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 인플레이션』 노예선 편 이후, 특히 루크와 그레셤의 관계에 대한 중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슈에이샤의 2권 공식 소개는 노예선에 “탐욕스러운 거상”이 타고 있으며, 적투성이인 루크가 상대에게 이익을 제시해 자기편으로 만들고 계속 협상을 벌이며 살아남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1]
이것만으로도 루크와 그레셤의 관계가 어디서 시작하는지 알 수 있다.
우정이 아니다.
거래다.
그런데 그레셤의 영입 제안은 이상할 정도로 거대하다. 대륙에 철도를 깔고, 바다에 증기선을 띄우고, 전신을 보급하고, 해저 케이블로 대륙을 연결하자는 비전을 말한다.[2]
거의 “근대 세계를 같이 만들자”는 수준이다.
그리고 그 비전의 종착지는 여전히 부다.
0. 이상을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초대형 사업 제안이다
보통의 기업가 캐릭터라면 “이런 사회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사업을 한다”라고 말할 법하다.
그레셤은 순서가 반대로 보인다.
더 벌고 싶다. 그렇다면 철도도, 증기선도, 전신도, 해저 케이블도 하면 된다.
인프라 계획 자체가 거짓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진심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마지막 화살표다.
교통을 빠르게 만든다. 시장을 연결한다. 정보를 빠르게 보낸다. 상인이 국경을 넘어 돈을 벌게 한다.
그리고 끝에는,
그 새 세계에서 생기는 부를 손에 넣는다.
꿈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벌려다 보니 꿈처럼 거대한 사업이 튀어나온다.
그게 그레셤의 이상함이자 묘한 멋이다.
1. 루크를 데려가려는 이유도 “불쌍해서”가 아니라 먼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2권 공식 소개만 봐도 루크는 상대에게 이익을 보여 주며 적을 협상 상대로 바꾸는 인물이다.[1] 여러 2차 자료도 그레셤이 루크의 배짱과 상재를 높이 평가한다고 해석한다.[3]
즉 영입의 기본 구조는,
“마음에 든다”보다 “이 녀석은 돈이 된다”가 먼저다.
그레셤은 루크의 신분보다 담력, 판단 속도, 상재, 그리고 나중에 드러나는 능력의 경제적 가치를 본다.
이건 인도주의적 평등이 아니다.
사람을 “얼마의 가치를 만들 수 있는가”로 보는 위험한 평가 방식이다.
다만 캐릭터의 판단 기준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적이다.
2. 루크를 위험에서 지키는 행동조차 “자산 보호”로 상당 부분 설명된다
여기가 특히 재미있다.
그레셤이 루크를 살리거나 위험에서 빼내려 하는 장면을 보면, 보통은 “정이 들었다”고 읽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레셤에게는 다른 설명이 항상 남아 있다.
루크가 죽으면 엄청나게 돈이 되는 인재를 잃는다.
실제로 2차 해설에서도 “루크가 가치 있기 때문에 보호한다”는 독해가 등장한다.[4] 다른 인물 해설에서는 그레셤이 사람과 물건을 금액으로 평가하는 습관이 있다고 정리한다.[5]
그래서 “구했다 = 순수한 선의”라고만 보면 캐릭터가 얇아진다.
그렇다고 반대도 단순하다.
“루크는 오직 상품일 뿐이고 감정은 전혀 없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이익으로 시작한 관계 위에 존경, 경쟁심, 재미, 이상한 친밀감이 나중에 계속 올라오기 때문이다.
3. “자산으로 본다”와 “진심으로 높이 평가한다”는 동시에 가능하다
그레셤에게는 다음 문장이 전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루크는 돈이 된다. 루크는 똑똑하다. 루크와 일하면 재미있다. 루크를 잃으면 큰 손해다. 루크의 상재는 진짜 대단하다.
그래서 그레셤의 칭찬은 계산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계산과 진심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이 녀석은 최고다. 최고로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이런 세계관이다.
단순한 이야기라면 이용 관계가 우정으로 바뀌면서 계산을 버릴 것이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더 이상하다.
계산을 버리지 않은 채 그 위에 관계가 자란다.
4. 영입이 강한 이유는 처음부터 “돈”만 보여 주지 않기 때문이다
돈에 미친 사람인데도 그레셤은 영입할 때 단순히 수익 숫자만 말하지 않는다.
먼저 완성된 세계를 보여 준다.
대륙을 달리는 철도. 바다를 오가는 증기선. 거리를 줄이는 전신. 대륙을 잇는 해저 케이블.[2]
즉,
“같이 부자가 되자”가 아니라 “세계를 이렇게 바꾸자. 그리고 그 세계에서 크게 벌자.”
라는 순서다.
영업 문구로도 강하다.
단순한 돈 숫자보다 세계 규모의 사업 그림이 상재 있는 루크에게 훨씬 매력적일 수 있다.
욕망은 단순한데 프레젠테이션은 문명급이다.
5. 그런데 그 세계 규모의 사업을 말하는 루크의 하반신 천은 유난히 적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복잡한 경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면서 화면 한쪽은 계속 이상하다.
대표적인 것이 루크의 옷이다.
공식 명칭이 일본 스모의 “마와시”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허리에 두른 천은 시각적으로 마와시나 훈도시를 떠올리게 한다.
화제는 계속 무거워진다.
통화. 노예제. 위조지폐. 무역. 철도. 해운. 전신. 국제 금융.
내용은 계속 중무장한다.
루크의 옷만 계속 경장비다.
세계 경제는 하이퍼 인플레이션.
루크의 천 면적은 하이퍼 디플레이션.
정보량과 천의 양이 반비례한다.
6. “머리는 초진지, 화면은 조금 이상함”이 이 작품의 강점이다
이 만화는 화폐 제도, 인센티브, 협상을 진짜 전투 수단으로 쓴다.
동시에 표정, 근육, 포즈, 옷, 과격한 대사로 계속 웃긴다.
루크의 복장도 그 낙차를 키운다.
다른 작품이라면 딱딱해질 협상을,
“왜 이 복장으로 세계 경제를 논하고 있지?”
라는 시각적 위화감이 부드럽게 만든다.
웃다가 보면 어느새 화폐의 신뢰, 이익 때문에 바뀌는 동맹, 협상력까지 생각하게 된다.
교과서 같은 주제를 들고 와서 절대로 교과서 얼굴을 유지하지 않는다.
7. 결론 — 그레셤에게 꿈이 없는 게 아니다. “돈을 버는 꿈”이 너무 크다
“그레셤은 돈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은 절반은 맞다.
나머지 절반이 재미의 핵심이다.
돈을 너무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철도, 증기선, 전신, 해저 케이블까지 상상력이 커진다.
루크가 경제적으로 가치 있기 때문에 지켜야 할 합리성도 생긴다.
그러면서 거래를 계속하다 보니 단순한 상품 취급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평가와 관계까지 생긴다.
돈이 관계를 망가뜨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돈이 관계를 만드는 축이 되기도 한다.
그게 그레셤과 루크의 기묘한 매력이다.
그리고 그런 문명급 사업 이야기를 하는 옆에서 루크의 허리 천은 끝까지 공격적일 정도로 적다.
인프라는 늘린다.
사업 규모도 늘린다.
이익도 늘린다.
천만 안 늘린다.
이것도 『하이퍼 인플레이션』답다.
- 슈에이샤 『하이퍼 인플레이션』 2권 shueisha.co.jp
- 그레셤 영입 장면을 인용한 あにまんch 토론 animanch.com
- 루크의 상재를 인정하는 그레셤을 다룬 note 글 note.com
- 그레셤이 루크의 가치를 이유로 지킨다고 해석한 LISTEN 「マンラジ」 제94화 listen.style
- RENOTE 그레셤 인물 해설 renote.net
- 슈에이샤 『하이퍼 인플레이션』 1권 shueisha.co.jp
- 소년 점프+ 『하이퍼 인플레이션』 작품 페이지 shonenjumpplu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