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함께 있는 행복과 장기 계약의 부적합은 서로 다른 평가였다
연애가 끝나면 사람은 지난 시간을 하나의 판정으로 정리하고 싶어진다.
"정말 좋아했다면 왜 결혼하지 않았을까?" "결혼하지 못했다면, 즐거웠던 기억도 착각이었던 걸까?"
하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 평가가 동시에 성립한다.
- 같이 있으면 즐겁다
- 안기면 마음이 놓인다
- 대화와 데이트에 온기가 있다
- 이 순간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떨어져서 앞날을 생각하면 또 다른 평가가 돌아간다.
- 돈과 일하는 방식은 어떻게 될까
- 아이, 결혼식, 차, 집 같은 큰 바람이 어디까지 늘어날까
- 친척의 불안과 의견이 부부의 결정에 끼어들지 않을까
- 투자, 이직, 사는 곳, 자유 시간은 지켜질까
- 부족한 부분은 누가 오랜 노동으로 메울까
지금의 관계는 행복한데, 앞으로의 공동생활이라는 계약은 위험해 보일 수 있다.
그러니 가장 정확한 결론은 단순하다.
연애로서는 즐거웠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결혼 생활은 서로 맞지 않았다.
둘 중 어느 쪽도 거짓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2. 스킨십은 안정감을 주었지만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혼자 있으면 장기 계약에 대한 평가가 시작된다. 앞으로 들어갈 비용, 책임, 친척과의 선, 일하는 방식이 머릿속에서 한데 엮이고,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 하는 경보가 울린다.
그런데 만나서 안기면 마음이 놓인다. 좋아한다는 생각이 든다.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앞날에 대한 점검은 잠시 멈춘다.
이 상태는 술이나 담배와 비슷한 면이 있다. 괴로움이나 긴장을 잠깐만 낮춰 주기 때문이다. 다만 스킨십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친밀감은 연애의 중요한 가치이고, 진짜 행복이었다.
문제는 그 안도감이 문제 해결을 대신하게 됐다는 점이다.
혼자 생각하면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 만나면 마음이 놓인다
→ 결론을 미룬다
→ 떨어지면 경보가 돌아온다
→ 또 만나면 마음이 놓인다
여기서는 지금의 행복과 앞날의 부적합이 번갈아 앞에 나왔을 뿐,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니다.
3. 부모님께 소개한 것은 처음부터 짜 둔 마지막 절차가 아니었다
시간 순서를 정확히 따져 보면, 처음부터 "부모님께 소개해서 성의를 보인 다음에 조건을 적은 문서를 내밀자"라는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교제가 어느 정도 이어졌을 때 상대가 결혼을 진행해 달라고 했다. 더는 기다리게 하기 미안했다. 결혼을 생각한다면 부모님께 소개하는 게 순서다. 그렇게 생각하고 한 단계 나아갔다.
그런데 소개하고 한두 주쯤 지나자 "역시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강해졌다. 막연하던 결혼이 현실의 절차로 바뀌면서 풀리지 않은 문제의 무게가 더 커진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말로 하면 흘러가 버리고 잘 전달되지 않고 만나면 친밀감 속으로 도망쳐 버린다는 약점을 막기 위해 종이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그 종이는 치밀하게 짠 협상 문서라기보다 분위기에 떠밀려 가던 나를 멈춰 세운 비상 브레이크였다.
4. 부모님께 소개한 뒤에도 경보가 울린 건 당연했다
부모님께 소개했다고 결혼 조건이 해결됐다는 증거가 되는 건 아니다. 교제 기간, 상대를 기다리게 한 죄책감, 세상이 말하는 순서, 진심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밀고 나간 행동이었다.
머리로는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런데 몸과 감정은 이런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계속 감지하고 있었다.
- 부모와 자식 사이의 거리는 실제로 달라졌나
- 혼자 생활을 꾸려 갈 힘이 길러졌나
- 큰 바람마다 본인이 질 부담 방안이 붙어 있나
- 친척의 바람과 본인의 바람이 분리됐나
- 내가 최종 보증인이 되는 구조는 사라졌나
사회적인 절차가 진행되더라도 계약 조건이 나아지지 않으면 경보는 멈추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