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 제목 (11번째 글)
심해생물이 낭만적인 이유, '정체 모를 것'에 의미가 붙는 순간
심해생물에게는 이상하게 낭만이 있다.
예뻐서만은 아니다.
귀여워서만도 아니다.
오히려 심해생물은 이상하다.
생김새가 이상하다.
이름이 이상하다.
얼굴이 이상하다.
크기가 이상하다.
사는 방식이 이상하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
뭘 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자꾸 보고 싶다.
이게 심해생물의 힘이다.
다케시마 수족관(아이치현 가마고리시)은 심해생물 전시가 최대 강점이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심해생물 전시 종류가 매우 많고, 계절에 따라 희귀종까지 다수 전시한다고 안내되어 있다. 관내 지도만 봐도 심해 대수괴, 심해의 작은 창, 심해 존, 사와린 풀(직접 만져 볼 수 있는 체험 풀) 등 심해와 관련된 볼거리가 꽤 많다.
그렇다면 다케시마 수족관은 왜 심해생물에 강할까.
그 배경에는 가마고리의 심해 어업이 있다.
공식 페이지 '타케스이의 매력'에서는 가마고리시에 심해어를 잡는 배의 항구가 있고 예로부터 심해 어업이 이루어져 왔다는 점, 심해와 근해의 물고기가 모두 풍부한 보기 드문 지역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또 어부들과의 네트워크 덕분에 특수한 심해생물을 많이 전시할 수 있다고도 소개한다.
즉 심해생물 전시는 수족관이 희귀한 생물을 사 와서 그냥 늘어놓은 것이 아니다.
지역의 어업, 어부, 어획, 연구, 전시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
이 점이 재미있다.
심해생물은 평범하게 살다 보면 마주칠 일이 없다.
그래서 보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빈칸이 있다.
"이건 뭐지?"
"왜 이렇게 생겼지?"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먹을 수 있나?"
"이런 게 바다 밑에 있다고?"
이런 궁금증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리고 전시와 손글씨 안내판이 그 빈칸에 의미를 채워 준다.
이것이 수족관의 역할이다.
심해생물은 그냥 수조에 들어 있기만 하면 '이상한 생물'에서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름이 있다.
해설이 있다.
가마고리의 어업과 이어진 이야기가 있다.
직접 만져 보는 체험이 있다.
먹이 주기 시간이 있다.
사육사의 관찰 일지가 있다.
그러면 '정체 모를 것'이 '재미있는 것'이 된다.
심해생물의 낭만은 미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미지에 의미가 붙는 순간에 있다.
예를 들어 테즈루모즈루(팔이 덩굴처럼 가지를 치는 바구니불가사리의 일본 이름)처럼 이름부터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생물이 있다.
이토마키후구와 키스지이토마키후구(둘 다 복어의 한 종류)처럼 이름도 모양도 궁금해지는 생물이 있다.
아귀 종류처럼 입과 생김새, 심해다운 분위기가 강렬한 생물도 있다.
저마다 '이게 뭐야?' 하는 입구가 있다.
그 입구를 전시가 붙잡아 준다.
그래서 심해생물은 글로 쓰기 쉽다.
심해생물은 검색 의도와도 잘 맞는다.
왜 이런 모양일까?
왜 이런 이름일까?
어디에 살까?
먹을 수 있을까?
왜 수족관에서 볼 수 있을까?
어떻게 잡을까?
사람은 모르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한다.
거기서 글이 태어난다.
다케시마 수족관은 이렇게 '모르는 것에 의미를 붙이는' 장치로서 강하다.
심해생물의 낭만은 미지와 해설의 조합이다.
그저 어두운 바다 밑에 있을 뿐이라면 무섭기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앞의 수조에 있고, 이름이 있고, 안내판이 있고, 사육사의 말이 있다.
그제야 비로소 낭만이 된다.
이 글의 한 줄
심해생물의 낭만은 미지 그 자체가 아니라, '정체 모를 것'에 전시와 해설로 의미가 붙는 순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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