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애니 진짜 재밌어. 봐 봐!” “그거 봤어.” “그럼 이건?” “그것도 봤는데.”
추천을 받고 있는데 처음 듣는 작품이 거의 없다. 상대는 새로운 메뉴를 내놓는 기분이지만, 내 머릿속 책장에는 이미 전부 꽂혀 있다. 이쯤 되면 추천 시간이 아니라 소장 목록 대조 시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즐겁다. “어? 너도 그거 좋아해?” 한마디에서 대화가 갑자기 뜨거워지기 때문이다.
작품을 안다는 것과 그 사람이 좋아한다는 건 다르다
이미 아는 만화라면 작품명 자체는 새로운 정보가 아니다. 하지만 상대가 그 작품의 팬이라는 사실은 방금 처음 알게 된 정보다.
예를 들어 『니아 리스턴』을 떠올려 보자. 신까지 쓰러뜨린 전설의 무인이 병약한 어린 영애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누군가 이 작품을 좋아한다고 하면, 중요한 건 “봤냐, 안 봤냐”가 아니다.
“어떤 점이 좋았어?”
압도적으로 강한 주인공이 싸우는 장면이 좋았을까? 귀여운 외모와 전투광인 속마음의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학교와 방송 활동까지 하느라 바쁜 엉뚱한 일상이 재미있었을까?
같은 작품을 봤어도 마음에 남은 장면은 제각각이다. 상대의 대답을 듣는 순간, 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에서 새로운 재미가 튀어나온다.
“나 그거 알아”는 대화 종료 버튼이 아니다
추천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새로운 작품을 알려 주는 것, 그리고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해”라고 자기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다. 첫 번째가 필요 없어도 두 번째는 여전히 새롭다.
주변에서 잘 언급되지 않는 작품이라면 더 반갑다. “아는 사람이 있었네!”에서 끝나지 않고 “심지어 좋아한다고?”가 된다. 새로운 작품 대신 취향이 통하는 사람을 발견한 셈이다.
그러니 먼저 봤다고 자랑하기보다 “나도 좋아해. 너는 어느 장면이 제일 좋았어?”라고 묻는 편이 재미있다. 좋아하는 이유가 같아도 즐겁고 달라도 새로운 관점이 생긴다.
추천받는 작품을 거의 다 알고 있어도 괜찮다.
새 작품은 못 찾았어도, 같은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은 찾았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