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얼굴을 한 결혼·육아 지옥 풀콤보인데도 완성도가 너무 높다
※ 이 글에는 『늑대아이』(원제 '오오카미 코도모노 아메토 유키')의 스포일러가 있다.
※ 결혼이나 출산을 부정하는 글이 아니다. 사랑, 책임, 지원 체계, 아이의 자립을 영화가 어떻게 그리는지 살펴보는 총평이다.
『늑대아이』를 보고 나서 내가 내린 결론은 꽤 단순했다.
완성도가 너무 높다.
겉으로 보면 정말 예쁜 영화다.
엄마의 사랑.
시골의 자연.
자라나는 아이들.
누나와 동생이 갈라지는 갈림길.
마을 사람들과의 연결.
그리고 아이가 자기가 살아갈 길을 스스로 고르는 이야기.
그런데 구조로 뜯어 보면 내내 무겁다.
남편이 죽는다.
한부모가 된다.
아이는 평범하지 않은 특성을 가졌다.
엄마의 커리어와 생활은 아이 돌보기에 통째로 흡수된다.
학교, 지역사회, 병원, 제도와 이어지기가 어렵다.
두 아이는 같은 방향으로 자라지 않는다.
한 명은 인간 사회로, 한 명은 산으로 간다.
게다가 소헤이 쪽에도 재혼 가정, 내 자리가 없다는 감각이라는 인간 쪽 가정 문제가 더해진다.
그러니까 이건 꽤 결혼·육아 지옥 풀콤보인 영화다.
그런데도 다 보고 나면 "그냥 지옥이었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그게 대단하다.
초반 20분에 보인 위험이 전부 회수된다
이 영화가 잘 만든 점은 초반에 깔아 둔 위험이 나중에 정말로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 보이는 건 하나와 늑대남자의 순수한 사랑이다.
상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그래도 좋아한다.
아이가 태어난다.
아버지가 죽는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무겁다.
그 시점에서 조금만 생각해 보면 온갖 위험이 눈에 들어온다.
늑대 쪽 육아 지식이 아버지 한 사람에게만 쏠려 있는 건 아닌가.
아이들은 병원과 학교에 어떻게 연결될까.
두 아이가 같은 특성으로 자랄까.
엄마 혼자서 키울 수 있을까.
아이가 인간 사회에 들어갈 때 냄새나 몸의 특성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을까.
아메가 인간 사회가 아니라 자연 쪽으로 가면 정말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영화는 그걸 차례차례 보여 준다.
유키는 학교에서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아메는 점점 자연에 끌린다.
하나는 말리고 싶은 마음과 스스로 고르게 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흔들린다.
소헤이는 유키의 비밀에 가까워지지만 그걸 함부로 쓰지 않는다.
아버지의 부재는 계속 하나의 등 뒤에 남는다.
초반 20분에 보였던 구조적 위험을 이야기가 제대로 메워 나간다.
이건 정말 잘 만들었다.
"피임을 해라, 계획성이 없다"로만 끝내면 얕다
이 작품을 두고 "피임을 해라", "계획성이 없다"는 의견이 나오는 건 이해한다.
실제로 현실적으로 따져 보면 그렇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특별한 성질이 아이에게 이어질 수 있다.
병원이나 학교, 사회에 설명하기 어렵다.
아버지 쪽 지식이 사라지면 막힌다.
한부모가 됐을 때의 위험이 크다.
게다가 아이가 둘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하나만 낳고 멈추는 게 낫지 않았나 문제
는 있다.
첫째를 키우면서 어떤 특성이 나타나는지, 병원과 학교는 어떻게 할지,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를 보고 나서 둘째를 생각하는 편이 현실적이었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거기서 끝내는 것도 아니다.
하나와 늑대남자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거기에는 사랑이 있다.
악의를 갖고 아이를 만든 게 아니다.
그리고 하나 정도의 각오와 멘탈로 인생을 바칠 수 있다면, 바깥에서 단순히 "잘못이었다"고 잘라 말할 수도 없다.
문제는 "낳지 말았어야 했다"가 아니다.
사랑이 있는 것과 아이의 생활비용을 제대로 어림해 둔 것은 다르다 는 이야기다.
악의가 없다는 것과 어림이 충분하다는 것은 별개다.
이게 이 영화에서 가장 무거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그릇이 너무 크다
하나의 그릇은 정말 크다.
보통 사람이라면 꺾여도 이상하지 않다.
남편이 죽는다.
아이 둘을 혼자 키운다.
병원에도 학교에도 쉽게 맡기지 못한다.
시골로 이사한다.
농사를 배운다.
마을 사람들과 어울린다.
유키와 아메의 차이를 지켜본다.
아메가 자기 손이 닿지 않는 자연 쪽으로 가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걸 해낸다.
멘탈이 너무 강하다.
다만 하나가 대단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조금 위태롭다.
현실이라면 하나 한 사람에게 지워도 되는 무게가 아니다.
생활보호(일본의 기초생활보장 제도), 아동부양수당(일본의 한부모 가정 대상 현금 지원), 한부모 지원, 의료, 학교, 지역의 상담 창구, 친척이나 지원자.
이런 것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하나의 강인함과 마을의 도움으로 아슬아슬하게 성립한다.
그래서 아름답다.
그런데 동시에 무섭다.
하나가 너무 강해서 이야기가 성립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대로 무너질 수 있다.
이걸 놓치면 "엄마는 강하다"로 끝나 버린다.
그건 좀 위험하다.
하나는 강하다.
하지만 원래는 지원이 필요한 강함이다.
소헤이네 집에서 인간 쪽 가정 지옥도 추가된다
이 영화가 재미있는 건 늑대아이 쪽만 특수한 가정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헤이에게도 집안 사정이 있다.
엄마의 재혼.
새로운 가정.
새로 태어난 아이.
내 자리가 흔들리는 느낌.
그러니까 소헤이 쪽에도 평범하게 가정의 무게가 있다.
이건 꽤 잘 짠 부분이다.
늑대아이들만 힘든 게 아니다.
인간 쪽 가정에도 재혼, 있을 곳 없음, 고립, 말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
그래서 유키와 소헤이의 관계는 단순한 연애나 우정이 아니다.
유키는 비밀을 안고 인간 사회에 '로그인'하고 싶은 아이.
소헤이는 인간 사회 안에 있지만 집 안에서는 자리가 흔들리는 아이.
서로 다른 지옥을 가진 두 사람이 학교에서 만난다.
소헤이가 유키의 비밀을 함부로 쓰지 않는 것도 여기에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도 있을 곳에 대한 불안을 안고 있으니까 상대가 말하지 못하는 부분을 재미 삼아 드러내지 않는다.
이건 꽤 중요하다.
영화는 하나 쪽의 지옥뿐 아니라 소헤이 쪽의 가정 지옥까지 추가 DLC(게임의 추가 유료 콘텐츠)처럼 넣어 온다.
정말로 가족 풀콤보다.
유키는 "진짜를 털어놓고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유키의 성장도 아주 잘 짰다.
어릴 때는 늑대인 것을 즐긴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면 인간 사회에 로그인하고 싶어진다.
원피스를 입는다.
친구와 관계를 만든다.
평범한 여자아이로 보이고 싶다.
그런데 짐승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듣는다.
다치게 하고 만다.
자기 안의 늑대 기질이 인간 사회에서 사고를 일으킨다.
유키에게 자립은 늑대를 지우는 게 아니다.
늑대인 자신까지 포함해서 인간 사회에서 관계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헤이가 중요해진다.
소헤이는 처음부터 뭔가를 눈치채고 있다.
그래도 폭로하지 않는다.
함부로 쓰지 않는다.
유키를 인간 사회에서 밀어내지 않는다.
유키에게는
진짜를 털어놓고도 웃을 수 있는 사람
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건 유키가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받침대이기도 하다.
이 부분이 꽤 예쁘다.
아메는 늑대 100%가 되어 버릴까 불안하다
한편 아메는 점점 자연에 끌린다.
처음부터 인간 사회 쪽 출력이 약하다.
말수가 적다.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자연 속에서 감각이 열린다.
여우 스승 같은 존재에게 산을 배운다.
마지막에는 엄마 곁을 떠나 산으로 향한다.
여기도 아름답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보면 꽤 무섭다.
아메는 거의 늑대 100% 루트로 보인다.
인간의 지혜도 쓰면 된다.
산에서 인턴으로 시작해도 된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면 돌아와도 된다.
곰이 있다면 대책이 필요하다.
비상식량, 우비, 구급 키트, 돌아오는 길, 생존 보고 정도는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 이야기는 아메의 선택을 아주 상징적으로 그린다.
엄마의 손을 놓고 자기가 살 곳으로 간다.
이야기로서는 아름답다.
다만 생활 설계로서는 꽤 무섭다.
이것도 이 영화의 무게라고 생각한다.
육아가 끝나면 꽤 편해지기도 한다
한편 부모의 눈으로 보면 육아가 끝나고 나면 꽤 편해진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나는 계속 두 아이의 생활을 짊어져 왔다.
먹이고.
숨기고.
지키고.
학교를 고민하고.
밭을 일구고.
마을과 어울리고.
아메와 유키의 차이를 지켜보고.
인간 쪽과 늑대 쪽 둘 다 남겨 준다.
이게 끝난다.
유키는 인간 사회에 자기 자리를 만든다.
아메는 산으로 간다.
둘 다 자기 길을 고른다.
하나는 키우는 사람에서 배웅하는 사람이 된다.
쓸쓸하다.
하지만 생활 운영 면에서는 꽤 가벼워진다.
부모에게 아이가 손을 떠나는 것은 상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역할을 마쳤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지막의 하나에게는 슬픔과 안도가 둘 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도 꽤 현실적이다.
완성도가 높은 이유
이 영화의 완성도가 높은 이유는 몇 가지 있다.
먼저, 누구도 단순한 악인으로 만들지 않는다.
악인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구조의 무게가 보인다.
다음으로, 초반의 위험을 후반에 제대로 회수한다.
아메의 과묵함.
유키의 야성.
아버지의 죽음.
시골 이주.
마을의 도움.
소헤이가 느끼는 위화감.
아이들이 갈라지는 길.
전부 나중에 이어진다.
게다가 주제가 여러 겹이다.
엄마의 사랑.
아이의 자립.
부모가 손을 놓는 것.
결혼과 출산의 무게.
특성을 가진 아이를 사회와 잇는 일.
지역의 지원.
인간 사회와 자연.
비밀을 알아도 함부로 쓰지 않는 관계.
이렇게 많이 들어 있는데도 영화로서는 제대로 깔끔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래서 대단하다.
구조만 보면 꽤 지옥이다.
그런데 영상과 감정 덕분에 끝까지 볼 수 있는 영화가 된다.
이게 완성도의 높이라고 생각한다.
총평: 결혼과 육아의 무게를 아름다운 영화로 성립시켰다
『늑대아이』는 완성도가 꽤 높은 영화다.
겉은 엄마와 아이의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런데 뒷면에는 결혼, 출산, 사별, 한부모 육아, 특성, 지역 지원, 경력 단절, 아이의 자립, 부모가 손을 놓는 일이 전부 들어 있다.
솔직히 결혼·육아 최악의 패키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편이 죽는다.
아이는 특별하다.
엄마의 인생은 육아에 흡수된다.
두 아이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간다.
그래도 엄마는 지지한다.
이만큼 무겁다.
그런데도 영화로서는 제대로 아름답다.
그게 대단하다.
하나의 그릇은 너무 크다.
하지만 그 강인함을 그냥 미담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원래는 지원이 필요한 무게다.
생활보호나 한부모 지원, 지역의 지원이 필요해질 만한 이야기다.
소헤이 쪽 가정 문제까지 포함해, 가족이라는 것의 복잡함이 꽉 들어차 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유키도 아메도 자기 길을 고른다.
하나 역시 키우는 사람에서 배웅하는 사람이 된다.
무겁다.
그런데 잘 만들었다.
그리고 완성도가 너무 높다.
『늑대아이』는 예쁜 얼굴을 한 지옥을 끝까지 아름다운 영화로 성립시켰다.
그러니 높게 평가받는 것도 이해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