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두가 네 적이 되어도 나는 네 편이야.”
연애 대사로는 강하다.
그런데 논리 모드를 켜는 순간 다른 질문이 생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전 인류를 한 명도 빠짐없이 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악명이 높은 사람에게도 지지자, 측근, 공범, 이해관계자, 무관심한 사람, 아예 모르는 사람이 남았다.
그렇다면 이 대사의 진짜 초현실적 요소는 끝까지 남는 한 명의 연인이 아니라, 전 인류의 평가를 완벽하게 일치시킨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1. “많은 사람이 싫어한다”와 “전원이 적이다”는 완전히 다르다
많은 사람에게 미움받는 일은 가능하다.
여러 국가에서 적대시되는 일도 가능하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예외 없이 적”은 전칭 조건이다.
성립하려면 모두가 그 사람을 알고, 상황을 이해하고, 같은 방향으로 평가하며, 지지자도 협력자도 반대편에 서는 사람도 무관심한 사람도 없어야 한다.
심지어 적과 아군이라는 개념 자체를 형성하기 어려운 사람까지 포함해야 한다.
이쯤 되면 악당 설정이 아니다.
80억 개 예외 케이스를 잡는 소프트웨어 테스트다.
2. 역사상 극단적인 사례도 “전원” 앞에서 무너진다
미국 홀로코스트기념박물관은 히틀러 정권이 여러 계층의 상당한 지지를 받았고, 민간인과 전문직의 무관심에서도 이익을 얻었다고 설명한다 [1].
1945년 4월 베를린이 붕괴하는 상황에서도 요제프 괴벨스는 히틀러 곁에 남아 있었다 [2].
이는 범죄를 약화시키는 설명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리 파괴적인 정권이라도 문자 그대로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적”이라는 상태까지 가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오사마 빈 라덴도 비슷한 논점을 보여 준다. 2011년 Pew Research Center 조사에서 그의 지지는 여러 조사 지역에서 크게 하락했지만, 팔레스타인 지역 무슬림 34%, 인도네시아 26%, 이집트 22%는 여전히 그가 국제 문제에서 올바른 행동을 할 것이라고 신뢰한다고 답했다 [3].
이 수치는 세계 인구 전체의 지지율이 아니다.
핵심은 단순하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사람도 지지율을 0으로 만들기 어렵다.
3. 가장 유력한 후보는 인간이 아니라 단독 외계인이다
그래서 치트키를 쓴다.
인간이 안 되면 외계인을 한 명 투입한다.
외계인은 전 세계에 동시에 선언한다.
“나는 특정 국가나 이념 편을 들지 않는다. 인류 전체에 불이익을 주겠다.”
이제 꽤 그럴듯하다.
사회심리학과 집단 연구에는 외부의 공통 위협이 기존 집단 경계를 약화시키고 협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2019년 미국·독일·이스라엘에서 수행된 여러 실험에서도 공통의 적이 기존 사회 범주의 구분을 약화시키는 방향의 효과가 관찰됐다 [4].
하지만 “단결을 촉진한다”는 말은 “모두가 100% 같은 태도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
공통의 적은 강력하다.
전 인류 동의 버튼은 아니다.
4. “인류 멸망 환영파”라는 버그가 튀어나온다
외계인이 “인류를 멸망시키겠다”고 선언하면 모두가 적이 될 것 같지만, 바로 예외가 생긴다.
인류가 장기적으로 사라지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상도 있기 때문이다.
Voluntary Human Extinction Movement(VHEMT)는 인간이 자발적으로 번식을 중단해 장기적으로 종이 사라지는 미래를 상상하는 실제 운동이며, 최근 학술 연구에서도 ‘멸종을 긍정적 미래로 상상하는’ 대표적 사례로 논의된다 [5].
단, 이 운동은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자는 주장이 아니다. 핵심은 비폭력적이고 자발적인 비출산이다 [5].
따라서 살육형 외계인이 곧바로 이들의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인류 멸망”이라는 문장만으로 전 인류에게 동일한 감정을 만들 수는 없다.
5. 멸망 찬성파만 살려 주면 외계인이 복지 제도를 만든다
외계인이 규칙을 고친다.
“인류 멸망을 원한 사람은 죽이지 않고 자연수명까지 살게 하겠다. 죽고 싶지 않은 사람만 대상이다.”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바로 인센티브 문제가 발생한다.
“멸망을 환영한다고 말하면 살려 주는 거야?”
그러면 진심으로 멸망을 원하는 사람뿐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찬성파’를 자처하는 사람도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모두의 적이 되기 위한 규칙이 외계인 지지층을 생산한다.
최종 보스가 복지 창구를 열어 버렸다.
6. 욕망을 반대로 줘도 인간의 욕망은 두 가지가 아니다
다시 규칙을 바꾼다.
“살고 싶은 사람은 죽고, 죽고 싶은 사람은 산다. 네가 원하는 결말은 절대 주지 않는다.”
이제 단순한 파괴자가 아니라 좌절을 최대화하는 존재다.
하지만 인간의 선호는 이분법이 아니다.
자기보다 가족을 우선할 수도 있고, 오늘과 내일의 마음이 다를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상관없을 수도 있다.
또 “외계인이 선택권을 가져가는 것 자체가 싫다”는 사람도 있다.
두 개의 버튼을 뒤집는 것으로 80억 개 가치관을 모두 건드릴 수는 없다.
7. 최종형은 심층심리를 읽고 가장 싫은 결과를 고르는 오라클이다
결국 외계인은 의식적 희망만이 아니라 숨은 공포, 우선순위, 애착, 미래의 마음 변화까지 완벽하게 읽는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가장 원치 않는 결과를 선택한다.
이제 이 존재는 단순한 학살자가 아니다.
인간의 선호를 완벽히 관측하고 항상 반대 방향으로 최적화하는 ‘적대적 오라클’이다.
지지하려 해도 그 지지가 행복을 준다면 거꾸로 간다.
속이려 해도 속이려는 이유까지 이미 알고 있다.
이쯤 되어야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존재”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이미 정상적인 악당의 범위를 벗어났다.
8. 그래도 “전 인류”는 정의에서 막힌다
영아가 누군가를 ‘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은 어떻게 셀까?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적인가?
무관심은 적대인가?
겁이 나서 도망가기만 하는 사람은 적인가?
‘적’이란 미워하는 사람인가,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사람인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람인가?
이 순간 문제는 악당의 능력에서 단어의 정의로 이동한다.
“모두가 싫어한다”도 어렵지만, “모든 인간이 적이다”는 인지·정보·의도까지 요구하므로 더 어렵다.
100%는 현실 상태라기보다 설정상의 공리처럼 보인다.
9. 여기서 갑자기 꽤 긍정적인 철학이 나온다
전 인류에게 미움받는 법을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나면 결론이 뒤집힌다.
문자 그대로 모두에게 미움받는 것은 엄청 어렵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일은 현실이다.
집단과 충돌하는 것도 현실이다.
평판이 나빠지면 실제 손해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서 “나는 누구에게나 미움받는 사람”으로 넘어가려면, 인간들이 모두 같은 평가를 내린다는 거대한 전제가 필요하다.
현실은 다르다.
좋아함.
싫어함.
무관심.
모름.
판단 보류.
반대하지만 미워하지 않음.
인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귀찮기도 하지만, 동시에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10. 결론: 진짜 최종 보스는 ‘전원 일치’였다
“세상 모두가 네 적이 되어도 나는 네 편이야.”
로맨스로 읽으면 충분히 멋있다.
논리 퍼즐로 읽으면 점점 이상해진다.
역사적 악인도 부족하다.
외계인도 부족하다.
인류 멸망 선언도 예외를 없애지 못한다.
예외를 모두 없애려면 각 사람의 심층심리까지 읽고 가장 싫은 결과만 고르는 초자연적 존재가 필요하다.
그래도 영아, 무관심, 정보 부족, ‘적’의 정의에서 막힌다.
어쩌면 원래 문장에서 가장 SF적인 부분은 “한 명이 끝까지 사랑한다”가 아니라,
“나머지 전원이 의견 일치를 했다”는 부분일지 모른다.
현실로 돌아오면 조금 편해진다.
모두에게 사랑받기는 어렵다.
그리고 거의 같은 이유로, 모두에게 미움받기도 어렵다.
인류는 너무 제각각이다.
가끔은 그게 장점이다.
-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Adolf Hitler: Key Dates encyclopedia.ushmm.org
-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Joseph Goebbels encyclopedia.ushmm.org
- Pew Research Center (2011) pewresearch.org
-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Unite against… sciencedirect.com
- Zoltán Boldizsár Simon, “Utopias of Extinction,” Springer Nature (2026) link.springer.com
-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 Organization, “The common enemy effect…” (2019) sciencedirec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