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Chat에서 낯선 사람을 믿기 어려운 이유

VRChat에서 처음 보는 아바타가 다가와 “안녕하세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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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모르는 사람”이 이미 경계 대상이 되는 심리

VRChat에서 처음 보는 아바타가 다가와 “안녕하세요”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바로 대화를 시작한다. 다른 누군가는 “누구지? 왜 나한테 말을 걸지?”라고 느낀다.

차이는 단순히 사교성이 좋고 나쁜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모르는 사람’을 처음 어떤 상태로 분류하느냐에 있다.

어떤 사람에게 신뢰 0은 “아직 판단하지 않음”이다. 다른 사람에게 신뢰 0은 “일단 경계”다.

여기서 ‘가면’이라는 비유가 잘 맞는다. 아바타가 실제 가면처럼 보여서가 아니라, 상대의 의도·과거·현실 정체·접근 이유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 신뢰에는 원래 불확실성이 들어 있다

신뢰한다는 것은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 완전히 모르는 상태에서 조금의 취약성을 감수하는 것이다.

낯선 사람과 짧게 대화하는 것에도 작은 위험은 있다. 친절할 수도 있고, 경계를 넘을 수도 있고, 귀찮게 굴 수도 있고, 그냥 인사만 하고 갈 수도 있다.

문제는 확률을 모른다는 점이다.

2018년 Nature Communications 연구에서는 이런 ‘확률 자체를 모르는 불확실성’을 더 잘 견디는 사람이 낯선 상대에게 신뢰와 협력을 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상대의 행동 정보가 충분히 주어지면 개인차는 줄었다.[1]

즉 “모르는 사람이라 무섭다”는 반응은 단순한 겁이 아니라, 정보가 없는 상태를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의 차이일 수 있다.

2. VRChat은 거리는 가까운데 배경 정보는 적다

Social VR은 묘한 조합을 만든다.

상대는 눈앞에 있다. 목소리가 들리고, 시선과 몸의 방향도 느껴진다. 그런데 실제로 누구인지는 거의 모를 수 있다.

일반 SNS라면 프로필, 게시물, 공통 친구, 활동 흔적을 먼저 볼 수 있다. 학교나 직장이라면 적어도 왜 그 사람이 그 장소에 있는지는 안다.

반면 VRChat의 공개 인스턴스에서는 처음 보는 아바타가 바로 다가와 말을 걸 수 있다.

2024년 연구에서는 Social VR이 인간관계 형성에 유리한 특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개인정보에 대한 걱정과 다른 이용자를 신뢰하기 어려운 감각도 두드러진다고 보고했다.[2]

즉 “심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신원 정보는 적은” 상황이다.

3. 모르는 국제전화와 비슷하다

가장 쉬운 비유는 처음 보는 해외 번호에서 걸려온 전화다.

누구지? 왜 전화하지?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지? 사기인가? 내가 받을 이유가 있나?

많은 사람은 “일단 받아보고 안전한지 확인하자”가 아니라 “안전한지 모르니까 받지 말자”를 선택한다.

VRChat에서 낯선 사람이 말을 거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는 이 구조가 비슷하다.

“말해 보면 알 수 있잖아”라는 말은 순서가 반대처럼 느껴진다.

말을 시작하기 전에 최소한 “이 사람과 대화해도 괜찮겠다”는 신호가 필요하다.

4. 신뢰를 만드는 두 방식

첫 번째는 확신 우선 방식이다.

모르는 사람 → 의도가 안 보임 → 아직 신뢰할 수 없음 → 대화하지 않음

두 번째는 행동 관찰 방식이다.

모르는 사람 → 부담 없는 짧은 대화 → 행동 관찰 → 괜찮으면 계속 → 이상하면 떠남

온라인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연구에서는 직접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상대를 파악하는 데 특히 효과적이었다.[3]

그래서 한쪽은 “모르면 이야기해 보면 되지”라고 하고, 다른 쪽은 “모르는데 왜 이야기해야 하지?”라고 한다.

5. “이상하면 차단하면 되지”가 안심이 되는 사람

VRChat에는 음소거, 아바타 숨기기, 차단, 안전 설정 같은 기능이 있다.[4]

이런 기능을 강한 안전장치로 보는 사람은 처음부터 높은 신뢰를 줄 필요가 없다.

이상하면 떠난다. 불편하면 차단한다. 분위기가 안 맞으면 월드를 옮긴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100% 안전한가”가 아니라 “잘못 판단했을 때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가”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불쾌한 대화 한 번 자체가 이미 비용이다. 말을 거는 순간부터 부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차단하면 되잖아”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효과를 주지는 않는다.

6. 아바타는 안전한 탈이 되기도 하고 수상한 가면이 되기도 한다

익명성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

한쪽에서는: “진짜 누군지 모르겠다.”

다른 쪽에서는: “현실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현실의 나를 전부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VRChat과 Social VR 연구에서는 익명성이 새로운 정체성 표현을 시도하게 하거나, 일부 이용자에게 더 편안하고 안전한 느낌을 주는 사례가 보고돼 있다.[5][6]

같은 아바타가 누구에게는 은폐이고 누구에게는 보호막이다.

7. 익명이라고 자동으로 위험한 것은 아니다

2025년 Social VR 실험에서는 일반 아바타를 통한 익명화가 자기와 닮은 아바타보다 더 큰 행동 억제 해제를 만들지 않았다. 시선과 대화 순서도 대면 상호작용과 비슷했다.[7]

기존 온라인 연구에서도 부정적 행동을 익명성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고, 눈맞춤 부재 같은 요소도 따로 중요하다고 나타났다.[8]

따라서 정확한 식은 “모르는 아바타 =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아바타 = 정보가 적어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에 가깝다.

8. 전화에서도 같은 반응이 생기는 이유

처음 보는 번호, 모르는 목소리, 불명확한 목적.

이것도 결국 같은 구조다.

낯선 사람과의 소통에서 불확실성과 불안이 높을수록 회피가 늘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9]

따라서 문제는 VR 자체보다 “모르는 사람과 접촉을 시작하는 문턱”일 수 있다.

9. 꼭 인간 불신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알고 지낸 뒤에는 편하게 대화할 수 있다면, 사람 전체를 못 믿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신뢰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공통 친구, 같은 커뮤니티, 먼저 관찰할 시간, 천천히 다가오는 상대, 쉽게 떠날 수 있다는 감각이 있으면 시작 문턱은 낮아질 수 있다.

10. 결국 차이는 ‘신뢰 0’의 의미다

한 사람에게 신뢰 0은 ‘미정’이다.

조금 말해 보고 +1, +2로 바꾼다.

다른 사람에게 신뢰 0은 ‘경계’다.

+1이 될 근거가 생기기 전에는 접촉하지 않는다.

전자는 대화를 통해 신뢰를 만든다. 후자는 신뢰할 만해 보여야 대화를 시작한다.

둘 다 나름의 논리가 있다.

11. VRChat의 ‘가면’이 흥미로운 이유

현실에서도 사람은 옷, 직함, SNS 프로필로 자신을 편집한다.

VRChat은 그 자유도를 극단적으로 높인다.

고양이도 되고, 로봇도 되고, 판타지 캐릭터도 된다. 목소리와 외형이 일치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는 “안에 누가 있든 상관없다. 지금 재미있으면 대화한다”고 느낀다.

다른 누군가는 “겉모습을 이렇게까지 바꿀 수 있다면 안쪽은 더 알 수 없다”고 느낀다.

같은 시스템이 한쪽에는 자유를 늘리고, 다른 쪽에는 불확실성을 늘린다.

그래서 핵심 질문은 “사람을 믿는가?”만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을 얼마나 오래 ‘아직 판단하지 않은 사람’으로 둘 수 있는가?”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빠져나올 수 있다고 느끼는가?”

이 두 답이, 낯선 아바타가 ‘탈을 쓴 사람’으로 보일지 ‘가면 뒤의 정체불명’으로 보일지를 크게 바꾼다.

  1. Vives & FeldmanHall (2018) doi.org
  2. Cummings & Ingber (2024) doi.org
  3. Antheunis et al. (2010) doi.org
  4. VRChat Safety and Trust System docs.vrchat.com
  5. Frontiers in Virtual Reality (2022) doi.org
  6. Frontiers in Virtual Reality (2024) doi.org
  7. Son & Rubo (2025) doi.org
  8. Lapidot-Lefler & Barak (2012) doi.org
  9. Duronto et al. (2005) do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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