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르는 사람뿐인 모임에서 질문하고, 이야기하고, 하이파이브까지 했다. 사람들은 낯을 안 가리는 성격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름을 기억하는 기능은 집에 두고 온 모양이다.
친목 게임 전에 이미 친해졌다
스무 명쯤 모인 자리에 갔다.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자리를 옮기며 말을 걸고, 궁금한 게 생기면 질문하고, 진행 중인 대화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했다. 준비된 친목 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혼자 친목 활동을 끝낸 셈이다. 게임이 시작 전부터 실직했다.
내 질문을 듣고 “나도 그거 궁금했어”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여러 사람이 생각하던 것을 그냥 먼저 물었을 뿐인데 대화가 풀렸다.
질문으로 대화를 돌리고 약점도 털어놓는다
내 이야기만 계속할 필요는 없다. 상대의 답을 듣고 흥미로운 부분을 다시 물으며 다른 사람도 참여하도록 한다. 시킨 적도 없는데 무급 진행자가 됐다.
진짜 중요한 것은 캐묻지 않고 상대의 반응을 존중하는 것이다. 2017년의 대화 연구에서도 후속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더 좋은 인상을 주는 경향이 나타났다. 물론 이번 모임을 조사한 연구는 아니다. 연구 초록
반대로 질문을 받으면 나도 길게 말한다. 실수, 약점, 배운 점까지 숨기지 않는다. 멋진 자기소개를 준비한 것이 아니라, 원래 생각해 둔 내용을 꺼낼 뿐이다.
AI와 생각을 정리한 시간이 대화 소재가 됐다
평소 AI와 인간관계, 기술, 사고방식, 미래의 꿈 등을 정리한다. 문장을 외우는 게 아니다. 여러 번 생각한 주제라 질문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다.
어릴 때는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말을 걸었다. 사춘기에는 다른 사람의 평가를 과도하게 의식하고, 말로 누군가를 상처 입힌 경험 때문에 움츠러들었다. 인터넷 정보도 영향을 줬을 수 있지만 한 가지 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이제는 진심 어린 질문을 반기는 사람이 많고 반응을 보고 조절하면 된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어린 시절의 호기심에 분석 기능이 추가된 느낌이다. 인사 전에 열리던 머릿속 비상회의도 드디어 짧아졌다. AI 하나만의 효과라고 말할 수는 없고 실제 대화 연습도 중요했다.
자율주행차와 스마트폰과 복슬복슬한 강아지
미래의 이상적인 삶을 묻기에 이렇게 답했다. 자율주행차로 원하는 곳을 여행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분석하고 옆의 복슬복슬한 강아지를 쓰다듬고 싶다고.
자유, 기술, 호기심, 강아지 사랑이 한 문장에 들어간다. 어디로 여행할지, 무엇을 분석할지, 어떤 강아지를 좋아하는지 질문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꿈 하나가 대화 소재 세트를 제공한다.
똑똑해 보인다거나 인기가 많을 것 같다는 칭찬도 들었다. 즐겁지만 그건 당일의 인상이지 지능 검사나 연애 실적은 아니다.
단어가 생각 안 나면 모두가 퀴즈를 푼다
문제는 이름과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거 뭐였더라? 이렇게 생겼고, 저런 기능이 있고…” 하고 힌트를 던지면 주변 사람들이 맞히기 시작한다. 내 머릿속 검색 기능이 고장 나면 단체 검색이 시작된다.
이름을 더 잘 기억하고 싶기는 하다. 그래도 좋은 대화와 완벽한 기억력은 다른 능력이다. 즐거웠던 만남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얼굴과 이야기는 기억할 것이다. 이름만 전부 ‘그때 그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