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일도 하고 집안일도 이만큼 했어. 당신도 그 정도는 해 줬으면 좋겠어.”
엄마를 존경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 엄마와 함께 자란 사람은 말하는 쪽이다. 배우자는 엄마의 후임으로 결혼한 걸까?
“부모님은 했어”가 “당신도 할 수 있어야 해”, 이어서 “못 하면 노력이 부족해”가 된다. 갑자기 결혼생활이 채용 면접이 된다.
본받고 싶다면 먼저 직접 요리하고 청소해 보면 된다. 엄마 같은 집이 좋다고 감동한 뒤, 실제 일은 배우자에게 전부 넘기는 건 이상하다.
매일 요리한다면 장보기와 설거지는 누가 할까
이걸 하면 누구 시간이 줄어드는가? 누가 계속 기억해야 하는가? 실패했을 때 누가 사과하는가? 누구 돈이 드는가? 누구 잠이 줄어드는가? 매주 누가 계속 해야 하는가?
매일 제대로 요리하려면 메뉴를 정하고, 장을 보고, 만들고, 설거지할 사람이 필요하다. 친척 모임이 늘면 이동과 일정 조정도 늘어난다.
“이런 집이 좋아”라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계속하려면 누군가는 시간과 돈을 써야 한다.
접시 7개씩 씻으면 공평할까
집안일이나 생활비 분담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것과 관계 만족도의 연관성을 살핀 연구도 있다. 분담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정하는지와 공평하다고 느끼는지의 관련성도 보고됐다. 집안일과 지출의 공평함 연구 가사와 일 분담 연구 분담을 정하는 대화 연구
핵심은 “접시 일곱 개씩!” 같은 산수 대회가 아니다.
한 사람은 요리를 더 하고 다른 사람은 청소를 더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바쁜 시기에는 덜 하고 나중에 다시 균형을 맞출 수도 있다.
돈을 써서 외부 도움을 받아 둘 다 부담을 줄일 수도 있다.
둘이 공평하다고 받아들이면 성립할 수 있다.
반대로 숫자로는 반반이어도 계획, 감독, 독촉, 수정이 전부 한 사람 몫이면 “50대50”이라는 말에 “어디가?”가 나온다.
공평함은 업무 개수보다 넓다.
기준이 너무 높아 부담스럽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 정도는 내 기본 기준은 아니야.” “그 수준을 원한다면 분담도 같이 정하고 싶어.” “당신 집에서는 그게 보통이었던 건 이해해. 그래도 우리는 우리 기준을 만들고 싶어.”
“우리 집은 이랬어”를 의논하는 말로
“엄마는 매일 청소했어.” → “나는 어느 정도 정돈된 집에서 편해. 둘 다 무리하지 않는 수준을 같이 정해 볼래?”
“아빠는 여행을 다 계획했어.” → “나는 여행을 미리 정하는 편이 좋아. 계획은 내가 더 맡을게. 가고 싶은 곳은 같이 고를까?”
“우리 집은 매년 친척들이 모였어.” → “나는 이 전통을 이어가고 싶어. 매년 참석하는 건 당신에게 얼마나 부담일까?”
“엄마는 이만큼 했으니 당신도 해”가 되면 부모를 존경하는 마음이 배우자에게 보내는 청구서가 된다.
청구 주소가 틀렸다.
본가에서 좋았던 모습은 직접 실천하면 된다. 배우자에게도 관계되는 일이라면 원하는 바를 말하고 함께 나누자. 여기는 부모님의 결혼생활이 아니라 지금 두 사람의 생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