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장에 입구가 두 개 있다고 하자. 왼쪽에는 스무 명이 줄을 서 있고 오른쪽에는 아무도 없다. 안내만 보면 둘 다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도 빈 쪽으로 혼자 걸어가는 순간은 이상하게 불안하다.
그때 한 사람이 오른쪽으로 가서 아무 문제 없이 들어간다. 그러자 뒤에 있던 사람들이 둘, 셋씩 따라간다.
문도 규칙도 바뀌지 않았다. 추가된 것은 단 하나다.
“누군가 이미 해봤다”는 정보다.
이 작은 장면은 OX 퀴즈, 식당 줄, 회사의 분위기, 사회운동, 전시 동원, 선전, 선거, 그리고 주변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삶을 처음 선택할 때의 공포까지 이어진다.
인간에게 단순히 “권력자의 말을 믿어라”라는 OS가 있는 것이 아니다. 더 미묘하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정보로 사용하고, 집단에서 벗어날 비용을 계산하며, 불확실할수록 사회적 단서를 더 강하게 참조하는 OS가 있다.
1. 인간은 정답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본다
사회심리학은 동조를 설명할 때 정보적 사회영향과 규범적 사회영향을 구분해 왔다.[1]
정보적 영향은 “나는 모르지만 저 사람들은 알지도 모른다”라는 추론이다. 규범적 영향은 “나는 다르게 생각하지만 혼자 튀면 불편하거나 손해를 볼 수 있다”라는 압력이다.
OX 퀴즈에서 자신은 O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는데 교실의 90%가 X로 이동하면, “내가 놓친 것이 있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꽤 합리적이다. 반대로 “그래도 O라고 생각하지만 혼자 서기 싫다”면 규범 압력이다.
신경과학 메타분석과 리뷰에서도 집단 의견과의 불일치가 갈등, 혐오적 경험, 가치평가와 관련된 신경 활동을 유발하고 이후의 동조 조정을 예측할 수 있음이 보고된다.[2]
즉 “분위기를 읽는 것”은 특정 문화만의 현상이 아니다. 강도와 조건에는 문화 차이가 있지만, 타인을 정보원으로 사용하고 배제를 피하려는 메커니즘은 널리 나타난다.
2. Asch 실험의 핵심은 “한 명의 이견”이다
Solomon Asch의 고전적인 선 길이 판단 실험에서는 답이 매우 분명한데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같은 오답을 말하면 참가자가 핵심 시행의 약 3분의 1에서 다수의 오답을 따라갔다.[3]
하지만 독립적인 판단도 많았다. 이 연구는 “사람은 다수에게 완전히 복종한다”를 보여준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은 버티지만, 만장일치는 실제 압력을 만든다.
그리고 다수의 만장일치가 깨져 단 한 명이라도 다른 답을 말하면 동조가 크게 줄었다.
이건 빈 줄과 거의 같다.
아무도 오른쪽으로 가지 않는다. → “못 가는 곳인가?”
한 사람이 간다. → “아, 가도 되는구나.”
첫 사람은 명령하지 않는다. 그 선택지가 사회적으로 가능한 선택임을 보이게 만든다.
Bond와 Smith가 17개국 133개 Asch형 연구를 분석한 메타분석도 동조가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한 사회만의 특성은 아님을 보여준다.[4]
3. 첫 사람이 생기면 흐름은 스스로 커질 수 있다
Granovetter의 임계치 모델은 개인의 선택을 집단행동으로 확장한다.[5]
A는 아무도 없어도 한다. B는 한 명이 하면 한다. C는 두 명, D는 세 명이 필요하다고 하자.
A → A+B → A+B+C → A+B+C+D.
집단의 평균적 선호가 비슷해도 초기에 낮은 임계치를 가진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줄도 마찬가지다. 붐비는 줄은 실제로 더 느리지만,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여기가 맞는 줄”이라는 정보처럼 보인다. 빈 줄은 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의심스럽다.
사람이 있어서 맞아 보이고, 맞아 보여서 사람이 더 모인다.
Centola 등의 실험은 인위적 사회규범 환경에서 확고한 소수집단이 임계량에 도달하면 기존 규범을 뒤집을 수 있음을 보였다. 특정 실험에서 약 25%가 전환점이었지만, 25%가 사회 전체의 보편 법칙이라는 뜻은 아니다.[6]
4. 더 무서운 점은 모두가 진심으로 믿을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Timur Kuran은 1989년 동유럽 혁명을 설명하면서 사적 선호와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선호의 차이를 강조했다.[7]
체제를 싫어해도 반대 발언이 위험하면 지지하는 척한다. 이웃은 그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지지하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역시 침묵한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속으로 반대하면서도, 모두가 다른 사람들은 찬성한다고 믿는 상태가 가능하다.
그러다가 이견을 공개해도 안전해지는 순간,
“말해도 되는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도.”
라는 연쇄가 시작된다.
보이는 규범이 급변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내면이 동시에 180도 바뀐 것은 아니다. 숨겨져 있던 선호가 표면으로 나온 것일 수 있다.
5. 전쟁과 선전은 ‘국민 전체 세뇌 스위치’보다 복잡하다
전시 일본에서는 국가총동원법, 국민정신총동원운동, 정보 통제와 선전 등 광범위한 동원 체계가 형성되었다. 1938년 내각정보부 자료에는 그 실행 구조가 상세히 남아 있다.[8]
그러나 겉으로 같은 협력 행동도 내면은 다를 수 있다. 진짜 지지, 제한된 정보 속의 믿음, 처벌과 가족 피해에 대한 공포, 동조, 체념, 전략적 적응은 구분해야 한다.
나치 독일의 라디오 연구도 선전의 효과가 만능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정권이 방송을 장악한 뒤 당원 모집과 반유대 행동 등에 효과가 있었지만, 지역의 기존 반유대주의 수준에 따라 영향이 크게 달랐고, 기존 편견이 낮은 곳에서는 반대 방향의 효과도 관찰되었다.[9]
르완다에서는 폭력을 선동한 RTLM 라디오가 학살 참여를 증가시켰고, Yanagizawa-Drott는 약 5만1000명의 가해 참여, 전체 폭력의 약 10%를 방송에 귀속시켰다. 이웃 마을로 퍼지는 사회적 파급효과는 직접효과보다 더 크게 추정되었다.[10]
핵심은 “전파가 마음을 원격 조종한다”가 아니다. 메시지가 기존 감정과 결합하고, 가시적 행동을 바꾸며, 그 행동이 다시 다른 사람의 사회적 정보가 되는 것이다.
6. 패전 뒤 일본도 하루 만에 전 국민의 머리가 바뀐 것은 아니다
1946년 미국 정부 보고서는 일본이 예상보다 빠르게 항복과 점령을 받아들인 이유로 천황의 항복 명령, 정부와 군 지도부에 대한 환멸, 새 상황에 대한 적응 등을 제시했다.[11]
다만 이것은 점령 측 미국의 관찰이며 일본인의 영원한 성격을 증명하는 자료가 아니다.
전시에도 지지, 의심, 공포, 체념, 편승, 저항이 함께 있었다. 전후에도 안도, 충격, 슬픔, 분노, 적응, 가치 재편이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학교, 미디어, 법, 제도, 지도자의 신호와 공개 발언의 범위가 함께 바뀌면 “무엇을 말해도 되는가”와 “무엇이 정상처럼 보이는가”는 빠르게 바뀔 수 있다.
뇌가 교체된 것이 아니라 같은 사회학습 장치에 들어가는 입력이 바뀐 것이다.
7. 선거에도 사회적 영향은 있지만 자유자재의 조종 장치는 아니다
인기 후보나 승리할 것 같은 후보에게 더 끌리는 밴드왜건 효과는 정치학에서 오래 연구됐다.
하지만 단순하지 않다. 최소 정보 선거 실험에서는 여론조사 숫자만으로는 투표 전환이 잘 일어나지 않았고 추가적인 질적 자극이 필요했다.[12]
또 Kalla와 Broockman은 미국 일반선거의 기존 40개 현장실험과 9개 새 실험을 분석해 선거운동 접촉과 광고의 후보 선택 설득효과 평균이 거의 0이라는 추정치를 보고했다.[13]
즉 사회적 영향은 존재하지만 인간은 빈 단말기가 아니다. 기존 정당성향, 가치, 지식, 네트워크, 출처 신뢰성, 메시지 적합성, 반발이 모두 작용한다.
8. 왜 남들이 하지 않는 삶은 더 무서운가
표준 경력만 보이는 환경에서는 이동하며 글을 쓰는 생활, 단기 프로젝트와 일용·단기 일을 조합하는 생활, 포트폴리오형 경력 같은 선택이 실제 위험 이상으로 무섭게 느껴질 수 있다.
첫째는 모호성 회피다. “실패확률 30%”는 위험이지만 “확률 자체를 모른다”는 모호성이다. 사람은 알려지지 않은 확률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14]
둘째는 사회적 증거의 부족이다. 누군가 2년간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은 성공을 보장하지 않지만 “불가능”을 “실제로 존재하는 선택”으로 바꾼다.
셋째는 현상유지 편향이다. 현재의 급여, 직함, 집, 생활패턴은 실물이고 새로운 삶의 장점은 아직 가설이다.[15]
넷째는 평판 위험이다. 금전 손실은 회복할 수 있어도 신뢰, 경력상의 평가, 건강, 안전, 법적 지위, 공동자산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9. “아무도 안 한다”는 GO도 STOP도 아니다
가장 좋은 질문은 이것이다.
왜 널리 하지 않는가?
규제 때문인가? 경제성이 나쁜가? 위험한가? 희귀한 기술이 필요한가? 실패 후 복귀가 어렵나? 수요가 없나? 기술 발전으로 최근에야 가능해졌나? 그저 사회적으로 이상해 보일 뿐인가?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원하지 않는가? 이미 소수가 하는데 내 주변에서만 보이지 않는가?
마지막 세 가지라면 “전례가 적다”는 사실 자체는 강한 반대 근거가 아니다.
상식을 버릴 필요는 없다. 상식을 증거로 쓸 때의 가중치를 1차 정보에 맞게 조정하면 된다.
10. 첫 사람이 되려면 용기보다 값싼 실험을 설계하라
합리적인 첫 사람은 전 재산을 거는 사람이 아니다. 불확실성을 싸게 줄이는 사람이다.
Effectuation 연구의 affordable loss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익을 정확히 예측하는 척하기보다 “감당 가능한 손실”을 먼저 정하는 사고방식이다.[16]
혁신 확산 연구에서도 작게 시험할 수 있는 trialability와 결과가 보이는 observability는 채택과 정적 관련을 보인다.[17]
인생 실험이라면 다음처럼 바꿀 수 있다.
- 법, 고정비, 세금·보험, 수요, 실패사례를 먼저 확인한다.
- 기대수익보다 최대 허용 손실을 먼저 정한다.
- 의미 있는 최소 규모로 시험한다.
- 실제 정보가 쌓일 때만 투입을 늘린다.
- 철수 조건을 사전에 정한다.
- 부채, 건강, 안전, 불법, 공동자산, 중대한 평판 손상 같은 꼬리위험은 평균 기대값과 별도 회계로 본다.
- 상태뿐 아니라 타인이 나를 보는 예측까지 되돌릴 수 있는지 본다.
- 다른 사람의 돈·주거·시간·안전·신용에 영향을 주면 개인실험이 아니라 공동결정으로 취급한다.
목표는 “겁을 이겨내고 뛰어들기”가 아니다.
정보를 싸게 사는 것이다.
결론: 사회는 거대한 분산 컴퓨터이고, 첫 사람은 ‘전례’를 만든다
인간이 다른 사람을 보는 것은 약점만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혼자 계산할 수 없으니 타인의 행동을 쓰는 것은 합리적이다.
문제는 모두가 모두를 입력값으로 쓸 때 피드백이 생긴다는 점이다.
“다들 하니 맞겠지.” → “맞아 보이니 더 많은 사람이 한다.”
반대 방향도 가능하다.
한 사람이 빈 입구로 들어간다. 뒤의 사람은 “거기도 되는구나”를 배운다.
한 사람이 낯선 일하는 방식을 작게 시험하고 실제 비용, 실패 조건, 결과를 공개한다. 다음 사람은 더 이상 완전한 모호성 속에서 결정하지 않는다.
첫 사람이 만든 것은 성공담만이 아니다.
뒤에 오는 사람의 불확실성을 낮추는 ‘전례’라는 사회적 정보다.
그러니 일부러 반골이 될 필요는 없다. “남들이 하는 것”과 “증거가 말하는 것”을 다른 칸에 적으면 된다.
증거가 위험하다고 하면 멈춘다. 전례가 없을 뿐이라면 작게 시험한다.
한 사람이 안전하게 지나가면, 그 길은 더 이상 아무도 없는 줄이 아니다.
- Deutsch & Gerard, 1955, normative and informational social influence
- Wu, Luo & Feng, Neuroscience & Biobehavioral Reviews, 2016
- Solomon E. Asch, 1955/1956, conformity studies
- Bond & Smith, Psychological Bulletin, 1996
- Granovetter,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1978
- Centola et al., Science, 2018
- Kuran, World Politics, 1991
- 일본 내각정보부, 국민정신총동원 관련 자료, 1938,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 Adena et al.,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2015
- Yanagizawa-Drott,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2014
- U.S. Department of State, FRUS 1946, Far East Vol. VIII, document 159
- Fleita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1971
- Kalla & Broockman,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2018
- Review of Economics and Statistics, “Unraveling Ambiguity Aversion,” 2023
- Samuelson & Zeckhauser, Journal of Risk and Uncertainty, 1988
- Sarasvathy, Read, Dew & Wiltbank, Strategic Entrepreneurship Journal, 2009
- Weigel et al., Communications of the AIS, 2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