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역에 들어온 자극은 분석해도 된다. 남의 속마음, 몸, 동의를 멋대로 만들어내면 침해가 된다
살다 보면 "이게 뭐야" 싶은 순간이 많다.
헬스장에서 큰 소리를 내는 사람. 공공장소에서 유난히 시끄러운 아이. 사이즈를 잘못 고른 것처럼 보이는 옷차림. 자꾸 시선이 가는 패션.
이런 걸 보면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이름표를 붙이고 싶어진다.
"헬스장의 가논도르프"(게임 속 거구의 악당) "걸어 다니는 라이브 하우스 초등학생" "빨간불 늪 루트" "구멍 뚫린 동물원"
이런 이름표는 잘 쓰면 재미있다. 하지만 전부 글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건 "구조를 짚는 말"이 된다. 어떤 건 그냥 욕이 된다. 어떤 건 상대방에 대한 침해에 가까워진다.
이 차이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선 긋기는 꽤 단순하다.
내 영역에 들어온 자극이나 불편은 분석해도 된다. 하지만 상대의 속마음, 몸, 동의를 멋대로 만들어내면 위험해진다.
"헬스장의 가논도르프"는 왜 글이 될까
헬스장에서 무거운 중량을 드는 사람이 큰 소리를 낸다.
"으앗" "드엣" "으라차!"
본인은 진짜 열심히 운동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복압을 주고 있는 걸 수도 있다. 기합을 넣는 걸 수도 있다.
다만 주변 사람 입장에서는 소리가 너무 크면 집중이 깨진다.
여기서 다루는 건 상대의 몸 자체가 아니다. 상대의 인격도 아니다. 상대의 속마음을 멋대로 단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루는 건 주로 이런 것들이다.
- 헬스장이라는 공공장소
- 큰 소리라는 자극
- 주변 사람의 집중에 주는 영향
- 소리를 지르면 근력이 정말 오르는가
- 어디서부터 매너 위반인가
그러니까 "헬스장의 가논도르프"는 개인 공격이라기보다 공공장소에서 생긴 볼륨 버그를 분석하는 글이 된다.
내 귀에 들어왔다. 내 집중이 깨졌다. 그래서 그 현상을 분석한다.
이건 글로 쓰기 좋다.
"걸어 다니는 라이브 하우스 초등학생"도 구조로 다룰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엄청난 볼륨으로 떠들고 있다.
그걸 "걸어 다니는 라이브 하우스 초등학생"이라고 이름 붙인다.
얼핏 보면 센 표현이다. 하지만 글의 본체가 "아이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아래 같은 이야기라면 구조로 풀 수 있다.
- 공공장소의 소음 문제
- 부모가 통제하지 못한다는 느낌
- 내 신경 게이지가 깎이는 감각
- 아이 목소리는 왜 그렇게 꽂히는가
- 어떻게 거리를 둘 것인가
- 나는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즉 대상이 아이여도 글의 중심은 "소리, 자극, 공공장소, 내 신경의 반응"이다.
이건 내 영역에 들어온 자극을 분석하는 것이다.
그럼 "뚱뚱한 사람이 물려준 옷"은 왜 위험할까
반면 오버사이즈 옷을 입은 사람에게
"뚱뚱한 사람이 물려준 옷"
이라는 이름표를 쓰는 건 꽤 위험하다.
왜일까.
구조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해가 간다.
오버사이즈는 잘 입으면 멋있어 보인다. 하지만 사이즈를 잘못 고르면 그냥 빌려 입은 옷처럼 보인다. "힘 뺀 멋"이 아니라 "사이즈 실수"처럼 보인다.
여기까지는 패션에 대한 구조적 지적으로 성립한다.
그런데 "뚱뚱한 사람이 물려준 옷"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말은 사이즈 문제만이 아니라,
- 살찐 사람
- 체형
- 물려받은 옷
- 안 어울리는 느낌
- 입은 사람의 겉모습
을 한꺼번에 깎아내린다.
즉 칼끝이 "구조"가 아니라 "신체적 특징"을 향한다.
이건 공개된 글에서는 위험하다.
같은 내용이라도 구조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오버사이즈는 관점이 담기면 멋이 된다. 하지만 사이즈를 잘못 고르면 그냥 빌려 입은 옷처럼 보인다.
아니면,
오버사이즈와 사이즈 실수는 한 끗 차이다.
이러면 옷이 어떻게 보이느냐의 이야기로 끝난다. 하지만 "뚱뚱한 사람이 물려준 옷"은 체형 놀림을 끌어들인다.
날카롭긴 하다. 그런데 휘말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
"옷차림에는 시선 유도 효과가 있다"와 "보이고 싶은 거잖아"는 다르다
옷차림에는 시선을 끄는 힘이 있다.
예를 들어 엄청나게 큰 티셔츠에 짧은 하의를 입어서 아래가 잘 안 보이는 실루엣이 됐다고 하자.
보는 쪽 뇌는 순간 이렇게 된다.
"아래는 어디 갔지?" "치마인가?" "반바지인가?" "원피스인가?" "티셔츠만 입은 건가?"
정보가 비어 있으니 뇌가 확인하러 간다. 이건 일종의 시선 유도다.
게다가 취향이기까지 하면 눈이 간다. 이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위험하다.
눈이 가는 옷차림 → 보이고 싶은 거잖아 → 시선을 모으고 싶은 거잖아 → 그러니까 봐도 돼 → 그러니까 말해도 돼 → 그러니까 추근대도 돼
이 변환이 위험하다.
옷차림에 시선을 끄는 효과가 있다는 것과, 본인이 불특정 다수의 응시·평가·언급·접근에 동의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짧게 말하면 이렇다.
시선 유도는 동의 유도가 아니다.
예뻐 보이고 싶은 것과 아무에게나 보이고 싶은 것은 다르다. 스타일 좋아 보이고 싶은 것과 지나가는 사람에게 평가받고 싶은 것은 다르다. 유행하는 옷을 입는 것과 모르는 사람의 시선과 말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이걸 섞는 순간 단숨에 원숭이 루트다.
위험한 건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다
중요한 건, 좋다는 감정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예쁘다고 생각한다.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눈이 간다. 실루엣이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럽다.
위험한 건 그 반응을 근거로 삼아 상대의 의도나 동의를 멋대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가 좋다 → 상대는 보여주고 싶은 게 틀림없다 → 나는 봐도 된다 → 나는 말해도 된다
이 변환이 위험하다.
안전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나는 좋다고 느꼈다. 그래서 잠깐 눈이 갔다. 하지만 상대의 의도는 모른다. 그러니까 빤히 쳐다보지 않는다. 말을 걸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다가가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실루엣 좋네" 하고 처리한 뒤 지나간다.
이걸로 충분하다.
취향은 자유다. 하지만 취향을 권리로 만들지는 말자.
내가 불편한 것도 아닌데 멋대로 이름표를 붙이지 않는다
또 하나 중요한 선이 있다.
바로 내 불편함도 아닌 것에 굳이 이름표를 붙여서 상처를 주러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헬스장에서 누가 큰 소리를 내서 내 집중이 깨졌다. 공공장소에 큰 소음이 있어서 내 신경이 닳았다. 이건 내 영역에 들어온 자극이다.
그러니까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냥 길을 걷는 사람의 옷차림이나 체형을 보고, 딱히 내가 곤란한 것도 아닌데 멋대로 센 이름표를 붙이는 건 다르다.
거기에는 내가 입은 피해나 불편함보다 이쪽의 평가, 소비, 험담이 섞이기 쉽다.
물론 사람은 속으로 뭔가 생각할 때가 있다. "특이하네." "좋은데." "좀 신경 쓰이네." "내 취향은 아니네."
그렇게 느끼는 것 자체는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걸 본인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 글로 써서 공개할 필요도 없다. 상대의 특징이나 외모를 이름표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필요도 없다.
속으로 처리하고 지나가면 되는 건 지나가게 둔다.
여기도 꽤 중요하다.
불편하니까 전부 말로 풀어도 된다는 건 아니다. 불편하니까 전부 본인에게 말해도 된다는 것도 아니다. 하물며 내 불편함조차 아닌 것에 멋대로 이름표를 붙여 사람을 상처 입히는 건 아니다.
구조화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다. 사람을 아무렇게나 찌르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내 영역"과 "상대의 영역"을 나눈다
이번 선 긋기는 이 말로 꽤 정리된다.
내 영역에 들어온 자극은 분석해도 된다. 하지만 상대의 영역에 멋대로 들어가면 침해가 된다.
내 영역이란 무엇일까.
- 내 귀에 들어온 소리
- 내 집중을 깎은 자극
- 내가 곤란했던 상황
- 내 신경 게이지에 영향을 준 일
- 공공장소에서 일어난 매너 문제
- 내가 느낀 불편함
이건 분석할 수 있다.
반면 상대의 영역이란 무엇일까.
- 상대의 속마음
- 상대의 성적 의도
- 상대가 보이고 싶어 하는지 아닌지
- 상대의 동의
- 상대의 몸
- 상대의 체형
- 상대의 인격
- 상대의 가치
여기에 멋대로 발을 들이면 위험해진다.
구조를 짚는 것과 욕의 차이
구조를 짚는 말은 현상을 다룬다.
예를 들면,
헬스장에서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으면 주변 사람의 집중이 깨진다. 하지만 소리를 내면 복압이나 기합 효과도 있다. 그럼 어디서부터 매너 위반일까.
이건 구조다.
반면 욕은 속성을 찌른다.
저 사람은 이상해. 저 체형은 이렇잖아. 저 옷은 보이고 싶어서 입은 거잖아. 저 사람은 이런 여자잖아.
이건 상대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구조를 짚는 말은 현상을 분해한다. 욕은 사람을 아무렇게나 깎아내린다.
이 차이는 크다.
글로 쓸 수 있는 것, 쓰지 않는 게 좋은 것
글로 쓰기 쉬운 건 현상이나 구조로 풀 수 있는 것들이다.
- 헬스장의 큰 소리
- 공공장소의 소음 문제
- 매번 빨간불에 걸리는 신호 제어
- 직장의 책임 세탁(책임을 이리저리 돌려 흐지부지 만드는 것)
- 회의에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는 미정의 지옥
- 구멍 뚫린 동물원
- 원숭이 회의
- 가논도르프화
이것들은 내가 받은 자극이나 불편함을 구조로 분석할 수 있다.
반대로 글로 쓰지 않는 게 좋은 건, 상대의 몸·옷차림·성적 의도·속마음에 대한 추측으로 흐르기 쉬운 것들이다.
- 저 옷은 보이고 싶어서 입은 걸까
- 저렇게 몸을 드러내는 건 뭘까
- 저 체형은 어떨까
- 저 여성은 뭘 노리는 걸까
이건 위험하다.
굳이 주제로 다루겠다면 "상대의 의도"가 아니라 "보는 쪽의 인지 버그"로 다뤄야 한다.
안전한 문장 세 가지
마지막으로 쓰기 쉬운 선 긋기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1. 효과를 의도로 만들지 마라
옷차림에는 시선 유도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게 본인이 보이고 싶어 한다는 증거는 아니다.
2. 의도를 동의로 만들지 마라
설령 본인이 예뻐 보이고 싶어 했더라도, 누구에게든 응시당하고 평가받고 언급당해도 좋다는 동의는 아니다.
3. 취향을 권리로 만들지 마라
내가 좋다고 느끼는 건 자유다. 하지만 그걸 근거로 상대에게 파고들 권리는 없다.
이 세 가지만으로도 원숭이가 되는 걸 꽤 막을 수 있다.
정리
구조를 짚는 것과 욕의 차이는 단순히 말이 센지 약한지가 아니다.
중요한 건 칼날이 어디를 향하는가다.
내 영역에 들어온 자극을 분석한다면 구조가 된다. 상대의 속마음, 몸, 동의를 멋대로 만들어낸다면 침해가 된다.
"헬스장의 가논도르프"는 공공장소의 볼륨 버그로 글이 될 수 있다. "걸어 다니는 라이브 하우스 초등학생"은 자극과 신경 게이지의 이야기로 다룰 수 있다. 하지만 "뚱뚱한 사람이 물려준 옷"은 체형이라는 속성에 대한 욕이 되기 쉽다. "시선을 유도하는 옷차림"은 존재해도 "보이고 싶은 거잖아"라고 단정하는 건 비약이다.
짧게 말하면 이렇다.
내가 입은 피해와 불편을 분석하는 건 OK. 남의 의도를 지어내는 건 위험.
더 짧게 말하면,
내 영역은 분석해도 된다. 상대의 영역은 멋대로 만들지 마라.
이 선이 있으면 말의 날카로움은 남기면서 그냥 욕이나 침해로 떨어질 일이 줄어든다.
뾰족한 이름표는 무기가 된다. 하지만 무기는 어디로 겨누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구조를 향하면 글이 된다. 사람의 몸이나 동의를 향하면 그저 위험한 칼날이 된다.
그래서 쓰기 전에 딱 한 번 확인한다.
나는 구조를 찌르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아무렇게나 찌르고 있을 뿐인가. 이건 내 영역에 들어온 불편함인가. 아니면 상대의 영역에 멋대로 이름표를 붙이고 있을 뿐인가.
이 확인만 할 수 있어도 글은 꽤 강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