 상대에서 제외한다
- 거리를 둔다
- 동거·결혼·공동 자산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 일이라면 기록을 남기고 계약 범위로 되돌린다
- 연애라면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가지 않는다
- 한계에 이르면 헤어진다
이처럼 내 인생의 중심부에서 상대를 바깥쪽으로 옮기는 처리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개조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가 계속 경계선을 넘는다면 끝없이 설득하기보다 내가 건네는 정보·시간·의존도·권한을 줄인다.
‘배우자에게 눌려 사는 것’은 행복감을 낮출까
한쪽 배우자가 강하고 다른 쪽이 따르는 가정은 겉으로 평화로워 보일 수 있다.
아내가 강하다. 남편이 따른다. 다툼이 적다. 가정은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남편의 행복감이 높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내가 주도하느냐가 아니다.
남편이 납득한 뒤 권한을 맡긴 것인가.
아니면 상대를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따르는 것인가.
여기서 갈린다.
건강한 아내 주도형 관계는 단순한 역할 분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돈 관리나 일정 관리에 더 능숙한 사람이 주도한다. 다른 사람도 의견을 말할 수 있다. No도 말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는 합의해 움직인다.
이것은 문제가 아니다.
반면 건강하지 않은 ‘눌려 사는’ 상태는 상대의 불쾌함·분노·불안을 피하기 위해 한쪽이 말없이 따르는 구조다.
- 취미가 허가제가 된다
- 친구 관계가 허가제가 된다
- 혼자 있는 시간이 나쁜 것으로 취급된다
- 돈을 쓰는 방식이 일방적으로 관리된다
- 대화가 아니라 상대가 납득할 때까지 추궁당한다
- 침묵을 동의로 간주한다
여기까지 오면 가정이 겉으로는 굴러가도 본인의 자율성은 깎이고 있다.
행복감이라는 관점에서는 상당히 위험하다.
아내가 문제를 제기하고 남편이 침묵하는 패턴
부부 연구에서는 이성애 부부에서 아내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변화를 요구하고, 남편은 침묵하거나 피하거나 방어하는 패턴이 지적되어 왔다.
연구에서는 이를 demand-withdraw pattern이라고 부르며, 한국어로는 ‘요구-회피 패턴’ 정도로 옮길 수 있다.
아주 거칠게 말하면 이런 모습이다.
아내: 좀 더 이렇게 해줘. 이야기하자. 바뀌었으면 좋겠어.
남편: 또 시작이네. 그냥 조용히 있자. 피하자. 화나게 하지 말자.
다만 여기서 “아내가 나쁘다”고 단순화하면 틀린다.
아내가 집안일·육아·일정 관리·친족 대응·감정 관리 같은 보이지 않는 부담을 더 많이 떠안고 있다면, 아내가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을 맡기 쉽다.
즉 겉으로는 아내가 소란을 피우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가정 운영의 경보 장치 역할을 하고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아내 쪽의 불안, 완벽주의, 약한 경계선 때문에 남편의 자유까지 깎이는 경우도 있다.
이 둘을 구분해야 한다.
건강한 요구는 다음과 같다.
집안일과 육아가 너무 힘들어. 분담을 바꾸고 싶어.
건강하지 않은 통제는 다음과 같다.
내가 불안하니까 네 자유시간·인간관계·취미·돈·행동은 내 허락을 받아야 해.
둘 다 “아내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결혼과 육아가 들어오면 더 어려워지는 이유
연애만 할 때는 개인 영역과 공동 영역을 비교적 나누기 쉽다.
하지만 결혼하거나 아이가 생기면 공동 영역이 한꺼번에 늘어난다.
- 가계
- 집안일
- 육아
- 거주지
- 친족 관계
- 휴일을 보내는 방식
- 일하는 방식
- 자녀 교육
- 병원과 보험
이런 일은 전부 “내 자유”만으로 처리할 수 없다.
그래서 결혼 뒤 필요한 것은 자유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공동 영역과 개인 영역을 구분하는 일이다.
공동 영역은 함께 결정한다.
개인 영역은 허가제로 만들지 않는다.
이 구분이 안 되는 상대와 결혼하거나 아이를 키우면 경계선 문제가 크게 증폭된다.
특히 위험한 것은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상대의 개인 영역까지 전부 관리하는 패턴이다.
정말 아이의 안전·건강·생활과 관련된 문제라면 당연히 조율이 필요하다.
하지만,
- 아이를 위해 취미를 그만둬
- 아이를 위해 친구를 만나지 마
- 아이를 위해 전부 보고해
- 아이를 위해 내가 안심할 때까지 설명해
같은 방식이 실제로는 상대의 자유를 줄이는 명분으로 쓰이고 있다면 위험하다.
운영 방식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여기까지 보면 결론은 꽤 단순하다.
운영 방식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상대 선택이 상당히 중요하다.
경계선은 내가 설명을 잘한다고 자동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도 다음과 같은 감각이 필요하다.
상대에게는 상대의 영역이 있다.
No는 거절이 아니라 경계선이다.
불안은 말해도 되지만 상대를 통제해서 해결해서는 안 된다.
이 감각이 없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 내가 아무리 정중하고 자기주장적으로 설명해도 매번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거냐”는 이야기로 되돌아가기 쉽다.
이것은 사람을 소모시킨다.
행복감의 관점에서 잘 맞는 사람의 특징
행복감의 관점에서 잘 맞는 사람은 대체로 이런 사람이다.
- 자신의 요구를 말로 표현할 수 있다
- 불안을 불쾌한 태도가 아니라 말로 전달할 수 있다
- 상대의 No를 존중할 수 있다
- 공동 영역은 대화로 조정할 수 있다
- 개인 영역을 허가제로 만들지 않는다
- 기대고 의지할 수 있지만 감시하지 않는다
- 거리를 두더라도 피해자 역할로 몰고 가지 않는다
- 대화의 목적이 ‘통제’가 아니라 ‘조정’이다
아주 짧게 말하면,
안심할 수 있는 기지이지만 감시탑은 아닌 사람.
이런 사람이 강하다.
실전: 경계선을 되돌리는 말하기 방식
상대가 선을 넘을 때 바로 싸움으로 가기보다 먼저 경계선으로 되돌린다.
1. 요구로 받아들인다
네가 걱정하고 있다는 건 알겠어.
내가 이렇게 해주길 바란다는 것도 알겠어.
2. 결정권을 되찾는다
다만 결정은 내가 할게.
이 부분은 허가제로 만들지 않을 거야.
내 영역으로 다룰게.
3. 대화의 규칙을 둔다
추궁하는 방식이 되면 이 대화는 일단 멈출게.
요구는 들을 수 있지만 관리는 받지 않을 거야.
다시 대화로 돌아올 수 있다면 계속 이야기하자.
4. 돌아오지 못하면 권한을 줄인다
이런 말하기 방식이 계속되면 공유하는 정보를 줄일게.
중요한 일을 의논하는 상대에서는 제외할게.
더 깊은 공동 영역으로는 넘어가지 않을 거야.
이 흐름에서 보면 자기주장적 의사소통은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이 아니다.
내 경계선을 분명히 하고 상대가 그 선으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기술이다.
정리
행복감을 지키려면 친밀감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율성도 필요하다.
좋은 관계는 가깝지만 자유가 있다.
나쁜 관계는 가까움을 명분으로 자유를 빼앗는다.
지나치게 간섭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버림받을까 하는 불안, 완벽주의, 불안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습관, 약한 경계선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 자체는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상대 인생의 운전석을 빼앗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최종 판단 기준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요구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의 선택권은 빼앗지 않는다.
No라고 들어도 다시 대화로 돌아올 수 있다.
공동 영역은 합의한다.
개인 영역은 허가제로 만들지 않는다.
이게 가능한 상대라면 운영과 조정으로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그게 불가능한 상대라면 노력보다 관계의 경로를 갈라놓는 ‘포크’가 필요하다.
상대를 고를 때는 즐거울 때의 궁합만 볼 것이 아니라, No라고 말한 뒤 다시 대화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인지도 봐야 한다.
결국 행복감이 높은 관계는 이런 모습에 가깝다.
서로 기대고 의지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배당하지 않는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운전석은 빼앗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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